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펀드의 시대는 갔습니다. 이제는 다양한 형태의 상품·서비스가 나오는 다원화된 자본시장이 펼쳐질 것 입니다.”
최홍 ING자산운용 대표가 밝힌 대로 2007~2008년 펀드시장의 단기 팽창 이후 주식형 펀드의 규모는 꾸준히 줄어들었다.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30조원 넘는 돈이 빠져나갔다. ‘펀드붐’에 떠밀려 사전지식 없이 상품에 가입한 투자자들은 실망을 넘어 지울 수 없는 상처까지 입었다. 대부분은 채권형 펀드나 은행 예·적금 등으로 발을 돌려야 했다. 그러다 지난해에는 자문형 랩을 비롯한 증권사 랩어카운트가 돌풍을 일으켰다. 특히 투자자문사 자문형 랩으로 공모펀드에 실망한 자본이 수조원 몰렸다. 문제는 자문형 랩 시장 규모의 한계점이다.
박건영 브레인투자자문 대표는 “하나의 대형자문사가 운용을 감당할 수 있는 규모는 3~4조원이 최대이고 랩 시장이 15조원 이상 커지면 어렵다”면서 “일임형 계약의 특성상 랩 시장은 대중화되기 어려우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고액자산가들은 사모펀드 시장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금융당국의 규제완화 움직임 속에서 ‘금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일반투자자들이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헤지펀드도 그 중 하나다.
2010년 신규 펀드 중 90% 이상
지난해 신규 설정된 펀드 10개 중 9개가 사모펀드였다. 이에 따라 지난해 전체 펀드시장에서 사모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육박해 2006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공모펀드에 실망한 고액자산가들이 보다 차별화된 투자기회를 찾아 사모펀드 시장으로 눈을 돌린 점이 크게 작용했다. 연 10% 수준의 수익률을 꾸준히 올릴 수 있다는 점도 매력으로 부각됐다.
사모펀드는 가입자가 49인 이하로 제한돼 공모펀드와 달리 투자대상인 자산이나 투자 비중 등에 제한이 없다. 이는 50명이 넘어갈 경우 펀드가 더 이상 ‘사적’이지 않다는 뜻으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내 사모펀드의 정확한 명칭은 ‘사모집합투자기구’다. 지난해 신규 설정된 펀드 총 5771개 중 사모펀드는 5209개에 달해 90.26%를 차지했다. 반면 공모펀드는 562개에 그쳤다. 설정금액 기준으로는 지난해 96조3640억원이 신규 설정펀드로 유입된 가운데 72.4%에 해당하는 69조8263억원이 사모펀드 설정액이었다.
신규 설정펀드 수와 설정금액 모두 증가하면서 전체 펀드시장에서 사모펀드가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졌다. 지난해 사모펀드 설정액은 117조6817억원으로 전체 펀드시장에서 37.33%를 차지해 2006년 38.92% 이후 가장 높았다. 설정펀드 수 기준으로도 전체 펀드 9159개 중 사모펀드 수는 5년 연속 증가해 5460개를 차지했고 공모펀드 수는 최근 2년간 감소해 3699개로 집계됐다.
일반투자자가 사모펀드를 만들고 싶으면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운영하는 PB센터를 찾으면 된다. 고액자산가일수록 개인신상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보다 ‘은밀한’ 장소에 있는 지점일수록 규모가 큰 사모펀드가 만들어진다.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 있는 삼성증권 SNI가 대표적인 맞춤형 사모펀드의 산실 중 하나다. 이곳 PB센터는 30억원 이상의 초고액순자산가(Ultra High Net Worth: UHNW)만을 대상으로 한다. 금액은 아무리 적어도 5억원은 맞춰 줘야하는데 여기에 불만을 토로하는 투자자는 없다. 투자자들이 이곳에 맡긴 돈만 2조2000억원에 달한다. 무려 4500억원을 맡긴 이도 있다. 이곳에서 형성되는 사모펀드의 규모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개인이 100~500억원의 돈을 투자해 ‘1인 맞춤형 사모펀드’를 만들더라도 그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투자자문사들이 신경을 안 쓸 수 없다.
