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지난 10월 18일(현지 시각) 수년 만에 가장 부진한 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주가가 추락하고 있다. 실적 발표 이후 다음날 10% 가까이 폭락했던 테슬라의 주가는 20일에도 4% 가까이 떨어졌다. 이전까지도 내림세를 기록했던 주가는 2일 만에 15% 폭락해 주주들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10월 20일(현지 시각) 뉴욕증시에서 테슬라는 전 거래일보다 3.69% 급락한 211.99달러를 기록했다. 전일에도 테슬라는 9.3% 폭락한 220.11달러를 기록한 바 있다.
실적 발표 결과는 실망스러울 만했다. 테슬라는 18일 장 마감 직후 실적 발표를 통해 지난 3분기 조정 주당 순익이 66센트라고 밝혔다. 이는 시장의 예상치 75센트를 밑도는 것이다. 매출은 232억달러라고 발표했다. 이 또한 시장의 예상치 241억달러에 미치지 못하는 수치였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테슬라가 지난 3분기에도 가격 인하를 계속해 영업 이윤이 크게 줄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테슬라는 고금리 환경에 따른 수요 감소와 자동차 금융비용 상승에 따라 차량 가격을 지속해서 내린 바 있다. 그 결과 영업이윤과 주당순이익이 지속해서 줄어들어 주가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리튬 등 원재료 비용 하락으로 차량당 원가 하락 추세는 지속됐으나 도조(Dojo)컴퓨터 등 연구개발비가 증가하면서 영업비용도 증가했다.
실적 발표 당시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향후 사업 전망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제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세계 경제 상황의 어려움을 언급하는 데 상당 시간을 할애한 머스크는 전기차 수요가 계속 위축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머스크는 이날 “테슬라가 엄청나게 유능한 배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폭풍이 몰아치는 경제 조건 속에서는 아무리 잘해도 어려운 시기를 겪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폭풍 속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배라도 도전을 맞는다”라며 “그게 바로 모두가 겪는 일이고, 자동차 산업뿐만이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또한 그는 “사람들은 경제에 불확실성이 있다면 새 차를 사는 것을 주저하기 때문”이라며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대해 읽고 있다면 새 차를 사는 것이 마음 속의 우선순위가 아니게 될 경향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머스크는 이전에 테슬라가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를 언급하며 고난이 찾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그는 이날 “내가 2009년과 2017∼2019년의 경험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어 필요 이상으로 편집증적이라면 사과한다”라며 “알다시피 자동차 산업은 다소 주기적”이라고 덧붙였다.
머스크가 언급한 2009년과 2017년은 모델3의 생산량을 대폭 늘리기 위해 ‘생산 지옥’으로 일컬은 시기 등 테슬라 역사상 가장 어려웠던 때를 의미한다. 현재를 이러한 시기에 비유하며 그 정도의 고난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친 것이다.
실제로 테슬라가 이달 초 공개한 3분기 인도량(43만 5059대)은 전 분기보다 7% 감소해 판매 부진에 대한 시장의 우려에 불을 지폈다.
올해 판매량 목표는 지난해 말 다소 보수적으로 제시했던 180만 대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내년도 판매량은 올해 대비 50% 이상 성장할 수 있을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확답하지 않았다.
그는 “매년 50% 성장을 하게 된다면 우주에서 가장 큰 존재가 돼 있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이외에 투자자들의 관심도가 높았던 전기 픽업트럭 ‘사이버트럭’의 양산에 어려움이 큰 탓에 기대치를 낮추고 싶다고 말했으며, 멕시코에 건립을 계획한 기가팩토리에 대해서도 거시경제 상황을 고려해 추진 일정을 늦출 수 있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이러한 언급 이후로 장외시장에서 테슬라의 주가는 크게 곤두박질쳤다.
단기적으로 테슬라의 주가는 변동성이 커질 수 있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생산공장 문제로 생산량을 조절했던 3분기에 비해 4분기는 생산량이 개선될 여지가 있지만 차량 가격 추가 인하로 영업이윤의 개선 폭이 기대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사이버트럭 양산이나 멕시코 공장 가동 등 모멘텀도 당분간 소강 상태에 들어가는 상황이다.
월가의 투자은행들은 일제히 테슬라의 투자 등급이나 목표 주가를 하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골드만삭스는 테슬라의 실적 발표 후 12개월 목표 주가를 기존 265달러에서 235달러로 낮췄다. 다만 골드만은 테슬라에 대해 ‘중립’ 투자 의견을 유지했다. 골드만은 테슬라가 전기차 업계의 선두 주자로서 장기적인 투자 가치는 분명히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고금리 여건 속에서 실적도 부진해 단기적으로는 우려스럽다고 진단했다.
웰스파고와 제프리스, 씨티그룹도 테슬라에 대한 ‘중립’ 투자 등급을 고수했다. 웰스파고의 분석가는 테슬라에 대해 “더 이상 장밋빛 시각은 없다”라면서 회사의 순익이 꾸준히 하방 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웰스파고와 제프리스는 테슬라에 대한 목표 주가를 250달러로 제시했다. 씨티그룹은 테슬라의 목표 주가를 기존 271달러에서 255달러로 낮췄다.
