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금리 인상기를 맞아 서민들의 대출 이자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변동금리대출을 저렴한 고정금리 상품으로 바꿔주는 모기지 상품을 출시한다. 금융위원회는 9월 15일부터 서민과 실수요자들이 보유한 변동금리와 준고정금리(혼합형) 주택담보대출을 저금리 장기 고정금리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는 우대형 안심전환대출 25조원을 공급한다고 밝혔다.
정부 산하 공기업인 주택금융공사가 금융회사로부터 대출채권을 인수해 금리를 깎아주게 된 이유는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민간부채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금리가 급격히 상승해 서민들의 금융 부담이 가중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까지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0.5%에 머물렀지만 이후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 인상을 단행해 올해 7월 기준 2.25%까지 상승한 상태다. 기준금리가 급격히 오르며 은행들도 대출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실제 취급된 주담대 평균 금리는 연 4.04~4.78%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 가계의 변동금리 비중은 올해 6월 기준 78.1%에 달해 금리 인상에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이에 정부는 가계부채의 질적 구조 개선을 위해 변동금리대출을 고정금리대출로 바꿔주는 안심전환대출 공급 방안을 마련했다.
이 같은 안심전환대출은 9월 15일부터 신청을 접수한다. 부부 합산 소득 연 7000만원 이하 1주택자가 신청할 수 있고, 주택 가격은 4억원 이하여야 한다. 사전안내가 실시되는 8월 17일 이전에 1금융권이나 2금융권에서 변동금리나 준고정금리로 주담대를 받은 차주를 대상으로 한다. 만기가 5년 이상이면서 금리가 만기까지 고정돼 있는 주택담보대출을 받고 있는 차주와 보금자리론, 적격대출 등 정책모기지를 이용 중인 차주는 대상에서 제외된다.
안심전환대출 사전안내가 시작된 8월 17일 서울 강남구 한국주택금융공사 서울남부지사 상담 창구에 안심전환대출 안내문이 놓여 있다. <사진 연합뉴스>
▶기존 주담대 해지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금리는 만기(10~30년)에 따라 연 3.8~4.0% 수준으로 결정됐다. 소득 6000만원 이하의 저소득 청년층의 경우 금리가 연 3.7~3.9%로 더 저렴하게 적용된다. 안심전환대출을 받기 위해 기존에 이용 중인 주담대를 해지할 경우 중도상환수수료는 면제된다. 기존 대출 범위 내에서 최대 2억50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대출 규제도 완화 적용된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은 70%, 총부채상환비율(DTI)은 60%로 일괄 적용되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는 적용되지 않는다.
접수는 1·2회 차로 나눠 이뤄진다. 1회 차 신청 기간은 9월 15~28일로, 주택 가격 3억원까지다. 2회 차 신청 기간은 10월 6~13일로 주택 가격 4억원까지가 대상이다. 신청 물량이 당초 계획된 공급액인 25조원을 넘어설 경우 주택 가격이 4억원보다 낮은 선에서 대상자 선정이 마무리될 수 있다. 선착순이 아닌 주택이 낮은 순서대로 대상자를 선정하기 때문에 신청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정부는 약 23만~35만 명가량이 이번 안심전환대출의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정부는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위한 이자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정책모기지인 보금자리론 금리도 인하해 연말까지 동결하기로 했다.
9월부터 보금자리론 금리는 현재보다 35bp(1bp는 0.01%포인트) 낮은 연 4.25~4.55%로 공급된다. 보금자리론은 시세 6억원 이하 주택을 구매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정책모기지 상품이다. 부부 합산 소득 7000만원 이하 가구(신혼부부는 8500만원 이하)를 대상으로 한다. 최대 대출 한도는 3억6000만원까지다.
▶주택금융공사 부담 커질 수도
이 같은 정부의 안심전환대출 출시와 관련해 다양한 지적이 제기된다. 우선 공급 대상이 되는 주택 가격이 4억원 이하로 제한돼 수도권에 주택을 보유한 차주는 거의 혜택을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KB부동산시세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서울 중위주택 매매 가격은 9억2553만원, 수도권은 6억4969만원이었다. 안심전환대출 기준인 주택 가격 4억원을 훨씬 웃도는 것이다. 정부는 내년에도 약 20조원을 추가로 공급해 수요를 충족시킨다는 계획이다. 다만 이처럼 안심전환대출 공급이 다소 늘어나도 여전히 주택 가격이 낮은 순으로 물량이 배정돼 수도권에서 혜택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재원 마련을 위해 발행하는 채권 금리가 이미 4%대로 올라 주금공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택금융공사가 지난 6월 발행한 주택저당증권(MBS) 만기 10년물 표면금리는 연 4.425%로 치솟았다. 약 1년 전인 지난해 7월 같은 만기의 MBS 발행금리가 연 2.221%였던 것과 비교하면 2.2%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주금공의 MBS 발행금리는 올해 4월 처음 4%대로 오른 뒤 만기 5년 이상 장기물의 경우 대부분 4%를 웃돌고 있다. 가장 최근인 지난 8월 5일 30년 만기로 발행된 MBS 금리는 연 4.027%였다.
정부는 보금자리론 금리도 35bp가량 낮추고, 안심전환대출의 경우 이보다도 더 낮은 금리로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MBS 발행금리보다 안심전환대출 금리가 오히려 낮아지면 주금공의 재정 부담이 커지게 된다. 주금공은 다른 정책모기지 상품인 적격대출 금리를 높이거나 증자를 통해 자본금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이번 안심전환대출 출시를 위해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으로 주금공 출자 예산 1090억원을 편성했다.
