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대 자산가 A씨는 요즘 서울시내 중소형 빌딩 중 투자하기 적당한 물건이 있는지 물색하느라 바쁘다.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바람을 타고 얼마 전 은퇴한 그는 부부가 함께 은행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데다 물려받은 재산도 있어 보유자산은 넉넉한 편. 하지만 은퇴 후에도 건물임대를 통한 고정수입을 올리기 위해 중소형 빌딩 매입을 고려하고 있다. A씨는 “돈이야 마냥 쌓아두면 없어지게 마련”이라며 “적당한 규모의 빌딩을 매입해 임대수입을 올려 생활하고 나중에 자녀들에게도 물려줄 참”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 PB센터에서도 중소형 빌딩에 관한 문의가 늘었다. 한 시중은행 PB는 “중소형 빌딩을 찾는 문의가 지난 상반기에 비해 족히 3배는 늘어난 것 같다”며 “월세 수입과 더불어 향후 매각 차익까지 고려한 움직임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중소형 빌딩 인기 급상승
중소형 빌딩 인기가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일선 은행PB센터에는 ‘괜찮은 물건’을 찾아달라는 문의가 부쩍 늘었다. 빌딩 전문 중개업체에도 대형 빌딩보다 중소형 빌딩을 찾는 사람이 많다. 주택에 이어 빌딩시장에서도 중소형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업계에서 말하는 중소형 빌딩이란 지상 4~6층 규모에 상가·오피스 등이 들어선 건물로 가격대는 대략 20억~60억원선이다.
물건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금액에 따라 투자대상 지역도 다르다. 한국부동산자산관리협회는 투자금액이 10억~20억원일 경우 성동구 성수동, 광진구 구의동 일대 근린상가 건물 투자를 추천한다. 또 ▲20억~30억원대라면 마포구 합정동이나 서대문구 남가좌동 ▲40억~50억원대라면 송파구 송파동, 용산구 용산동 ▲50억원대 이상이라면 강남구 논현동, 송파구 잠실동 등을 추천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대학가 상권 소재 건물들의 인기가 높다. 강남이 전통적인 인기 지역이긴 하지만 3.3㎡당 시세가 1억원을 훌쩍 넘는 경우가 허다하고 종로 등 기존 도심에도 과대평가된 곳이 적지 않다.
반면 대학가는 배후 수요를 갖췄으면서도 강남, 종로 등에 비해 조명을 덜 받은 덕분에 시세가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 대학로를 비롯해 홍대, 건국대, 경희대 주변 상가가 인기다.
시세는 대학가별로 차이는 있지만 대략 3.3㎡당 5000만~6000만원선이다. 물론 임차료 수준은 강남 등지에 따라가지 못한다. 하지만 배후수요가 꾸준하기 때문에 임차인 구하기가 어렵지 않은 것이 장점이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재테크 팀장은 “대학가 상권 물건들은 꾸준한 임차수익을 노리는 이들에게 적합하다”며 “대학가 프리미엄이 과도한 곳들도 있으므로 투자자들은 발품을 팔아 가격 수준, 상권 활성화 등을 따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소형 빌딩 인기 왜?
자산가들 사이에 중소형 빌딩 인기가 치솟는 데는 ▲베이비붐 세대 은퇴금 수령 ▲주식시장 변동성 확대 ▲막대한 규모의 토지보상금 등이 직접적인 배경으로 거론된다.
1955~1963년 사이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의 정년 퇴임기가 맞물리면서 이들 중 상당수가 매달 안정적인 임차수입을 올릴 수 있는 중소형 빌딩 구매에 나서고 있다는 것. 은퇴자들 가운데 고정적인 수입이 끊긴다는 것에 대해 큰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중소형 빌딩 인기에 불을 지피는 요인이다.
주식시장 변동성 확대도 중소형 빌딩에 관심이 몰리는 이유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국내 증시(코스피 기준)는 2년간 1000포인트 가까이 출렁일 정도로 큰 폭으로 변동성을 보였다. 그에 반해 빌딩 임차수요의 경우 경기에 따른 격차가 있기는 해도 비교적 변동 폭이 적기 때문에 자산가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낮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고 여겨지는 중소형 빌딩 쪽으로 투자금이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빌딩 투자는 보유 시 월 임대수익을 거둘 수 있고 향후 가격이 오르면 매각해 시세차익도 거둘 수 있다.
