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한계 상황에 내몰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채무조정을 위한 총 30조원 지원 프로그램 ‘새출발기금’이 10월 4일부터 본격 시행된다. 앞으로 1년간 채무조정 신청 접수를 받는데, 각자 상황에 따라 최대 80%까지 원금조정 및 장기분할상환 조치가 지원된다. 정부는 기초생활수급자, 만 70세 이상 저소득 고령층, 중증장애인 등 취약계층 부실차주의 경우 예외적으로 최대 90%까지 감면해줄 방침이다. 신용회복위원회 등 기존 채무조정 기관이 있는데도 정부가 새출발기금을 신설한 것은 맞춤지원을 위해서다.
신복위 채무조정은 ‘개인’의 신용채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을 지원하기에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다. 정부는 새출발기금으로 빠르고 신속하게 대규모 채무조정 건을 처리하는 한편, 20년간 운영해온 신복위의 노하우와 인프라스트럭처를 최대한 활용할 방침이다.
당초 30조원이라는 기금 규모는 지원 대상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220만 명이 보유한 660조원의 금융권 채무액 5%를 설정한 것이었다. 금융권와 정치권에 따르면 새출발기금은 30조원 규모의 대출채권 매입을 통해 약 10조5000억원의 채무감면 효과를 목표로 한다. 매입 규모의 35% 수준이다.
▶‘부실우려차주’도 지원 가능
새출발기금의 가장 큰 특징은 이미 3개월 이상 장기연체 중인 ‘부실차주’는 물론 ‘부실우려차주’까지 지원 대상에 포함했다는 점이다. 부실우려차주란 지금은 견딜 수 있지만 나중에 상황이 악화할 우려가 있거나, 3개월 미만으로 연체 중인 이들을 말한다. 부실우려차주가 새출발기금을 신청하면 금리를 깎아주고 최대 11년(부동산 담보대출은 23년)까지 상환 기간을 늘려준다. 금융위는 제도 시행을 앞두고 부실우려차주 기준 중 하나인 신용평점(개인) 기준을 종전 ‘하위 20%’에서 ‘하위 10%’로 강화하기도 했다.
<사진 연합뉴스>
과거에도 위기 때마다 다양한 채무조정 프로그램이 시행됐다. 2004년 한마음금융, 2005년 희망모아, 2009년 구조조정기금, 2013년 국민행복기금 등이 대표적이다. 기존 프로그램은 시행 당시 채무 상태를 기준으로 지원자를 접수했다. 이와 달리 새출발기금은 신청 기간을 기금 출범 후 최대 3년으로 정했다. 이미 발생한 부실채무 정리를 넘어 코로나19 여파로 향후에 발생할 수 있는 부실까지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취지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채무조정은 가급적 채무 전체를 대상으로 해야 신용회복 효과와 가능성이 커진다. 일부만 조정하면 전이효과와 재부실화 가능성이 높다”면서 “그래서 기금 출범 이후 대환 등 신규대출도 조정 대상에 포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원금 탕감을 노리고 고의로 대출을 받는 ‘얌체족’이 있을 수 있어 이를 걸러낼 장치도 마련했다고 당국은 강조했다.
▶상환 기간 짧을수록 금리 낮아
1개 이상의 대출을 90일 이상 연체하고 있는 사람은 원금조정을 받는다. 30~90일 연체자라면 원금조정은 없는 대신 상환 기간 동안 ‘단일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다. 상환 기간은 채무자가 선택할 수 있는데 상환 기간이 짧을수록 낮은 금리가 적용된다. 예를 들어 상환 기간이 3년 이하면 3% 후반, 3~5년이라면 4% 중반, 5년 이상은 4% 후반을 적용받는 식이다. 단일금리 수준은 은행권 대출금리와 새출발기금 조달금리 등을 감안해 결정될 예정이라고 금융위는 밝혔다.
연체 30일이 넘지 않았어도 폐업이나 휴업, 신용정보 등재 등 부실우려차주 요건을 충족하면 약정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다. 금리 상한은 9%로 설정해 그 이상의 약정금리만 9%로 조정해준다. 새출발기금 신청을 받고 제도를 운영하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관계자는 “30일 미만 연체는 신용상 불이익이 적은 편이어서 고의로 연체하고 금리를 낮추려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금리 상한을 9%로 잡았다. 이는 제2금융권 조달금리(4~6%) 이상으로 설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러 건의 대출을 받고 있다면, 채무조정을 받고자 하는 대출을 선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대적으로 갚기 쉬운 초저금리 대출, 소액 대출을 제외하고 채무조정을 원하는 대출만 골라 신청할 수 있다. 다만 부실차주가 신용채무를 조정하고자 할 경우에는 전부를 신청해야 한다. 신용채무만 대상이며, 담보채무는 제외할 수 있다.
정부는 새출발기금으로 약 30만∼40만 명(중개형 포함)의 자영업자가 상환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소상공인들이 코로나 기간 동안 금융권에서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를 받은 대출 잔액은 133조3000억원(지난 1월 말 기준)이다. 금융지원이 종료되면서 원금유예(11조7000억원), 이자유예(5조원) 부문 위주로 부실이 드러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캠코는 9월 중 새출발기금 온라인 플랫폼을 오픈한다. 내가 신청 대상인지는 이 플랫폼에서 온라인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시스템상 확인이 어려운 사람은 확인서 등 관련 서류를 직접 제출하면 된다. 유선 콜센터와 오프라인 현장창구 상담도 가능하다. 현장창구는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 50곳, 한국자산관리공사 사무소 26곳에 마련된다.
