봄을 맞아 서울 ‘부촌(副村)’ 강남과 용산에서는 진짜 ‘슈퍼 리치’들이 찾는 고급주택 시장의 문이 열리고 있다. 한동안 소식이 뜸했지만 강남 청담동과 용산 한남동 일대의 유명 호텔과 기존의 오래된 고급 빌라가 다시 지어지기 때문이다. 조용하던 강남 삼성동 고급주택가도 부동산 시장의 관심을 끌고 있다.
고급주택단지로 재건축될 청담 엘루이 호텔 일대
고급주택이 몰려있는 청담동 일대
▶청담동, 효성빌라·호텔엘루이
재건축한 럭셔리하우스
강남 속 강남으로 꼽히는 청담동에서 슈퍼리치들을 위한 고급주택 분양시장이 열리고 있다. 최근 분양을 시작한 고급빌라 ‘더 펜트하우스 청담’은 2000년대 초반 ‘강남 클럽의 메카’로 이름 날린 바 있는 호텔, ‘청담 엘루이’를 재건축하는 빌라(연립주택)다. 청담 엘루이는 청춘의 열기를 내뿜는 클럽이 2000년대 중반 이후 마포 홍대와 용산 이태원으로 확장하면서 한동안 발길이 뜸했었다.
영동대로 변 ‘청담 엘루이’ 자리에 대지면적 2588㎡에 지하 6층~지상 20층, 총 29가구 규모로 들어서는 더 펜트하우스 청담은 모든 집이 복층 형태로 지어진다. 고급단독주택이나 고급빌라는 계약면적을 기준으로 분양된다. 전용면적을 기준으로 하는 아파트와 다르다. 계약면적은 전용면적과 공용면적을 합친 면적이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공동이 사용하는 공간을 의미하는 공용면적은 보통 커뮤니티 시설이나 엘리베이터와 주차장 등이 차지하는 넓이를 말한다”며 “고급 주택은 이런 시설을 개별 집이 갖춘 경우가 많아서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전용·공용면적을 합친 기준으로 물어온다”고 말했다. 더 펜트하우스 청담의 경우 입주민 커뮤니티 공간인 휴게실과 피트니스 외에 가구당 5.1대까지 주차가 가능하다.
더 펜트하우스 청담(2019년 완공예정)의 경우 계약면적을 기준으로 701.04㎡형 27가구와 1014.84㎡형 펜트하우스 2가구로 구성된다. 최고층인 펜트하우스 두 가구는 별도로 야외 꼭대기에 수영장이 설치된 ‘루프 톱 풀(roof top Pool)’도 딸려 나온다. 최고층 펜트하우스의 분양가는 180억원에 이르고 나머지의 분양가는 70억~110억원으로 책정됐다.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29가구 중 12가구는 이미 계약을 마쳤다는 것이 사업자(시행사)인 빌폴라리스 측의 말이다. 일반 아파트와 다르게 사전청약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거래 관행이다.
회사 관계자는 “한강이 내다보인다는 점을 살려 거실 통유리창만 세로 6.5m, 가로 11.6m에 달하도록 설계했다”며 “복층형인 실내의 천장 높이를 6.7m로 높여서 개방감을 강조하는 등 전체 공간이 다른 고급주택보다 최대 85% 더 넓다”고 말했다. 그는 “냉난방과 조명 조절이 자동으로 작동되는 스마트 시스템 외에 고급주택의 필수 요건인 보안 서비스는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인근에서는 ‘청담 씨티아파트 1차’(2019년 완공 예정)를 재건축해 짓는 고급 빌라 ‘원에이치’가 들어선다. 4월 착공에 들어가는 이 단지는 지하 4층~지상 19층 규모로 계약면적은 521~624㎡형 복층 10가구와 단층 19가구로 구성된다. 역시 한강이 내다보이는 곳으로 분양가는 60억~180억원 선으로 정해질 전망이다.
이 밖에 갤러리아 백화점 인근 청담동 효성빌라를 재건축한 ‘효성빌라 청담 일공이’(2018년 완공예정)도 들어선다. 지하 3층~지상 7층 규모로 계약면적은 568~683㎡형 총 35가구 중 조합원분을 제외한 15가구를 분양한다. 1층은 단독 정원이 딸려 나오고 6~7층은 복층형 펜트하우스로 구성된다. 일부는 한강 조망이 가능하고 분양가는 60억~90억원 선이다.
