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이 지휘하는 장군대좌형의 명당.”
풍수학자들은 장충동을 서울의 대표적인 명당으로 손꼽는다. 주변 산세가 마치 진을 치고 있는 주둔지 같은 모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충동 지역은 과거 조선시대 때 서울 도성의 남쪽을 수비하던 남소영이 주둔했던 곳으로, 이후 을미정변과 임오군란 당시 희생된 영령들의 제사를 모시던 초혼단이 자리해 있다.이 초혼단이 현재 지명인 ‘장충단’이다. 장충동이 이처럼 풍수학자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면, 재계에서는 다른 이유로 장충동을 최고의 명당으로 부르고 있다. 바로 대한민국 대표 기업집단인 삼성그룹이 장충동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장충동1가 110번지는 삼성그룹 내에서 ‘본가’로 불리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자택이 자리해 있다. 110번지 뒤로 범삼성가의 장자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살고 있고, 이병철 창업주의 장녀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역시 이곳에 터를 잡고 있다. 이뿐 아니다. 동호로를 건너면 삼성그룹이 운영하는 호텔신라가 장충체육관 뒤편에서 일대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병철 창업주의 막내딸인 이명희 회장의 신세계그룹 역시 이 지역에 상당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장충동 1가와 2가 일대를 ‘삼성타운’으로 부르는 이유다.
CJ 토지매입에 호텔신라와 신세계 가세
이런 장충동이 지난해부터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CJ, 호텔신라, 신세계, 한솔그룹이 장충동 내 부동산 매입에 잇따라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 양상까지 띠고 있다.
주변 중개업소 관계자는 “한 부동산을 놓고 동시에 매입경쟁이 벌어지기도 한 탓에 일대 부동산 가격이 부쩍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장충동이 ‘삼성타운’으로 불리게 된 것은 장충동1가 110번지에 이병철 창업주의 본가가 위치한 게 시작점이다. 삼성그룹 내에서 ‘장충동본가’로 불리는 110번지는 현재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소유로 관리인만 거주하고 있다.
110번지 뒤편인 장충동1가 107-1번지 제원빌라는 이병철 창업주의 장손인 이재현 CJ그룹 회장 일가가 살고 있다. 4층짜리 연립주택인 제원빌라는 현재 이재현 회장과 이 회장의 모친인 손복남 CJ제일제당 고문이 건물 전체를 소유하고 있다.
제원빌라와 닿아 있는 두 필지는 호텔신라가 소유하고 있다.
여기에 제원빌라와 담벼락을 같이 사용하고 있는 106-1번지 장충레지던스에는 한솔그룹 오너 일가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1층 일부를 LS그룹 일가인 구자철 한성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다른 주택들은 모두 한솔그룹과 오너 일가들이 소유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병철 창업주의 맏딸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과 맏사위인 조운해 강북삼성병원 이사장이 5층을 소유하고 있다. 또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을 비롯해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한솔아이글로브 회장) 등 형제도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이곳에는 외식기업으로 알려진 두가헌의 소유주인 도진규 씨가 거주하고 있다.
중구 장충동 일대의 범삼성가 부동산 소유 현황 (2014년 6월 20일 기준)
주변지역으로 매입 범위 확대
장충동 110번지 일대에서 눈을 돌려 주변을 살펴보면 범삼성가 계열 그룹들이 소유한 부동산은 더욱 늘어난다.
먼저 동호로와 맞닿은 르노삼성자동차 매장 건물인 120-1번지는 삼성전자가 소유하고 있다. 여기에 110번지 위로 있는 101번지 일대는 한국토지신탁이 소유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이 땅도 삼성타운의 일부일 것으로 인근 부동산가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이재현 회장의 자택 맞은편에는 CJ제일제당 소유의 근린체육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CJ그룹은 이곳을 중심으로 일대의 부동산을 꽤 많이 사들이면서 CJ경영전략연구소를 건립 중이다.
특이한 점은 호텔신라가 2012년 3월 사들인 장충동1가 52-16번지다. 이곳은 CJ그룹이 건설 중인 CJ경영전략연구소와 붙어 있다. 지도만 놓고 보면 한국자산신탁이 소유한 101번지 일대와 함께 CJ경영전략연구소를 둘러싸는 형국이다.
호텔신라는 장충동1가 110번지 외에도 호텔신라가 자리한 장충동2가의 부동산을 꾸준히 매입했다. 호텔신라 면세점과 장충체육관 사이 땅이 그곳이다. 1970년대 말부터 사들인 부동산도 있지만, 2011년과 2012년에 신탁회사를 통해 집중 매입했다.
호텔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부진 사장이 이곳을 전통 호텔로 개발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가 남산 자연경관지구의 건축완화 결정안을 보류하고 있어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
한솔그룹과 CJ그룹, 삼성그룹 산하의 호텔신라가 장충동 일대 부동산을 나란히 매입하는 사이 이병철 창업주의 막내딸인 이명희 회장의 신세계그룹은 장충동 족발집 거리로 눈을 돌렸다.
신세계그룹은 이곳에 신세계 직원연수원과 신세계건설이 입주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2012년 코람코신탁을 통해 61번지와 62번지 일대를 집중 매입했다.
범삼성가 계열 그룹들은 왜 장충동 일대 부동산을 이처럼 공격적으로 사들이고 있는 걸까.
여기에는 삼성가 뿌리에 대한 자연스러운 관심과 함께 정통성과 관련한 자존심 경쟁도 한몫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재현 회장이 장충동 일대 부동산을 사들이기 시작하면서 범삼성가 전체 그룹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걸었다는 시각이다.
다른 오너그룹 일가도 많아
장충동은 대한민국 대표 부촌으로 풍수상으로도 손꼽히는 명당인 만큼 이 곳에 둥지를 튼 재벌가 오너 일가도 적지 않다. 눈에 띄는 주거 단지는 장충레지던스 건너편에 자리한 105-1번지의 라임카운티아파트와 52-5번지의 상지리츠빌카일룸이다.
상지리츠빌카일룸에는 이재현 회장의 딸인 이경후 씨가 이 아파트 1층을 소유하고 있다. 이경후 씨가 소유한 이 아파트의 전 주인은 서미갤러리 홍송원 대표다. 홍송원 대표는 구자철 한성 회장의 부인인 홍정원 여사와 자매 사이로 2008년 삼성그룹 특검 당시 세간의 입에 오르내린 바 있다.
영풍산업 장철진 회장과 범LG가인 구자섭 한국SMT 회장의 차남인 구본근 씨는 2층 주인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또 안귀연 루미안홀딩스 대표와 사모펀드 운용사인 한앤컴퍼니 한상호 대표, 선인자동차 대주주인 장인우 씨, 신라교역 박성진 씨, 국제갤러리 회장으로 알려진 미술계 거장 김병수 화백도 이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 조선내화 이화일 회장은 이 건물 7층의 주인이다.
라임카운티아파트는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의 부인인 신유나 씨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신유나 씨는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의 동생인 신선호 일본 산사스식품 회장의 딸이다. 또한 이 건물 5층은 두산그룹 오너 일가인 박용성·박용만 회장이 과거 소유한 바 있다.
이밖에 장충동 110번지 건너인 100번지에는 서울사이버대학과 신일고의 소유주인 신일재단 이세웅 회장이 살고 있다. 이세웅 회장은 한국유리공업(현 한글라스그룹)도 경영 중이다. 또 62-35번지는 정도헌 종이나라 회장이 소유하고 있으며, 50-3번지는 현대중공업이 주인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