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9월 16일 수요일, 일명 검은 수요일이라 불리게 된 이 날은 영국인들에 무척이나 치욕적인 기억으로 남았던 하루다. 당시 영국은 유럽통화제도(EMS) 중심기구인 ‘환율조절매커니즘(ERM)’에 가입돼 있었다. 이는 유럽 내 단일통화권을 구축하려는 과도기적 조치로 각 나라의 통화 가치 수준을 비슷하게 맞추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했다. 오늘날 통용되는 유로화의 전신이라 볼 수 있는 이 제도는 협정에 가입한 나라들의 통화 가치를 6% 오차 이내로 유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독일의 통일로 야기된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가입국들이 연달아 금리를 올리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높은 금리를 주는 독일로 돈이 쏠리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환율이 연동돼 있던 영국 역시 금리를 올려 자금 이탈을 막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후 금리 인상으로 인한 실업률의 증가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으며 경기가 급랭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났고 영국 파운드화의 가치는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난세에 등장한 사나이가 바로 헤지펀드의 개척자인 조지 소로스다. 파운드화의 약점을 간파한 소로스는 9월 15일에만 무려 100억 달러를 매도하는 등 모든 자금을 동원해 파운드화에 대해 매도 포지션을 취했다. 더불어 다른 헤지펀드들도 연달아 공매도하기 시작했고 그 액수는 무려 1100억 달러에 달했다. 파운드화 가치는 폭락했고 영국의 중앙은행인 잉글랜드뱅크는 외화보유액을 총동원해 파운드화를 방어하기 시작했다. 금리를 10%에서 15%로 대폭 인상하는 등 특단의 조치도 함께 취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영국 중앙은행은 헤지펀드들의 무지막지한 파운드화에 대한 공격을 당해낼 수 없었다. 결국 9월 16일 영국은 ‘환율조절매커니즘’ 탈퇴를 선언하면서 조지 소로스와 헤지펀드들에게 굴복했다. 이때 조지 소로스는 한 달간 약 10억 달러를 벌었고 소로스 펀드는 그 해 68.6%라는 경이로운 수익률을 올렸다.
▶한국형 헤지펀드의 부상
이 사건으로 ‘조지 소로스’는 ‘영국의 중앙은행을 굴복시킨 사나이’라는 별칭을 얻게 됐고 영국은 불명예를 안게 됐다. 더불어 이 이야기가 국내에도 알려지면서 당시 생소했던 ‘헤지펀드’라는 단어를 일반 대중들도 알게 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그러다 보니 헤지펀드는 일반인들에게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금융상품으로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실제 헤지펀드는 다양한 종류가 있고 주식형 펀드보다 낮은 변동성을 추구하는 상품도 많다. 더불어 시장의 흐름에 따라 수익을 노리는 일반 펀드와 달리 헤지펀드는 시장 상황에 개의치 않고 절대수익을 추구하며 투자대상도 일반 공모 펀드에 비해 제한이 적다.
2011년 12월 국내에서도 금융당국이 기존 사모펀드보다 운용 관련 규제를 완화하며 ‘한국형 헤지펀드’가 처음 등장했다. 그 후에도 연달아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가 줄어들고 있다. 특히 작년 10월에는 사모펀드 규제 완화 속에 최소가입금액이 기존 5억원 이상에서 1억원 이상으로 변경되면서 헤지펀드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최근 논의 중인 헤지펀드에 재간접으로 투자하는 공모펀드가 허용되면 최소 500만원이면 투자가 가능해진다. 전문 투자형 사모펀드(헤지펀드) 운용 조건도 완화되어 최소 자기자본이 60억원에서 20억원으로 변경되었고, 기존 자산운용사 외에 투자자문사와 증권사 등이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자문사 시절부터 높은 성과로 인기를 모았던 일부 회사들이 속속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운용사로 전환되며 ‘한국형 헤지펀드’의 중심으로 나서고 있다. 라임자산운용의 경우 작년 말 1호 헤지펀드를 출시한 이후 현재까지 약 1690억원의 자금을 모집하였으며 DS자산운용 또한 올해 2월 초부터 헤지펀드를 출시해 약 1250억원의 자금이 몰렸다.
그 외에도 LK자산운용, 그로쓰힐자산운용, 파인밸류자산운용, 보고펀드자산운용 등 약 30여 개 이상의 신생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자산운용사들의 헤지펀드 출시로 시장은 더욱 치열하게 경쟁할 것으로 전망된다.
▶성과 이끈 다양한 운용 전략
연초 이후 국내외 주식시장이 등락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다양한 전략을 활용한 헤지펀드들의 성과가 눈에 띈다. 이에 따라 49인을 모집하는 헤지펀드 규정상 성과가 우수한 일부 펀드의 경우 조기 마감되는 경우가 있다. 실례로 미래에셋증권의 경우 지난 2월부터 기존 미래에셋자산운용뿐만 아니라 라임자산운용, DS자산운용 등 신생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운용사의 헤지펀드를 신규 판매하여 단기간에 모집인원을 마감했다.
쏠쏠한 수익률은 헤지펀드의 몸값을 더욱 높이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미래에셋스마트Q아비트라지’는 2012년 1호 펀드가 출시됐으며 누적 성과는 약 19.4%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안정적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 2호 펀드가 출시되었으며 모집 한 달 만에 조기 마감될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다. 이 펀드는 채권차익거래를 주 전략으로, 상대가치전략, 이벤트드리븐전략 등 다양한 전략도 역동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시장 상황에 관계없이 중기적 관점에서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도록 운용되고 있으며 시장 위험을 적극적으로 헤지 해 손실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있다.
이와 함께 더불어 신생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운용사인 라임자산운용과 DS자산운용의 헤지펀드 또한 많은 관심 속에 모집인원을 마감했다. 특히 라임자산운용의 경우 ‘행성시리지’와 ‘칵테일시리즈’의 두 가지 형태 펀드를 출시했으며 기존의 주식롱숏전략외 퀀트헤지와 메자닌(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글로벌 상장지수펀드(ETF) 등에 투자하여 안정적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이 저성장으로 인해 몇 년간 ‘박스권’ 흐름을 이어가면서 일반 주식형 펀드로 성과를 내기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더불어 저금리 시대를 맞아 중위험·중수익 상품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한국형 헤지펀드’의 신규 가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설정액이 4조원을 돌파해 지난해 5월 설정액 3조원 돌파 후 10개월 만에 1조원이 증가했다. 더불어 국민연금의 헤지펀드 투자가 시작될 예정이며 일반 투자자들의 재간접 헤지펀드 투자도 허용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앞으로도 ‘한국형 헤지펀드’는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헤지펀드를 선택할 때 단순히 단기 성과만을 추종하기보다는 변동성이 낮고, 꾸준한 성과를 기록하며 다양한 전략을 수행할 수 있는 등 여러 요소를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검증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적합한 헤지펀드를 선택한다면 헤지펀드는 저성장·저금리 시대에 효과적인 자산 증식 대안 중 하나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