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전력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 가운데 원자력보다는 천연가스에 주목해야 한다는 투자 의견이 나오고 있다. 천연가스는 계절적 수요 둔화와 재고 과잉 상태가 부각된 탓에 올해 초 약세를 기록했지만 최근 두 달 반 만에 20% 넘게 올라섰다.
지난 4월 6일(이하 현지시간) 마이크 워스 셰브론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베버리힐스에서 열린 밀켄 콘퍼런스에 참석해 “AI와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 급증 영향으로 천연가스 수요가 예상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워스 CEO는 그간 AI 수혜 에너지원으로 꼽힌 원자력에 대해 “미국의 경우 원자력 발전은 현재 비용이 많이 든다”면서 “지열 에너지는 다른 에너지원보다 시장성 입증 측면에서 갈 길이 멀고, 풍력이나 태양광 에너지는 날씨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안정성 측면에서는 천연가스가 가장 유력한 에너지원”이라고 설명했다.
월가에서는 AI와 데이터센터용 천연가스 수요 증가에 주목하는 모양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연구보고서를 통해 오는 2030년 안으로 천연가스가 데이터센터 신규 전력 수요 중 절반 이상인 60%를 해결하고 나머지 40%는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가 떠받칠 것으로 내다놨다. 그러면서 관련 종목으로는 천연가스 기업인 킨더모건과 윌리엄스, EQT 등에 주목했다.
웰스파고는 지난 4월 말 발표한 연구 보고서를 통해 AI와 데이터센터 수요를 감안할 때 미국 전력 수요가 오는 2030년까지 최대 20% 증가할 것으로 보이며 이 중 상당 부분을 천연가스가 충족해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뉴욕상업거래소에서는 AI용 전력 수요 기대감이 부각된 가운데 미국 헨리허브(HH) 천연가스 6월물은 4월 100만 영국 열단위(MMbtu)당 2.3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올해 저점을 기록한 2월 20일(1.94달러) 대비 22% 이상 올라선 수준이다. EBW애널리틱스의 엘리 루빈 연구원은 투자 메모를 통해 “텍사스 지역 날씨가 5월 중순부터 빨리 따뜻해지는 등 올여름 기상 예보를 감안하면 냉방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한편 최근 천연가스 굴착 장비 수가 감소하는 등 생산 활동이 주춤한 정황이 관찰되면서 공급 위축 가능성이 떠오른 것도 추가적인 시세 상승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천연가스 상장지수상품(ETP) 혹은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경우 단기 수급 리스크를 감안해야 한다. 1월 말 미국 HH 천연가스 선물 시세가 2.39달러를 기록하면서 연초 대비 16% 급락하자 다음 날 미국 최대 천연가스 기업인 체사피크에너지가 올해 생산을 30% 줄인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단기 시세 회복에도 불구하고 재고량 변동폭에 따라 천연가스 시세도 등락을 거듭하는 모양새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는 유럽 벤치마크 격인 TTF 천연가스 시세도 최근 반등하는 분위기다. 다만 네덜란드계 투자은행인 ING는 “미국은 공급 대비 수요가 증가 조짐을 보이고 있는 반면 TTF 천연가스는 재고 둔화에 따른 반등에 불과해 약세 전망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천연가스에 투자하는 ETP는 미국 증시의 경우 크게 2가지가 대표적이다. 하나는 상장지수펀드(ETF)인 ‘프로셰어스 울트라 블룸버그 천연가스’ ETF(BOIL)다. 해당 상품은 천연가스 시세 강세에 2배로 레버리지 베팅하는 고위험 상품이다.
다른 하나는 ‘프로셰어스 울트라숏 블룸버그 천연가스’ ETF(KOLD)다. 해당 상품은 천연가스 시세 하락에 2배로 레버리지 베팅하는 고위험 상품이다.
한편에서는 천연가스 유틸리티 기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눈에 띈다. 유틸리티란 에너지 생산 이후 소비 단계까지 공급망을 관리하는 기업들을 말한다. 기술주에 비해 성장성은 뒤처지지만 필수 업종이라는 점에서 대표적인 경기 방어주로 분류된다.
