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연습장은 기본, 야외골프장에 와인바·식물농장까지.’
고급 커뮤니티 시설을 갖췄는지가 아파트 수준을 가늠하는 주요 요소로 떠오르면서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부동산 대세 상승기에는 ‘아파트를 분양받기만 하면 돈이 된다’는 생각에 편의시설 등을 일일이 따지기보다 투자가치에 초점을 맞췄던 수요자들이 최근에는 직접 거주하겠다는 분위기로 돌아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살기 편한 집’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
생활 편의시설이 아파트 단지로 속속 들어오면서 피트니스센터나 골프 연습장, 수영장 등의 운동시설은 물론 영어마을, 공부방 등 교육시설과 북카페, 소극장, 게스트하우스 등 문화시설까지 등장해 주민들이 대부분 일상생활을 단지 안에서 해결하는 ‘원스톱 리빙’이 가능해지고 있다.
아파트 단지 내에 경로당이나 몇몇 운동기구를 설치하는 것이 전부였던 아파트와 비교하면 ‘상전벽해’ 수준이다. 입지와 브랜드만으로 승부하던 시대가 가고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로 소비자를 사로잡아야 하는 새로운 경쟁의 시대가 찾아온 셈이다.
아파트에 골프장·와인바까지
다른 단지와 차별화할 수 있는 마케팅 포인트를 찾기 위한 건설사 간 경쟁도 뜨겁다. 롯데건설이 경기도 용인에서 분양 중인 ‘신동백 롯데캐슬 에코’는 야외 골프장을 선보인다.
신동백 롯데캐슬 에코에는 파3 골프장 6홀이 들어서는데 골프장은 아파트 소유자들의 대지면적에 포함되는 땅으로 아파트 소유자들의 재산이다. 골프장 운영 주체 역시 아파트 입주민들이다. 아파트 단지 내에 실내 골프연습장이 아닌 야외 골프장이 들어서는 것은 이 아파트가 처음이다. 골프장뿐 아니라 18홀 규모의 실내 골프연습장, 실내 수영장, 180석 규모 대형 독서실, 영어도서관, 연회장 등 9256㎡가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축구장 1.5배 규모(1만1900㎡)의 중앙공원도 들어선다.
동부건설이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 분양 중인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서울’에는 마사지, 음악, 아로마테라피 등을 즐길 수 있는 릴렉스룸과 스카이라운지가 만들어진다. 스카이라운지는 야간에 와인바로 운영된다. 영종지구 ‘우미린’은 입주자 공용 펜트하우스와 스카이라운지를 최상층에 설치한다. 스카이라운지에는 하늘이 바라보이는 실내 정원이 만들어진다. 야외에는 음악분수도 들어선다. 인천 청라지구 주상복합 ‘청라 롯데캐슬’의 일부 동 옥상에는 ‘스카이 그린큐브’라는 독특한 모양의 공중정원이 자리 잡았다.
SK건설이 수원시 정자동에 분양 중인 ‘수원 SK 스카이뷰’는 국내 최초로 해수풀 수영장이 설치된다. 해수풀 시스템은 화학약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최소한의 소금을 이용한 전기분해로 혼합 살균물질을 생성해 정화하는 친환경 살균 방식을 이용한다.
포스코건설이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서 분양할 ‘서울숲 더샵’에는 식물농장이라는 다소 생소한 시설이 들어선다. 전기와 물을 이용해 무농약·친환경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시설로 미래농업의 대안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일본 등지에서는 이미 인기를 끌고 있는 시설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남양주시 ‘진접 센트레빌 시티’는 문화·교육·건강 활동을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규모 커뮤니티 시설인 ‘센트웰’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단지 외곽의 1030m에 이르는 ‘칼로리 트랙’은 구간별로 칼로리를 체크해 입주민들의 운동량을 조절할 수 있어 인기다.
경기 용인 래미안 이스트팰리스 스파
경기도 용인시 동천동 ‘래미안 이스트팰리스’는 국내 최대 규모 인공폭포가 유명하다. 추락하는 물줄기가 쉴 새 없이 무지개를 만들지만 전기요금 걱정은 없다. 폭포를 움직이는 대부분 전력이 단지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연간 1000만원의 공용 전기요금이 절감되는 수준이다. 단지에 반사거울과 광덕트(빛이 흐르는 통로)를 설치해 태양 빛을 어두운 지하공간까지 끌어들인 것도 특징이다. 또 저장용량 2000t 규모의 빗물 저장탱크를 설치해 연간 공용 상수도 요금을 약 3000만원 절약했다.
