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8일 경기도 파주시 날씨 맑음. 최고기온 섭씨 25도. 여름이 멀지 않았다 싶을 만큼 늦봄 기운이 한 가득 파고들어왔다. 어버이날이자 일요일인 이날 자유로에는 평소보다 차량이 많았다. 게다가 ‘징검다리 휴일’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파주는 남북분단의 아픔을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는 지역이다. 북한과 맞닿아 있는 파주에는 임진각을 비롯해 오두산 통일전망대, 제3땅굴, 도라산역 등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하는 북한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곳이 꽤 많다. 이 때문에 파주의 이미지는 침울하고 싸늘했다.
통일동산의 고려역사관
하지만 몇 년 전부터 파주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 ‘문화와 예술’의 이미지를 점점 심어주고 있다. 헤이리 예술마을, 파주출판단지가 큰 역할을 했으며 경기영어마을, 생태공원 등 파주 곳곳에 새로이 나들이 코스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특히 파주 탄현면 일대는 파주의 냉랭한 이미지를 벗겨내는 데 앞장서고 있다.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 많은 사람 유인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
파주를 ‘문화·예술·쇼핑의 도시’로 거듭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신세계·첼시의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 역시 탄현면에 자리 잡고 있다. 파주의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은 인근의 오두산 통일전망대, 헤이리 예술마을과 연결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파주로 유인하고 있다.
지난 3월 개장 이후 초기에 아울렛을 방문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오전·오후 구분 없이 차량 정체가 극심해 아울렛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거의 봉쇄돼 있다시피 했다고 전했다. 따라서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으로 들어가려면 근처에 있는 오두산 통일전망대 주차장에 주차하고 거기서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게 훨씬 좋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달 넘게 지난 지금은 아울렛으로 들어가기가 수월해졌다. 비록 휴일이자 어버이날이었지만 오전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아울렛을 일찍 방문한 사람들의 말이다. 아울렛 인근에는 벌써 신축아파트인지 건물 공사가 한창이다.
아울렛 내 커피전문점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처음보다 인적이 뜸해진 것은 사실이다”라며 “주로 점심식사 이후 서너 시쯤 사람이 제일 많다”고 전했다.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에서는 가족이나 연인끼리 와서 아울렛 내부와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워낙 이국적인 모습으로 꾸며져 있기 때문이다.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곳을 달려와 들어선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은 마치 딴 세상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또 대중적인 이미지도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을 유인하는 원동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프리미엄 아울렛 최초로 캘빈클라인, 토리버치 등 명품 브랜드 20여 개가 입점해 있는 것이 젊고 대중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나이키 등 스포츠용품 매장이나 생활용품, 어린이용품 매장이 많은 것도 가족과 연인이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준다. 따분한 일자형이 아닌 3층 구조로 빙 둘러선 구조도 많은 사람이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을 찾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꽤 이름 있는 브랜드의 매장에는 사람이 많다. 그중에는 매장 내에 고객이 너무 많아 밖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매장 내에 고객이 어느 정도 차면 더 이상 들여보내지 않는 것이다. 매장 내에서 쇼핑을 마친 고객이 밖으로 나가야만 다음 고객이 매장 안으로 들어설 수 있다.
고객 많이 찾는 매장은 출입 제한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에서 인기 매장 중 한 곳인 코치(COACH)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다. 매장 입구 바로 옆에서 길게 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흡사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듯 보였다. 고객들의 출입을 관리하는 코치 매장 한 직원은 “동선이 겹치면 고객이 쇼핑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관리하고 있다”며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아울렛 내 직원들은 고객이 제일 많이 찾는 매장으로 하나같이 나이키를 꼽았다. 실제로 나이키 매장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매장에 들고나는 데도 자유롭다. 명품 매장과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그러나 규모에 비해 사이즈별로 수량이 그다지 많지 않다. 나이키 매장의 한 직원은 “일종의 상설매장이라고 보면 된다”며 “철 지난 제품도 많아 크게 기대하고 오면 실망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아울렛에서는 또 잔뜩 기대하고 갔다가 실망할 우려가 있는 것이 몇 가지 더 있다. 프라다, 아르마니 등 유명 브랜드들의 깔끔하고 멋진 모습을 보기는 힘들다. 지갑, 벨트 등 잡화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쭈글쭈글한 모양 그대로 디스플레이를 해놓아 명품의 이미지를 반감시켰다. 창고에 처박혀 있던 물건을 펴지도 않고 걸어놓은 듯한 인상을 풍겼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가격이 저렴하지도 않다. ‘싼 가격’은 아울렛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인데 그것에서 별달리 차별화를 못 느낀다는 것이다. 한 예로 듀퐁의 타이의 경우 국내 라이선스 제품은 6만5000원, 직수입 제품은 9만5000원에 판매한다. 캘빈클라인 남성구두는 67만원에서 40% 추가 할인해 판매한다. MCM의 남성용 지갑은 12만9000원이다.
