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잠실동은 서초구 반포동, 강남구 개포동과 함께 강남 재건축의 표본으로 꼽히는 곳이다. 2006년부터 2008년 사이에 입주한 ‘엘리트레파’(엘스·리센츠·트리지움·레이크팰리스·파크리오)로 대표되는 잠실 저층 재건축이 마무리된 지 15년 여 만에 잠실동 일대 재건축이 2라운드를 맞고 있다. 잠실 진주아파트를 비롯한 중층 단지들이 사업 본궤도에 올라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업을 추진 중인 아파트들의 재건축 규모만 2만 가구에 달해 잠실이 또 한 번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잠실동 A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잠실은 토지거래허가제 규제를 받는 데다 새 아파트가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며 “최근에는 재건축 단지들이 속도를 내고 있어 주거 환경이 개선되고 더 나아가서는 일대가 다시 평가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포문을 연 곳은 잠실 진주아파트다. 삼성물산·HDC현대산업개발이 재건축 시공을 맡아 ‘잠실 래미안아이파크’란 이름으로 10월 분양했다. 1순위 청약에서 307가구 모집에 8만2487명이 신청해 평균 경쟁률이 268대 1에 달했다. 이 단지의 전용 84㎡분양가는 18억~19억원 수준이었다.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돼 인근 단지보다 5억원가량 저렴해 청약자들이 몰렸다.인근 단지인 파크리오(2008년·6864가구) 84㎡의 최근 실거래가는 22억~24억원대다.
이 아파트는 일반분양 기준으로는 잠실권역에서 약 20년 만에 나오는 대단지 아파트다. 최고 35층, 23개 동, 2678가구 규모로 지어진다.
잠실 진주아파트는 지하철 2·8호선 잠실역과 2호선 잠실나루역, 8호선 몽촌토성역, 9호선 한성백제역이 모두 가깝다. 몽촌토성역이 단지 바로 앞이고, 나머지 역들은 걸어서 10~15분 거리다.
이 아파트의 또다른 특징은 ‘공(원)세권’이라는 점이다. 길을 건너면 바로 올림픽공원이라 일부 가구는 공원조망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진주아파트와 함께 잠실권에서는 미성·크로바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잠실 르엘’도 분양한다. 최고 35층, 13개동, 1910가구가 지어지는데 이 중에서 241가구가 일반분양 물량으로 나온다. 분양시기는 올해 연말 혹은 내년 상반기로 예상된다.
잠실 미성·크로바 재건축 조합이 최근 의결한 관리처분계획변경안에 따르면 일반분양가는 3.3㎡당 5300만원으로 예상된다. 전용면적 84㎡ 기준 18억원대다. 다만 조합 측이 일반분양 목표 가격을 3.3㎡당 6000만원으로 잡고 있어 실제 분양될 때 가격은 지금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두 단지는 한강변은 아니지만 대규모 단지라는 점과 지하철 잠실역·잠실나루역 등이 가깝다는 점에서 입지가 상당히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굳이 따지면 잠실역과 잠실나루역, 제2롯데월드에 붙은 미성·크로바가 교통이나 생활 편의성 측면에서는 더 낫고, 잠실초등학교나 주변 공원과 가까운 진주아파트가 주거 환경 측면에서는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잠실 진주아파트와 미성·크로바 아파트만 새로 지어도 잠실 일대에는 새 아파트가 약 4600가구 공급된다. 하지만 잠실 재건축 시장이 더 주목받는 이유는 잠실 진주와 미성·크로바 뒤에 ‘대어’들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잠실역 양옆으로 자리한 한강변 대단지인 잠실주공5단지와 잠실장미1·2·3차 재건축에 관심이 모인다. 주공5단지는 최고 70층 높이의 재건축 계획이 확정됐고, 장미1·2·3차는 서울시가 용도지역 상향 가능성을 열어주며 ‘최고 69층 계획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물론 주민 갈등 등 변수가 아직도 많다는 점은 수요자라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먼저 주공5단지는 ‘송파구 재건축’하면 떠오르는 단지다. 잠실 내 주공 5개 단지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정비업계에서는 주공5단지가 조합원 물량을 제외하고 추가로 확보해 일반분양할 수 있는 가구가 1700여 가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서울시는 9월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정비계획 결정안을 고시했다. 재건축 사업은 정비계획 수립 및 정비구역 지정, 조합설립인가,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계획인가 등 과정을 거쳐 진행된다. 정비계획안이 고시됐다는 얘기는 사업이 준비단계를 넘어 본격 실행단계로 돌입했다는 뜻이다. 잠실5단지 조합은 빠르면 곧 건축·경관심의 및 교통·교육영향평가 등을 아우르는 통합 심의를 신청할 예정이다. 이 관문을 넘으면 잠실주공5단지는 ‘재건축의 7부 능선’이라 불리는 사업시행인가 신청 절차에 착수할 수 있다.