미국 대형은행 웰스파고는 최근 투자보고서를 통해 천연가스 관련 유틸리티 기업 투자 매력을 강조했다. 웰스파고 측은 AI 데이터센터 수요로 오는 2030년까지 미국에서만 약 323테라와트시(TWh)의 전력 수요가 추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현재 뉴욕시 연간 전력 소비량(48TWh)보다 7배가량 큰 규모다. 웰스파고 측은 “무엇보다 AI 시대를 선도하는 대형 기술 기업들이 재생 가능 에너지원을 선호하기 때문에 천연가스 관련 유틸리티주에 집중할 만하다”고 봤다. 대표적인 천연가스 유틸리티 기업은 킨더모건과 윌리엄스, 원OK, TC에너지 등이 꼽힌다. 이들 종목은 최근 12개월 배당 수익률이 4.8~7.3%로 높은 편이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 상장기업들 평균 배당 수익률은 약 1.3%다.
올해 뉴욕증시에서는 1분기(1~3월) 동안 S&P 500 지수 내 11개 업종 중 유틸리티 업종 상승률이 3.6%에 그쳐 기술 등 다른 부문에 비해 부진한 감이 있었다. 다만 2분기 들어 현재 시점에서 이미 8% 이상 급등하는 등 상승세가 눈에 띈다.
다만 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요는 날씨 변화에 따른 계절적 수요 영향을 많이 받는 데다 공급·재고 변동성이 크다는 점에서 투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실물 경제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지표라는 점에서 ‘닥터 코퍼’라는 별칭이 붙은 구리 값이 톤(t)당 1만달러를 넘어서는 등 강세를 보이자 투자 수요가 꾸준히 따라붙는 분위기다. 5월 중순 기준 국제 금 선물 시세가 올해 2월 중순 저점 대비 17% 오르는 데 그친 반면 같은 기간 구리 선물 시세는 약 23% 올라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월가에서는 뱅크오브아메리카가 2026년 구리 시세가 1만2000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고, 골드만삭스는 향후 1년간 1만200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이 “최근 단기간 급등에 소비자들이 관망세를 취하면서 구리 가격이 숨 고르기에 들어갈 수 있으나 (시장) 구조적으로 불가피한 ‘공급 부족’ 전망이 유지되는 한 구리 투자 비중을 늘리는 전략은 유효할 것”이라며 구리 목표 가격은 톤당 1만1000달러 수준을 제시했다.
국내 외에서 구리 값 강세 예상이 나오는 배경은 크게 3가지다. 첫째로는 ‘구리 최대 소비국’인 중국이 제조업 중심 경제 부양책에 나서면서 수요가 늘어났다는 점이고 둘째로는 AI 시대를 맞아 데이터센터 운영 등 첨단 산업용 수요까지 급증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이 밖에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따른 구리 수요도 꾸준히 이어지는 분위기다. 구리는 전기 저항이 낮다는 점 덕분에 전기차 음극재와 재생 에너지 발전기, 고압 케이블 등 에너지 관련 시설에 쓰인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해상 풍력 발전소의 경우 1메가와트(㎿)당 8000㎏의 구리가 필요하고, 태양광은 2822㎏이 필요한데 이는 석탄 발전(1150㎏/㎿) 대비 2~8배 더 많은 수준이라 고 분석하기도 했다.
투자자들도 구리 관련 종목 매수에 나서는 분위기다. 국내 증시에서 구리 관련 ETF로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구리실물’ ETF와 ‘KODEX 구리선물(H)’(138910), 구리·알루미늄·니켈에 투자하는 ‘TIGER 금속선물(H)’(139310)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증시에서는 ‘인베스코 DB 베이스메탈’ ETF(DBB)와 ‘US 구리 인덱스펀드’ ETF(CPER), ‘글로벌X 구리 채굴기업’ ETF(COPX) 등이 대표적이다.
4월 중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 관세 부과에 나서면서 투자자들은 철강주 옥석 고르기에 나서는 분위기다. 올해 11월 대선에 도전한 바이든 대통령은 기존 7.5%이던 중국산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를 25%로 올리도록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권고하기도 했다. 이어 지난 4월 철강노조와의 만남에서 중국이 세계 시장에 철강 제품을 불공정하게 낮은 가격으로 덤핑할 수 있는 이유는 정부 보조금 때문이라면서 “그들은 경쟁하는 게 아니라 부정행위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월가 3대 투자은행들은 앞다퉈 글로벌 철강 기업 테르니움 매수론을 강조해 시장 눈길을 끈다. 올해 초 철강 업계 부진에도 불구하고 ‘니어쇼어링’ 효과에 따른 향후 성장성이 기대되는 데다 배당 수익률도 높다는 이유에서다. 철강 산업을 둘러싼 미·중 관세 갈등 리스크에 직접 노출되지 않았다는 점도 투자 매력으로 꼽힌다.