심재은 삼성증권 SNI 신라호텔 지점장은 “시장 선도적인 상품을 선제적으로 고객들에게 내놓으면 자연스럽게 사모펀드가 이곳에서 처음으로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특정분야 기업인수를 목적으로 상장된 페이퍼컴퍼니에 투자하는 ‘스팩펀드’나 자산의 최대 30%를 해외 공모주 및 유상증자에, 나머지는 국내 국공채 등 안전자산에 집중하는 ‘글로벌IPO펀드’ 등이 전부 이곳에서 처음 사모펀드로 만들어졌다.
심 지점장은 “최근에는 미국에 직접투자하는 랩어카운트 상품이나 ‘딤섬본드’ 상품에 고객들이 많은 관심을 보인다”며 “그 외에 개인별로 원하는 스킴(운용전략)이 다를 경우 그에 맞도록 따로 사모펀드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밖에 해외 헤지펀드에 재투자하는 재간접헤지펀드(FOHF) 상품도 적지 않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처럼 투자대상도 해외채권, 글로벌 기업공개(IPO)시장, 해외 헤지펀드 등으로 다양해진 것이다.
사모펀드 Check Point
사모펀드 투자에 있어서 사전 확인해야 할 요소들이 공모펀드에 비해 많다. 우선 투자 대상 및 투자 방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투자 방식 또한, 시장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과 투자 내용을 감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추가적으로 운용역과 운용사 능력검증 작업이 필요하다. 단순히 주식운용 경험이 많고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전면에 나선다고 해서 수익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기관이든 개인이든 돈을 맡기는 상대방이 투자전문가라는 점에서 사모펀드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들이 겪는 고충도 크다.
6년 넘게 사모펀드를 운용한 바 있는 김현욱 유리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각 기관이나 개인마다 요구하는 운용전략이 다르고 캐쉬플로우도 공모펀드에 비해 안정적이지 못하다보니 늘 긴장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연금펀드가 아닌 이상 정해진 목표수익률을 달성하면 사모펀드는 바로 사라진다. 짧은 경우 한 달 사이에도 나타났다 없어지기도 한다.
김현욱 본부장은 “펀드매니저마다 많게는 60~70개 사모펀드를 운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운용사는 집합주문이 가능하기 때문에 개별펀드 수는 크게 의미가 없고 몇 가지 유형을 운용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사모펀드와 더불어 자주 회자되는 사모투자펀드(PEF)의 정확한 명칭은 ‘사모투자전문회사’다. PEF는 경영권 참여, 사업구조 또는 지배구조의 개선 등을 위해 지분증권 등에 투자, 운용하는 투자합자회사로 지분증권을 사모로만 발행하는 집합투자기구를 말한다. PEF의 최소 투자금액은 개인 10억원 이상이다. 소수 투자자들에게만 정보가 공개돼 일반 투자자들은 접근이 쉽지 않다.
지금까지 사모펀드는 대부분 기관투자자들의 영역이었다. 편입하려는 자산을 펀드에 넣어 자산운용사의 서비스를 개별적으로 받으며 관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제회계기준(IFRS)이 적용됨으로써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IFRS가 도입된 올해부터 기관이 투자하는 사모펀드는 특수목적기업으로 분류돼 연결재무제표를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사모펀드가 투자하는 투자자산 시가 평가액을 일간 기준으로 기입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 것이다. 반면 공모펀드는 펀드 순자산 50% 이하로 투자한다면 투자자산에 대해 일일이 공시할 의무가 없다. 따라서 최근 기관들이 사모펀드를 환매한 후 성격이 비슷한 공모펀드를 찾으면서 공모펀드로 꾸준히 자금이 유입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알쏭달쏭 펀드 용어•공모펀드 50인 이상 불특정 다수 투자자를 대상으로 자금을 모으고 그 자금을 운용하는 펀드. 펀드 규모의 10% 이상을 한 주식에 투자할 수 없고, 주식 외 채권 등 유가증권에도 한 종목에 10% 이상 투자할 수 없는 등 제한이 있다.
•사모펀드 자본시장법상 49인 이하의 소수 투자자들이 가입한 펀드. 투자 대상 및 특정 자산에 대한 투자 비중 등에 제약이 없어 자유로운 운용이 가능하다.
•사모투자펀드(private equity fund:PEF) 소수 기관투자가 및 거액 투자자들로부터 수백억원에서 수조원대 자금을 모아 특정 기업 지분을 일정 수준(보통 10%) 이상 사거나 경영권을 통째로 인수한 뒤 되팔아 차익을 남기는 펀드.
