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엔화값이 급등락을 반복하면서 엔화를 사거나 엔화 관련 금융상품에 투자하려는 재테크족의 눈치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다. 11월 중순 달러당 엔화가치가 33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고, 100엔당 원화값도 850원대까지 급등하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에 이르렀다. 재테크족들은 15년 만에 찾아온 ‘엔테크(엔화 재테크)’ 기회에 쾌재를 불렀지만 12월 들어 엔화가치가 반등에 성공하며 ‘시계제로’의 상황에 놓였다.
전 세계가 숨 가쁘게 금리를 올리는 상황에서 나 홀로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해온 일본의 통화정책으로 10월 말부터 엔화가치는 수직 낙하했다. 11월 13일 엔화가치는 달러당 152엔 턱밑까지 올라 33년 만에 최저로 하락했다. 동시에 달러당 원화값이 강세를 보이면서 같은 달 16일 원·엔 환율은 856.8원까지 내려갔다. 이는 2008년 1월 10일 종가(854.3원) 이후 15년 10개월 만에 최저치다.
다만 12월 들어 일본 중앙은행(BOJ)을 중심으로 마이너스 금리 탈출을 뜻하는 ‘통화정책 정상화’에 대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2023년 12월 7일 원·엔 환율은 900원대로 상승 전환했다. 세계 주요 투자은행(IB)들은 2024년 봄 이후 일본의 통화정책 변경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지만 급등락을 거듭하는 엔화의 변동성에 방향을 쉽사리 가늠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2024년 초 일본 여행을 위해 앞서 1000만원을 엔화로 환전한 재태크족 A씨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여느 때였다면 일주일 전쯤 현지 통화로 환전했겠지만 15년 만에 원·엔 환율이 최저치까지 떨어졌다는 소식에 서둘러 엔화를 매입했다. A씨는 “여행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투자 기회로 활용하지 못해 아쉽다”며 “지금 엔화도 여전히 싸 보이기는 한데, 850원대까지 원·엔 환율이 내려갔던 걸 생각하면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엔화 상승세에 시동이 걸렸지만 예년 평균 가격에 비춰보면 여전히 ‘엔저’가 지속되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3년 12월 13일~2023년 12월 12일) 100엔당 원화값의 평균치는1014.3원이다. 2023년 12월 12일 기준 100엔당 원화값이 903.6원인 것을 감안하면 원화 대비 엔화값은 10년 평균치 대비 10%가량 떨어져 있다.
원화 대비 엔화값 약세에 시중은행 엔화예금과 환전 창구도 여전히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 엔화예금 잔액은 2023년 12월 12일 기준 1조1136억엔(10조625억원)으로 집계됐다. 2022년 12월 말 7023억엔 대비 1년 새 3조7000억원(4000억엔)이 넘는 돈이 쏟아져 들어왔다.
4대 시중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은 2023년 1분기 말 6005억엔으로 2022년 12월 말 대비 줄어들었다. 2023년 6월 8819억엔으로 잔액이 늘어난 뒤 9월 말에는 9885억엔으로 규모가 커졌다. 10월 말 이후 원화 대비 엔화값 약세가 뚜렷해지면서 4대 시중은행의 엔화예금 잔고는 1조엔대를 뚫어냈다.
엔화예금의 상당수는 기업예금으로 추정되지만 엔저에 따른 단기 환차익을 기대하는 개인투자자의 수요도 상당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전체 엔화예금 증가분이 엔저에 따른 개인투자자들의 투자수요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최근 들어 영업점에 엔화예금 관련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는 것은 맞는다”며 “여행 목적으로 엔화를 바꾸거나 투자를 위해 엔화를 직접 사들이는 사람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정상진 하나은행 도곡금융센터 PB팀장은 “일본 중앙은행이 금리 정상화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마이너스 금리에서 올라온다면 추가 상승할 여지가 충분하다”며 “그동안 엔화가치가 ‘시계제로’ 상황에 놓여 있었다면 지금은 상승 가능성에 대한 징후가 뚜렷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850원에서 원·엔 환율이 바닥을 찍고 올라온 상황이지만 900원 초반대에서는 엔화 투자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고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개인투자자들에게 엔화예금을 추천하지는 않는다. 주요 시중은행의 엔화예금 1년 정기예금 평균 이자가 0%이기 때문이다. 만기를 다르게 해도 금리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 은행이 엔화예금에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이유는 엔화로 돈을 벌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 엔화는 국내 기업들의 대출 수요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은행이 이자이익을 올리기 어려운 데다, 일본 중앙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현지 은행에 돈을 맡기면 오히려 보관료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 엔화예금은 다른 해외통화 관련 예금과 비교해서도 차이를 보인다. 1년 정기예금을 기준으로 달러화는 연 5% 초반, 유로화는 연 3%중반 정도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연 4% 후반의 금리를 제시하는 영국 파운드화 예금과 1.2~1.3%인 스위스 프랑화와 중국 위안화 예금 금리와 비교해서도 엔화예금 금리는 온도 차가 크다.