월가의 ‘테슬라 약세론자’로 불리는 번스타인의 토니 사코나치는 테슬라에 대한 ‘매도’ 의견을 유지하면서 목표 주가를 단 150달러에 제시했다. 현재 주가 대비 25% 가까이 하락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사코나치 분석가는 “테슬라의 성공 신화가 무너진걸까?”라는 비판과 함께 “많은 측면 에서 테슬라는 그저 평범한 자동차 회사처럼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월가의 대표적인 ‘테슬람’이라 불렸던 강세론자들도 동참하고 있다. 대표적인 월가의 강세론자로 불렸던 퓨처펀드의 개리 블랙은 최근 X(옛 트위터)에 “우리는 테슬라의 부족한 수익을 이유로 테슬라의 포지션을 상당 부분 매도했다”라며 “자동차 마진율이 바닥을 쳤다는 확신이 생기면 다시 구매하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모건스탠리의 아담 조나스는 실적 발표 후 테슬라의 목표 주가를 400달러에서 380달러로 낮췄다. 다만 아담은 테슬라의 3분기 실적이 우려스럽지만, 여전히 테슬라를 단순한 자동차 회사 이상으로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테슬라의 자동차 회사로서의 가치는 380달러에서 86달러에 불과하다고 할 정도로 단순한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며 “여러 단기적인 역풍을 목표 주가에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사가 이용할 수 있는 장기적인 잠재력을 파악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느낀다”라고 말했다.
모건스탠리의 아담 조나스는 테슬라의 목표 주가를 가장 높게 제시한 강세론자로 꼽힌다. 이러한 자신감은 지난 9월 그가 발표했던 보고서를 통해 엿볼 수 있다. 그는 지난 9월 60쪽이 넘는 보고서를 통해 테슬라의 도조 슈퍼컴퓨터가 테슬라의 기업가치를 대폭 상승시킬 것이란 예측을 내놨다.
그는 “도조 슈퍼컴퓨터가 로봇 택시와 네트워크 서비스의 빠른 도입을 통해 테슬라에 5000억달러(약 670조원)의 기업가치 상승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밝혔다. 도조 슈퍼컴퓨터는 초당 100경 번 연산이 가능한 엑사플롭(exaFLOP) 또는 1000페타플롭스(petaFLOPS)급 슈퍼컴퓨터로 세계에서 5번째로 강력한 컴퓨터다. 이 슈퍼컴퓨터는 테슬라의 오토파일럿과 자율주행 인공지능(AI)을 구동하는 신경망을 훈련하는 데 사용된다.
지난 7월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는내년까지 도조 슈퍼컴퓨터 개발에 10억달러(약 1조3600억원)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완전자율주행 개발에 대한 강한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테슬라는 엔비디아 GPU 기반의 슈퍼컴퓨터 클러스터 외에 자체 설계한 D1 칩을 기반으로 도조 슈퍼컴퓨터를 제작하고 있다. 1개의 도조 슈퍼컴퓨터 세트에는 총 5만3100개의 D1 코어가 포함돼 있다.
테슬라는 지난 2016년부터 완전자율주행 기능을 연구해왔다. 하지만 현재까지 개발된 것은 슈퍼 운항 제어 수준으로 진정한 의미의 자율주행이 아니라 사람이 운전대에 손을 계속 올려놓아야 하는 운전자 지원 시스템이다.
일론 머스크는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던 이번 실적 발표에서도 “FSD는 테슬라의 가치를 현재의 5배로 상승시킬 수 있다”라며 자율주행기술의 우수성과 중요성에 대해 피력한 바 있다. 이러한 자율주행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제작한 도조 슈퍼컴퓨터는 엔비디아 H100 GPU 1만 개가 장착돼 있으며 완전 자율주행 차량 개발을 위해 방대한 데이터를 관리·처리하고 있다.
박연주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생성 AI 앱으로 GPU 공급 부족이 심각한 상황에서 테슬라는 자체 개발한 도조 컴퓨터 가동을 시작했다”라며 “도조는 기존 GPU 대비 원가가 낮기도 하지만 자율주행에 특화된 전용 모델이고 확장이 쉬워 연산 능력이 빠르게 증가할 수 있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내년에는 테슬라가 개발 중인 AI 로봇인 ‘옵티머스’의 잠재력도 보다 구체화할 전망이다. 지난해 ‘AI데이’에서 공개된 당시 제대로 걷지도 못했던 옵티머스는 최근 사람의 방해를 피해 물건을 옮기거나 잘못 놓인 물건을 바로 세우기도 하는 등 다양한 동작을 선보였다. 기존의 로봇은 사전에 프로그래밍한 대로만 움직일 수 있는 데 반해 옵티머스는 대형 언어 모델을 탑재해 인터넷 등에 있는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해 로봇의 상식과 추론 능력을 개선할 수 있고 사용자들과 컴퓨터 언어가 아닌 자연어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박 연구원은 “테슬라의 연산 플랫폼, 자율주행에 사용된 AI 기술력, 양산 경쟁력 등은 중기적으로 로봇 분야에서도 경쟁 우위로 작용할 전망”이라며 “2024년에는 AI데이 등을 통해 중장기 로드맵이 구체화하면서 기대감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