•헤지펀드 소수 투자자로부터 투자 자금을 모집한 후 차입투자, 차익거래, 롱쇼트 등 다양한 투자전략을 통해 연 10% 안팎의 절대수익을 추구하는 펀드를 뜻한다. 성과에 따라 펀드매니저에 성과급이 지급된다.
■ 강남권에서 인기 여전한 헤지펀드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헤지펀드에 대한 국내 일반투자자들의 불신과 편견은 오히려 강화됐다. 그러나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한 거액자산가 등은 주가변동에 상관없이 일정 수익을 추구하는 헤지펀드 투자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개인투자자에게 헤지펀드를 직접 판매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다만 49명 이하로 일반 사모펀드를 구성한 후 이 사모펀드에 헤지펀드를 편입하는 방식으로 투자할 수 있다. 현재 강남권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헤지펀드 판매도 이러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일반투자자들은 공모펀드 가운데 헤지펀드 전략을 차용한 펀드에 가입하는 식으로 투자할 수 있다. 이벤트 드리븐(중요한 기업 이벤트를 이용해 수익을 내는 것) 전략을 쓰는 공모주 펀드부터 차입 공매도 전략을 쓰는 공모펀드도 판매되고 있다.
증권사 간 헤지펀드 판매 경쟁도 달아올랐다. 대우증권은 트러스톤자산운용과 영국 애스펙트캐피털 헤지펀드를 묶어 ‘한국골디락스 1호’ 사모펀드를 내놓았고, 우리투자증권은 ‘프리미어블루 헤지펀드’를 판매 중이다. 또 삼성증권은 글로벌 대표 헤지펀드사인 맨인베스트먼트가 운용하는 ‘북극성 알파 사모펀드’를 설정해 판매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미래에셋증권이 윈톤퓨처스와 공동으로 내놓은 ‘글로벌 CTA 사모펀드’에도 큰돈이 몰렸다.
글로벌 헤지펀드들도 한국시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국내 증권사와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은 대형 헤지펀드는 9곳에 달한다. 밀레니엄파트너스, 하이랜드캐피털매니지먼트(HCM) 등 대어급 헤지펀드 역시 상품 판매가 임박했다. 맨인베스트먼트 자회사인 GLG파트너스와 싱가포르 대표 헤지펀드인 APS자산운용 등도 한국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김성욱 APS자산운용 아시아 투자 헤드는 “한국 고액자산가 시장은 정말 매력적”이라며 “이들 시장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이들 헤지펀드는 국내에서 돈을 모집해 다양한 투자 방법으로 한국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 투자해 수익률을 돌려주는 구조로 운용한다.
미래에셋, 삼성, 대우, 한국투자, 우리투자, 동양종금증권 등 국내 6개 증권사에서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판매한 역외 헤지펀드에는 지난 3월7일 기준 총 1214억원이 모였다. 절대 수치는 크지 않지만 고액자산가 대상 역외 헤지펀드가 처음 판매된 게 지난해 8월(최초 31억원 규모)이라는 데 비춰보면 불과 반년여 만에 39배 넘게 성장한 것이다. 시장 확대를 위해 금융당국은 헤지펀드 규제를 과감히 풀어 토종 헤지펀드 탄생을 촉진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현행 헤지펀드 규제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운용 규제’다. 펀드 자산의 50% 이상을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레버리지(차입금) 비율 규제가 상당 부분 완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보통 헤지펀드는 펀드 자산보다 많은 레버리지를 일으켜 고수익을 추구한다. 단 10억원을 갖고 수백억을 빌려 투자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그러나 한국은 레버리지 비율을 400%로 제한해 놓고 있다. 펀드 자산이 100억원이면 400억원까지만 돈을 빌릴 수 있다. 선진국은 이런 레버리지 규정이 아예 없다. 이번 법 개정 과정에서 레버리지 규제가 완전히 풀리진 않겠지만 비율이 대폭 상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공매도 허용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다.
다만 공격적 투자 기법인 만큼 시장 변동성을 지나치게 확대시킬 수 있다는 염려가 남아있다. 헤지펀드 규제가 상당수 풀린다 해도 공매도에 대해서 만큼은 규제 완화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치권 움직임이 금융당국의 이 같은 규제완화 추진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금융당국 차원에서 규제완화 방침을 정하더라도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서 이를 쉽사리 승인해줄 것인지 여부는 또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