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과 구글 인공지능(AI) 알파고 간 세기의 바둑 대결 이후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가 금융산업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올초 증권사 랩어카운트나 은행 신탁 형태로 하나둘씩 나왔던 로보어드바이저 금융상품도 펀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금융 선진국인 미국에서 최근 3~4년 사이 30세 전후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로보어드바이저 자산관리 시대가 드디어 국내에서도 본격 개막된 것이다.
아직 짧은 기간에 불과하지만 현재 운용 중인 로보어드바이저 금융상품의 투자 성과도 인간보다 나은 편이다. 금융당국은 로보어드바이저가 금융 투자자들에게 낮은 비용으로 맞춤형 자산관리를 해줄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라고 판단하고 관련 산업 육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나섰다.
▶로보어드바이저 자산관리시대 개막
로보어드바이저는 로봇을 의미하는 로보(Robo)와 자문가를 의미하는 어드바이저(Advisor)의 합성어다. 미리 짜인 알고리즘대로 컴퓨터 프로그램이 인간의 개입 없이 자동으로 투자종목이나 자산배분 포트폴리오를 짜서 그대로 매매하는 것을 말한다. 로보어드바이저는 투자자의 위험성향과 자금활용 목적 투자기간 등을 파악해 투자자의 눈높이에 맞는 기대수익률과 위험도가 반영된 포트폴리오를 로봇이 제공한다는 게 특징이다. 물론 알고리즘을 어떤 구조로 짤지, 어떤 데이터를 넣고 뺄지를 결정해서 프로그래밍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될까. 우선 투자자로부터 5가지 안팎의 간단한 설문을 통해 위험성향을 파악하고 투자자금의 성격, 금액, 목표수익률 등을 파악한다. 이어 로보어드바이저가 투자자별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추천하고, 투자자와 일임계약을 맺은 증권사나 은행을 통해 투자를 실행한다. 이후 시장상황 변화에 따라 로보어드바이저가 자동으로 자산비중을 조절하게 된다. 향후 비대면 투자일임 계약까지 허용되면 영업점 방문 없이 보다 손쉽게 서비스 이용이 가능할 수 있다.
로보어드바이저의 또 다른 특징은 낮은 수수료다. 미국의 주요 로보어드바이저를 살펴보면 웰스프런트(Wealthfront)는 0.25%, 배터먼트(Batterment)는 0.15~0.35%, 퓨처어드바이저(Future Advisor)는 0.5%의 수수료를 각각 받고 있다. 와이즈반얀(Wise Banyan)은 기본 서비스는 무료로 제공하고 절세 등 부가서비스만 수수료를 받는다. 전통적 자문서비스의 평균 수수료가 1% 안팎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저렴한 편이다.
국내 로보어드바이저는 현재 증권사, 은행, 운용사와 결합한 형태로 상품이 출시되고 있어 아직은 투자비용이 1% 정도로 적지 않은 편이다. 향후 비대면 일임계약이 전면 허용되면 국내 로보어드바이저도 0.5% 내외의 저렴한 수수료가 가능할 전망이다.
최근 국내외에서 로보어드바이저가 팽창하는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기존 금융투자 서비스가 수수료는 높은데 수익은 제대로 돌려주지 못하는 데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이 매우 크다. 세계 경제가 구조적 저성장(뉴노멀) 국면에 접어들면서 더 이상 펀드매니저의 직관만으로는 위험을 회피하면서 초과수익을 내기 어려워진 것도 이유다. 중위험·중수익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자산에 분산투자하고 글로벌 시장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포트폴리오를 조정해야 하는데 인간이 하기엔 시간·비용 측면에서 모두 쉽지 않다.
최창규 NH투자증권 “미국에서 로보어드바이저가 성공한 배경은 저금리가 길어지면서 자산배분 수요가 늘어난 데다 자기주도형 고객의 투자 욕구를 충족시켜줬기 때문”이라며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로보어드바이저가 까다로운 고객들의 입맛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증권 로보센터
▶빠르게 진화하는 로보어드바이저
연초 국내 첫 도입된 로보어드바이저는 빠르게 진화하면서 일임형 랩어카운트와 신탁, 펀드, 일임형 ISA까지 점차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으니 환영할 만한 일이다.
국내 최초로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상용화한 쿼터백투자자문은 올해 1월 대우증권 등과 손잡고 일임형 랩어카운트 상품을 냈고, 국민은행과 신탁형 상품을 출시했다. 신한금융투자와 동부증권은 밸류시스템투자자문(아이로보)과 제휴해 각각 ‘자문형 로보랩’과 ‘아이로보 알파’ 자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디멘젼·쿼터백·밸류시스템 등 자문사 3곳의 랩어카운트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KEB하나은행은 지난 3월 독자 개발한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해 온라인으로 고객 자산관리를 돕는 ‘사이버PB’ 서비스를 내놨다.
