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에서 소셜벤처 회사를 돕다가 임대료 상승으로 임차인들이 떠나가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이후 성수동은 전국에서 가장 핫한 곳이 되었지만 그 상권을 만드는 데 이바지한 임차인들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으로 쫓겨나는 상황이 발생한 거죠. 그때, 임차인도 건물 일부를 소유할 수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허세영 루센트블록 대표가 창업을 결심한 계기는 젠트리피케이션이었다. 상권과 건물의 가치는 건물주, 임차인, 방문고객이 함께 만들어나간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중요한 한 축인 임차인이 쫓겨나는 현상이 부당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사회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설립된 루센트블록은 지난 2018년 11월 문을 연 프롭테크(Proptech)기업이다.
2021년 5월 금융위로부터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된 이후 상업용 부동산을 증권화해 주식처럼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는 서비스 ‘소유’를 개발한 루센트블록은 2022년 4월 21일에 앱 서비스를 시작했다. 부동산 조각투자 서비스 소유는 상업용 부동산을 회사처럼 상장시켜 전자자산증권을 발행하고, 소유를 이용하는 고객은 주식처럼 부동산을 한 주 단위로 사고팔 수 있다.
소유에서 한 주(1sou)의 가격은 5000원이다. 투자자들은 부동산 조각투자를 통해 임대 수익, 매각 차익, 시세 차익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임대 수익은 건물 운영 과정에서 발생한 수익을 매달 받는 배당금을 말하고, 매각 차익은 건물이 매각될 시 건물의 가치 상승만큼 지급되는 수익, 시세 차익은 소유 앱에서 주식처럼 실시간으로 사고팔 수 있는 유동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개별 투자자들의 증권거래가 일어나다 보니 공모가 이하로 가격이 내려갈 수 있다는 위험도 존재한다. 2월 19일 기준 안국 다운타이너의 1sou의 가격은 4915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 11월 16일 기준 건물가치(1sou당 5041원)에 비해 낮은 가격이다.
루센트블록 관계자는 이에 대해 “투자자들의 일시적인 대량 거래가 일어나거나 시세 차익이 예상되는 소유 내 다른 상품으로 투자가 몰리면 일시적으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라며 “낮은 가격에는 배당 매력이 올라갈 수 있어 결국 적정 가치를 찾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부동산 조각투자는 얼핏 생각하면 상장 리츠(REITs)와 같은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구조가 다르다. 리츠는 부동산 투자 회사가 적게는 몇 채에서 몇 십 채의 건물을 소유하고 그 회사를 유가증권에 상장한 뒤 투자자들이 회사에 대한 지분을 쪼개어 나눠 갖는다. 즉 법인에 투자하는 것으로, 부동산보다는 회사를 보고 투자하는 개념이 크다. 반면 부동산 조각투자는 특정 부동산에 직접 투자한다. 회사보다는 개별 건물의 가치가 중요하다.
또한 루센트블록은 임대 수익이나 시세 차익 외에 투자자에게 상장 건물과 관련한 추가 혜택을 제공한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인기 햄버거 프랜차이즈 ‘다운타우너’ 건물의 고액 투자자에게는 다운타우너 전 매장 10% 할인,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있는 비건 카페 새비지가든의 고액 투자자에게 최대 15% 상시 할인이 대표적이다. 투자자는 건물 내 상권에 할인혜택을 얻고 임차인은 마케팅·집객효과를 얻으며 건물의 가치 상승을 도모할 수 있다.
운영방식에는 블록체인 미러링 기술이 활용된다. 수익증권의 발행과 전자등록은 신탁사가, 디지털 증권의 매매관리는 은행·증권사 등 계좌관리기관이, 디지털 증권의 공모 및 거래 중개는 루센트블록의 자체 거래소(플랫폼)가 수행한다.
투명성과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기존 제도권과의 역할 분담과 협력을 통해 부동산 디지털 수익증권 서비스의 기술을 보완하고 있다. 금융기관에 계좌관리와 판매대금을 이체하게 하며 한국예탁결제원에 발행한 수익증권을 저장하고, 거래가 발생할 때마다 기존 금융권과 예탁원에 거래정보를 동시에 저장하는 ‘블록체인 미러링’ 방식이 사용된다.