신청하려면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었음을 증명해야 한다. 재난지원금이나 손실보상금을 수령한 경우, 8월 29일 기준 금융권에서 만기연장·상환유예 혜택을 받고 있는 경우, 기타 코로나19로 인한 피해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경우다. 둘째, 90일 이상 연체한 부실차주 혹은 부실우려차주여야 한다. 부실우려차주는 일정 조건을 충족해야 인정받을 수 있는데, 도덕적 해이 방지 등을 위해 몇 가지를 제외하고 세부기준은 공개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부가가치세법상 개인사업자 또는 법인사업자로 소상공인이어야 한다. 학습지선생님 등 프리랜서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도 개인 또는 법인 사업자로 소상공인 기준을 충족하면 지원 가능하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아 2020년 4월 이후 폐업해 빚을 갚고 있는 전(前) 소상공인도 대상이다.
단, 중기부 손실보전금 지원 대상이 아닌 경우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부동산 임대업, 사행성 오락기구 제조업, 법무·회계·세무 등 전문직종, 금융업 등이 이에 해당된다. 빚의 성격도 본다. 코로나 피해로 인한 영업상 손실과 관련이 적거나 채무조정이 어려운 대출은 조정이 불가하다. 예를 들어 부동산 임대나 매매 관련 대출, 주택 구입비 등 재테크 목적의 대출, 전세보증대출 등은 제외된다. 정부 관계자는 “다만 주택을 담보로 해서 대출받은 사업용 자금, 화물차나 중장비 등 상용차 대출은 조정 가능하다”고 밝혔다.
취약 차주들의 반응은 출시 전부터 뜨겁다. 공식 콜센터가 오픈하기 전인 지난달부터 캠코와 신복위 콜센터에는 하루 수십 건의 문의전화가 걸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새출발기금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롭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금융당국 “도덕적 해이 막을 대책 다 세워뒀다”
새출발기금은 출범 전부터 도덕적 해이 등 많은 논란에 시달렸다. 지원 대상이 아닌 국민들은 “성실하게 빚 갚은 사람만 바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과 운영을 맡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도덕적 해이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도덕적 해이를 둘러싸고 가장 많이 나온 질문을 금융당국의 문답으로 요약했다.
◆원금조정률이 과도한 것 아닌가.
◇90일 이상 연체 중이어서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만 원금조정을 받을 수 있다. 이런 분들을 부실차주라고 하는데, 90일 이상 연체가 되면 사실상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아직 연체 3개월이 되지 않은 ‘부실우려차주’는 원금조정이 없다. 부실차주도 원금조정률은 총대출이 아닌 순부채(부채에서 자산을 뺀 것)에만 적용한다. 담보채무는 원금을 조정해주지 않으며, 신용채무에 대해서도 재산이 있다면 원금을 감면받을 수 없다. 이는 20년 넘게 운영해온 신복위 기본 원칙이기도 하다.
◆채무조정비율은 어떻게 정하나.
◇보유자산을 넘는 부채만 대상으로 한다. 소득 대비 부채비중과 경제활동 가능 기간, 상환 기간 등 대출자의 상황에 따라 차등화된 감면율을 적용한다. 원금을 90% 감면해주는 대상도 현행 신복위 제도와 마찬가지로 기초수급자, 중증장애인, 만 70세 이상 등 취약계층에 제한적으로만 지원된다.
◆채무조정 한도도 너무 높은 것 같다.
◇많이 오해하시는 부분인데 다른 프로그램과 비슷한 수준이다. 신복위 채무조정 한도가 15억원이고, 법원 개인회생도 25억원이 한도다. 법원의 일반회생 및 파산은 채무한도 제한도 없다. 15억원이면 대부분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포함될 것으로 보고 있다.
◆새출발기금 이용 채무자에 불이익 있어야 하지 않나.
◇성실하게 빚 갚은 채무자와의 형평성 차원에서 나오는 이야기로 안다. 원금조정이 있는 경우 2년간 ‘채무조정 프로그램 이용정보’를 공유해 정상 금융거래를 제한한다. 이자만 감면하는 경우에는 별도의 신용 페널티가 없다. 새출발기금 취지가 자영업자의 재기 지원인데, 불이익을 줘서 금융거래를 제한하면 오히려 재기가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
◆도덕적 해이 막을 다른 장치도 있나.
◇대출받은 후 6개월이 지나지 않은 신규 대출은 채무조정 대상에서 제외된다. 새출발기금이 운영되는 3년간 1회만 신청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제도 악용을 막기 위해서다. 소득과 재산조사도 철저히 할 계획이다. 만약 원금조정을 받은 이후 은닉재산이 발견되면 기존 채무조정은 무효처리된다. 혹시 발생할 수 있는 도덕적 해이 사례를 막을 심사기준도 만들었다. 예를 들어 신청자격을 맞추기 위해 고의연체를 한다거나, 고액자산가임을 숨기고 채무조정을 신청하는 경우 등을 선제적으로 걸러낼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