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증시가 가을을 맞았다. 지난여름 동안 주가가 빠르게 반등한 이른바 ‘서머 랠리’를 마치고 연말 산타 랠리를 앞둔 시점이다. 월가 전문가들은 올해 한 해 전반적으로 증시 불확실성이 클 것으로 보는 가운데 가을 조정장이 끝나면 후반부부터 다시 오름세가 찾아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관건은 인플레이션(물가가 지속적으로 급등하는 것)이 얼마나 빠른 시일 내에 수그러들지 여부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행보에 새삼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투자자들은 지난 7월 말에 열린 FOMC 회의록에 주목하면서 9월 말 FOMC에서 어떤 결정이 나올지 기다리는 모양새다. 올해의 경우 8월과 10월에는 FOMC 정례회의가 열리지 않는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지난 7월 워싱턴DC 연준 본부에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FOMC 7월 회의록’ 주요 내용은
지난 8월 17일(이하 현지시간) 연준은 7월에 열린 FOMC 정례회의 회의록을 공개했다. 일단 시장에서는 회의 내용이 비둘기 어조(완화적)에 가까웠다는 점에 비추어 9월 회의에서는 자이언트스텝이 아닌 빅스텝 결정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자이언트스텝이란 기준금리를 한 번에 75bp(1bp=0.01%포인트) 올리는 것, 빅스텝은 한 번에 50bp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두 결정 모두 정도로 따지면 고강도 긴축 정책에 속한다. 다만 시장에서는 금리 인상 폭이 줄어드는 것을 완화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지난 7월에 열린 FOMC 정례회의에서 회의 참가자들은 앞으로도 기준금리를 꾸준히 올릴 것이라고 밝혔지만 한편으로는 인상 폭을 줄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 연준이 단기적으로 물가 안정 목표(물가 상승률 2%)를 달성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당분간 금리를 계속 높여야 하지만, 경제 성장과 고용 둔화를 일정 부분 감수하고서라도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그간의 강력한 조치가 시장 예상에 이미 영향을 줬다는 판단에서다. 올해 여름만 해도 소비자 물가 지표 상승세가 여전히 컸으나 정책이 실제 효과를 내는 데는 ‘정책 시차’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위원들은 실제 효과와 경제 지표를 확인해가며 인상 폭을 조정하겠다고 언급한 것이다.
그간 연준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상승세를 잡기 위해 올해 3월을 시작으로 기준금리 인상 작업에 속도를 내왔다. 지난 3월에 25bp, 5월에 50bp, 6월에 75bp, 그리고 7월에 다시 75bp 올리면서 ‘미국판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를 2.25~2.50%로 정했다.
한편 7월 FOMC 정례회의 참가자들은 경제를 전반적으로 보면 눈에 띄는 물가 안정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통화 정책의 경로상 금융 부문이 먼저 반응했다고 판단했다. ‘시중 장기 금리 가이드라인’ 격인 1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신용등급이 높은 가계와 기업의 장기 차입 비용이 떨어졌고 신용대출을 받는 데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신용등급이 낮은 가계와 기업까지 통틀어 보면 금리 상승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대출 위축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대출 거래 활기가 줄어들면서 주택 시장이 둔화됐고 이런 변화가 자산(주택과 자동차, 금융 자산 등) 가치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다만 주택 시장과 관련해 연준은 자체 분석을 통해 지금은 서브프라임 사태 충격이 불거진 지난 2000년 중반보다 시장 상황이 건전하다고 평가했다. 집값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기존에 이미 가격이 크게 오른 데다 모기지론(미국판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그간 집값 상승세에 못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또 기업의 경우 신용 건전성이 양호하다는 것이 연준의 분석이다. 이자 보상 배율을 기준으로 한 부채 상환 능력이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는 이유에서다. 기업들의 현금 여력이 충분한 데다 신용등급이 하향되는 기업 수만큼 상향되는 기업 수가 비슷하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문제는 실물 부문이다. 회의 참가자들은 올해 하반기부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플러스 성장을 하겠지만 성장세 자체는 과거 추세를 밑돌 것으로 내다봤다. 상반기 미국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결과 ‘기술적 침체(두 분기 이상 연속으로 마이너스 성장하는 것)’에 접어들었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1분기 GDP 증가율(연율 기준·확정치)은 -1.6%, 2분기 -0.9%(속보치)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공급망 대란이 장기화된 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장기화에 따른 유가 상승세가 맞물리면서 기업 생산과 투자뿐 아니라 소비 지출이 둔화된 결과다. 미국에서 민간 소비 지출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이른다.