루센트블록은 서비스 출시 이전 이미 약 17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 유치를 마쳤다. 지난해 3월 끝마친 시리즈A 투자에 캡스톤파트너스, 한국투자증권, 쿼드자산운용, 하나금융투자, 하나은행, 서울대학교 기술지주 등 6개 기관이 참여했다. 이들은 증권사, 신탁사로 구성됐고 투자에 참여한 캡스톤파트너스는 당근마켓 등 다수 기업의 투자사로 알려져 있다.
한편 루센트블록은 해외 진출에도 관심이 많다. 가장 눈여겨보는 지역은 인도네시아다. 통계청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구(2억7550만 명)가 많다. 출산율도 2020년 기준 2.2를 기록하는 등 인구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돼 그만큼 잠재력도 높다.
실제 루센트블록은 인도네시아 진출을 위해 현지 최대 프롭테크 기업인 마미코스와도 손을 잡았다. 한국의 ‘직방’과 유사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는 ‘마미코스’와 파트너십을 맺은 루센트블록은 현지 부동산 딜을 소싱하고 현지에 기반을 갖추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루센트블록은 현재 부동산 컨시어지 서비스를 통해 가시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고객 요청 사항, 결제, 계약서 관리 등 건물 내 입주인·입주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관리 서비스를 처리하는 온라인 솔루션이다. 컨시어지 서비스를 시작한 목적은 자체 거래소에 상장할 건물의 통합 운영·관리이며, 향후 부동산 금융의 전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종합 부동산 금융 솔루션’을 완성하기 위함이다.
창업 초기부터 루센트블록은 PMS(Property Management Service)를 론칭하고 ‘맹그로브’ 등 메이저 공유주거 브랜드에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향후 관리하는 건물이 늘어나고 서비스를 활용하는 제휴사들이 늘어날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데이터다. 루센트블록은 상장하는 건물을 늘림으로써 상권 데이터 분석을 하고 이를 비즈니스화할 계획이다. 다양한 건물을 상장하며 누적된 거래 데이터는 상업용 부동산 시장 내 개발을 비롯해, 다양한 비즈니스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경자 삼성증권 연구원은 “루센트블록은 부동산을 유동화한 디지털 증권 거래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궁극적으로 부동산의 전 가치사슬을 통합하는 토털 솔루션 공급자(Total Solution Provider)를 지향한다는 차별점을 보인다”라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프롭테크의 본질인 데이터의 경쟁력에 있다”고 설명했다.
새롭게 생태계가 형성될 것으로 예상되는 토큰 증권(STO) 시장은 루센트블록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루센트블록은 부동산 조각투자 업체 중 최초로 전자증권 제도를 도입하여, 이번 STO 시장에서 유력한 플레이어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월 5일 금융당국은 ‘디지털 자산 인프라 및 규율체계 구축’ 국정과제를 반영해 ‘토큰 증권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을 공개했다. 이는 지난 1월 19일 제6차 금융규제 혁신회의에서 발표한 STO 전면 허용 방침에 대한 후속 가이드라인으로, 자본시장법·전자증권법에 따른 토큰 증권을 발행 및 발행·유통 관련한 계좌관리기관·장외거래중개업 신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STO는 실물 자산을 바탕으로 발행된 증권을 기초로 블록체인 기술 기반 아래 증권의 성격을 가진 토큰을 발행하는 것을 말한다. 실물 자산의 가치를 다수의 투자자가 소액으로 나눠 소유할 수 있어 부동산, 미술품 등 고가의 상품에 대한 조각투자 서비스에 활용되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전자증권법 개정을 통해 “조각투자 등 다양한 사업 아이디어를 가진 분들이 일정 요건을 갖추면 증권사를 통하지 않고도 토큰 증권을 발행할 수 있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조각투자 플랫폼 루센트블록의 소유는 이 같은 지침 아래 STO 시장 선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소유는 하나증권이 계좌관리기관으로 서비스에 참여하고 있고, 한국투자증권과는 MOU를 체결해 부동산 유동화를 통한 자산관리 솔루션 공동 개발, 부동산의 디지털화 촉진 방안 등 여러모로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가이드라인으로 증권사와 STO 기업 간의 협업이 활발해지는 가운데, 허세영 루센트블록 대표는 “관련 플랫폼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라며 “금융위 지침을 주시하며 더욱 안전하게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