한 대형건설사 마케팅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입지와 브랜드가 아파트 가격을 좌우했지만 최근에는 고급 커뮤니티 시설을 갖췄는지 여부가 아파트 수준을 가늠하는 주요 요소로 떠올랐다”며 “건설사들의 고급 커뮤니티 시설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커뮤니티 시설은 아파트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퍼스티지’와 ‘반포자이’는 수영장 피트니스센터, 골프연습장 등을 갖췄다. 이곳은 강남권에 오랜만에 들어선 대단지 새 아파트인 데다 유명 브랜드 아파트라는 점 못지않게 대규모 커뮤니티 시설을 갖춘 것으로 입주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던 곳이다.
‘래미안 퍼스티지’의 한 입주민은 “가구당 2만5000원의 기본 사용료가 관리비에 부과되는데 기본 사용료만 내면 헬스, 사우나, 수영장을 하루 2회씩 사용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며 “커뮤니티 센터에서 헬스, 골프연습, 수영 등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고 가끔 스크린 골프를 즐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커뮤니티 시설 덕분에 이들 아파트 매매·전세 가격은 주변 아파트에 비해 월등히 높게 형성돼 있다. 이런 움직임은 아파트를 넘어 오피스텔까지 확산되고 있다. 한화건설이 서울 송파구 문정동 가든파이브 활성화 단지에 분양 중인 ‘송파 한화 오벨리스크’가 대표적인 예다. 1500여 실 대단위 규모를 살려 소규모 오피스텔이 시도하지 않았던 커뮤니티 시설을 도입했다.
피트니스클럽, 독서실, 북카페 등을 설계했다. 앞으로도 커뮤니티 시설을 차별화하려는 건설사들의 움직임은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커뮤니티 시설에 집중 투자해 입소문이 나면 부족한 입지와 브랜드를 만회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동심(童心)을 잡아라
현대건설 김포 고촌 힐스테이트 커뮤니티 단지 / 신동백 롯데캐슬 수영장
동심(童心)을 잡기 위한 건설사들의 노력도 뜨겁다. 어린이들을 배려한 대단위 놀이터를 설계하고 전용 커뮤니티 시설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이고 ‘에듀 마케팅’을 도입해 어린이 교육까지 챙기는 아파트 단지도 나오고 있다. 아파트 구입 동기가 ‘투자’에서 ‘실수요’ 측면으로 전환됨에 따라 앞으로도 이런 분위기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이들의 마음을 잡는 데는 뭐니 뭐니 해도 놀이터가 최고다. 놀이터도 물놀이를 위한 곳, 교육을 위한 곳 등으로 차별화되고 있다.
반포자이 어린이 카약장
‘반포자이’ 단지 내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미니 카약장이 있어 인기다. 미니 카약 노를 저으며 섬을 탐험하는 물놀이터로 설계됐다. 괌의 한 인기 리조트를 벤치마킹해 만들었다. 1급 원목으로 만들었고 바닥을 탄성고무로 처리해 안전성을 높였다. 아기자기한 섬들과 흔들다리, 물대포 등 다양한 시설을 배치했다.
한라건설이 김포한강신도시에 짓는 ‘한라비발디’에는 물놀이 시설이 배치된 놀이터 ‘스프링파크’가 들어설 예정이다. 영종지구 ‘우미린’에도 물놀이 시설을 겸비한 어린이 놀이터가 설치된다.
대우건설이 충남 당진에서 분양 중인 ‘당진1차 푸르지오’는 어린이들이 놀면서 기초적인 과학지식을 습득하고 우주공간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우주왕복선 형태의 테마 놀이터 ‘사이언스 파크’가 들어선다. 한화건설이 경기도 용인시 보정동에서 분양하는 ‘죽전 꿈에그린’에는 ‘자연을 담은 놀이터’가 들어선다. 달팽이 나선형 구조 조형물을 세우고 완만한 경사로를 설계해 겨울에는 즉석 눈썰매장으로 변신한다.