1978년 준공된 잠실주공5단지는 30개동, 3930가구 규모로 지어졌다. 앞으로 재건축을 통해 최고 70층, 28개 동, 6491가구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잠실역 주변 복합시설 용지 용도지역이 3종 일반주거에서 준주거지역으로 상향됐다. 단지 내 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분류된 곳에는 20층부터 49층까지 다양한 동을 배치한다. 층수를 높이는 대신 아파트 동 개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설계해동 간격을 넓혔다. 주공5단지 조합은 4000가구 이상이 한강을 조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단지 가운데에는 초대형 공원도 조성한다. 일부 동은 스카이브리지로 연결할 계획이다. 단지 안에 위치한 신천초는 놔둔다. 현재 공공공지는 교육청 중앙투자 심사 통과 후 중학교 설립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 아파트가 재건축 투자자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이유는 평균 용적률이 138%에 불과해 사업성이 좋기 때문이다. 정비계획 결정안에 따르면 전용 84㎡(현 36평) 소유주가 동일 평형대를 신청하면 6억원에서 7억원까지 돌려받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합이 3종 일반주거지역 3.3㎡당 공사비 800만원, 준주거지역은 960만원을 기준으로 예측한 추정 분담금이다. 압구정이나 반포 재건축도 같은 평형으로 이동하는데 2억~3억원이 드는 점을 고려하면 사업성이 매우 높은 셈이다.
장미1·2·3차는 통합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이 아파트는 입지나 규모가 주공5단지와 거의 비슷해 잠실 일대에선 재건축 ‘투톱’으로 꼽힌다. 홈플러스가 단지 앞에 있고, 서울아산 병원과 가까운 점은 주공5단지보다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서울시는 올해 8월 잠실장미 1·2·3차에 대해 신속통합기획을 확정하고 최고 49층, 4800가구 아파트로 재건축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단지 대부분이 한강과 맞닿아 있다는 점을 활용해 60~70%의 가구가 한강 조망이 가능하도록, 나머지 가구는 남향으로 계획했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잠실장미 1·2·3차 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현재 조합원을 대상으로 희망 주택형과 최고 높이 선호도 설문 조사를 진행 중이다.
조합이 제시한 선택지는 최고 49층의 준초고층과 최고 69층의 초고층 두 가지다. 조합은 설문조사 결과를 참고해 늦어도 연내 정비구역 지정 및 정비계획 수립안을 입안하는 것이 목표다. 물론 잠실주공 5단지와 장미 1·2·3차는 주민 갈등이라는 변수를 안고 있다. 특히 장미 1·2·3차의 경우 상가와 아파트 구성원들이 사업 방식을 두고 갈등이 심해 향후 추이는 꼭 체크해야 하는 부분이다. 잠실동 일대에는 이 두 아파트 외에도 재건축을 추진 중인 단지가 상당히 많다.
잠실우성4차 아파트는 지난해 재건축 7부 능선으로 꼽히는 사업시행계획인가를 받고, 다음 단계인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준비 중이다 .1983년 지어져 40년 동안 자리한 우성4차는 현재 7개동 555가구로 구성돼 있다. 이번에 통과된 사업시행계획안에 따르면 우성4차는 향후 9개동, 825가구 규모로 재탄생한다. 지상 최고 층수는 32층으로 설계됐다. 이 단지는 탄천, 잠실유수지 공원과 인접한 게 특징이다. DL이앤씨의 하이엔드 브랜드인 ‘아크로(ACRO)’를 적용할 예정인데, 최근 시공사와 조합이 49층 설계 변경을 위한 요소들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맞춰 지은 이른바 ‘올림픽 3대장(올림픽선수기자촌·올림픽훼밀리타운·아시아선수촌)’ 아파트들도 지난해 안전진단 문턱을 모두 넘었다. 재건축을 확정지으며 향후 절차를 본격 추진하게 됐다. 이들 3개 단지 가구 수는 총 1만1390가구에 달한다.
이 중에서 가장 속도가 빠른 올림픽훼밀리타운은 재건축사업 정비계획수립 및 정비구역지정 결정안을 공람 공고 중이다. 결정안에 따르면 이 단지는 재건축을 통해 최고 26층, 6620가구로 탈바꿈할 예정이다.총 가구는 면적별로 60㎡ 이하 583가구, 60㎡ 초과~85㎡ 이하 2861가구, 85㎡ 초과 3176가구 등이다. 임대주택은 790가구로 예정됐다. 다만 서울공항 인근 비행안전구역(제2구역)에 속해 있어 고도는 83m로 제한된다. 올림픽 3개 단지 중 가장 규모가 큰 방이동 올림픽선수기자촌 아파트도 구에 정비계획 입안 동의서를 제출하며 재건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단지는 5540가구로 부지 면적이 66만2196㎡에 달한다.아시아선수촌 아파트도 지난해 11월 서울시가 해당 구역을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전환했다. 과거 도시 관리 기법을 현재 기준으로 바꿨다.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이웃 단지인 잠실우성1·2·3차는 재건축 정비계획안이 지난해 통과됐다. 최고 49층 2716가구로 재건축될 예정이다.
아시아선수촌 아파트와 우성1·2·3차 아파트의 입지는 잠실역 인근 주공 5단지와 장미1·2·3차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하철 2·9호선 환승역인 종합운동장역을 걸어서 갈 수 있고, 탄천을 건너면 바로 삼성역이다. 잠실역 인근 업무지구와도 지하철로 두 정거장이다. 잠실올림픽주경기장 이전 및 신축과 삼성동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의 직접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입지로 평가받는다. 9월 시공사 선정에 GS건설만 입찰 의사를 밝혀 재입찰 공고를 낼 계획이다. 물론 이들 아파트가 중대형 평수 중심인 데다 워낙 관리가 잘돼 온 아파트라 재건축 진행이 느려질 수 있다는 사실은 변수다.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근처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대형 평형은 이미 내부를 리모델링해 잘 꾸며놓고 사는 분들이 많아 재건축 사업이 단기간에 본격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아파트가 낡았다는 이유로 입지에 비해 저평가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손동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