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글로벌 긴축기조와 금리 인상, 지정학적 우려 등으로 주식 시장이 큰 폭으로 조정받은 상황에서 지난해 이후 상장한 상당수 대형주가 공모가 아래로 추락하며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상장 이후 주가가 고공행진 하던 시기에 주식을 매수한 개미투자자들은 물론이고 우리사주로 주식을 사들인 직원들의 손실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증권금융을 통해 대출받아 우리사주를 매수한 직원들은 주가 급락에 따른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지난해 상장 초기만 해도 시장 분위기가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영끌’을 통해 우리사주 물량을 배정받은 경우가 상당수였다. 대출 약관상 주가 하락으로 담보 비율을 유지하지 못하면 담보 추가 납부나 대출금 상환으로 담보 부족을 해소해야 한다.
공모가 대비 거의 반토막 난 크래프톤은 지난 1월 우리사주조합 물량을 대출로 진행한 직원들이 추가 담보 설정 등을 요구받았다. 직원들이 반대매매를 당할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크래프톤 측이 나서서 담보를 제공하면서 상황을 수습하기도 했다. 최근 보호예수를 앞두고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은 주가 급락으로 손실을 본 직원들을 위해 200억원 규모의 대규모 사재를 내놓는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크래프톤 외에도 기업공개(IPO) 시장 대어로 주목받던 기업들의 주가가 최근 줄줄이 공모가 밑으로 무너지고 있다. 지난 8월 19일 상장 1년을 맞아 보호예수가 해제된 롯데렌탈은 공모가(5만9000원)보다 36.7% 하락한 3만7400원(8월 22일 종가기준) 수준이다. 지난해 7월에 상장한 에스디바이오센서는 공모가(5만2000원) 대비 30.7% 하락한 3만6050원에 장을 마쳤다. 이 외에도 카카오페이와 카카오뱅크가 각각 공모가 대비 –28.2%, -18.1%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상장한 대형주 중 현재 주가가 공모가를 상회하는 대어급 기업은 LG에너지솔루션(공모가 30만원), SK바이오사이언스(공모가 6만5000원), 하이브(공모가 13만5000원) 등으로 많지 않은 상황이다.
▶장외매도에 추가 하락한 대형주들
최근 통상 심리적 지지대로 여겨지는 공모가 아래 바닥으로 추락한 기업들의 주가를 다시 지하실(?)로 이끄는 이슈가 있으니, 바로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이다. 지난 8월 6일 SK아이이테크놀로지의 2대 주주인 사모펀드 프리미어파트너스가 보유 중인 지분 4.8% 전량을 블록딜로 매각하며 주가는 하루 만에 14.35%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카카오페이 역시 지난 6월 8일 2대 주주인 알리페이의 블록딜 소식이 전해지며 15.57% 하락해 공모가(9만원) 밑으로 떨어졌다. 현재 주가는 6만4000원대로 밀려 공모가 대비 손실률은 28.2%로 집계됐다. 카카오뱅크도 지난해 우정사업본부와 넷마블의 블록딜 소식에 이어 지난 8월 18일 국민은행이 보유 중인 카카오뱅크 주식 약 3800만 주 중 1476만 주를 2만8704원에 매도해 충격을 안겼다. 이는 전날 종가 대비 8% 할인된 수준이다.
대형 공모주들의 블록딜은 새로운 이슈는 아니다. 보호예수 물량 비중이 높을수록 유통 가능 물량이 적어져 상장 직후 주가 방어 효과가 있지만, 확약 기간이 해제될 때마다 대량 매물이 싼값에 나오면서 장기적인 주가는 오히려 하락하게 되는 것이다. 공모가 아래 가격에 물량이 나오는 이유는 처분해도 상당한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KB국민은행이 보유한 카카오뱅크 지분 총 취득원가(229억원)를 주식 수(3809만7959주)로 나눠보면 평단가는 약 6000원 수준으로 산출된다. 블록딜 할인가인 2만8704원으로도 실현이익이 4배 넘는 셈이다. 금융위원회의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 검토에 따른 ‘카카오톡 송금 제한 논란’이라는 돌발적 변수도 작용했다.
공모가 아래로 하락한 주요 기업들의 보호예수 비중은 높은 편이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의 기관 의무확약 비율은 64.57%에 달했고 카카오페이(70.4%), 카카오뱅크(59.82%) 등도 의무확약 비율이 높은 편이었다. 높은 보호예수 비중 탓에 상장 첫날엔 ‘따상(시초가가 공모가의 2배로 형성된 후 상한가)’을 전망하기도 했지만, 보호예수가 해제된 ‘큰손’들의 이탈에 주가는 내림세를 걷고 있다.
