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선불카드’ 전성시대다. 엔데믹 여행수요에 여름휴가철까지 겹친 7~8월에는 카드를 신청하고도 며칠씩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이 시장 양대 산맥은 하나카드의 ‘트래블로그’와 핀테크 스타트업 트래블월렛에서 출시한 ‘트래블페이’다.
8월 초 유럽여행을 다녀오면서 트래블페이 카드를 발급받았다는 50대 이 모 씨는 “영국과 프랑스를 돌고 왔는데 현지 직원들이 트래블월렛을 이미 알고 있더라. 결제할 때도 카드를 가져다 대기만 해도 돼서 편리했다”고 말했다. 올여름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가면서 선불카드를 이용했다는 30대 박 모 씨도 “트래블로그와 트래블월렛을 둘 다 발급받았고 다른 신용카드도 챙겨 갔는데, 선불카드가 활용도가 훨씬 높았다”고 전했다. 해외여행 시 선불카드와 신용카드, 현찰 환전까지 똑똑하게 활용하는 법을 정리했다.
해외여행 선불카드의 최대 장점은 ‘3무(3無)’다. 연회비가 없고, 주요 통화의 경우 환전 시 수수료가 무료다. 현지 자동입출금기(ATM)에서 현금을 찾을 때 수수료도 ‘0원’이다. 최대 충전금액은 통화별로 200만원(트래블로그), 180만원(트래블월렛)인데, 한꺼번에 최대 금액을 채우기보다는 소액으로 자주 환전해 쓰기를 추천한다.
2학기를 휴학하고 배낭여행을 준비중이라는 대학생 임 모 씨는 “현지 상황도 잘 모르는데 소매치기도 있다고 하니 현금을 가지고 다니기 무섭고, 부모님 카드를 가져가려 해도 카드 복제나 분실 걱정 때문에 고민하던 차에 선불카드 덕에 안심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할 계획이라면 선불카드가 더 편할 것 같다”고 했다.
일본 출장을 자주 다니는 40대 직장인 이 모 씨는 선불카드로 다니기에는 일본이 최적의 여행지라고 추천했다. 이 씨는 “평소에도 하나머니로 환전해둘 수 있어 분산투자 겸 사두고 있다. 엔화가 800원대를 찍었을 때 미리 환전해뒀는데 든든하다”고 말했다.
최근 해외여행객들은 트래블페이와 트래블로그 2가지를 모두 챙겨가는 경우가 많다. 하나 트래블로그 신용카드를 제외하면 연회비가 무료여서 부담 없고, 두 회사가 취급하는 외화 종류도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은행과 하나카드가 운영하는 트래블로그는 18종, 트래블월렛은 38종을 지원한다. 트래블페이는 전세계 온·오프라인 비자(VISA) 가맹점 1억 곳에서 이용할 수 있다.
카드 선택을 좌우하는 1요소는 어느 나라로 갈 것인지다. 기존 사용자들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소위 주요 국가는 어느 카드를 선택하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일부 국가의 경우 수수료가 있으므로 환전과 선불카드 중 무엇이 유리한지 확인해야 한다.
환전 우대 이벤트 시기를 노리면 조금이라도 싸게 여행 경비를 준비할 수 있다. 트래블로그의 경우 8월 말까지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필리핀, 홍콩, 스웨덴, 스위스 등 동남아시아와 북유럽 10개국 통화에 대해 환율 우대율 100%를 적용해줬다. 일반적으로 동남아 통화는 ‘기타 통화’로 분류돼 환전 우대율이 20~30%에 불과하다. 지난여름 동남아로 떠날 때 환율 우대 혜택만 잘 챙겼어도 점심 한 끼 값 이상을 아낄 수 있었던 셈이다.
트래블페이는 환전되는 외화 종류수가 38개로 트래블로그(18개)보다 많다. 특히 트래블페이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일부 국가 주요 도시에서 대중교통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 외화 충전 후 다시 원화로 환전할 때 수수료가 없는 것도 장점이다. 트래블로그는 모바일 앱에서 현금처럼 쓰는 ‘하나머니’를 충전해 이용하는데, 하나머니는 포인트로도 모을 수 있다. 원하는 목표 환율을 설정해두면 자동 환전이 되는 기능도 활용해볼 만하다.
회원 수는 양 사 모두 급증하고 있다. 해외여행 수요가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트래블월렛 트래블페이카드 누적 발급량은 올 상반기 200만 장을 돌파했고, 2021년 94억원 수준이었던 결제금액은 2022년 2100억원, 2023년 상반기까지 5900억원으로 늘었다. 트래블로그는 지난해 7월 출시 이후 환전액 500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가입자 수도 급증해 지난해 하반기 45만7000명에서 올 들어서는 120만명을 훌쩍 넘겼다.
롯데카드는 트래블월렛과 제휴해 해외여행 특화카드 ‘트래블엔로카’를 내놓기도 했다. 이 카드는 이용금액의 최대 3%를 15개국 외화로 바꿀 수 있는 ‘트래블포인트’로 적립해준다. 트래블포인트는 트래블월렛 앱을 통해 달러, 엔화, 유로 등으로 환전할 수 있다. 연회비는 5만원이다. 물론 해외 선불카드가 무조건 유리한 것은 아니다. 현지 ATM기 인출 수수료가 무료라고 해도 은행 앱에서 최대 환율 우대를 받고 미리 환전해가는 것이 유리할 수 있고, 해외 현지 결제의 경우 결제 수수료 2.5%를 감안해도 신용카드 결제가 유리한 경우가 있으므로 따져봐야 한다. 예를 들어 1000원 결제당 항공 마일리지 2~3마일을 적립해주는 신용카드가 있다면 선불카드보다 이득일 수 있다.