더 펜트하우스 청담이나 원에이치의 경우 시행사인 사업체가 기존 주택을 사들여 재건축한 후 모두 분양하는 식이지만, 효성빌라 청담 일공이의 경우 조합 방식이다 보니 조합원들이 먼저 고르고 남은 물량이 시장에 나왔다. 현재로서는 대부분이 사전 청약을 통해 주인을 찾았다. 지난해 분양당시 서울 오피스텔 최고 가격으로 시장에 나온 ‘청담동 아노블리81’(3.3㎡당 분양가 3300만~3700만원 선)은 1실당 10억원을 넘나드는 가격이었지만 사전 청약·계약을 통해 81실이 모두 팔렸다.
고급주택 거래를 전문으로 중개하는 B업체 관계자는 “시장이 한정돼 있어 거래가 뜸하지만 한강이 내다보이는 강남 고급주택이라는 프리미엄과 개발 호재가 더해지면서 시세가 좀처럼 분양가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며 “배우 고소영 씨가 사들였던 청담동 ‘마크힐스’나 자산가와 교수, 벤처기업인이 사는 인근 ‘상지카일룸’ 등은 60억원 선에서 매매가 이뤄진다”고 귀띔했다.
시그니엘 레지던스 내부
▶‘강남판 비버리힐스’로 주목받는 삼성동
서울 강남구 삼성동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배우 전지현 씨 등이 소유한 집이 줄줄이 들어선 고급주택가다. 얼마 전 퇴임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자택도 삼성동에 있다. 삼성동 일대는 그간 소리 없이 빠르게 집값이 올랐다.
매일경제신문이 국토교통부 공시지가를 통해 분석한 결과 박 전 대통령의 자택이 자리한 삼성동 ‘차관아파트 사거리’ 위쪽 고급 단독주택가의 시세는 최근 4~5년 새 껑충 뛰었다. 2013년 당시 3.3㎡당 연간 매매가격(표준·개별지 합산) 변동률은 4.64%였지만 2016년에는 6.74%로 상승세가 더 두드러졌다.
박 전 대통령 자택(개별지 공시지가 기준·대지면적 485㎡)은 국토교통부 공시가격 기준으로 2012년 21억7000만원이던 것이 2013년 23억원으로 올랐고 지속적인 상승세 속에 2016년 27억1000만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공시가격일 뿐이다.
고급주택의 실제 시세는 이보다 높게 형성되는 데다 아파트같이 비교적 표준화된 시세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공시가격이 실거래가의 70%를 밑돈다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박 전 대통령 자택의 실제 시세는 30억원을 넘어설 것”이라며 “개발 호재로 시세가 오르고 있어서 올해 개별지 공시지가 역시 지난해보다 높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표준지 공시지가는 감정평가사가 대상 지역의 일부에 대해 조사·분석한 후 가격을 매긴 것으로 매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2월 말 발표한다. 개별지 공시지가는 이를 바탕으로 조정해 4~5월께 발표한다. 따라서 같은 동네의 단독주택이라 하더라도 표준지에 속하느냐 개별지에 속하느냐에 따라 공시 시점이 다르다.
