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거리 하면 서울 강남구 논현동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논현가구거리에서는 국내 중저가 가구부터 이탈리아·독일 등 유럽 명품가구까지 또 침실·거실·주방가구 등 다양한 가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일반인들이 생소한 유럽의 명품가구를 보기 위해서는 꼭 논현가구거리를 방문해야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만큼 논현가구거리는 고급·명품 이미지가 강했다. 이러한 이유로 논현가구거리는 지난 십 수 년 동안 명성을 이어왔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들어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외환위기로 논현동 내 많은 가구업체가 문을 닫았던 것이다. 2000년대 후반으로 들어서면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와 부동산 경기 침체로 또 다시 많은 매장이 논현가구거리를 떠났다. 지금도 동방가구의 경우 확장 이전한다면서 점포정리를 하고 있다. 동방가구 자리에는 수입 명품가구 매장이 들어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외 업체 다시 논현동으로
논현가구거리의 침체는 거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명품가구 매장이 차차 청담동으로 옮겨가면서 시작됐다. 또 논현가구거리 업체들의 조합인 논현가구상점가진흥사업협동조합의 사업 진행 부진과 강남구청의 육성지원 사업 중단 등이 한꺼번에 얽히면서 예전 같은 활기를 잃어갔다. 강남구청 지역경제과 관계자는 “시 예산이 줄어들면서 논현가구거리 지원·육성사업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논현가구거리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국내외 가구업체가 새로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직영점 형태로 들어서고 있는 것도 논현가구거리로서는 고무적인 현상 중 하나다. 더 많은 디자인과 종류를 갖춰 고객 유인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보루네오가구가 논현가구거리에 직영점을 오픈하면서 제일 먼저 바람을 일으켰다. 새롭게 오픈한 보루네오가구의 3층짜리 직영매장의 겉모습은 명품가구거리라는 명성에 걸맞을 만큼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특히 보루네오는 2년 전 논현가구거리가 경기 위축으로 한산해지면서 기존 매장을 철수한 바 있다. 다시 논현동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논현가구거리의 상권이 살아나고 있다는 증거다.
‘에넥스 그랜드 오픈’이라는 대형 현수막을 내건 에넥스의 새로운 건물도 눈에 띈다. 6층 건물에 1650㎡ 규모인 에넥스의 논현 매장은 에넥스가 개장한 직영장 중 최대 규모다. 리바트도 오는 5월 논현가구거리에 대형 직매장을 오픈하기 위해 한창 공사 중이다. 국내 업체뿐 아니라 유럽 명품가구 업체도 논현동에 매장을 열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처럼 논현가구거리에 최근 대형 직매장이 잇달아 오픈하면서 한산했던 거리가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다.
논현가구거리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다. 당시 서울에서 ‘가구거리’라 불릴 만한 지역은 종로구 인사동이었다. 1974~75년 인사동에 있던 가구업체들이 강남 개발바람을 타고 논현동으로 옮기면서 지금의 논현가구거리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논현가구거리에 제일 먼저 자리를 잡았다는 영동가구 이재민 실장은 “35여 년 전 이곳은 전부 아스팔트도 깔리지 않은 흙으로 된 땅이었다”며 “우리와 한국가구가 맨 처음 자리를 잡았는데 당시에는 가구거리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다”고 전했다.
혼수용 가구, 나전칠기, 공예가구, 사무용 가구 등 100여 개 업체가 한꺼번에 들어서면서 가구거리의 모습을 갖춰갔으나 당시에는 유럽의 명품가구가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상태여서 지금 같은 명품 이미지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논현가구거리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994년 논현가구번영회가 설립되고 나서다. 이듬해인 1995년 번영회는 강남구청과 함께 제1회 논현가구거리축제를 열었다. 강남구청은 논현가구문화거리를 특화거리로 지정, 지원했다.
2000년 지하철 7호선이 개통되면서 논현가구거리는 전성기를 맞이했다. 논현가구번영회가 발전해 개명한 논현가구상점가진흥사업협동조합과 강남구청이 합심해 논현가구거리에 대한 홍보활동을 활발히 펼친 것도 큰 원동력이 됐다. 라디오 뿐 아니라 텔레비전 광고도 할 정도였다.
유럽 명품가구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곳
한 고객이 매장을 방문해 가구들을 둘러보고 있다. / 영동가구 매장 내 모습.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활동들이 거의 없어졌다는 것이 논현가구거리 내 업체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가로등에 걸려 있는 ‘명품가구거리-논현가구조합’이라는 현수막이 힘겨워 보일 정도다. 가구거리 내 한 매장 직원은 “저 현수막이 걸린 지는 오래다”며 “구청에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 직원은 “가구거리축제를 하지 않은 지 몇 년 됐고, 조합 활동도 미미한 수준”이라며 “조합에 가입된 업체들의 단합도 예전 같지 않다”고 전했다. 이 직원은 “하지만 변화의 시기라고 생각한다”며 “조만간 활동이 다시 활발해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현재 논현가구거리는 지하철 7호선 논현역부터 학동역까지 약 850m를 가리킨다. 이 길 양옆으로 국내외 가구업체들이 죽 늘어서 있다. 논현역에서 내리면 ‘논현가구거리’라고 친절하게 안내돼 있어 찾기 쉽다.
