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땅에도 이른바 ‘급’이 있다. 같은 서울이라도 어떤 곳은 급이 높고 어떤 곳은 급이 낮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등급을 매기는 걸까. 바로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다. 줄여서 ‘2040 서울플랜’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법은 지방자치단체에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한 이 같은 공간계획을 세우라고 규정한다.
2040 서울플랜에는 서울의 중심지 체계가 나온다. 중심지는 곧 사람이 많이 모이는 번화한 지역을 뜻한다. 서울시는 이런 지역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면 도시경쟁력을 더욱 올릴 수 있다고 판단한다. 구체적으로 서울을 3개 도심, 7개 광역 중심, 12개 지역 중심으로 나눠 놨다. 여기에 속하지 못한 나머지 지역은 지구 중심이나 비중심지로 분류된다.
급은 도심이 가장 높다. 순차적으로 내려가 비중심지의 위계가 가장 낮다. 투자를 하기 전에 내가 관심 가진 지역이 어떤 급지에 속하는지 찾아보는 게 좋다. 보통 급이 높은 곳 일수록 개발 호재가 많기 때문이다. 정책적으로 해당 지역을 육성하려고할 테니 말이다. 당장 지하철역 같은 대중교통시설을 만들 때도 중심지 체계를 고려하곤 한다.
먼저 인구가 1000만명에 달하는 대도시 서울엔 도심이 3곳에 있다. 서울 도심, 여의도·영등포, 강남이다. 도심이란 도시의 중심부란 뜻이다. 상업, 문화, 행정, 교통 기능이 모인 가장 번창한 곳을 일컫는다.
서울 도심은 광화문 일대를 가리킨다. 조선시대 궁궐과 청와대 등이 있다. 이에 역사 문화를 기반으로 한 국제 문화교류 중심지로 키우는 게 목표다. 경복궁~광화문광장~서울역~용산 일대로 이어지는 공간을 국가 중심 공간으로 관리할 계획이기도 하다. 오래된 건물을 쾌적한 업무·주거 공간으로 바꾸기 위한 사업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금융·증권기업이 몰려 있는 여의도·영등포 도심은 국제 디지털금융 중심지가 콘셉트다. 한강을 중심으로 접근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유람선 선착장 서울항을 만드는 게 대표적이다.
정보기술(IT)기업이 즐비한 강남 도심은 국제 업무 중심지로 불린다. 테헤란로 주변을 재정비해 업무 기능을 계속 강화해나갈 방침이다. 경부간선도로 지하화로 얻게 될 지상 공간에도 업무·문화 거점을 만들 생각이다.
서울은 크게 5개 권역(동북·서북·서남·동남·도심권)으로 나뉘기도 한다. 2040 서울플랜에선 각 권역 거점을 1~2곳 정해 ‘광역 중심’으로 정해뒀다. 용산, 청량리·왕십리, 창동·상계, 상암·수색, 마곡, 가산·대림, 잠실이 그 대상이다. 이 7개 지역이 3개 도심 다음으로 위계가 높다. 용산은 광화문, 여의도, 강남이라는 세 도심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약 50만㎡ 규모의 용산정비창 땅이 비어 있기도 하다. 현재 이곳을 국제업무지구로 육성해 글로벌·다국적 기업을 유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동북권에선 청량리·왕십리와 창동·상계 일대가 광역 중심 위상을 가지고 있다. 청량리·왕십리 일대는 숱한 지하철 노선이 지나는 만큼 철도 물류의 거점으로 육성한다. 창동·상계는 지역 균형 발전 차원에서 바이오·의료·문화 산업을 키울 계획이다. 서북권에선 상암·수색 일대가 디지털 미디어 산업 기반으로 여겨진다. 마곡과 가산·대림 일대는 서남권 광역 중심인데 두 지역 모두 산업 기반이 탄탄한 게 장점이다. 마지막으로 동남권에선 잠실이 광역 중심으로 정해져 있다. 잠실운동장 일대에 국제적 관광, 쇼핑, 전시·컨벤션(MICE) 센터가 조성될 예정이다.