보금자리주택 개발 등으로 풀리는 토지보상금도 중소형 빌딩 시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해 12월 개시한 총 5조원 규모의 하남미사지구 토지보상을 시작으로 올해 중 약 30조~40조원에 달하는 토지보상금이 시중에 풀릴 것으로 전망된다. 토지보상금의 상당 부분은 토지투자로 이어지는 것이 관례였지만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재정 악화 등의 문제로 개발사업에 제동이 걸린 상황이라 위험 부담이 큰 토지보다 중소형 빌딩으로 투자자 시선이 옮겨가고 있다.
투자금액 측면에서 개인 자산가들이 접근할 만하는 점도 주요 이유다. 대형 빌딩의 경우 투자금이 과도하게 들어 개인이 투자하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중소형 빌딩은 자산 규모에 맞는 투자가 가능하다. 도심을 중심으로 공급 과잉이 예견되는 오피스 빌딩에 비해 오피스, 상가 등 다양한 형태로 임차인 모집이 가능해 리스크를 일정 부분 줄일 수도 있다.
특히 빌딩시장이 좋아질 경우 일반투자자들이 접근하기 가장 쉬운 중소형 빌딩 시장부터 호신호가 포착될 것이라는 것이 빌딩 매매업계 시각이다. 장진택 ERA코리아 이사는 “최근 중소형 빌딩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가 포착되고 있다. 특히 인기 지역의 경우 매물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도심 공급물량 넘쳐… 더딘 경기회복세도 부담
긍정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 시내 오피스 공급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는 점은 부담이 될 수 있다.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할 경우 공실률이 높아지고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임대료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토연구원은 올해 서울 광화문, 종로 등 도심상권 오피스 공급면적(기존공급 포함)이 1058만㎡, 내년 1071만㎡로 꾸준히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반면 총수요면적은 올해 1043만㎡, 내년 1046만㎡로 공급을 따라가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산술적으로는 올해 15만㎡, 내년 25만㎡ 오피스 면적이 남는다는 얘기다.
오는 2016년까지 서울 시내에서 준공 예정인 연면적 10만㎡ 이상의 대형 오피스 빌딩은 20여 곳에 달한다. 규모로는 총 640만㎡ 수준이다. 서울 외 인천, 경기 등 수도권 지역 12개 500만㎡와 합치면 공급과잉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대형 빌딩 공급이 많다는 점은 장기적으로 중소형 빌딩에도 악재가 될 수 있다. 임차인들이 좀 더 저렴한 임차비를 내고 규모가 더 큰 빌딩으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 은행PB센터나 중개업체 등지에서는 당분간 오피스 빌딩보다는 근린상가 빌딩 투자를 권하기도 한다.
경기가 완연한 회복세에 접어들었다고 단정짓기 이르다는 점도 투자자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소비경기 회복세가 예상과 달리 더딘 행보를 보이면 창업 열기 또한 주춤해진다. 중소형 빌딩의 직접적인 임차 대상이 자영업자들임을 고려하면 낙관적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강남지역 임차수익률은 연 2~4%대로 생각만큼 높지 않고 창업 수요가 늘지 않는 것도 부담”이라며 “금융 부담이 크지 않은 수준에서 투자가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투자 전 체크포인트 꼼꼼히 따져야
이에 따라 투자 전 투자가치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빌딩 매매업계에서는 크게 4가지 투자 체크포인트를 제시한다. 최소한 이 네 가지만큼은 반드시 확인해야 투자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먼저 입지와 성장잠재력을 분석해야 한다. 이 작업을 빌딩투자 시 가장 기본이 되는 절차로 보면 된다. 입지는 해당 건물이 위치한 장소로 입지조건은 건물 용도와 목적에 따라 각기 다르다. 중소형 건물의 경우 현재보다 향후 개발잠재력이 높은 지역의 물건을 고르는 것이 좋다. 예컨대 지하철 개통이 예정된 역세권 인근지역 등이다. 입지가 좋은 건물은 자산가치 증가 속도가 빠르고 환금성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또 관청이나 대형 건물 밀집지역 여부, 랜드마크 빌딩 포진 여부 등도 중요한 체크사항이다. 이러한 지역은 불경기에도 임차수요가 비교적 꾸준하고 가격 하락폭 역시 크지 않다.