영동가구를 시작으로 직선거리로 계속되다가 학동역 앞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와 국민은행 학동역지점까지 70여 개 업체가 양쪽으로 나란히 줄지어 서 있다. 신기하게도 국민은행 학동역지점과 맞은편인 기업은행 학동역지점을 끝으로 가구업체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딱 그 거리에만 가구업체가 빼곡히 들어서 있는 것이다.
대로변 뒤에 있는 골목 쪽에서도 가구업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있어봐야 건축자재를 팔거나 무늬목·특수목 등을 파는 소규모 가게, 주로 벽지와 바닥재 등을 판매하는 가게 등이 몇 군데 눈에 띌 뿐이다. 그 외에는 주로 고급 주택단지거나 음식점들이다.
예전부터 논현가구거리의 가장 큰 특징은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의 명품가구를 다양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롤프 벤츠, 히몰라, 노빌리아, 인터립케 등의 명품가구들을 비록 사기는 힘들지라도 얼마든지 구경할 수 있다. 롤프 벤츠와 히몰라 등을 판매하는 영동가구를 시작으로 셀라떼, 디사모빌리, 나뚜치, 인칸토, 지오반니 스포르싸 등 글로벌 명품 가구 브랜드 매장이 차례대로 서 있다.
뿐만 아니다. 독일 명품 가구만 전시·판매하는 German Gallery가 한창 오픈 준비 중이다. 이 건물에는 독일 명품 주방가구인 라이히트, 욕실 전문 가구인 악솔로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또 현재 세계 주방가구 1위인 독일의 노빌리아를 비롯해 유럽 명품가구업체 몇 군데가 추가로 논현동에 자리 잡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혼을 앞둔 딸과 함께 논현가구거리를 찾은 정모씨(61·여)는 “딸의 혼수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며 “생각했던 것보다 디자인이나 가격 면에서 다양한 가구를 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딸 이모씨(32)는 “유럽 가구들은 가격이 너무 비싸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럽 명품가구와 국내 업체 가구의 가격은 최소 열 배 이상 차이가 난다. 3인용 소파를 기준으로 국내 업체 제품은 대략 100만~300만원이고 유럽 명품업체의 그것은 수천만원에 달한다. 그 중간 가격대 제품을 파는 매장도 많다. 그중 한 곳인 산타모아 직원 이재형씨는 “가구거리에 있는 명품 매장에서 판매하는 제품이 그냥 비싼 게 아니라 원래 비싼 제품을 파는 것”이라고 전했다.
국내 업체 직영점 러시에 대한 의견은 분분
가구거리 내 업체들은 국내 가구업체들의 직영점이 들어서면서 가구거리가 예전처럼 활성화되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김철수 논현가구상점가진흥사업협동조합 이사장(산타모아 대표)은 “국내 직영점이 들어서는 것은 일단 좋은 현상”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논현가구거리에 고가 수입가구만 있는 것은 아닌데 그동안 너무 그쪽 인식만 강해 오히려 여기를 피하는 고객도 있었다”며 “국내 직영점이 들어서면서 다양한 디자인과 제품을 구비, 고객 유인 효과가 생기고 유동인구가 많아져 거리도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은 큰 효과를 보지는 못하고 있다. 가구거리 내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그다지 변한 것 같지는 않다”고 한다. 가구거리 내 한 편의점 직원은 “손님들이 많아지거나 오가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지는 않다”고 전했다. 한 가구매장 직원 역시 “아직은 뚜렷한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일본 지진의 여파로 소비가 움츠러든 것 같다”며 “본격적으로 날이 따뜻해지고 결혼 시즌이 오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수입 명품매장의 입장에서 한샘, 리바트, 보루네오 등 국내 업체의 직영점이 들어서거나 매장이 확장되는 것이 그다지 달가운 일만은 아닐 듯하다. 물론 “타깃 층이 달라 관계없다”, “거리가 다시 예전처럼 북적거리면 어쨌든 좋은 것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한 명품매장 직원은 “사실 그다지 좋지만은 않다”며 “고급 이미지가 퇴색되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이들 입장에서는 유럽 명품가구업체들도 함께 들어오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논현가구거리에서는 생각보다 고급차가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 국내 가구업체 직원들과 명품가구에 비해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수입가구를 판매하는 매장 직원들의 말에 따르면 “있는 사람들은 북적거리는 게 싫어서 대부분 한가한 시간에 가구거리를 찾는다”며 “명품 수입가구 매장 중 일요일에는 아예 문을 닫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영동가구 이재민 실장은 “하루에 보통 10~15팀이 매장을 방문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중 몇 팀이 구입해 가는지는 비밀에 부쳤다.
건설·부동산 경기 침체로 가구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오히려 논현동은 침체기에서 벗어나 활기를 띠고 있는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더욱 고급스러워지고 있다. 과연 김철수 이사장 말마따나 논현가구거리에 사람들이 많이 몰릴지는 지켜볼 일이다. 만약 그렇다면 가구거리축제도 부활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