2040 서울플랜에는 “7개 광역 중심이 효율적으로 교통이 연결되고 일자리 거점이 될 수 있도록 도시 계획적 지원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 한강이나 지천과 인접한 곳이 많기 때문에 수변 명소로 조성할 방침이다. 중장기적으로 도심항공교통(UAM)이나 자율주행 등 미래 교통수단의 환승 체계를 7개 광역 중심에 확충할 가능성이 크다.
광역 중심 다음으로는 ‘지역 중심’이 12곳에 걸쳐 있다. 동대문, 성수, 망우, 미아, 연신내·불광, 신촌, 마포·공덕, 목동, 봉천, 사당·이수, 수서·문정, 천호·길동이 그 주인공이다. 주로 상업·문화·생활 서비스 기능을 가지고 있으면서 지역 고유의 특성을 유지하는 곳들이다.
가령 도심권의 동대문은 여전히 패션산업의 성지로 꼽힌다. 앞으로도 패션과 관광, 문화 산업 기능을 더 강화하겠다는 게 서울시 입장이다. 동북권의 성수 일대는 최근 스타트업과 IT기업이 몰리는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서북권의 신촌도 마찬가지다. 연세대, 서강대, 이화여대 등 대학들이 몰려 있는 곳이다. 서울시는 이에 이곳을 대학 자원을 기반으로 한 창조산업의 거점으로 키울 생각이다. 서남권의 목동은 대표적인 교육 중심지다. 아울러 사당·이수는 수도권 남부 지역의 관문 도시로서 자리하고 있다. 동남권의 수서·문정은 로봇과 IT산업이 특화된 첨단 업무 단지로 육성한다.
2040 서울플랜에 3개 도심, 7개 광역 중심, 12개 지역 중심이란 체계만 나와 있는 건 아니다. 나머지 지역도 지구 중심이나 비중심지로 정해져 있다. 전체 53곳인 지구 중심은 자치구 안의 생활권 중심지를 뜻한다. 주로 주민의 일상생활 편의를 지원하는 공간이다. 이에 생활기반시설(SOC)을 공급해야 할 땐 지구 중심에 주로 넣곤 한다. 생활권을 편하게 걸어 다닐 수 있게 이른바 ‘보행 일상권’을 실현하는 걸 중시한다. 이외 지역은 비중심지다.
이들 지역은 중심지에 비해 개발할 때 정책적 지원이 덜한 편이다. 시는 급지에 따라 고밀 개발을 다르게 유도하고 있다. 급지가 높을수록 용도지역과 용적률 인센티브를 대폭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시는 지난 3월 역세권 노후 아파트가 재건축을 진행하면 용도지역을 최대 준주거지역으로 상향해준다고 발표했다.
다만 역세권 노후 단지라고 모두 혜택을 주긴 어렵다고 했다. 일률적으로 올리기보다는 지역적 위계를 따져본다는 것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급이 높을수록 종 상향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심의 과정에서 고밀 개발을 할 필요성이 있는지를 살펴볼 테니 말이다.
재건축·재개발 위주 정비사업뿐만 아니다. 역세권 활성화 사업을 추진할 때도 지역적 위계를 따진다. 역세권 활성화 사업은 말 그대로 지하철역 주변을 사람들이 모이는 활기 넘치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제도다. 지하철역이 있으면 보다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어서다. 역 주변에 상업·업무·주거·여가시설을 촘촘하게 지어 ‘콤팩트 시티’를 만드는 게 목표다.
구체적으로는 지하철역 최대 반경 350m 안에 있는 1500㎡~1만㎡ 규모 땅을 고밀·복합 개발하면 용도지역을 대폭 올려주는 사업이다. 용도지역이 오르면 최대로 쓸 수 있는 용적률 기준도 높아진다. 토지를 더욱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노후도와 동의율 요건 등을 맞춰야 한다.
당연히 공짜도 아니다. 늘어나는 용적률의 절반은 지역에 필요한 공공시설을 짓는 데 써야 한다. 임대주택이나 임대상가, 공용주차장 같은 시설 등이다. 그래도 나머지 용적률 절반은 민간 사업자가 쓸 수 있다. 결국 민간은 사업성을 높이고, 공공은 필요시설을 얻게 되는 정책이다.
