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전자상가가 용산국제업무지구와 연계 개발된다. 서울시는 용산전자상가를 인공지능(AI)·정보통신기술(ICT) 등 미래 산업 중심 지역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재개발 건축물의 용적률을 1000% 이상 허용할 방침도 세웠다. 서울시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한 ‘용산 국제업무지구·전자상가 일대 연계 전략’을 발표했다.
용산전자상가는 1985년 전기·전자 업종을 육성하겠다는 정부 정책의 일환으로 조성됐다. 용산 양곡도매시장을 이전하고 그 자리에 전자상가를 세운 것이다. 이후 1990년대 개인용 컴퓨터(PC) 보급이 확산되며 호황기를 맞았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는 모바일 기기와 온라인 쇼핑 위주로 산업 트렌드가 변하며 쇠락하기 시작했다. 2010년대 들어선 시설 노후화로 상권 활력이 크게 떨어졌다. 상권 활성화 정도를 판단할 수 있는 평균 공실률은 나진상가를 기준으로 2017년 23%에서 2021년 58%로 오르기도 했다.
서울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1년 용산정비창 부지(용산국제업무지구)와 용산전자상가를 연계해 개발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나섰다.
서울시는 용산전자상가와 용산국제업무지구의 인접성에 주목해 이 일대를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용산전자상가가 갖고 있는 기존 전자 산업 기반과 국제업무기능이 접목되면 새로운 형태의 ICT 산업 생태계가 구축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용산전자상가 일대의 미래 비전은 ‘용산 메타밸리(Meta-Valley)’로 정했다. 미래 산업 구조가 AI, 가상현실(VR), 확장현실(XR), 메타버스 위주로 재편되고 있는 만큼 이에 맞는 공간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용산국제업무지구에 들어설 글로벌 기업과 용산전자상가의 스타트업을 매칭해 미래산업의 창업 요람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용산전자상가 재개발 과정에서 새로 지어지는 건물 공간의 30% 이상을 미래 산업 용도로 쓰도록 의무화했다. 세부적인 미래 산업 종류는 전자부품, 컴퓨터, 영상, 음향 및 통신장비 제조업, 방송업, 통신업, 컴퓨터 프로그래밍, 시스템통합 및 관리업, 정보서비스업, 정보통신 방송·서비스업, 소프트웨어 및 디지털콘텐츠업 등으로 정했다.
만약 건물 면적이 1000㎡라면 이 중 300㎡ 이상은 반드시 앞서 나열한 업종과 관련된 시설로 쓰라는 것이다. ‘30% 의무 비율’을 넘겨 더 많은 신산업 시설을 유치하면 용적률 규제를 추가 완화한다. 여기에 혁신적인 디자인을 도입하거나 제로에너지빌딩(ZEB) 등을 활용하면 1000% 이상의 용적률을 적용받을 수 있다.
서울시는 공간 용도를 30%가량 미리 정해놨으니 대신 공공기여 부담을 줄여줄 방침이다. 현재 용산전자상가는 ‘유통업무시설’이란 도시계획시설로 지정돼 있다. 도시계획시설은 부여된 기능 이외의 용도로 활용될 때면 토지면적의 20~30%를 도로나 공원 등으로 국가에 기부채납 하도록 되어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용산전자상가는 재개발 때 공공기여를 평균 27% 수준으로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공간 용도를 신산업 위주로 쓰도록 의무화한 만큼 이 같은 부담을 평균 18% 수준까지 낮춰줄 계획이다.
공개공지와 건축물 저층부에 입체 녹지를 조성한다면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발표됐다. 서울시는 이를 통해 용산전자상가 일대와 용산국제업무지구, 용산역까지의 녹지비율을 50%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건축물 높이도 디자인을 특화하거나 개방형 녹지를 확보하면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심의를 통해 유연하게 완화할 예정이다.
경부선 철도와 따로 떨어져 있는 상가 때문에 불편한 보행동선을 편리하게 만드는 방안도 포함됐다. 전자랜드, 나진상가, 선인상가, 원효상가 등 이 일대 건물은 입체적 보행통로로 연결한다. 서울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용산국제업무지구와 용산역까지 보행 통로를 만들어 지역의 연계성을 더욱 강화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직주혼합을 실현하는 미래형 도심주거지역으로 조성하기 위해 주거용 건축도 허용한다. 대신 용적률의 50% 이하로 가능하다. 또한 조성되는 주택의 일부는 ‘창업지원주택’으로 특별공급한다. 용산전자상가 일대에 자리잡는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 직장인이 우선 거주할 수 있도록 검토할 방침이다.
조남준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은 “용산전자상가 쇠퇴 등으로 주변지역이 침체됐으나 (이 지역은)대통령실 이전, 용산정비창 개발계획, 용산공원 개방 등의 여건 변화로 성장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어 “신산업의 거점지역으로 용산전자상가 일대가 서울의 도시경쟁력을 제고하는 미래 혁신지역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해 7월 용산국제업무지구에 대한 개발 밑그림을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서울시 구상의 핵심은 용산국제업무지구를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만들기 위해 일자리·주거·여가·문화생활이 가능한 ‘직주혼합도시’를 조성하고 글로벌 하이테크 기업 입주를 유도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용산 일대를 서울 시내 첫 ‘입지규제최소구역’으로 지정해 용적률 1500%를 초과하는 초고층 건물을 짓고 뉴욕 허드슨야드처럼 만들겠다고 했다.
