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서울서 전셋집을 알아보고 있는 A씨(32)는 원래 생각했던 동작구 대신 영등포구에서 집을 찾아보고 있다. 지난 1월 4억원 중반대까지 내려갔던 동작구 새 아파트 전용면적 59㎡ 전셋값이 최근 6억원대로 올랐기 때문이다. A씨는 “한동안 전세가격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요즘 분위기는 그런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하반기 역전세난이 심해진다는 우려에도 요즘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바닥을 찍고 올라오는 분위기다. 관심은 지금의 상승 기조가 계속될지 여부다. 역전세난으로 인한 보증금 반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할지가 앞으로 주택 임대차 시장 흐름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5월 넷째 주(5월 22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 대비 0.01% 올랐다. 지난 해 1월 17일 이후 1년 4개월여 만에 상승 전환한 것이다. 이후에도 서울 전세값은 꾸준히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부동산원은 일부 대단지 위주로 급매물이 소진된 후 상승 계약이 성사돼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상승 전환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서울 도심 대단지에서는 집주인들이 월세를 선호하면서 전세 매물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1월1일 5만4666건이었던 서울 전세 매물은 5월 말 기준 3만7786건으로 30.9% 줄었다.
같은 기간 마포구 아현동 마포더클래시 전세 매물은 625건에서 40건으로 93.6% 급감했다. 전셋값은 크게 올랐다. 1월에 전용 59㎡ 전세가가 5억5000만~6억원 수준이었는데 4월에는 같은 면적이 7억3000만원에 거래됐다. 전세가가 3개월 만에 2억원 가까이 오른 셈이다. 지난해 12월 입주를 시작한 마포더클래시는 올초 분양 잔금을 치르기 위해 전세 매물이 쏟아졌다가 최근 매물이 대부분 소화되면서 전세 거래가 뚝 끊겼다.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도 올 초 107건이었던 전세 매물이 41건으로 줄었다. 강동구 상일동 고덕자이는 165건에서 25건으로 감소했다. 매물 감소율이 각각 61.7%, 84.9%에 달한다. 동작구 흑석동 흑석리버파크자이(304→149건), 강남구 개포동 래미안강남포레스트(252→131건),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860→463건) 등도 전세 매물 수가 반토막 났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떨어진 이유는 전세자금대출 금리가 떨어진 탓이 가장 크다. 금리 하단이 3%대로 내려오면서 월세로 쏠렸던 수요가 전세시장으로 분산되는 모양새다. 서울부동산 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4월 서울 아파트 전체 임대차 거래 2만519건 중 전세 거래가 1만2549건으로 61.1%를 차지했다. 높은 금리로 인한 대출 이자 부담에 전세 비중은 지난해 12월 47%대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60% 이상을 넘어섰다. 전세값 자체가 지난해부터 올해 초에 크게 떨어진 것도 영향을 줬다. 현재 전세값이 수요자들에게 어느 정도 받아들일 만한 수준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임대차3법 도입으로 2020년부터 급등한 전셋값은 2021년 말~2022년 초 고점을 찍고 1년 넘게 떨어지며 급락했다. 부동산원 주간동향 기준 지난해 서울 아파트 전세 누적 하락률은 -9.36%, 올 들어서는 –10.79%에 달한다.
또 최근 벌어진 전세 사기 문제도 아파트 전세 수요를 높이고 있다. 이른바 ‘깡통전세’ 위험이 높은 연립·다세대주택 등 빌라와 오피스텔 전세 수요가 아파트로 이동하는 양상이다. 안전성이 높은 대단지를 중심으로 아파트 전세 거래가 늘고 가격도 오름세로 돌아선 것이다. 전문가들은 서울 아파트와 비아파트 전세시장이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도 “비아파트 전세시장은 아파트와 달리 올해 계속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의 서울 아파트 전셋값 상승이 지속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는 의견이 많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입주 물량이 꽤 나오기 때문에 지역별로 시장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지역에 전세 물량이 몰리면 인근 단지 전셋값이 급락할 수 있다. 실제로 올 하반기 서울 강남구·동대문구 청량리·은평구 등에 아파트 입주가 잇따른다. 수도권으로 넓히면 경기 화성·수원·용인과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 등에 집들이가 집중될 예정이다.