서울시는 최근 1년 동안 이 사업의 운영 기준을 두 번이나 바꿨다. 더 많은 땅에서 추진되도록 이전보다 기준을 풀었다. 먼저 급지에 따라 역세권 기준을 넓혔다. 3개 도심, 7개 광역 중심, 12개 지역 중심에 속한 지하철역이거나 환승역이라면 역세권 범위를 반경 350m까지 봐주기로 했다. 하지만 53개 지구중심과 비중심지에 있는 지하철역이면 역세권 범위를 반경 250m까지만 인정한다.
중심지 체계에 따라 최대로 올릴 수 있는 용도지역 범위도 달라진다. 용도지역이란 토지를 어떻게 쓸지 큰 틀에서 정해놓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땅은 주거·상업·공업·녹지지역 등으로 주요 역할이 정해져 있다. 건물을 세울 때 바닥 토지가 어느 용도지역에 속하는가에 따라 용적률, 건폐율, 높이 등이 달라진다.
서울시는 급이 높은 3개 도심과 7개 광역 중심에 포함된 역세권 땅은 용도지역을 일반상업지역까지 올려줄 계획이다. 해당 지역들의 역세권 땅이 현재 제2종 일반주거지역이라고 가정해보자. 이때 최대 용적률은 250%이다. 하지만 역세권 활성화 사업에 참여해 용도지역을 일반상업 지역으로 올려 개발한다면 최대로 쓸 수 있는 용적률이 1100%로 무려 850%포인트나 늘어난다. 용도지역이 4단계(제2종→제3종→준주거→근린상업→일반상업지역)나 오르기 때문이다.
3개 도심과 7개 광역 중심에 있는 역세권 용지가 제3종 일반주거지역이어도 마찬가지다. 개발을 할 때 용도 지역이 일반상업지역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중심상업지역까지 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최대 용적률이 300%에서 1300%까지 높아지는 것이다.
물론 서울시는 중심상업지역으로 올려주는 건 심의를 통해서만 가능하단 입장이다. 단계를 3단계 이상 올릴 때도 심의를 거쳐야 한다. 아울러 최대 용적률을 이처럼 높이기 위해선 서울시가 제시하는 여러 조건을 맞춰야 한다. 혁신 디자인을 도입하거나 친환경 건축을 하거나 관광숙박시설을 짓는 등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급이 낮은 12개 지역 중심에 있는 역세권 땅은 용도지역을 최대 일반상업지역까지만 높일 수 있다. 중심상업지역으로 올릴 수는 없는 것이다. 53개 지구중심이라면 용도지역을 바꿀 수 있는 최대 범위가 한 단계 더 낮아진다. 지구중심에 있는 역세권 땅은 개발시 최대 근린상업지역까지만 종상향이 된다는 뜻이다. 지구중심보다도 위계가 낮은 비중심지는 최대치가 더 내려간다. 비중심지에 포함된 역세권 땅은 개발할 때 최대 준주거지역까지만 높일 수 있다.
상업지역만큼 높진 않지만 준주거지역도 최대 용적률을 500%까지 쓸 수 있다. 만약 비중심지의 3종 일반주거지역(300%)에 있는 역세권 땅이 개발을 한다면 용적률을 200%포인트나 더 얻게 되는 셈이다. 역세권에 있는 토지 소유자들이 관심을 갖는 이유다.
세부적으로는 이미 서울 41곳에서 역세권 활성화 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이 가운데 구체적인 계획이 다뤄지거나 결정된 곳은 17곳이다. 나머지 24곳은 사업 계획을 짜고 있는 상태다. 가장 빠른 사업지는 지하철 4호선 미아역과 7호선 보라매역 주변 사업지다. 이들 사업장은 이미 착공에 들어갔다.
가령 지하철 5호선 강동역 주변의 한 단독·다가구·근린생활시설(상가) 밀집지역은 현재 역세권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강동역은 12개 지역중심 중 하나인 천호·길동 일대에 포함된 지하철역이다. 이에 이곳 용지는 용도가 최대 일반 상업지역으로 바뀔 예정이다. 용도지역이 제3종→준주거→근린상업→일반상업지역으로 3단계나 오르는 셈이다.
기존의 평균 용적률은 약 170% 수준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보다 630%포인트 늘어난 용적률 800%를 쓸 수 있게 됐다. 이를 활용해 최고 43층 높이 공동주택, 오피스텔, 판매시설을 조성할 계획이다. 지역에 필요한 체육·문화시설도 공공기여한다.
이희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