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 시가총액 1, 3위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최근 주가 흐름이 불안정한 모습이다. 글로벌 정보기술(IT) 수요 둔화 움직임에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주가가 좀처럼 상승 모멘텀(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선 올해 3분기부터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이 피크아웃(고점 통과)에 도달할 것이란 우려까지 나온다.
8월 17일 기준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 주가는 올해 들어 22.86% 하락한 6만400원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1월 기록한 역사적 고점(9만6800원) 대비해선 37.6% 떨어졌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지난 6월에만 주가가 15.43% 하락했고 ‘베어마켓 랠리(약세장 속 일시적 주가 반등)’가 시작된 지난 7월엔 7.72% 상승했다. 하지만 8월 초 들어선 유가증권 시장(코스피)이 상승함에도 삼성전자 주가는 반도체 업황 둔화 우려에 하락하는 모습이다.
SK하이닉스 주가 흐름도 유사하다. SK하이닉스는 올해 들어 주가가 25.88% 하락한 9만7100원에 시세를 형성 중이다. 지난해 기록한 역사적 고점(15만500원)에선 35.48% 떨어졌다. 삼성전자와 동일한 주가 흐름을 보이며 8만6000~10만원 박스권을 좀처럼 상향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외국인, 기관투자자 수급 상황도 좋지 않다. 지난 1월부터 8월 17일까지 외국인, 기관투자자들은 삼성전자 주식을 각각 8조6592억원, 7조4239억원을 순매도 했다. SK하이닉스의 경우에도 기관투자자들은 같은 기간 2조1514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지난 7월 모처럼 외국인 투자자들이 반도체 종목들에 대해 순매수세를 보여줬지만 여전히 올해 전체를 기준으로 하면 매도세가 훨씬 강한 것이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투자자 지분율은 올해 상반기 상징적인 50%대가 붕괴됐고 현재는 49%대에 머물고 있다.
반도체 업황 부진 우려로 미국 증시가 약세를 기록한 가운데 국내 반도체 대장주에도 매도물량이 유입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업황 둔화에 재고 증가
최근 국내 반도체 대장주들의 주가 흐름이 좋지 않은 건 글로벌 IT 수요 위축에 따른 반도체 판가 하락과 출하량 감소가 실적에 악영향을 줄 것이란 시장의 우려가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견조한 수요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고성장할 것으로 추정되던 데이터센터 사업 부문의 수요·공급 현황이 시장의 추정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 결정적이다. 미국의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2분기 데이터센터 관련 매출액은 38억1000만달러로 월가가 예상한 컨센서스를 약 5% 하회했다.
전방 수요처들의 재고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점이 업황 둔화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최근 고객사들이 재고 조정에 나선 건 PC, 스마트폰, 서버 등 세트의 출하가 예상을 하회했고 향후 세트 전망치 또한 하향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메모리 반도체 생산 업체들의 재고 부담으로 연결된다. 원래 3분기는 반도체 업종의 계절적 성수기에 해당되지만 현재 상황에선 시장 가이던스를 재차 하회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증권 업계의 시선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실적과 주가 흐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이다.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오르고 공급 대비 수요가 높아 출하량이 증가할 경우 자연스레 이익 수준도 상향되고 주가도 상승세를 타게 된다. 하지만 최근 D램, 낸드플래시 현물가는 물론 고정거래가격도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타고 있다.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 제품(DDR4 8GB)의 7월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2.88달러로 전월 대비 14%나 하락했다. D램의 고정거래가격은 지난해 중순 4.1달러에 달했지만 현재는 30%가량 떨어진 상황이다. 낸드플래시 범용 제품(128GB 16Gx8 MLC)의 7월 고정거래가격도 전월 대비 4% 하락했다. 낸드플래시 가격은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4.81달러로 시세를 방어하다가 지난 6월부터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최도연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전방 수요처들과 메모리 생산 업체들의 재고가 동시에 증가하는 흐름은 전형적인 메모리 하락 사이클의 현상”이라며 “이 구간에서 메모리 업계의 가장 큰 과제는 재고 축소”라고 밝혔다.
서승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올해 3분기 서버 업체들은 적극적인 메모리 재고 재확충보다는 기존 재고를 소진하려는 움직임이 관찰되고 있다”며 “메모리 반도체 투자 관점에선 현재 메모리 재고 조정 과정이나 아이폰 판매와 중국 스마트폰 시장 회복 속도에 따라 재고 조정 가속화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내년 반도체 영업이익률 하락 전망
두 기업들의 메모리 반도체 영업이익률도 내년엔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내년 D램, 낸드플래시 이익률은 45%, 18%로 전년 대비 각각 3%포인트, 6%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SK하이닉스의 경우 낸드플래시 영업이익률이 올해 -1%에서 내년엔 -11%로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메모리 반도체 이익률 악화는 자연스레 실적에도 영향을 미친다. 삼성전자의 내년 영업이익은 49조4210억원으로 올해 추정치보다 7.2%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삼성전자는 반도체 외 사업부문의 호조로 실적 방어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SK하이닉스의 내년 영업이익은 올해 추정치 대비 22.6% 감익될 것으로 추정된다.
증권 업계에선 향후 반도체 업황 반등을 위해선 전방 업체들의 재고 소진에 따른 주문 증가 및 매크로(거시경제) 불확실성 해소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반도체 수요 전망치 하향 흐름이 멈췄을 때 고객사들이 주문을 다시 증가시키고 이는 반도체 업체들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8~2019년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한 메모리 반도체 하락 사이클을 고려할 때 전방 업체들의 재고 소진 기간은 약 10개월로 추정된다. 현 상황에선 생산 업체들의 공급 증가 부담이 적어 재고 소진 기간은 6~9개월로 비교적 짧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르면 내년 1분기부터 주문이 다시 증가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때문에 이때부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주가의 추세적 반등이 시작될 수 있다는 시선이 많다. 최근 반도체 종목의 주가 급락으로 인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역사적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저점 구간을 이미 찍고 소폭 반등한 상황이다. 전통적으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록보텀(단기 저점)은 주가순자산비율(PBR) 1.1배, 0.9배가 언급된다. 주가 하락으로 인해 높은 밸류에이션 매력은 향후 주가의 하방 경직성을 강화시켜줄 것으로 기대된다.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의 설비투자비(CAPEX)를 통한 공급 조절 가능성 또한 주가의 하방을 지지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분기 ‘역대 최고급’ 실적을 발표했지만 올 하반기 반도체 업황 둔화가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에 경영 재정비에 나섰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최근 이재용 부회장이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은 점이 향후 신사업 모멘텀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앞서 이 부회장은 취업제한 상태에 놓여있었지만 이번 복권 결정으로 인해 향후 일선 경영에 복귀할 수 있게 됐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대형 인수·합병(M&A) 결정과 그룹의 중장기 전략수립의 경우 각 삼성그룹 계열사의 전문 경영인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며 “이 부회장 복권을 계기로 향후 경영 복귀가 현실화된다면 2016년 하만 이후 부재한 대형 M&A, 핵심 전략 사안에 대한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다만 외교적 측면에서 한국이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협력체인 ‘칩4’에 참가할 경우 주요 수출국인 중국의 보복성 조치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외국인 투자자 이탈 등 단기적인 주가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