월가 최대 투자은행인 JP모건은 최근 투자보고서를 통해 테르니움에 대해 ‘매수’ 투자의견 격인 시장 수익률 상회 의견을 유지하면서 12개월 목표가를 54달러로 높였다. 앞서 3월 말 JP모건은 테르니움 목표가를 기존 48달러에서 51.5달러로 상향한 바 있다. 골드만삭스 역시 최근 보고서를 통해 테르니움에 대해 매수 의견과 더불어 목표가로 51달러를 제시했으며, 모건스탠리는 매수의견 격인 비중 확대 의견을 내고 목표가로 47달러를 제시한 상태다.
테르니움은 아르헨티나계 대형 철강사다. 미국과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멕시코와 브라질, 콜롬비아, 과테말라 등 아메리카 대륙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최근 멕시코 시장 확장에 나서 투자 눈길을 끈다.
글로벌 제조업체들이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공급망 의존도를 줄이고 미국 인근 멕시코로 공장을 이전하거나 공장 신설에 나서는 니어쇼어링 움직임을 보인 덕분에 멕시코 지역 내 산업용 철강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 따르기 때문이다. 테르니움은 지난해 6월 멕시코 누에보 레온에 32억달러를 들어 제철소를 짓는다고 밝힌 바 있다. 누에보 레온은 한국 기아차에 이어 미국 테슬라가 전기차 공장 설립을 발표한 지역이다.
이 밖에 골드만삭스는 테르니움의 최근 12개월 배당 수익률이 8%에 달한다는 점도 눈여겨볼 투자 포인트라고 짚었다.
4월 기준 테르니움 배당 수익률은 7.95%다. 회사는 분기 배당을 하며 1주당 0.83달러를 지급한다. 개별 기업 기준으로 배당 황제주라는 별명을 얻은 미국 상업용 부동산 리츠 리얼티인컴 배당 수익률(5.65%)보다 높은 편이다.
4월 기준 회사 주가는 연중 2.4% 정도 올라 같은 기간 S&P 500 지수(10%)에 비해 뒤처진 흐름을 보였다. 다만 같은 기간 리얼티인컴 주가가 6% 떨어진 점에 비하면 배당주로서는 테르니움 수익률이 더 높은 셈이다.
철강주를 놓고 보면, 올해 1월 이후 미국 대형 철강 기업인 뉴코어와 클리블랜드-클리프스 주가는 각각 1%, 10.5% 하락해 테르니움에 비해 낙폭이 두드러진다.같은 기간 한국 증시에서는 포스코홀딩스와 현대제철 주가가 각각 18%, 12% 떨어진 바 있다.
앞서 지난 4월 30일 테르니움이 발표한 올해 1분기 실적을 보면 회사 매출은 48억달러, 순이익은 4억9100만달러를 기록해 LSEG 집계 기준 월가 예상치(매출 47억7000만달러·순이익 3억2500만달러)를 웃돌았다.
해당 분기 철강 출하량이 지난해 동기 대비 27% 늘어난 영향이다. 다만 당시 실적 발표 자리에서 회사 경영진은 1분기 예상 밖 호실적과 철강 출하량 증가에도 불구하고 마진은 줄어들 수 있다는 신중론을 낸 바 있다. 이런 가운데 투자자들은 철강사 마진 압박과 철강 관세 반사 효과를 저울질하는 분위기다. 바이든 정부는 저가 공세를 내건 중국산 철강·알루미늄에 관세를 높게 책정해왔다. 앞서 멕시코는 2023년 8월 중국산 철강에 80%에 가까운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한국산 철강에 대해서는 2025년 7월까지 한시적으로 관세를 기존 10% 선에서 최대 25% 까지 인상한 바 있다.
[김인오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5호 (2024년 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