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최고의 자산운용사로 자리잡은 블랙록의 비결은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 주식 시장에 상장지수펀드(ETF)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랙록 외에 뱅가드 등 해외에서 독점으로 운영되고 있는 ETF 시장은 사실상 대형 자산운용사들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독점적인 시장에 도전장을 낸 한국 기업이 있으니 바로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다.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는 국내 기업 최초로 뉴욕증권거래소에 액티브 ETF를 상장하며 국내는 물론 미국 언론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크래프트는 2019년부터 뉴욕증시에 QRFT(Qraft AI-Enhanced U.S. Large Cap ETF), AMOM(Qraft AI-Enhanced U.S. Large Cap Momentum ETF), HDIV(Qraft AIEnhanced U.S. High Dividend ETF), NVQ(Qraft AI-Enhanced U.S. Next Value ETF) 총 4개의 ETF 상품을 출시했다.
국내 인공지능(AI) 핀테크 스타트업인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는 지난해 초 일본 투자회사 소프트뱅크로부터 1억4600만달러(약 1746억원)를 투자받아 눈길을 끌었다. 소프트뱅크가 국내 기업에 직접 투자한 건 2015년 쿠팡에 1조1000억원을 투자한 이래 처음이기도 했다. 크래프트와 소프트뱅크는 전략적 파트너십도 맺기로 했다. 소프트뱅크의 상장 주식 포트폴리오 운용에 크래프트의 AI 모델을 탑재하는 프로젝트가 곧 가동된다. 소프트뱅크는 크래프트가 미국과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해외 사업을 넓히는 데 협업할 계획이다.
소프트뱅크 외에도 국내외 유수의 기관으로부터 총 2200억원을 유치한 크래프트는 투자 유치 이후 한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금융 중심지로 꼽히는 뉴욕과 홍콩에도 현지 법인을 열고 R&D, 인재 채용 등 글로벌 AI 투자 솔루션 회사로의 도약을 위한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가장 가시적인 성과는 역시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4종류의 ETF다. 현재 뉴욕거래소에 운용 중인 크래프트의 AI ETF 3종은 모두 벤치마크 대비 아웃퍼폼하는 좋은 성과를 기록하고 있으며, 각 카테고리에서 가장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대표 상품인 QRFT는 미국 최대 펀드 평가 회사인 모닝스타로부터 최고 등급인 ‘별 5개’를 획득했고, 특히 가치투자 AI ETF인 NVQ는 분기 기준 가치주 펀드 카테고리 전 세계 367개 펀드 중 1위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들 ETF의 특징은 사람이 아닌 딥러닝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는 AI가 운용한다는 점에 있다. 방대한 금융 데이터 중 특정 패턴과 트렌드를 뽑아내는 기술을 바탕으로 필요한 항목을 스스로 인지해 학습하고 투자전략을 세워 운용하는 구조다. 이를 통해 사람의 편견을 배제하고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더 높은 수익을 추구한다. 특히, 미국 주식 중 모멘텀이 좋은 50개의 대형주를 추적해 종목을 선택하고 투자하는 AMOM ETF는 AI 기술의 우수성을 입증하며 주목받았다. 현지에서는 서학개미들의 관심도가 높은 전기차 기업 테슬라 주가의 주요 변곡점에 선제적으로 테슬라 비중을 조절하며 차별화된 수익률을 기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는 김형식 대표가 서울대학교 경제학 석사과정 중 주식 투자인 퀀트 모델 알고리즘 트레이딩(Algorithmic Trading)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2016년에 본격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 사람에 의해 대부분 이뤄지고 있는 자산 운용 프로세스를 AI 기술을 통해 혁신한다는 목표 아래 B2B 기반 로보어드바이저 솔루션을 제공하던 크래프트는 AI 펀드 솔루션을 개발 및 운용해 프로세스상 비효율성이 많은 자산 운용 시장 전반으로 비즈니스 영역을 확장했다. 크래프트는 이를 위해 액티브와 패시브 사이에 있는 스마트 베타 ETF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으로 ‘데이터 수집 및 전처리/통합’ - ‘초과수익전략 탐색’ - ‘운용포트폴리오’ - ‘주문집행’으로 이어지는 각 단계에 대응하는 AI 기술을 개발하고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통합한 후, 100% 무인으로 운용되는 AI ETF를 출시하며 최근 뉴욕증권거래소에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AI ETF 시장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증명한 크래프트는 최근 프로세스상 비효율성을 해결하기 위해 KIRIN API, 알파팩토리, AXE 엔진을 개발해 금융기관 및 빅테크 기업들이 자동화 및 개인화된 자산관리 및 주문집행 서비스를 쉽게 구현할 수 있도록 각 기술을 통합 제공하고 있다.
먼저 주문집행 쪽도 세계에서 최초로 AI 강화학습 기반의 주문집행 시스템을 상용화해 신한금융투자에 공급하며 국민연금의 주문을 처리하고 있다. AI 주문집행 시스템인 ‘AXE’는 크래프트가 국내 최초로 개발한 시스템으로 대량의 주문을 강화학습 기반의 AI 에이전트가 시장 상황에 맞게 분배해 주문을 처리하도록 돕는다.