이 때문에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을 방문한 고객들은 생각보다 그리 싸지 않다고 말한다. 아울렛을 방문한 한 고객은 “여기까지 오는 시간과 비용 등을 감안하면 쇼핑 효율면에서는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아울렛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손에는 물건을 산 흔적이 거의 없다. 대개 그저 즐기러 오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개장 초기보다 방문객 수가 줄어든 것도 가격 때문일 듯하다.
아울렛 중앙무대에서는 간간히 작은 공연도 펼쳐진다. 아울렛 마당에는 분수대를 비롯해 휴식공간도 잘 마련돼 있어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다.
프리미엄 아울렛 인근에는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있다. 통일전망대까지 바로 차로 올라가도 되고 통일전망대 주차장에 주차시키고 셔틀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주차장에서 통일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에 저 멀리 웅장한 기와집이 보인다. 고려역사관이다. 파주가 남한에서는 유일하게 고려의 역사가 숨 쉬는 곳으로서 통일과 화합 등을 기원하기 위해 고려역사선양회에서 건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초 2006년 6월 완공, 개관 예정으로 알려졌으나 아직 개관하지 않고 있다.
통일전망대는 임진각과 함께 파주의 상징적인 곳이다. 한강과 임진강의 교차지점에서 북한과 맞닿아 있는 이곳은 북한을 지근거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전망대로 위로 올라가면 망원경이 몇 대 설치돼 있어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북한을 들여다볼 수 있다. 단 이용료 500원을 지불해야 한다.
망원경으로 들여다본 북한은 그냥 휑한 모습뿐이다. 한 시민은 “호기심에 들여다보긴 했는데 북한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며 “건물만 드문드문 보일 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군인들이 족구를 하는 모습이 보여 신기해서 들여다보고 있는데 알고 보니 한국군이었다”며 쑥스러워했다.
이곳에는 특이하게도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북한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중국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지만 중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와서 북한을 강 건너로 ‘구경’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때가 때인지라(어버이날) 통일전망대를 찾은 실향민을 이따금 만날 수 있었다. 내려오는 길 셔틀버스에서 만난 한 노인은 “아들 내외와 손주 녀석들과 함께 고향땅을 보기 위해 찾았다”며 “북쪽 땅을 보는 데 500원을 내야 한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 공덕동에 살고 있다는 이 노인은 또 “고향이 그리운 것은 사실이지만 휴일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 겸 나온 것도 좋다”며 “파주는 길도 시원하고 갈 곳도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독특한 문화예술공간 헤이리 예술마을
파주출판단지. 마침 출판단지에서는 ‘와글와글 어린이 책잔치’가 한창이었다. / 헤이리 예술마을.
통일전망대에서 나와 조금만 더 가면 헤이리 예술마을이 있다.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이 생기기 전까지는 서울에서 출발해 자유로를 타는 짧은 드라이브 코스의 종착점 구실을 하던 곳이다.
헤이리 예술마을은 미술인, 음악가, 작가, 건축가 등 380여 명의 예술인이 모여 집, 작업실,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 공연장 등 문화 예술공간을 만든 곳이다. ‘헤이리’라는 이름은 파주 지역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래농요 ‘헤이리 소리’에서 따왔다고 한다.
헤이리 예술마을의 건축물은 하나같이 독특한 디자인을 뽐낸다. 예술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는 코스도 산책이나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제격이다. 많은 연인과 가족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양한 전시회를 볼 수 있고 카페 ‘황인용 Music Space’처럼 음악을 감상할 수 있으며 먹을거리도 있어 식사도 해결할 수 있다. 전시, 행사, 공연 등이 수시로 열려 심심하지 않다. 헤이리 예술마을은 디자인 관련이나 예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필수 견학지다. 사진을 찍기에도 좋은 곳이다.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나와 서울로 가는 길목에는 또 하나의 문화공간이 있다. 파주출판단지가 그곳. 때마침 어린이날 기간을 맞아 ‘와글와글 어린이 책잔치(5월 5~10일)’가 한창이었다.
파주출판단지에 모인 웬만한 출판사들은 출판단지의 너른 마당에 모두 부스를 마련해놓고 출판단지를 찾은 어린이와 학부형들에게 책을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출판단지를 찾은 엄마들도 상당히 많았다. 아이의 손을 잡고 부스를 돌아다니며 책을 보여주는 엄마가 있는가 하면, 땅바닥에 주저앉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엄마도 있었다. 중앙무대에서는 계획돼 있던 ‘판소리야 놀자’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경기 파주 탄현면 일대의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 헤이리 예술마을과 함께 교하읍의 출판단지는 파주의 침울하고 싸늘한 이미지를 활달하고 온화한 이미지로 변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북한과 닿아 있고 임진각과 판문점이 있는, 우리나라의 분단과 냉전의 분위기를 대표적으로 느낄 수 있는 파주가 어느새 나들이와 드라이브하기에 좋은 곳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남한 땅의 제일 위쪽이라고 할 수 있는 파주시 탄현면이 변신이 이를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