외환을 직접 매입하는 것도 재테크족들이 많이 찾는 엔화 투자 방식 중 하나다. 엔화가치가 하락했을 때 원화를 엔화로 바꿨다가 엔화가치가 오를 때 되팔면 환차익을 얻을 수 있고, 이 경우 차액에는 세금이 붙지 않는다. 다만 통상 은행들은 외환을 사고팔 때 거래 금액의 1.75%가량을 수수료로 매기기 때문에 이를 우회하는 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 각 은행들은 모바일 앱에서 환전을 할 경우 수수료를 우대해주는데, 신한은행과 NH농협은행 등의 경우 최대 우대율이 90%까지 올라간다. 환전 수수료가 1.75%였는데 90% 할인되면 실제 내야 하는 수수료는 0.175%까지 떨어진다.
보다 큰 수익을 기대하는 투자자라면 원화로 국내 상장된 상장지수펀드(ETF)를 매수하는 것도 방법이다. 환차익과 ETF 운용수익을 동시에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대표 지수인 니케이225와 토픽스 지수를 추종하는 국내 ETF 상품으로는 KODEX일본TOPIX100, 미래에셋의 TIGER 니케이225 등이 있다. ETF를 포함한 일본 주식형 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12월 12일 기준)은 23.4%로 해외 주식형 펀드의 전체 수익률 15.5%를 웃돌았다. 원화로 국내 상장된 엔화 ETF에 직접 투자하는 것도 방법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 ‘TIGER 일본엔선물 ETF’는 원·엔 환율이 기초가 되는 ‘엔선물 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이다. 엔화가치 전망에 따라 지수가 오르내리기 때문에 엔화를 직접 보유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펀드를 고를 때는 환헤지가 되는 상품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엔화가 싸고 나중에 더 비싸질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면 환헤지를 시키지 않고 노출하는 상품을 고르는 편이 좋다. 환헤지가 안 돼 있는 상품은 엔화가 시간이 지나 오를 경우 토픽스와 니케이 지수 등이 오르는 것에 더해 엔화가치가 상승하는 것까지 이익으로 가져갈 수 있다. 다만 투자로 이익이 날 경우 배당소득세로 이익의 15.4%를 내야 하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일본 증권시장에 상장된 ETF를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 국채 ETF가 대표적이다. 정상진 하나은행 도곡금융센터 PB팀장은 “최근 재테크 상담을 해오는 고객들에게 일본 증시에 상장된 미국 장기채 ETF 매입 추천을 많이 하고 있다”며 “미국 채권 금리 하락으로 채권 가격이 올라가면 자본 차익을 볼 수 있고, 그 사이 엔화 가격이 정상화되면 환차익까지 노려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수석도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일본보다 낫기 때문에 엔화 그 자체에 투자하는 환테크는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며 “엔화 변동성이 큰 만큼 통화 그 자체를 매입하는 것은 단기 투자를 목표로 방망이를 짧게 가지고 가야하고, 중장기적으로 접근하려면 ETF 상품으로 대응하는 편이 훨씬 유리한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증시 관련 주가연계증권(ELS)상품들도 발행 규모가 커지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니케이225를 기초자산으로 편입한 ELS는 2023년 11월 1조3952억원 규모로 발행됐다. 2022년 11월 2075억원과 비교해서도 발행 규모가 7배 가까이 늘었고, 2023년 1월 5417억원에 비교해서도 약 3배 증가했다.
다만 일본 증시가 상당히 올라와 있다는 점에서 ETF와 ELS 투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일본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니케이225는 11월 20일 3만 3853.46을 기록했다. 일본 거품경제 시기인 1990년 8월 이후 최고치다. ETF는 지수를 추종하기 때문에 지수가 고점을 찍고 하락한다면 손실을 볼 가능성이 높다. ELS도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비율 이상으로 떨어지면 원금 손실 위험이 커지는 상품으로 하락 구간에서 투자를 늘리고 가격이 오를 때는 피해야 한다.
결국 환테크의 기본은 해당 통화의 가치가 향후 얼마나 상승 여력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 있다. 미국과 한국은 내년부터 금리 인하로 ‘피벗(방향 전환)’할 수 있다는 기대가 크지만 오랜 기간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해왔던 일본은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금리가 인하되면 달러와 원화는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는 반면, 엔화는 절상 가능성이 높아진다.
문제는 일본 통화정책의 변화 시점이 언제냐에 있다. 이는 외환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뉜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수석은 “시장은 1분기에 일본 중앙은행에서 정책금리를 올리거나 수익률 조정 곡선(YCC)을 폐지하는 방안을 기대하고 있다”며 “그 시점을 3~4월로 보고 있고, 그렇게 되면 원·엔 환율의 하단은 890원, 상단은 970원까지는 열려있다고 봐야 한다. 평균 환율은 930원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본 통화정책의 방향 전환이 급격히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지금까지 시장의 기대가 앞서가고, 일본 중앙은행은 시장 기대감에 한참 못 미치는 발표를 해오는 것을 반복해왔다”며 “2024년에도 이 현상이 발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엔화가치가 저점은 지났다고 보는 게 맞고, 방향 자체는 상승할 것으로 내다본다”며 “새해 1분기 평균 원·엔 환율은 930원 선에 머물 것으로 보고, 하단도 870원대 까지는 가능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도 “일본 중앙은행의 정책 변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엔화가 상승하고 있지만 2024년 상반기 중에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지금 원·엔 환율 반등도 2024년 연초에 되돌림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고, 상반기 말까지는 현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2024년 상반기 말, 하반기 초입부터 일본 중앙은행의 정책 변화가 이뤄진다면 원·엔 환율은 1000원 언저리까지 갈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유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