회의 참가자들은 소비 지출 둔화와 관련해 특히 식품값 상승 문제를 짚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앞으로 주택 임대료가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임대료가 오르면 소비 여력이 줄어든다.
이에 더해 유가 재상승 가능성도 지적됐다. 참가자들은 휘발유 가격이 단기적으로 떨어져 물가 상승세가 수그러들 수 있지만 에너지 가격이 언제든 반등할 수 있으며 현재까지 물가 상승 압력이 가라앉고 있다는 증거가 거의 없다고 언급했다.
또 회의 참가자들은 기업의 경우 실적 둔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부채 상환 여력 등이 충분하고, 일자리 시장에서는 기업들의 노동 수요가 높은 상황에서 고용 역시 탄탄한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봤다. 다만 일자리 시장의 경우 주간 신규 실업 수당 청구 건수 증가세와 퇴직률 감소, 연초 대비 급여 증가세 둔화, 일부 부문 고용 축소 분위기를 통틀어 볼 때 앞으로는 고용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따랐다.
한편 물가 불확실성이 높은 가운데서도 ‘금리 인상 속도 조절론’이 나온 이유는 기대 인플레이션 수준이다. 많은 참가자들은 기존 긴축 정책 조치와 연준의 물가 안정을 향한 강력한 의지 전달이 과거보다 더 빠르게 시장에 반영되고 있다면서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안정적으로 두기 위해서는 더 나아가는 것보다는 ‘적절하게 제한적인 수준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와 관련해 일부 참가자들은 ‘최근 설문조사 결과들을 보면 사람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연준 목표치(2%)와 대체로 일치한다’고 평가했다.
▶앞으로 연준과 시장 움직임은?
시장에서는 연준이 이달 9월 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50bp 올리는 한편 앞서 6월에 시작한 양적 긴축(QT)을 조기에 끝내거나 긴축 규모를 적게 조정할지 여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압박의 그림자가 미국으로 향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난방 수요가 커지는 겨울을 앞두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유럽 에너지 위기가 더 크게 부각된 데다 중국 경제 둔화까지 겹친 상태다. 투자은행 BMO의 융우 마 선임 투자전략가는 “연준이 양적 긴축 규모를 재조정하거나 이른 시점에 종료할 여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양적 긴축이란 연준의 대차대조표상 자산 규모를 줄임(채권 매각 등)으로써 시중 돈줄을 거둬들이는 긴축 정책을 말한다. 기준금리 인상과 더불어 대표적인 긴축 정책으로 꼽힌다. 기존 계획대로라면 연준은 이달부터 양적 긴축에 속도를 내게 된다. 현재 연준의 대차대조표상 자산 규모는 8조9000억달러에 달한다. 기존에는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경기 부양을 위해 시중에 풀었던 돈을 회수한 후 올해 6월 15일부터 보유 자산 규모를 줄이는 양적 긴축에 돌입해 매달 보유 채권 규모를 475억달러씩 줄여왔다.
