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후 주식 시장을 부양해온 ‘유동성 잔치’가 막을 내리며, 주가지수도 2년 전 수준으로 회귀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강도 높은 긴축으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원·달러 환율)이 1430원을 넘었고, 우리 증시에서는 외국계 자금이 무서운 속도로 빠져나가고 있다. 코스닥지수는 2020년 초부터 2021년 말까지 2년간 넘치는 유동성에 힘입어 53%나 상승했다. 이 기간에 개인투자자는 코스닥 시장에서 무려 27조원어치를 사들이며 랠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현재는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의 상승분을 대부분 반납한 상태다. 연초까지만 해도 1030을 넘었으나, 9개월 만에 33% 넘게 하락하며 700선을 내줬다. 코스피 지수는 코스닥지수에 비해 조정 폭이 크지 않으나, 마찬가지로 2년 전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다.
지속적인 하락장에 많은 개미투자자가 시장을 떠나가고 있지만 기관투자자들의 투자는 끝나지 않는다. 기관투자자는 주식 시장의 근간이 되는 기업공개 시장을 지배할 뿐 아니라 누구보다 정보를 빠르게 잡아 투자에 활용하는 구성 주체다. 주식 시장 한파에 조용한 기관투자자들이 매집하는 종목들을 살펴봤다.
▶세계 최대 양극재 공장 준공 삼성SDI
지난 10월 21일 종가 기준 기관투자자는 삼성SDI 주식을 가장 많이 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삼성SDI와 에코프로비엠의 합작회사 ‘에코프로이엠(EM)’이 세계 최대 규모의 양극재 공장을 준공한 점이 삼성SDI에 대한 투자심리를 개선한 것으로 보인다. 기관투자자는 삼성SDI 주식을 총 809억원어치 순매수했다. 거래대금을 살펴보면 1485억원어치 사고 675억원어치 판 것으로 집계됐다. 이날 삼성SDI 주가는 전날 대비 6.45%(3만8000원) 급등한 62만7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오전 에코배터리 포항캠퍼스에서 에코프로이엠의 ‘에코배터리 포항캠퍼스 CAM7 준공식’이 열렸다. CAM7 공장은 연 5만4000t의 배터리를 생산한다. 배터리 양극소재를 생산하는 공장 가운데 세계 최대 규모다. 에코프로비엠 역시 같은 날 기관투자자 순매수 상위 3위를 기록했다. 기관투자자는 에코프로비엠 주식을 300억원 매수하고 128억원 매도해 전부 172억원 순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에코프로비엠 주가는 전날보다 4.31%(4400원) 오른 10만64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 밖에 삼성전자(697억원), 카카오(105억원), 셀트리온(102억원) 등이 기관투자자 순매수 상위 5개 종목 안에 들었다. 반면 기관투자자 매도 상위종목에는 대한항공이 이름을 올렸다. 이날 기관투자자는 대한항공 주식을 260억원 순매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총 681억원어치를 매수하고 328억원 던졌다.
대한항공 주가는 전날보다 4.62% (1050원) 내린 2만17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진에어(-19.46%), 제주항공(-6.70%), 대한항공(-4.62%), 아시아나항공(-3.90%) 등 항공주 주가가 일제히 하락했다. 국제선 여객 수요가 좀처럼 회복하지 못한 데다 경기 침체로 국제선 항공화물 수요 감소 전망이 나오면서 항공 업종에 대한 우려가 확대된 영향으로 파악된다. 이 밖에 롯데케미칼(-214억원), 현대건설(-188억원), 플라즈맵(-156억원), GS건설(-110억원) 등이 기관투자자 순매도 상위 5개 종목 안에 이름을 올렸다.