▶추락한 가격에 신규 입성 유효할까?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 두 기업의 증권발행실적보고서에 따르면 카카오뱅크 우리사주조합은 1인당 평균 1만4481주를 배정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주가로 환산하면 카카오뱅크 직원은 현재 1억3000만원이 넘는 손실을 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가가 9만2000원에 달하던 시기에는 평균 물량을 배정받은 직원의 경우 7억6749만원의 수익이 가능했다.
카카오페이 우리사주조합은 공모가 9만원에 주식 총 340만 주를 배정받았다. 증권신고서상 직원 수 849명을 기준으로 1인당 평균 4005주를 받았다. 공모가를 기준으로 주식 평가 가치는 1인당 3억6045만원에 달했으나, 현재 주가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카카오페이 직원은 1인당 평균 1억원 넘게 손해를 보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당시 퇴사하고 주식을 처분한 직원들이 ‘승자’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누군가의 위기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공모가 아래로 추락한 기업들의 주가를 저점 매수하는 전략은 유효할까?
전문가들의 의견은 갈린다. 먼저 공모가 이하의 가격대에도 전 세계 금리 인상 기조로 성장주들이 타격을 받는 가운데, 앞으로도 반등은 힘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 최근 공모주 시장의 상황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8월 22일 코스피에 상장한 쏘카는 상장 첫날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며 공모가를 밑돌았다. IPO 추진 당시 몸값이 2조~3조원으로 평가받던 것을 생각하면 예상외의 결과다. 가격이 장외가의 3분의 1 수준으로 대폭 낮아졌는데도 투자심리는 개선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공개를 준비 중인 ‘대어’ 마켓컬리와 케이뱅크의 속내도 복잡해지고 있다. 시장 상황으로 봐서는 원하는 가격으로 몸값을 받아 공모가를 형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별·업황별 경기 회복 속도가 다른 만큼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실제 최근 추락한 가격 이점에도 불구하고 카카오페이와 카카오뱅크에 대한 증권사들의 목표가는 하향되고 있다. 정호윤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금리 인상에 따른 할인율 상승 등을 반영해 목표 주가를 9만5000원으로 40.6% 낮춘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목표가는 카카오페이 공모가(9만원)와 별반 다르지 않은 가격이다.
이에 덧붙여 정 연구원은 “매크로(거시경제) 불확실성에 따른 경제 위축,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시행에 따른 대출 시장 위축 가능성을 반영해 카카오페이의 2022년 거래액 추정치를 기존의 124조원에서 120조원으로 낮춘다”면서 “카카오페이는 하반기 중 대출 등 기존 서비스의 성장률 회복과 보험 등 신규 서비스의 매출 기여에 따른 금융서비스 회복 여부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병건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카카오뱅크의 성장 속도는 점점 둔화하고 있으며, 플랫폼 수익은 기존 은행들의 비이자 이익과 크게 차별화되지 않아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면서 “은행 업종의 경우 현 주가 수준에서 연 5% 이상의 배당수익률이 기대되는데, 카카오뱅크는 당분간 배당이 없을 것이라는 기회비용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이러한 기회비용까지 고려하면 카카오뱅크의 평가는 은행들의 6배 이상으로 형성돼있으며, 여기에는 고성장에 대한 기대가 충분히 반영돼있다”면서 카카오뱅크의 목표가를 2만4600원으로 제시했다. 이는 카카오뱅크 공모가(3만9000원)보다 37% 낮은 수준이다.
다른 한편으로 공모주들의 가격 이점이 주목받으며 바닥을 지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김수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공모주 시장이 벤치마크 시장보다 먼저 반등을 시작해 6개월 누적수익률이 5월 중순 -20%까지 하락했던 공모주는 지난 16일 +12%까지 올라왔다”며 “바닥을 지나면서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공모시장의 관심이 줄어들고 자진해서 IPO를 철회하는 기업들이 늘어난 데다, 공모가가 밴드 하단 미만에서 결정된 기업이 7%에서 22%로 늘어나면서 “공모주 가격 이점이 높아졌다는 신호”로 분석했다. 그는 “이런 시황에서 공모가가 희망 밴드 하단에서 결정된 기업들의 주가수익률이 올라오고 있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