9월부터는 긴축 규모를 2배로 늘려 950억달러씩 줄여야 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지난 6월부터는 매달 최대 국채 300억달러, 주택저당증권(MBS)과 기관채를 최대 175억달러씩 각각 줄이고, 3개월 후인 9월부터는 매달 국채 최대 600억달러, MBS·기관채 최대 350억달러씩 줄일 계획이다. 또 만기가 채워진 채권의 경우 재투자하지 않는 방식으로 보유 규모를 줄여왔다. 연준의 목표는 ‘연착륙(soft lan ding)’이다. 물가 급등세를 잡기 위해 시중 돈줄을 조이면서도 미국 경제를 심각한 침체에 빠뜨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다만 기준금리 인상과 강도 높은 양적 긴축을 동시에 실행하면 연착륙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케이시 존스 스왑금융연구센터 수석 전략가는 “미국 경제 성장이 둔화하면 연준이 우선 양적 긴축 규모를 조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연준이 금리가 너무 빨리 올랐다고 판단하면 양적 긴축 조치를 멈출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장기간에 걸쳐 양적 긴축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UBS도 현재 연준의 계획은 지나치게 공격적이라면서 기존의 양적 긴축 시나리오는 경기 흐름과 물가 향방에 따라 바뀔 것이라고 지적했다. 웰스파고 투자 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연준 대차대조표 1조5000억달러 축소는 금리로 치면 75~100bp 인상에 해당한다. 연구소는 연준 대차대조표가 2023년 말까지 1조5000억달러 줄어든 7조5000억달러가 될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 밖에 도이치방크는 연준이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내년 9월께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쪽으로 돌아서고, 정책 방향 전환에 따른 혼란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양적 긴축도 종료할 것으로 내다봤다. 연준은 대차대조표 적정 규모가 얼마인지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미국 GDP의 9%가량이 적절한 수준이라고 본다.
한편 가을 이후 뉴욕 증시 향방에 대해서는 엇갈린 의견이 나온다. 월가의 기술 분석 전문가들은 9월부터는 약간의 조정이 올 것이라고 본다. 다만 전반적으로 하반기에 큰 충격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일례로 오펜하이머 증권의 아리 월드 분석가는 “올해 4분기(10~12월) 즈음해 9월부터 10월 초까지 주식이 하락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달부터 산타 랠리 이전까지는 하락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산타 랠리는 통상 추수감사절 연휴를 전후한 10월 말부터 크리스마스 연휴 등을 낀 다음해 1월까지로 본다. 다만 월드 전문가는 “강세장 신호를 확인하려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상장사 70% 이상의 주가가 200일 이동평균선 이상으로 거래돼야 한다”면서도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4분기에 강세장이 올 것”이라고 낙관했다.
이 밖에 네드 데이비스 리서치의 에드 크리솔드 분석가도 “시장이 9월에 후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세장이 끝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스트레티게스의 토드 손 분석가는 “그간 급등락한 주식, 특히 암호화폐 혹은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내건 성장주는 너무 오래 들고 있지 말고 정리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조언한다.
반면 ‘닥터 둠’으로 유명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연준이 물가 안정 목표(2%)를 달성하려면 기준금리가 최소 4%를 넘겨야 하며, 내 생각에는 4.5~5%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본다”면서 “기준금리가 5% 정도로 오르면 긴축 정책에 따른 경제 연착륙은 불가능하다”고 경고했다. 물가 상승세가 정점에 달했는지 여부보다 상승세가 얼마나 빠르게 둔화될지 여부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 밖에 모건스탠리 측은 물가 상승세 향방이 불확실하다면서 “연준이 고강도 긴축 정책을 빨리 접을 것이라는 기대는 시기상조라고 본다”면서 “중국 경제 둔화 문제까지 감안할 때 미국 주식은 최근 상승세와 달리 올해 하반기 하락세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 의존도가 높은 미국 주요 기업으로는 테슬라와 제너럴모터스(GM), 코그넥스(CGNX), 에머슨 일렉트릭(EMR), 3M(MMM) 등이 꼽힌다. 반면 JP모건 측은 “나스닥100지수를 구성하는 대형 기술주들의 상승세가 올해 연말까지 이어질 수 있다”면서 “연말에는 가치주 반등 가능성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낙관론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