기간을 한 달로 늘려보면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기관의 매수세가 눈에 띈다. 기관투자자는 한 달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식을 총 1212억원어치 매수했다. 매수대금은 약 3456억6195만원이며 매도대금은 약 2243억6377만원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최근 GSK(GlaxoSmithKline Trading Service Limited)와 총 4200억원 규모 의약품 위탁생산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액은 약 4206억원(4206억6721만9640원)으로, 최근 매출액 약 1조5680억원 대비 26.83%다. 계약기간은 2022년 10월 11일부터 2030년 12월 31일까지며, 생산 일정 등 계약조건 변경에 따라 변동할 수 있는 조건이다.
▶삼바·네이버 등 한 달간 매수우위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 송도 1캠퍼스는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생산 시설별 능력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22년 상반기 기준 CDO 수주 100건을 돌파했다는 점이 기관 수급을 개선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다음으로 기관이 한 달간 매수세를 보인 종목은 네이버로 총 1208억원어치를 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대금은 1조2042억원어치를 매수했고 1조833억원어치를 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관의 매수세에도 네이버의 주가 분위기는 좋지 않다. 네이버는 지난 10월 21일 기준 16만6000원에 거래를 마감하며 최근 한 달 새 주가가 30%가량 떨어졌다. 지난 10월 13일에는 장중 15만5000원까지 밀리며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 10월 4일에는 북미 최대 패션 C2C 커뮤니티 ‘포쉬마크’를 인수한다는 소식이 악재로 작용하면서 하루 동안 주가가 8.79% 빠졌고, 이튿날에도 7.08% 추가 하락하기도 했다. 외국인이 1개월간 네이버를 8512억원 순매도하며 시장에 매물을 쏟아내 기관의 매수세가 상대적으로 도드라져 보이는 측면도 있다. 네이버의 외국인 보유율은 53.14%에서 49.93%로 떨어졌다.
네이버 다음으로는 고려아연이 기관매수 상위종목에 이름을 올렸다. 기관은 1개월간 고려아연의 주식을 약 846억원어치 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고려아연 역시 1개월간 주가는 부진한 편이었다. 고려아연의 주가는 1달 전(60만원) 대비 약 4%가량 내린 58만7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최근 고려아연에 대한 증권가의 전망 역시 좋지만은 않다. 최근 3분기 고려아연 실적이 시장 전망치를 밑돌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신한 투자증권에 따르면 올 3분기 고려아연은 연결 기준 매출 2조5500억원, 영업이익 2633억원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매출은 5.5% 증가, 영업이익은 0.9% 감소한 추정치로, 시장 전망치(매출 2조6900억원, 영업이익 2852억원)를 밑도는 실적이다. 3분기 금속 가격이 2분기보다 하락한 가운데 경기 부진 영향으로 판매량이 이전 분기 대비 크게 증가하지 못한 점이 주요 이유로 꼽힌다.
박광래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계절적으로 겨울에 액화천연가스(LNG), 석탄 등 에너지원 가격이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한파로 글로벌 에너지 대란 우려가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현물 시장에서의 공급 부족에도 불구하고 연말까지 아연 가격은 t당 3000달러 초·중반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며 “글로벌 전력난이 4분기에도 지속되면 3분기 실적 부진의 요인이 될 SMC 생산 차질이 4분기에도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신한투자증권은 실적 추정치 변경에 따라 고려아연 목표가를 70만원에서 68만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고려아연 주가는 20일 기준 61만3000원이다. 박광래 연구원은 “철강금속 분야에서 안정적인 이익 달성이 가능하기 때문에 주가 하락 시 매수하는 전략은 유효하다”고 말했다.
LG화학 미래기술연구센터 연구원들이 신규 개발한 생분해성 신소재의 물성을 테스트하고 있다.