부동산리서치업체 부동산R114에 따르면 하반기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입주 물량은 8만9367가구로 집계됐다. 특히 서울은 1만1318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4%가량 늘어날 예정이다. 경기는 5만5256가구, 인천은 2만2793가구로 조사됐다. 서울 강남권에선 지난 상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입주 물량이 1만7000가구에 달한다. 대단지 위주 공급이라는 게 특징이다. 서초구 반포동에 들어설 ‘래미안원베일리’(2990가구)가 대표 사례다. 강남구에선 지난 3월 ‘개포프레지던스자이’(3375가구)가 입주했다. 내년 1월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6702가구)가 집들이에 나선다. 청량리뉴타운과 이문·휘경뉴타운이 있는 동대문구도 입주 물량이 몰린다. 6월 ‘한양수자인 그라시엘’(1152가구)을 시작으로 ‘청량리역 롯데캐슬 SKY-L65’(1425가구)가 차례로 입주민을 받는다. ‘힐스테이트청량리역’(954실)과 ‘힐스테이트청량리 더퍼스트’(486실) 등 오피스텔 입주도 이어질 예정이다. 은평구에선 수색·증산뉴타운 물량이 6월부터 7월 사이에 몰려 있다. ‘DMC SK뷰아이파크포레’(1464가구)와 ‘DMC 파인시티자이’(1223가구) 등이 입주를 시작한다.
경기에선 성남 ‘산성역자이푸르지오’(4774가구)가 오는 10월 입주를 앞두고 있다. 경기 용인시도 올 하반기부터 1년간 1만4736가구가 쏟아질 예정이다. 화성 봉담지구에선 4470가구가 올 하반기 집들이에 나선다. 인천에선 검단신도시가 속한 서구(8503가구)와 재개발 물량이 많은 부평구(7111가구)에 물량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입주 물량이 몰리면 인근 단지의 전셋값을 끌어내리는 현상은 자주 나타난다. 강남구 개포동 ‘래미안블레스티지’ 전용면적 84㎡(24층)는 5월 25일 10억원에 전세로 거래됐다. 같은 면적이 17억6500만원에 거래된 2020년 10월보다 7억원가량 내린 셈이다. 개포동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셋값이 바닥을 찍은 것 같긴 하지만, 대규모 입주 물량이 예정돼 있어 상승 추이로 돌아서진 못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래미안원베일리와 인접한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면적 84㎡형은 전세 보증금 13억원에 거래됐다. 2021년 10월 같은 면적이 최고 24억원에 계약된 점을 감안하면 1년 반 새 전세 시세가 11억원 빠진 셈이다. 은평구 수색·증산뉴타운의 ‘e편한세상수색에코포레’ 전용 83㎡는 보증금 2억7000만원에 전세로 거래됐다. 지난해 6월만 해도 4억원 안팎으로 거래되다가 말부터 급락했다. 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 청량리역롯데캐슬SKY-L65’의 전세매물은 최근 230건에 달한다. 인근 전농동의 ‘래미안크레시티’는 지난 3일 전용 84㎡ 기준 5억4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지난해 9월 최고가 대비 3억2000만원 떨어진 시세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올 하반기에도 서울 아파트의 역전세 위험은 아직 높은 편이다. 부동산 R114는 올 하반기에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지금 상태를 유지하더라도 역전세 비중이 58%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 상반기 비중(54%)보다도 높은 상황이다. 2년 전 폭등하던 전셋값의 정점이 2021년 하반기였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의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2021년 12월 103.5를 기록해 2003년 11월 이후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부동산R114의 시뮬레이션도 이를 반영한다.
2021년 하반기에 계약된 서울 아파트 7만2295건 중 올해 상반기에 같은 단지·면적·층에서 거래된 2만8364건을 분석한 결과 현재의 전셋값 수준이 유지된다면 하반기 계약건의 58%(1만6525건)는 역전세 위험이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집주인이 돌려줘야 하는 보증금도 차액은 평균 1억3153만원으로 상반기보다 3000만원 가량 늘어난다. 특히 서초구의 경우 2억3091만원으로 예상됐다.
역전세난에 따른 전세보증금 반환 대출규모가 늘어나는 점도 서울 아파트 전세시장에 부담이다. 올해 1~5월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과 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 신규로 취급한 전세보증금반환 대출은 약 4조 6934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3조 4968억원과 비교해 34.2%(1조 1966억원) 증가한 수치다. 다만 올 하반기에 전셋값이 하락세로 돌아서더라도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내년 서울 입주 물량은 3만8512가구로 지난 5년(2018~2022년) 연평균 4만5499가구의 공급 물량을 밑돌기 때문이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 연구원은 “현재 전세시장은 전반적으로 하락하던 연초와 달리 입주 물량에 따라 단기적, 국지적으로 분위기가 다르다”며 “지금은 입주 2~3개월 후 주변 전셋값이 회복하는 모습도 보인다”고 설명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도 “입주가 몰리는 일부 지역은 전셋값 하락이 좀 더 길어질 수 있다”면서도 “내년 입주 물량이 많지 않은 데다 전세 사기 등에 따른 ‘빌라 회피’ 현상으로 아파트 입주 수요가 몰리는 등 전세시장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드는 변수가 꽤 많다”고 전망했다.
부동산R114는 올 하반기에 전셋값이 지금보다 2% 오른다면 역전세 비중은 53%로 소폭 감소하고, 5% 오른다면 역전세 비중은 49%로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매일경제 부동산전문 손동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