이 같은 해외 선불카드 인기는 MZ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트래블로그를 쓰려면 하나금융 내에서 쓰는 포인트인 하나머니에 가입해야 하는데, 하나머니의 연령대는 20대가 40.9%, 30대가 32.2%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트래블로그 유입 효과라는 것이 하나은행 설명이다.
선불카드가 있어도 비상금 차원에서 현금을 챙겨 가야 한다. 은행 모바일 앱에서 최대 90% 환전 우대율을 받아 환전을 신청한 뒤 가까운 영업점에서 받으면 된다. 가장 최악의 방법은 공항이나 호텔에서 환전하는 것이다. 공항과 호텔은 위치의 특수성 때문에 은행 영업점보다 2배 이상의 높은 환전 수수료가 적용된다.
최근에는 이런 경우를 대비해 여행 계획이 없어도 미리 트래블페이나 트래블로그 카드를 만들어두는 사람들도 늘었다. 동남아로 가족여행을 준비 중이라는 30대 주부 신 모 씨는 “지난해에는 아이들 챙기느라 정신이 없어 공항에 가서 비싼 수수료를 내고 환전해야 했다”면서 “이번에는 은행 앱과 선불카드를 미리 만들어 충전하고 환전주머니에도 넣어둔 후 찾으려고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요즘은 ‘환전 배달’도 된다. 국민은행은 하루 최대 150만원 내에서 환전을 신청하면 지정한 날짜와 장소로 외환을 ‘새 지폐’로 배송하는 ‘KBPOST 외화 배달 서비스’를 운영한다. 배송비(1만원)가 들지만 바쁜 일정 등 때문에 은행 영업점을 방문하기 어려운 직장인, 주부, 맞벌이 부부 등이 이용해 볼 만하다.
트래블페이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트래블월렛은 상장도 저울질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 지불 결제 서비스도 시작했다. IB업계에 따르면 이 회사의 기업가치는 2000억~4000억 수준으로 추정된다. 김형우 트래블월렛 대표는 “올해는 매출액 300억원 이상, 영업이익 흑자 전환을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금융도 그룹 차원에서 하나머니를 키우며 트래블로그 브랜드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7월 이벤트로 선보인 ‘트래블로그’ 팝업스토어 ‘서울 성수공항’은 20대 젊은 고객들로 붐볐다. 더운 날씨에도 대기줄이 길었다. 대부분 트래블로그 사용 경험이 있는 청년층이다. 하나금융에 따르면 이 팝업스토어가 운영된 2주간 다녀간 인원은 1만 6900명에 달한다.
하늘길이 열리면서 ‘항공 마일리지카드’도 다시 인기를 모은다. 마일리지 사용이 힘들어졌다고는 하지만, 최근 다른 카드 혜택이 많이 줄어든 데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이 무산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겹쳐 다시 항공 마일리지 카드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추세다. 연회비는 수만원~10만원 이상으로 비싼 편이지만, 결제금액 1000원당 1~3마일리지가 적립된다.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쌓아주는 카드로는 KB국민카드 ‘헤리티지 스마트 대한항공 마일리지형 카드’, 삼성카드 앤마일리지 카드, BC카드의 ‘BC바로 에어플러스’, 현대카드 ‘대한항공카드’ 등이 꼽힌다. 이런 카드는 특히 해외 가맹점 사용 시 1000원당 2~3마일리지를 쌓아줘 해외 결제 수수료를 감안해도 이득인 경우가 있으므로 따져보고 유리한 결제수단을 선택하면 된다. 현대카드 대한항공카드는 대한항공, 해외, 호텔, 면세점 등에서 결제 시 1000원 당 2~5마일리지를 적립해준다.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 쌓기로는 ‘신한 에어(Air) 1.5 카드’가 관심을 모은다. 국내 및 해외 가맹점 결제 시 1000원당 1.5마일리지 적립 혜택이 주어지고 적립 한도가 없는 것이 장점이다. 해외 가맹점에서 일시불로 결제할 경우 더블적립 혜택으로 1000원당 3마일리지가 적립된다.
저가항공사 마일리지 적립 카드도 있다. 우리카드의 ‘카드의정석 유니마일(UniMile)’은 전월 이용금액이 30만원 이상이면 저가항공사 이용금액의 3%, 온라인여행사·면세점 2%, 렌터카·주유소에서 1%포인트를 적립해준다. 이 포인트는 에어서울, 에어부산, 이스타항공, 제주항공, 진에어, 티웨이항공에서 쓸 수 있다. 6개 저가항공사의 초과 위탁수하물 5㎏ 무료 혜택과 위탁수하물 우선 처리 서비스 등도 쏠쏠하다.
IBK기업은행 마일앤조이=1500원당 1~3마일 적립
공항 라운지 혜택도 빼놓을 수 없다. IBK기업은행 플래티늄 60여 종을 비롯해 다양한 카드사에서 라운지 무료 혜택을 제공하는데, 대부분 전월 실적이나 이용 제한이 있으므로 조건을 미리 확인해둬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체크카드 중에는 네이버페이 우리카드 체크, 카드의 정석 쿠키 체크, KB국민 노리2 체크카드 글로벌 등이 라운지 혜택을 제공한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해외에서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길 수 있으므로, 본인 여행계획에 따라 다양한 대안을 준비해 가기를 추천한다”면서 “기존 보유 카드 중 해외 구매에 혜택을 많이 주는 신용카드가 있다면 활용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말했다.
신찬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