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지정한 ‘세계 양자과학 및 기술의 해’를 맞아 올해 중국의 ‘양자 굴기’에 속도가 붙고 있다. 인공지능(AI)에 이어 양자 분야에서도 기술력을 확보해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복안이다.
허황된 꿈이 아니다. 중국은 이미 양자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에는 자체 개발 양자칩인 ‘주총즈 3.0’과 504큐비트 양자컴퓨터 ‘톈옌-504’를 선보였다. 또 올해에는 2016년 세계 최초로 쏘아올린 양자통신 위성인 ‘묵자호’의 뒤를 잇는 신형 위성을 발사할 계획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올해 신년사에서 양자 기술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우리는 각 지역 사정에 맞게 신품질생산력을 육성했다”며 “AI·양자통신 등 영역에서 새로운 성과를 거뒀다”고 강조했다. 향후 양자 기술을 둘러싼 미·중 경쟁은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중국과학원(CAS) 산하 중국과학기술대와 중국의 양자컴퓨터 업체 ‘퀀텀씨텍’ 등은 지난해 12월 16일(현지시간) 새로운 양자칩 ‘주총즈 3.0’을 사전 논문 사이트 아카이브에 공개했다. 이들 연구진은 “주총즈 3.0이 105큐비트(양자정보 연산단위)를 가졌다”며 “현존 최강 슈퍼컴퓨터인 ‘프런티어’로는 거의 불가능한 연산을 빠르게 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구글의 구형 양자칩 ‘시커모어’보다 성능이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날 발표는 같은 달 9일 구글이 신형 양자칩 ‘윌로’를 공개한 지 일주일 만에 나왔다. 구글이 윌로를 국제 학술지 ‘네이처’ 게재와 함께 공개한 것과 달리 중국은 피어리뷰(동료평가) 등 학계 정식 발표 전인 사전 논문 형태로 서둘러 홍보했다. 또 주총즈 3.0이 윌로와 성능이 비슷하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미·중 간 기술 경쟁이 양자 분야로 확장되면서 기술력 과시를 위한 신경전이 벌어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보다 앞서 중국과학원은 중국텔레콤양자그룹(CTQG), 중국과학원양자정보·양자과학기술혁신연구원, 퀀텀씨텍이 공동 개발한 504큐비트 양자컴퓨터 ‘톈옌-504’를 지난해 12월 내놨다. 톈옌-504는 504개의 큐비트를 가진 ‘샤오훙’ 칩을 탑재한 초전도 양자컴퓨터다. 특히 500큐비트의 벽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큐비트는 양자컴퓨터의 성능을 나타내는 기본 단위로 큐비트가 많을수록 더욱 복잡한 계산을 수행할 수 있다.
이처럼 중국이 양자 분야에서 빠르게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는 데는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책 덕분이다. 시 주석은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2035년까지 양자 기술을 선도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2017년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혁신 주도 성장 전략을 통해 중국이 기술 개발 분야에서 서구를 능가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양자 기술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중국의 능력을 시험하는 중요한 시험대로 평가받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은 제13차(2016~2020년)·14차(2021~2025년) 5개년 계획을 통해 양자 기술을 국가 전략에 포함시켰다. 제13차 5개년 계획에서는 2030년 까지 국가 양자 인프라 확충과 양자 컴퓨터 프로토타입 개발, 양자 시뮬레이터 구축 등 양자 통신 및 컴퓨팅 분야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목표로 하는 ‘메가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시 주석은 2020년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선 신속한 상용화가 필요하다며 양자 기술 개발을 가속화할 것을 요구했다.
제14차 5개년 계획을 통해서는 양자 기술에 대한 중국의 구체적이고 야심찬 목표를 제시했다. 이 중요한 분야에서 중국의 리더십을 공고히 하기 위해 양자 정보를 전담하는 국립연구소를 설립할 것도 요구했다. 이와 함께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지난해 발표한 문서를 통해 양자 컴퓨팅을 ‘미래 산업’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차세대 이동통신, 위성인터넷과 함께 양자 컴퓨팅 기술 발전과 양자 정보에 대한 기술 사업화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미국 내 첨단기술·혁신정책 분야 최고 싱크탱크인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이 제14차 5개년 계획을 통해 양자 기술에 투자한 자금 규모는 150억달러(약 22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는 미국의 예상 투자 규모(38억달러)의 4배에 육박한다. ITIF는 “중국 정부의 지출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중국이 실제 양자기술에 얼마를 투자한지는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면서도 “추정치만큼의 투자가 되든 안 되든 중국이 글로벌 양자 기술 경쟁에서 강자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평가했다.
다양한 양자 기술 분야 중 중국은 양자 통신에서 이미 전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ITIF에 따르면, 양자통신 분야에서 중국은 양과 질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전 세계 양자 통신 관련 출판물의 38%를 중국이 생산하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의 비율은 12.5%에 불과하다. 또 중국은 상위 10%에 속하는 논문의 비율도 31.5%로 가장 많았다. 미국은 16.7%로 2위를 차지했다.
다만, 양자 센싱·컴퓨팅 분야에선 아직까지는 양적인 면에서만 우위를 점하고 있다. 중국은 양자 센싱 관련 전 세계 논문의 24.5%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미국 비율은 15.4%에 그친다. 하지만 논문의 질적 평가 지표인 ‘H-지수’에선 미국이 68로 중국(54)을 앞선다. 양자 컴퓨팅에서도 중국이 더 많은 연구를 하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미국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상위 10% 논문 중 미국 비율은 33.9%인 데 비해 중국은 15%에 그친다. 관련 특허에서는 중국은 양자 통신·센싱에서 미국을 앞지르고 있다.
중국 양자 기술 산업의 산실은 중국 허페이다. 1970년 중국과학기술대학(USTC)이 허페이로 이전한 이후 이곳은 중국 과학기술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 USTC는 세계 최초의 양자통신 위성인 묵자호 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허페이 국가첨단산업개발구 내 수백미터 길이의 ‘퀀텀 에비뉴’에는 20여 개의 양자 기술 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양자 기술 관련 기업과 연구소들이 한 곳에 밀집하면서 연구와 상업화를 위한 생태계가 구축돼 있다.
중국의 양자 기술을 주도하는 기업으로는 스타트업인 ‘오리진 퀀텀’이 있다. USTC 출신들이 2017년에 중국 허페이에 설립한 오리진 퀀텀은 중국 양자컴퓨팅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는 기업이다. 오리진 퀀텀은 지난해 72큐비트 양자 칩 ‘우콩’을 개발했다. 이 칩을 탑재한 양자컴퓨터 ‘오리진 우콩’은 지난해 1월 가동 이후 133국의 27만 건 연산 작업을 완수했다. 이와 함께 중국의 ‘양자 아버지’로 불리는 판젠웨이가 2009년 설립한 퀀텀씨텍도 중국 양자 생태계를 이끄는 기업이다.
이와 함께 양자 기술과 관련한 인재 양성 과정이 개설된 중국 내 대학 수도 USTC·베이징대 등 60곳에 이른다.
[송광섭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