<사진 LG화학>
▶LG화학, 셀트리온, 한화솔루션 주목
기간을 6개월로 보면 기관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매수한 기업은 LG화학이 꼽힌다. 기관투자자들은 6개월간 6005억원어치 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수대금은 5조33억원, 매각대금은 4조4028억원가량이다. 2021년 100만원 선을 넘어섰던 LG화학주가는 10월 21일 종가기준 56만8000원을 기록하고 있다. 다만 LG화학은 최근 나스닥 상장사 아베오파마슈티컬스 지분 100%를 5억6600만달러(약 8000억원)에 인수하는 등 긴밀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아베오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한 항암제를 보유한 기업으로 국내 기업이 FDA 승인 신약을 가진 회사를 인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인수로 단기간에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한 LG화학은 2027년까지 생명과학사업부문 매출을 현재의 3배 수준인 2조원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미래에셋증권은 LG화학에 대해 “글로벌 항암제 임상 개발 역량, 신약 상업화 역량, 규제기관 인허가 역량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판단한다”며 “2027년 매출액 가이던스 2조원과 당뇨 치료제와 항암제 투트랙 전략과 인수 자금 확보를 위해 보유 자산 매각 가능성이 높다”라며 목표주가 75만원을 제시했다. LG화학 다음으로는 셀트리온이 기관매수 상위 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기관은 셀트리온 주식을 6개월간 총 4745억원어치 매수했다.
삼성SDI 기흥사업장 전경
셀트리온은 6개월간 15만9000원에서 17만4000원으로 약 8.6% 상승했다. 한화투자증권은 21일 기업분석 보고서를 통해 셀트리온의 3분기 예상실적은 매출이 전년 대비 46.9% 늘어난 5890억원,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6.3% 증가한 2072억원으로 전망했다. 셀트리온은 코로나19 진단키트 사업을 담당했던 셀트리온USA 지분을 셀트리온헬스케어에 지난 8월 5일 전량 처분(지분율 100%, 처분금액 176억원)함에 따라 상반기 수익성을 훼손시켰던 진단키트 매출이 줄어(상반기1461억원→3분기 155억원)들었다.
한화투자증권은 “3분기 셀트리온헬스케어향 단일판매공급계약 공시에 나타난 공급 금액은 2993억원으로 전 분기(3357억원) 대비 10.8% 감소했다”라며 “하지만 완제의약품(DP) 공정 등 매출을 포함하면 바이오시밀러 매출액은 3572억원으로 전 분기(3457억원) 대비 3.3% 늘어날 전망”이라고 예상했다.
또 셀트리온은 올해 9월 20일 미국 바이오텍 에이비프로로부터 유방암 치료 이중항체 신약후보물질(ABP102)을 도입했고 10월 17일 피노바이오라는 국내 바이오텍으로부터 링커-페이로드 플랫폼 기술 실시 옵션 도입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 계약을 토대로 최대 15개의 항체-약물접합체(ADC) 파이프라인 개발이 가능하다. 현재까지 바이오시밀러 항암제 3종(트룩시마, 허쥬마, 베그젤마)을 연구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항체 항암제 개발을 시도하는 전략으로 판단된다. 셀트리온 다음은 한화솔루션이 기관매수 상위 기업으로 꼽힌다.
기관은 지난 6개월간 한화솔루션 주식을 3747억원어치 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한화솔루션은 지난 9월 23일 장 종료 후 리테일 부문에 대한 인적분할과 첨단소재 부문의 일부 사업에 대한 물적분할을 발표하며 주가는 약세를 면치 못했다.
셀트리온 제2공장 전경
기업 분할 소식에 한화솔루션 주가는 6% 넘게 하락했다. 인적분할은 존속법인 한화솔루션과 신설법인 한화갤러리아를 9 대 1로 분할하는 것이다. 한화 갤러리아는 내년 3월 신규 상장 계획이다. 이에 따라 기존 한화솔루션 주주는 리테일 부문이 제거된 존속법인 주식과 신설법인 주식을 각각 수령한다. 한화솔루션은 지난 9월 23일 자사주 136만 주 규모의 매입 결정을 공시했는데, 주가는 다음 거래일인 26일 전일 대비 6.74% 빠지기도 했다. 다만 탄탄한 실적은 주가에 긍정적인 요소로 꼽힌다.
박종렬 흥국증권 애널리스트는 “주요 계열사들의 약진으로 한화의 호실적 추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화솔루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의 자회사의 약진으로 올해 하반기와 내년에도 양호한 실적이 지속되면서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 실현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