입지는 좋은데 건물 자체가 낡고 관리가 안돼 보이는 물건은 투자가치가 높은 것들이다. 새 건물일수록 토지비·건축비가 높게 책정돼 가격이 비싸다. 입지는 좋지만 관리 소홀 등으로 건물이 낡은 경우 리모델링이나 임차인 교체 등을 통해 가치를 높일 수 있다.
건물 연면적 대비 토지면적이 큰 건물도 투자가치가 높다. 향후 재건축 시 가치가 배가되기 때문이다.
건물 1층의 구조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통상적으로 5~6층 건물의 1층에서 올리는 매상이 전체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1층의 내부 구조와 임차업종 종류가 수익성 측면에서 중요하다는 얘기다. 1층이 도로와의 간격이 좁거나 주차장 등으로 이용될 경우 수익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수익률 분석 필수… 효율적 자산관리도 따라야
해당 빌딩의 최근 몇 년간 공실률, 임차인 현황 등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 해당 건물이 꾸준한 임대수익을 내는 곳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통상 평균공실률이 20%를 넘어가는 경우는 과감히 투자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한다.
건물의 물리적 분석도 중요하다. 쉽게 말해 건물의 하자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다. 이는 초보자는 할 수 없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에 대한 비용이 들지만 나중에 예상을 뛰어넘는 보수비용을 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방주사를 맞는 셈 치면 된다.
준공한 지 10년이 넘은 건물은 현미경을 사용하는 것처럼 건물 상태를 꼼꼼히 들여다봐야 한다. 외관 상태, 정화조 시설, 전기안전, 가스안전, 방화관리, 미화관리, 승강기, 환경 관련 시설 등 시설과 구조와 관련된 부분을 중점적으로 체크해야 한다. 이때 하자가 너무 많다면 과감히 미련을 버려야 한다.
다음으로는 수익률 분석에 들어가야 한다. 빌딩 투자 시 자본이득과 임대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자본이득이란 쉽게 말해 시세차익을 말한다. 싸게 사 비싸게 파는 것이 자본이득을 높이는 방법이다. 하지만 자본이득을 예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경기동향, 수급, 금리 등 많은 변수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임대수익률은 비교적 정확히 따져볼 수 있다. 단 임대차계약서에만 의존해 수익률을 산출하면 부정확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매입 시점의 공실 현황을 점검하고 향후 예상공실을 분석해야 한다. 최근에는 임차인들에게 각종 옵션이 서비스로 제공되기 때문에 계약서와 실제 계약 내용이 다를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서류검토 작업도 중요하다. 법률적 권리관계를 사전에 잘 파악해야 사전에 문제를 막을 수 있다. ▲등기부상 권리관계 ▲임대차계약 ▲토지이용계획확인원 ▲도시계획 ▲지구단위계획 여부 등 공적장부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 이는 법무사 등 전문가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이밖에 필요하다면 ▲전기·설비·토목·건축 관련 각종 도면 ▲전기·가스·승강기·기계식 주차기 안전 정기검사 ▲미화관리·시설관리·보안 관련 용역계약 ▲국세 및 지방세 완납증명서 등 서류도 확인하도록 한다.
건물을 매입한다고 해서 전부가 아니다. 이후로는 철저한 관리와 적절한 매각 타이밍을 잡는 것이 필요하다. 보유 시에는 효율적인 자산운영관리 전략을 펼쳐야 한다. 상가빌딩 투자수익률을 극대화시키는 전략이 자산운영관리(PM) 전략이다. 과거에는 주먹구구식으로 운영관리를 했다면 요즘과 같이 공실률과 연체율이 높은 시기에는 보유하는 동안 임대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체계적인 자산운영관리(PM) 전략이 절실히 필요하다. 특히 임대료 갱신을 통한 임대료 인상기법과 ‘키’스토어 업종으로 업종 변경 전략은 상가빌딩의 임대수익률과 상품가치를 높이는 데 중요하다.
매각 전략 또한 단계적이고 치밀하게 세워야 한다. 빌딩은 투자 시점도 중요하지만 매각 타이밍 또한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최근 빌딩 투자 트렌드는 10년 이상 장기보유하기보다는 적절한 시점에 맞춰 매각해 차익을 남기는 것이다. 빌딩시장 또한 경기에 민감하기 때문에 통상 5년 내에 매각 타이밍이 1~2번은 찾아온다. 이때 매매시장에서 최고 가격을 받기 위해서는 임대수익률을 높이는 한편 업종 변경, 상가빌딩 내·외부 보수공사 등을 통해 소유주가 스스로 빌딩 가치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