이외에도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와 함께 금융 데이터를 API화하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금융 데이터 전처리·통합 시스템인 ‘KIRIN API’는 AI를 통한 투자 전략 탐색에 필요한 데이터 시스템이다.
크래프트 관계자는 “API 기반 클라우드 솔루션으로 공개하기 위해 S&P Global과 데이터 재배포 및 공동 마케팅을 협의해 자본 시장의 효율화에 이바지하고자 한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크래프트는 업계에서 생소한 무형자산까지 측정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NVQ ETF를 출시하기도 했다. 이 상품은 AI를 활용해 다른 가치주들이 참고하던 재무제표 등의 일반적 정보에서 나아가 지식재산권, 광고비, 연구·개발 비용 등을 AI로 분석해 기업의 가치를 측정함으로써 새로운 방식의 가치투자를 제안하고 있다
크래프트는 미래에셋자산운용 공모펀드뿐만 아니라 은행, 보험사 등에 RA를 공급한다. 소비자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은행, 증권사 등을 대상으로 한 기업 간 거래(B2B) 방식 서비스를 택했다.
AI ETF의 제품군의 추가적인 출시 및 마케팅 확대를 통해 성공적인 성과를 보이는 AI ETF의 국내외 운용자산을 퀀텀 점프(Quantum Jump)시키기 위해, AI 자산운용 기술을 자사 서비스에 적용하기를 원하는 국내외 대형회사들과의 협업을 지속해서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국내 대형 금융사들이 주목하고 있는 AI 기술로 지금까지 신한은행, 하나은행, 하나UBS자산운용, KTB자산운용 등 국내 대형 금융사들의 동사 로보어드바이저 솔루션 채택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대중의 관심을 끈 이슈는 LG그룹과의 협업이다. 지난 8월 크래프트는 LG AI 연구원과 미국 뉴욕증권 거래소에서 ‘AI 모델을 활용한 ETF 상장을 위한 상업화 본계약’을 맺었다. 앞선 지난 8월 18일 크래프트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ETF 상장을 위한 신청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ETF 명은 ‘LG 크래프트 AI-파워드 US 라지캡코어(LG QRAFT AI-Powered U.S Large Cap Core)’, 티커명은 ‘LQAI’로 결정했다. SEC 심사를 거쳐 이르면 오는 11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할 예정이다.
LG전자의 예측 AI 모델은 ▲효율적으로 공급망을 설계하기 위한 국가별 물류센터별 수요 예측 ▲생산 최적화를 위한 스케줄링 자동화 ▲비용 효율화를 위한 제품가격 예측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된다. 예를 들어 LG화학에서 필요한 원자재의 미래 가격을 AI가 예측해 최적의 매수 시점, 재고량 등을 정하는 식이다. LG전자 공장에서 생산한 TV를 국가별 물류센터로 이송해야 할 때, 국가별 수요를 AI가 예상해 물량을 배분하는 식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김 대표는 “AI가 어떤 데이터를 공부할지 선택하고 이를 구조화하는 데는 노하우가 중요하다”라며 “크래프트가 기존 운용하던 AI 모델과 LG AI 연구원의 예측 AI 모델을 결합해 기존보다 나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크래프트는 아직 이익보다 성장에 치중하고 있다. 영업과 연구개발 분야에 투자액을 크게 늘려 지난해 영업이익은 -120억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이에 대해 “몇 년 간 투자에 집중하는 단계며 올해 실적은 지난해 대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라며 “아울러 글로벌 유수의 고객사들과 사업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만큼 내년의 성과에서 긍정적인 증가 폭을 나타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의 시선은 글로벌 시장으로 향해 있다. 이미 미래에셋자산운용, 해외 운용사 등과 공동으로 AI 기반 ETF를 선보였다. 김 대표는 “한국을 넘어, 미국, 홍콩, 싱가포르 등 25곳이 넘는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크래프트가 개발한 AI 모델을 사용하고 있다”라며 “특히 올해부터 유로존 최대 은행인 BNP파리바 글로벌마켓 아시아 태평양지역본부(이하 BNP파리바) 등 유수 금융기관들과의 협업을 시작하며 글로벌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크래프트는 지난 3월 미국 최대 포트폴리오관리 솔루션 기업 퍼스트레이트(First Rate)와 해외 판매채널 확장을 위해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퍼스트레이트는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에 본사를 둔 글로벌 자산관리 솔루션 기업으로 2500조원이 넘는 규모의 고객자산이 퍼스트레이트의 솔루션을 통해 관리되고 있으며 특히 자산관리 리포팅 분야에서는 미국 1위의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지난 6월에는 BNP파리바와 AI를 활용한 금융 분야에서 상호 협력 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MOU를 맺기도했다. BNP파리바는 혁신적인 투자 솔루션의 개발을 위해 크래프트의 AI 투자 기술을 활용해 BNP파리바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고객들에게 제공할 혁신적인 금융 상품 및 솔루션을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능성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검토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다양한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업을 추진 중이며 최근에는 글로벌 지수 사업자인 솔랙티브(Solactive)와 세계 최초 AI 기반 롱쇼트 지수를 출시하기도 했다”라며 “장기적으로 상장도 고려하고 있으며 한국 또는 미국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