아이 키우는 엄마의 마음을 배려한 시설도 눈에 띈다. 롯데건설은 단지 내 커뮤니티 시설로 ‘캐슬 맘&키즈카페’를 개발했다. 어린이 실내 놀이공간인 키즈카페와 부모 휴식공간을 결합한 특화 커뮤니티 시설이다. 미끄럼틀 등 다양한 놀이시설을 배치하고 동화구연실과 파티룸, 조리실 등을 마련했다. 수유실과 셀프바 등을 인근에 배치해 아이들을 지켜보며 다른 부모들과 교류할 수 있다.
롯데건설은 이를 이달 분양하는 경기도 파주시 교하 롯데캐슬 아파트에 처음 도입할 예정이다. 경기 고양시 ‘래미안 휴레스트’는 유아들이 안심하고 물놀이를 할 수 있도록 유아수영장을 만들었다. ‘진접 센트레빌시티’에는 맞벌이 부부를 위한 보육실이 있다. 문화·교육 시설도 아파트가 해결해 주는 시대다. 대구 수성구 ‘동일하이빌레이크시티’에는 영어마을이 있다.
각종 테마별 체험형 공간과 풍부한 학습시설을 갖춰 놓고 있어 단지 내에서 자녀들의 영어공부를 해결할 수 있다. YBM 시사어학원이 운영하고 있으며 입주민 자녀는 2년간 무료로 수강이 가능하다. 이 아파트에는 영어마을, 노래방 등 연면적 6022㎡의 커뮤니티 시설이 마련돼 있다. 경기도 평택시 장안마을에서 코오롱건설이 분양하는 ‘코오롱하늘채’는 단지 내에 영어교육 전문 기관이 들어선다. 역시 YBM과 손잡고 추진하는 프로젝트다.
단지 내 상가에 원어민 교사가 상주하는 키즈카페를 만들어 미취학 아동에게 놀이를 통한 영어 학습 기회를 제공한다. 초등학생은 입주 지정 종료일로부터 2년간 무료로 영어교육을 받을 수 있다. 초등학생 이상의 자녀는 인터넷 이러닝 시스템을 통해 교육이 가능하다.
관리비 부담에 애물단지된 곳도
다양해지고 고급스러워지는 커뮤니티 시설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일부 아파트에서는 관리비 부담 때문에 입주민들이 커뮤니티 시설을 외면하고 있다. 커뮤니티 시설이 아예 방치된 곳도 있다.
서울 마포구의 A아파트는 호텔급 입주민 시설과 세차, 발레파킹, 침대 시트 청소, 룸서비스 등 호텔식 서비스로 분양 당시 관심을 모았다. 입주 첫해에는 분양회사가 서비스 비용을 부담했기 때문에 모든 입주민들이 서비스를 이용했다. 하지만 1년 후 서비스 비용을 주민들이 부담하게 되자 사용률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세차 서비스는 일반 손세차장 1회 사용비로 1개월가량 혜택을 볼 수 있는데도 입주민의 20% 정도가 이용하지 않고 있다.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위치한 B아파트도 단지 내 3개의 커뮤니티 구역을 별도로 마련해 대규모 입주민 시설을 자랑한다. 입주민 중 고소득층 비중이 높고 아파트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다고 판단한 분양회사 측이 고급 유료시설을 대거 배치했지만 예상과 달리 클럽형으로 꾸며져 외부인을 접대하거나 사교모임을 갖는 공간인 1개 구역은 유명무실해졌다. 관리자를 고용하고 접객용 음식 등을 마련하는 비용이 고스란히 관리비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뛰어난 커뮤니티 시설로 유명한 서울 서초구 C아파트도 부녀회에서 자원봉사를 지원해 비용이 들지 않는 독서실은 활용도가 높지만 별도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특수 운동시설은 문을 닫았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커뮤니티 시설 활용 용도를 바꾼 곳도 있다. 인근 주상복합보다 관리비가 1.5배 비싼 서울 용산구 D주상복합은 활용도가 가장 높은 골프장에 수요가 큰 스크린골프를 설치하고 평상시에는 비어 있는 연회장을 문화교실로 활용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