1분기까지 랩이나 신탁 형태였던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은 2분기부터 펀드와 일임형 ISA로 보다 다양화되고 있다. 쿼터백자문은 키움투자자산운용과 손잡고 4월 중순 ‘키움쿼터백자산배분’ 펀드를 공모 형태로 출시했다. 이 펀드는 로보어드바이저가 미국에 상장된 2500여 개 ETF를 활용해 주식·채권·원자재 등 다양한 자산배분 포트폴리오를 짜면 펀드매니저가 이를 토대로 매매하는 구조다. 연 4~7% 수준의 중위험·중수익을 목표로 운용된다. 랩이나 신탁은 수천만원 단위로 투자가 가능하지만 공모펀드는 일반 투자자 누구나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다. 삼성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등 다른 주요 운용사들도 상반기 중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 공모펀드 및 신탁·랩어카운트 상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4월부터 일임형 ISA 상품을 내놓기 시작한 은행은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 ISA를 출시하고 있다. IBK기업은행은 4월 11일 출시한 일임형 ISA 상품에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도입했다. 로보어드바이저와 전문인력 간 협업을 통해 효과적인 자산배분과 상품선택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 시장상황에 맞는 최적화된 포트폴리오를 제공한다. 은행권에선 우리은행, 증권사 중에선 대우증권 등이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 일임형 ISA 상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밖에 유안타증권은 지난 1월 말 티레이더2.0이란 이름으로 로봇이 유망 종목을 추천하는 서비스를 전체 이용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자체 로보어드바이저를 개발해 특허를 출원 중인 삼성증권은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 사모펀드와 랩어카운트 등 다양한 상품을 출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1분기 수익률 펀드 평균 웃돌아
그렇다면 국내 로보어드바이저의 수익률은 어떨까. 쿼터백의 경우 국내 상장지수펀드(ETF)로 운용하는 상품이 3개월 동안 3% 정도 성과를 냈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12%에 달한다. 코스피는 작년 말 1961에서 3월 말에는 1995로 마감했으나 1분기에 2% 정도 올랐다. 같은 기간 국내주식형 펀드는 수익률이 0.1%에 불과했다. 외국인이 정유나 화학 등 저렴한 주식을 사들이면서 지수가 올랐는데 대부분 국내 펀드매니저들은 이런 업종 비중이 적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로봇과 사람을 1분기만 놓고 비교한다면 로봇이 사람에 앞섰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2008년부터 로보어드바이저 업체가 본격적으로 태동했다. 작년 말 기준 60여 개 업체가 사업을 벌이고 있다. 웰스프런트, 배터먼트, 퓨처어드바이저, 와이즈반얀 등이 로보어드바이저 기반의 자산운용 또는 투자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상위 15개 업체의 운용자산 규모가 510억달러(약 58조원)에 달한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AT커니에 따르면 2020년에는 미국 내 투자금액의 6%인 2조달러(약 2300조원)가 로보어드바이저로 운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로보어드바이저 상위 2개 업체 베터먼트와 웰스프런트의 평균 수익률을 살펴보면 2014년엔 4.2%였다. 그해 글로벌 증시가 평균 2.8% 상승한 만큼 시장 대비 1.4%포인트 정도 앞섰다. 2015년엔 평균 -0.5%를 기록했다. 마이너스 수익률이지만 같은 기간 글로벌 증시가 평균 4.4%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4%가량 시장 대비 초과 성과를 낸 것이다. 올해도 연초 이후 글로벌 증시의 저점인 2월 11일까지 로보 업체 2곳이 평균 -2.6%로 글로벌 시장 하락률 -11%에 비해 크게 앞섰다.
다만 아직은 로보어드바이저의 투자 성과가 인간보다 앞선다고 장담하기는 이르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국내의 경우 특히 로보어드바이저의 성과 검증 기간이 이제 고작 3~4개월에 불과하다. 권우영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국의 경우도 대다수 로보어드바이저가 금융위기 이후 자산시장이 호황기일 때 설립됐기 때문에 데이터에 의존하는 알고리즘 기반 거래가 예상 외의 시장 충격에 대응하는 능력은 검증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들은 “위기가 발생했을 때 로봇이 사람보다는 시장상황 변화에 따른 자산 리밸런싱 대응이 좀 더 빠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4분기부터 로봇이 직접 자문·운용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24일 제2차 금융개혁추진위원회에서 △로보어드바이저 규제 완화 △온라인 자문·일임업 허용 △독립투자자문업자(IFA) 도입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금융상품 자문업 활성화 방안’을 심의·의결했다. 현재는 법적으로 금융 투자자문과 일임의 주체가 사람으로 돼 있기 때문에 전문인력이 로봇을 투자에 활용하는 데 그치고 있다. 하지만 올해 4분기부터 로보어드바이저가 직접 고객 투자자문에 응하고 자산운용도 스스로 할 수 있게 된다. 미국처럼 로보어드바이저가 사람의 개입 없이 고객 자산을 직접 운용하는 단계까지 발전하는 것이다.
금융위는 로보어드바이저 역량을 검증하기 위해 올해 7월 가칭 ‘로보어드바이저 오픈 베타’ 사이트를 열어 자산배분 알고리즘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여부를 확인할 예정이다. 회사별로 대표 포트폴리오를 등록하고, 로보어드바이저가 직접 운용해 자산 배분 알고리즘의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하고 수익률·변동성 등을 공시하는 방식이다. 테스트에 참여한 로보어드바이저에 테스트 과정에서의 성과 등에 대해 홍보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은 또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 자문 계약과 일임형 ISA 계약을 4월 중순부터 온라인에서도 가능하도록 허용했다. 하반기부터는 온라인을 통해 로보어드바이저가 직접 자문을 하거나 일임형 ISA를 통해 운용하는 상품에 온라인으로 가입할 수 있다. 로보어드바이저에 직접 운용을 맡기는 투자일임 계약은 1~2년 정도 추이를 지켜본 뒤 온라인 허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게 당국의 생각이다.
온라인 투자일임 계약 허용까지 규제가 허물어지면 로보어드바이저 업체가 판매사를 끼지 않고 온라인에서 고객을 상대로 직접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자문이나 일임 수수료가 0.5% 수준으로 크게 내려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3월 말 로보어드바이저 세미나에서 “로보어드바이저 활성화에 대해 고객이 직접 지점을 찾지 않고 온라인으로 계약이 가능한 비대면 일임계약을 ISA뿐만 아니라 모든 상품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