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연초부터 미국 뉴욕증시와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증시 등 주요국 증시가 ‘고금리 장기화’ 불확실성에 흔들렸다. 다만 월가에서는 1월 글로벌 증시 방향성이 잡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하반기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기준금리 인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면서 이에 앞서 바이오와 가상화폐(코인) 채굴주, 유럽 반도체 주식을 저점 매수할 만하다는 낙관론을 내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인사들은 시장 투자자들의 ‘3월 기준금리 인하론’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 이 때문에 JP모건과 모건스탠리 등 월가 대형 투자은행(IB)들은 연준이 오는 6월에서야 첫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1월 16일(이하 현지시간)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FOMC 고정 투표권)는 워싱턴 D.C. 소재 브루킹스연구소가 주최한 ‘경제 전망’ 행사에서 “이제부터는 과도한 긴축을 피해야 하지만 그 과정은 신중하게 이뤄져야 하며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면서도 “지금 상황에서는 빠르고 급격하게 금리를 인하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또 월러 이사는 “(인플레 2% 달성) 목표는 단 번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특히 미국 일자리 시장과 실물 경제가 침체 전망에 비해 탄탄하다는 점을 들어 “금리 인하는 체계적이고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FOMC 정례회의 발표 때 나온 경제전망(SEP)과 점도표를 통틀어보면 연준은 올해 ‘미국판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를 25bp(=0.25%포인트)씩 세 차례 인하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 투자자들은 연준이 오는 3월 금리 인하에 들어가 총 7번 인하 결정을 내릴 확률이 높다고 예상해왔다. 1월 중순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 집계에 따르면 금리 선물시장 투자자들은 연준의 3월 금리 인하 가능성을 약 64%로 내다봤는데 지난해 말 70%가 넘었던 점에 비하면 기대치가 다소 수그러든 수준이지만 여전히 50%를 넘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다만 월러 이사 외에도 연준 인사들은 줄곧 금리 인하 시기 상조론을 강조한다. 1월 중순 토마스 바킨 리치몬드 연방준비은행 총재(올해 FOMC 투표권)도 버지니아 은행협회 공개 발언과 논평을 통해 “상품 물가 둔화와 주거·서비스 물가 상승 속도 간 격차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면서 물가 안정 측면에서 볼 때 금리 인하를 서두를 상황이 아니라고 언급했다. 올해 FOMC 투표권이 있는 클리블랜드 연은의 로레타 메스터 총재도 이날 블룸버그 TV 인터뷰에서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여전하다는 점에서 더 많은 (인플레 둔화) 증거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사정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증시도 비슷하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 집계에 따르면 유로존 증시 트레이더들은 ‘유로존 중앙은행’인 유럽중앙은행(ECB)이 올해 4월부터 기준 금리를 인하해 총 6번 인하할 것으로 본다. 다만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1월 말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한 자리에서 블룸버그 인터뷰를 통해 올여름에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로버트 홀츠만 ECB 위원 겸 오스트리아중앙은행 총재도 “유로존 경제 침체 압박이 크지만 (중동) 지정학 리스크 등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압박 역시 크기 때문에 금리 인하할 시점을 찾기 어렵다”며 시장 기대에 선을 그었다.
월가에서는 지난해 뉴욕증시에서 회복세가 늦었던 제약·바이오 업종이 올해 더 오를 것이라는 낙관론이 나온다. 연준 금리 인하 시점이 시장 희망보다 늦어지더라도 올해 금리 인하가 이뤄질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다면 성장 기업 비중이 높은 제약·바이오 업종은 금리 인하 시점을 전후해 수익성 개선(부채 부담 완화) 기대에 힘입어 상승장에 접어들 것이라는 의견이다.
미국 투자사 BTIG의 조나단 크린스키 수석 시장 기술 분석가는 최근 고객 메모를 통해 “그간 제약·바이오를 비롯한 생명공학 관련주가 상당한 매도 압박을 받았으며 2023년 4분기(10~12월)부터 회복세로 접어들었으므로 새해에는 본격적인 상승세에 접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추가 상승세를 판단할 만한 기준으로는 대표적 ETF인 ‘SPDR S&P 바이오테크 펀드(XBI)’ 시세가 주당 90달러를 넘길지 여부”라고 언급했다.
제프리스증권의 마이클 이 연구원 역시 고객 메모를 통해 “새해에는 제약·바이오 주가 과매도 상태라는 점에 새삼 주목하는 투자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낙관론을 표했다. 지난해 뉴욕증시 제약·바이오 업종은 비만·당뇨치료제 정도를 제외하면 투자자들의 주목을 크게 받지 못했다. XBI를 비롯해 생명공학 바이오 기업들에 투자하는 ARK 지노믹 레볼루션 ETF(ARKG)는 지난 한 해 각각 10%, 19% 올라섰지만 뉴욕증시 대표 주가지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에 투자하는 ETF인 SPDR S&P 500 펀드(SPY)가 같은 기간 약 25% 오른 것에 비하면 상승세가 다소 뒤처졌다. 지난해 상승분마저 연준 금리 인하 기대감이 불기 시작한 4분기에 집중됐다.