정부가 안심전환대출 출시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대규모로 채권을 발행할 경우 채권 시장에 영향을 미쳐 실세금리가 상승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안심전환대출이 2015년과 2018년 출시됐을 당시에도 MBS 발행으로 인해 국채금리가 20bp가량 급등한 바 있다. 이는 결국 일반 금융회사를 통해 대출을 받아야 하는 서민들의 대출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는 국고채 발행 규모와 시기를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등 유관기관과 협의한다는 입장이다. 또 해외 커버드본드(MBB) 발행 여력을 확대해 국내 채권 시장에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다행히 최근 국고채 금리가 안정화되며 MBS 발행도 원활히 진행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안심전환대출 출시와 관련해서 은행들의 불만은 높아지고 있다. 만약 안심전환대출 이용 가능한 차주가 이를 신청할 경우 금융회사는 대출채권을 주택금융공사에 매각해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대출채권을 매각한 뒤 금융사가 가계대출을 늘리지 못하도록 MBS를 의무 매입하도록 할 방침이다. MBS 매입 규모와 보유 기간은 협의를 거쳐 진행할 방침이다. 하지만 금융사 입장에서는 의무보유 기간 동안 채권을 사고 팔 수 없어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안심전환대출은 2015년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예상돼 처음 출시됐다. 당시 32만7000가구가 31조7000억원이 넘는 대출을 받아갈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3년이 지나는 동안 안심전환대출 중도 해지 건수는 7만 건이 넘은 것으로 조사됐다. 금액으로만 보더라도 전체 대출금의 약 18%가 중도 상환됐다.
정부가 고정금리로 대출 금리를 낮춰줬음에도 중도 해지가 많이 일어난 이유 중 하나는 이후 대출금리가 예상과 달리 하락했기 때문이다.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급격히 인상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금리를 천천히 올리기 시작했다. 당시 안심전환대출이 연 2.6%로 적용됐지만, 이후 은행에서는 연 2.1%짜리 주택담보대출 상품도 출시되며 해지가 늘었다는 분석이다.
한편 민간에 공급되는 주택금융 중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진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주택금융공사가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업무보고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잔액(789조원) 중 정책모기지 잔액이 155조원으로 집계돼 정책모기지 비중이 19.6%에 달했다. 특히 올해 상반기 은행권 주담대는 10조원가량 늘어났는데 이 중 정책모기지(5조원)가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육박했다.
정책모기지는 주택금융공사가 서민의 내 집 마련을 돕기 위해 출시한 상품으로 디딤돌대출, 보금자리론, 적격대출 등이 있다. 정책모기지가 인기를 끈 이유는 저리의 고정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주택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20·30대 젊은 층이 ‘영끌’ 매수에 가세하며 6억원 이하 주택을 대상으로 한 보금자리론 판매 실적이 무려 23조3400억원에 달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이 8월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안심전환대출 세부 추진계획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향후 주택대출에서 정부의 모기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올 들어 보금자리론 금리가 연 5%에 가깝게 높아지면서 판매 실적도 작년보다 꺾이는 추세였다. 하지만 정부가 연말까지 보금자리론 금리를 연말까지 35bp 인하해 공급하기로 하며 수요가 다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내년까지 안심전환대출 45조원이 추가 공급되면 정부의 주택대출 비중은 훨씬 커질 전망이다.
최근 고금리로 인해 은행권의 주담대 증가가 주춤한 가운데 주금공이 45조원 규모의 안심전환대출을 출시해 은행이 보유한 채권을 인수하면 전체 은행권 주담대에서 정부의 정책모기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25%까지 높아진다. 우리나라 국민 4명 중 1명은 은행이 아닌 정부를 통해 주택대출을 받는 셈이다.
주택금융과 관련한 정책 기조는 국가별로 다르다. 독일의 경우 정부가 주택금융 시장에 덜 관여하고, 담보대출비율(LTV) 등을 보수적으로 관리하며 민간 금융회사 중심으로 주택담보대출이 취급되도록 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경우 정부가 주택금융 시장에 적극 관여해 보증 등을 통해 대출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두 국가는 정부가 주택금융에 관여하는 정도는 다르지만, 주택을 구매할 때 가구가 장기로 고정금리 대출을 받는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정부 대출 증가 우려 목소리
다만 정부의 부동산 대출 비중이 늘어나는 것과 관련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계층에는 정책금융을 통해 자금을 공급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정부 자금이 부동산에 지나치게 쏠리면 집값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거시경제 리스크 관리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시장 기능을 위축시키고 주택 수요를 늘려 집값을 오히려 끌어올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도덕적 해이 발생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 교수는 “변동금리 대출을 받은 사람은 리스크를 감내하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라며 “리스크가 현실화될 때마다 정부가 모두 떠안아주면 도덕적 해이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가 가계부채의 구조 개선을 위해 예산을 사용해 2015년과 2018년에도 안심전환대출 상품을 출시했지만 여전히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80%에 육박해 무용론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집을 구매할 때는 금리 변동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정금리로 대출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장기 시계열로 놓고 보면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에 따라 시장 금리가 변동할 수 있고, 향후 금리가 높은 수준으로 계속 유지될 경우 안심전환대출이 효과를 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