아울러 용산역과 인접한 용지에는 대중교통 환승 거점인 ‘모빌리티 허브’가 마련된다. 도심항공교통(UAM),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지하철 등이 지나는 모빌리티 허브를 통해 서울 도심 속 교통 거점의 기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는 올해 안에 보다 구체적인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내년 초까진 도시개발구역 지정을 받겠다는 입장이다.
용산개발의 마중물 격인 용산국제업무지구와 용산전자상가 개발 밑그림이 구체화되면서 나머지 지역 개발 계획의 진행과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용산개발 계획은 용산정비창~용산전자상가 개발뿐 아니라 여러 개발 계획이 연동돼 있다. 용산공원과 주변지역을 개발하는 계획, 서울역~용산역~한강으로 이어지는 경부선 지하화를 전제로 한 일대 개발 가이드라인 등이 대표적이다.
국토교통부는 우선 용산공원과 주변 업무지구·상업지구의 연계성, 교통망 구축 등 종합적인 내용을 담은 ‘용산개발 마스터플랜’을 연내 마련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용산공원(용산미군기지 반환 용지)뿐 아니라 ▲남산~한강 녹지축과 연계 ▲이태원·용리단길 등 관광클러스터 개발 ▲용산 일대 교통망 개선과 같은 종합적인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국토부는 올해 초 용산공원 마스터플랜 기본 방향으로 ▲경제산업 ▲생태녹지 ▲문화중심 ▲교통연계 ▲국민소통 ▲역사전통 등 6개 키워드를 제시하기도 했다.
국토부는 효율적인 용산 개발을 위해 ‘공간혁신 3종구역(도시혁신구역·복합용도구역·입체복합구역)’을 활용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 도시혁신구역이란 토지·건축 등 용도 제한을 두지 않고 용적률·건폐율도 지방자치단체가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개념이다. 싱가포르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린 ‘마리나베이’가 대표적인 개발 사례 가운데 하나다.
복합용도구역이 적용되면 용도지역을 변경하지 않고 다른 용도시설이 들어서는 것이 가능하고, 기존 용적률 내에서 다양한 용도의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입체복합구역은 철도, 도로 등 도시계획시설을 규제 없이 입체화·복합화할 수 있다.
국토부는 도심의 지상 철도를 지하화하고 지상은 공원화하거나 건물을 지어 복합 개발하는 특별법도 연내 제정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입체복합구역의 근거법인 셈이다. 특별법에는 지상 철도 지하화에 필요한 각종 법적 근거 등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철도시설 건설 및 주변 지역 개발 사업은 ‘철도건설법’ ‘도시개발법’ 등 각기 다른 개별법이 상황에 따라 적용됐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철도 용지와 주변 지역의 통합적인 공간 계획이나 종합적인 개발 사업을 추진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특별법이 제정되면 국토부가 10년 단위로 수립하는 최상위 법정계획인 국가철도망구축계획에 지상철도지하화 사업 내용이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후 타당성 조사와 기본계획 수립을 진행해 지하화를 추진하게 된다. 현재 서울시 내 지상 철도는 ▲경부선 ▲경인선 ▲경의선 ▲경원선 ▲경춘선 ▲중앙선 등 6개 국철 노선의 지상 구간 71.6㎞, 도시철도(2·3·4·7호선) 4개 노선의 지상 구간 29.6㎞ 등 총 101.2㎞에 이른다.
한편 용산의 대표 주거지역인 동부이촌동 노후 단지 재건축이 탄력을 받을지도 주목된다. 서빙고아파트 지구가 지구단위계획 구역으로 바뀌는 안건이 지난 5월 서울시 심의 문턱을 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로 마련된 지구단위계획에는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재건축을 용이하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대상지에는 현재 주택 단지가 30곳 자리한다. 이 중 재건축을 추진하는 곳이 한강맨션, 왕궁맨션, 한강삼익아파트, 신동아아파트로 총 4곳이다. 한강맨션은 최고 층수를 68층으로 설계해 정비계획 변경을 신청했다. 신동아아파트는 서울시가 지원하는 신속통합기획에 참여해 계획안을 마련 중이다. 대상지 안에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도 있다. 이촌동 우성·한가람·코오롱·강촌아파트 등이다.
서울시는 대규모 주택 단지의 경우 향후 정비계획을 짤 때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할 방침이다. 한강변과 가까운 단지가 많은 만큼 혁신적인 디자인을 도입하면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기존 아파트지구에서 상업 기능을 담당하던 ‘중심시설용지’에는 앞으로 주거시설이 들어설 수 있게 됐다. 주상복합 단지가 탄생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물론 주거시설이 도입되면 땅값이 오르는 만큼 공공기여를 받겠다는 게 서울시 입장이다. 개발잔여지는 비주거용도 도입을 허용한다.
이촌종합시장 일대와 신동아아파트 북동측의 개발잔여지 일대는 통합개발을 권고했다. 또한 용산공원에서 한강으로 녹지축이 이어지도록 만든다. 신동아아파트 서측으로 공원 위치 지정을 계획했다. 서울시는 올해 하반기에 이 같은 내용의 서빙고아파트지구 지구단위계획을 최종 결정 고시할 예정이다.
매일경제 부동산부 이희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