다만 월가에서는 새해 제약·바이오 업종 분위기 반전을 기대하면서, 비만치료제뿐 아니라 방사성 의약품·세포 치료 부문에도 주목한다. 대표적인 종목으로는 애브비(ABBV)와 암젠(AMGN), 버텍스 파마수티컬스(VRTX), 바이오헤이븐(BHVN), 엑셀리시스(EXEL), 아포지 테라퓨틱스(APGE) 등이 꼽힌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의 ‘방사성 의약품·세포 치료’ 기업 인수합병(M&A) 움직임이 활발한 점도 투자 심리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례로 1월 8일 존슨앤드존슨(JNJ)이 유방암·전립선암 치료제 개발사인 앰브렉스 파마를 20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 앞서 지난해 말에는 영국계 대형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AZN)가 중국계 세포치료업체 그라셀(GRCL)을 12억 달러에 인수키로 했고,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BMY)은 방사성 의약품 개발업체인 레이즈바이오(RYZB)와 케루나 테라퓨틱스(KRTX)를 각각 41억달러, 140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화이자(PFE)도 바이오 기업인 시젠을 430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다만 새해 연준 금리 인하가 어느 시점에 얼마나 이뤄질지 여부는 매수세를 좌우할 변수다. 이 밖에 올해 봄 이후 미국 양당 대선 후보 윤곽이 잡히면 후보들 의료·복지 공약에 따라 투자 심리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 재선에 도전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오는 9월 약가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을 매매 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편 연초부터 주요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불확실성에 더해 미·중 갈등 리스크까지 이어진 탓에 ‘산업의 쌀’ 반도체 관련주가 등락을 거듭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 반도체 기업 주식을 저점매수하라는 투자 권고가 나왔다.
월가 대형 IB인 모건스탠리는 1월 11일 ‘2024 전망: 떨어질 때 사라’라는 제목의 투자 노트를 통해 올해 하반기부터 유럽 반도체 기업들 수익성이 본격 개선될 것으로 보면서 주가가 급락할 때 매수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유로존 증시에 상장된 유럽 반도체 기업 주가를 담은 스톡스 유럽 반도체 지수는 1월 16일 기준 6393.51을 기록해 올 들어서만 약 11% 떨어진 상태다. 같은 기간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약 2% 하락한 점에 비해 낙폭이 더 큰 배경 중 하나는 미국과 달리 유럽 경제가 ‘제조업 강국’ 독일을 중심으로 침체 그림자가 짙어졌다는 점이다.
다만 리 심슨 모건스탠리 연구원은 “반도체를 비롯한 유럽 기술 부문은 지난해에 주가가 널뛰는 롤러코스터 장세를 이미 겪었으며 올해부터 회복세에 접어드는 순환 주기에 접어들었다고 본다”면서 “기술 부문 중에서 인공지능(AI) 외에도 첨단 반도체 패키징, 반도체 실리콘카바이드(SiC), 반도체 소자(트랜지스터) 등 핵심 테마에 집중할 만하다”고 언급했다.
구체적인 종목으로는 네덜란드 증시에 상장된 ASML(티커 ASML)이 우선 꼽혔다. ASML은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EUV 노광(리소그래피) 장비를 독점 공급하는 업체다.
앞서 월가 또 다른 IB인 시티도 보고서를 통해 “미국·네덜란드 정부가 ASML이 중국에 장비 수출하는 것을 통제하는 등 미·중 갈등이 위험 요인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기업의 시장 지위를 감안하면 주가가 780유로로 오를 것”이라면서 매수 투자의견을 강조한 바 있다. 해당 종목 주가는 16일 기준 1주당 652.30유로를 기록해 올해 약 2% 떨어진 상태다.
한편 심슨 연구원은 네덜란드계 반도체 장비 설계·생산 업체인 BE세미컨덕터 인더스트리즈(BESI)를 비롯해 프랑스 증시에 상장된 반도체 생산기업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STMPA)와 반도체 소재업체 소이텍(SOI), 독일 증시에 상장된 전자 설계 자동화 기업 시놉시스(SYP) 등을 저점 매수할 만한 종목으로 꼽았다. 거론된 종목 중 ASML과 시놉시스는 미국 증시에도 상장돼 있다.
다만 매수 시점과 관련해서는 주가가 급락할 때마다 부분 매수하는 적립식 투자가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상반기에는 반도체 단기 약세가 따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심슨 연구원은 “반도체 업계 재고 조정 과정을 감안할 때 단기적으로 관련주 약세가 예상되지만, 올해 하반기에는 상황이 바뀌면서 반도체 관련주가 증시 강세를 이끌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인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