눈에 띄는 점은 꾸준히 몸값을 올린 고급 단독주택가와 달리 아파트 가격은 출렁였다는 점이다. KB부동산 시세에 따르면 인근 아파트 ‘롯데캐슬 킹덤’과 ‘롯데캐슬 프레미어’ 등의 2016년 매매가격 변동률은 0.96%로 인근 단독주택(6.74%)에 비해 낮은 상승세다. 박 전 대통령 사택을 포함한 일대 단독주택 집값이 오르던 2013년, 이들 아파트는 -5.2%로 하락세를 보였다. 2012~2013년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국내 주택시장이 바닥을 치던 시기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3.3㎡당 아파트 매매가격은 서울시(1616만원)·강남구(2837만원)·삼성동(2901만원) 모두 2013년 가장 낮은 시세를 기록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고급주택 중개를 전문으로 하는 A업체 관계자는 “삼성동은 ‘황금노선’인 서울지하철 9호선이 2015년 2차 개통한 데 이어 ‘현대차 통합사옥(GBC) 건립·삼성역 복합환승센터·영동대로 지하개발’ 등 3대 대형 호재가 걸려있어 아파트 값도 오르는 것”이라며 “다만 고급단독주택의 경우 아파트처럼 많지 않고 유력 정치인과 기업 오너 가족, 인기 연예인들이 거액에 사들이기 때문에 경기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삼성동 고급주택은 한 채에 매매가격이 20억원 후반에서 90억원 선을 오간다. 단독주택은 전용면적을 기준으로 시세가 매겨지는 아파트와 다르게 대지면적에 따라 가격에 차이가 난다. 대체로 대지면적이 400㎡를 넘는 대형으로 전세금이 20억~30억원, 보증부 월세는 보증금 3억원에 월세 950만~1000만원을 오간다. 거래는 전문 중개인을 통해 알음알음 이뤄진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소유한 삼성동 단독주택(대지면적 823㎡)의 2016년 개별지 공시지가는 123억원이다. 삼성동 현대주택단지의 경우 업계에 따르면 매매 가격(대지면적 495㎡)이 70억~80억원 선이다. 1985년 현대건설이 지은 이 단독주택가는 2015년께 재건축이 가능해졌다. 이를 전후해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을 비롯해 이준호 NHN엔터테인먼트 회장, 강정석 동아쏘시오홀딩스 사장, 이동건 부방그룹 회장 등 재계 인사와 전지현, 송혜교, 김남주·김승우 부부 등 연예인들이 리모델링을 통해 실거주하거나 재건축 투자를 하면서 새삼 주목을 받아 ‘한국판 비버리힐스’로도 불린다.
▶모처럼 시장 나오는 서울 부촌의 주택들
강남 삼성동과 청담동 외에 도곡동, 용산구 한남동 등에서도 모처럼 고급주택 분양시장이 열렸다.
국토교통부가 공시지가를 발표할 때마다 고가 주택 상위 순위를 기록하는 ‘상지카일룸’이 오랜만에 시장에 나왔다. ‘타워팰리스’의 동네로 유명한 도곡동에서 필룩스가 상지건설을 인수한 후 처음 시장에 내는 빌라로 총 23가구로 구성된다. 이외에 ‘서초판 비버리힐스’ 방배동 동광단지에서는 ‘어퍼하우스3차’를 공사하고 있다. 동광단지는 프랑스인 밀집 거주지인 서래마을 옆 동네로 서리풀 공원을 끼고 있다. 썬데일과 아펠라움, 상지리츠빌 등 고급빌라가 줄줄이 들어서 있는 이 동네의 한 고급빌라에는 배우 최수종·하희라 부부가 거주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파 잠실동에서는 제2롯데타워 ‘시그니엘레지던스’도 올 상반기 분양시장에 나올 전망이다. 지상 42~72층에 들어서는 레지던스는 3.3㎡당 분양가가 7000만~1억원 수준이다.
한편 ‘진짜 부촌’으로 통하는 용산구 한남동에서는 외인주택 단지가 최대 340가구짜리 고급주택가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한남동 내에서도 한남대로에 접해 있는 등 금싸라기 입지로 주목받는 이곳은 총 6만677㎡ 면적의 땅 위에 외인주택(NIBLO Barracks) 아파트 10개동 등이 있던 자리다. LH로부터 땅을 사들인 대신에프앤아이는 설계와 인허가를 거친 후 분양에 들어가 빠르면 오는 2019년 준공·입주를 계획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오히려 강남보다 더 비싼 땅이다 보니 한 채당 90억원 선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앞서 지난해 3.3㎡당 8180만원 선에 나온 펜트하우스(분양가 80억~84억원 선)로 시장의 관심을 끈 ‘한남 더힐’은 분양가가 80억~84억원이었다.
고급주택 시장은 강남권 재건축을 비롯한 일반 주택 시장과 다른 별개의 시장이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실장은 “강남·용산 일대 고급주택도 전반적인 경기와 부동산 시장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상위 0.1%를 수요층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기의 영향을 적게 받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