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페라리, 롤렉스, 한우 등 다양한 투자 자산들을 쪼개기 투자할 수 있는 조각투자 서비스 관련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현재 다양한 조각투자 플랫폼들이 자체적으로 투자자들을 모집하고 영업을 진행 중이지만 자본시장법의 규제를 받지 않다 보니 투자자 보호에 미흡한 부분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의 지침에 따라 조각투자 업체들은 자사의 서비스가 자본시장법 규제 대상인 ‘증권’에 해당되는지 여부 검토에 나섰다.
조각투자는 투자 자산을 다수의 개인이 공동구매해 추후 발생하는 저작권료, 렌털료, 처분이익 등을 나눠 갖는 신종 투자 방식이다. 단돈 10만원으로도 고가의 자산에 투자할 수 있어 최근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열풍이 불고 있다.
조각투자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해당 서비스가 법적 사각지대에 위치해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일부 조각투자 플랫폼들은 영업 전 금융 당국의 혁신금융서비스(규제 샌드박스) 신청 후 법적 테두리 안에서 서비스를 진행 중이지만 그렇지 않은 업체들이 대부분인 실정이었기 때문이다.
▶MZ세대 중심으로 투자 열풍
이에 지난 4월 28일 금융위원회는 ‘조각투자 등 신종증권사업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핵심은 증권성이 인정되는 조각투자 상품을 발행·유통하려는 사업자는 자본시장법과 관련 법령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시장법상 증권에 해당하면 증권신고서 제출, 공시, 투자자 보호 등 규제를 준수해야 한다.
우선 금융위는 투자자들에게 기초자산의 소유권을 쪼개서 주는 게 아닌 수익에 대한 청구권 등을 나눠 줄 경우 증권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즉 자산에 대한 ‘직접 소유권’을 투자자들이 나눠 가질 경우 일반적 상거래에 해당돼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경우 조각투자 플랫폼 사업자들의 사업 성패에 따라 투자자 손익이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
증권성이 인정되지 않는 사례로 부동산 투자가 거론된다. 특정 아파트를 여러 투자자들이 공동으로 매수한 후 세를 받거나 매도 후 차익을 나눠 갖는 경우는 증권에 해당되지 않는다. 해당 아파트 거래를 중개한 공인중개사의 사업 성패에 따라 부동산 투자 손익 또한 영향받지 않는다.
반대로 투자 자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에 대한 청구권 등을 서비스하는 파생 성격의 서비스인 경우 증권성이 명백히 인정된다는 게 금융위의 판단이다. 앞서 금융위는 가이드라인 발표에 앞서 음악 저작권료 참여청구권을 서비스하는 조각투자 플랫폼 뮤직카우의 서비스가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각투자 플랫폼을 대상으로 한 첫 번째 증권성 인정 사례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투자계약증권은 ‘특정 투자자가 그 투자자와 타인 간의 공동사업에 금전 등을 투자하고 주로 타인이 수행한 공동사업의 결과에 따른 손익을 귀속 받는 계약상의 권리가 표시된 것’이다. 음악 저작권료 참여청구권을 보유한 투자자들은 저작권료 수입, 청구권 가격변동 손익을 공동으로 누리게 되는데 금융위는 이 서비스가 투자계약증권의 전형적인 특성을 가진 것으로 봤다. 다만 금융위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6개월 동안 제재 보류 카드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뮤직카우는 오는 10월 19일까지 사업 구조 개편안을 금융 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금융위의 판단이 나온 후 뮤직카우는 입장문을 통해 “새로운 정책과 제도에 맞는 옷으로 빠르게 갈아입고 투자자 보호와 함께 음악 저작권 산업 활성화에 힘을 더할 수 있는 서비스로 더욱 건실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기존에 거래되고 있던 곡(청구권)들은 기존과 같이 시장에서 매매를 원활히 지원하는 등 이용 고객을 위한 안정적인 서비스 환경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뮤직카우 측은 유예기간 내 고객 실명거래 계좌 도입, 회계감사 정보 공시, 자문위원회 발표 등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금융위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향후 조각투자 플랫폼들은 뮤직카우처럼 자본시장법이 규정하는 6가지 종류의 증권 중 자사의 서비스가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지 검토해야 한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증권은 채무증권, 지분증권, 수익증권, 투자계약증권, 파생결합증권, 예탁증권으로 구분된다.
금융위가 제시한 유형별 증권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은 경우는 ▲일정 기간 경과 후 투자금을 상환 받을 수 있는 경우(채무증권) ▲사업 운영에 따른 손익을 배분받을 수 있는 경우(지분증권) ▲실물자산, 금융상품 등에 대한 투자를 통해 조각투자 대상의 가치 상승에 따른 투자수익을 분배받을 수 있는 경우(지분증권, 투자계약증권) ▲기초자산의 가격 변동에 따라 달라지는 회수금액을 지급받는 경우(파생결합증권) ▲새로 발행될 증권을 청약·취득할 수 있는 경우(옵션형 증권) ▲투자자의 수익에 사업자의 전문성이나 사업 활동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투자계약증권) 등이다.
특히 금융위는 사업자 없이 투자자가 조각투자 수익의 배분을 기대하기 어렵거나 사업자의 운영 노력 없이는 투자자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는 명백히 증권에 해당된다고 봤다. 또 사업자가 투자자가 갖는 권리에 대한 유통시장을 개설해 운영하는 등 거래 여부, 장소를 결정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치 상승, 손실 방지를 위한 사업자의 노력과 경험 등이 홍보 포인트로 제시된 경우도 포함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당국이 제시한 증권성 인정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 해당하지 않고 조각투자 대상에 대한 소유권을 실제로 분할해 투자자에게 직접 부여하는 경우 증권 해당 가능성이 낮다”며 “투자자가 조각투자 대상을 개별적으로 직접 사용, 수익, 처분할 수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금융위는 기존 규제를 의도적으로 우회하려는 시도에 대해선 투자자들의 사기 피해 가능성을 감안해 적극적으로 대응해나갈 방침이다.
▶원칙상 현행 자본시장법 규제 지켜야
원칙상 자사의 조각투자 서비스가 증권성에 해당될 경우엔 현행 자본시장법상 규제를 모두 지켜야 한다. 다만 금융위는 현행 법체계 내에서 발행, 유통이 어렵고 해당 조각투자 서비스의 혁신성이 특별히 인정되는 경우 예외적으로 혁신금융서비스 신청을 통해 한시적으로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혁신금융서비스 신청 업체를 대상으로 금융위는 “투자자 보호체계를 충분히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각투자 서비스의 실제 권리구조를 투자자가 오인하지 않도록 정확히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우선적으로 투자자 예치금은 외부 금융기관에 별도 예치할 것을 주문했다. 이 경우 사업자가 도산해도 투자자 자산을 보호할 수 있다.
원활하고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을 위한 물적설비, 전문인력 확보도 요구된다. 투자자 피해 발생 시 대응 가능한 피해 보상체계와 분쟁처리 절차도 마련해야 한다. 또 금융위는 이해상충 방지를 위해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을 분리할 것을 강조했다.
증권성 여부 판단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규제 대상 여부 판단 검토도 필요하다. 자사의 서비스가 투자중개업, 집합투자업 등 금융투자업에 해당할 경우 별도의 인가도 득해야 한다. 조각투자 사업자가 직접 증권을 발행하지 않더라도 투자자에게 해당 증권 투자를 권유하는 사업구조의 경우 투자중개업 인가가, 투자 자산을 투자자의 판단 없이 스스로 운용할 경우엔 집합투자업 인가가 요구된다.
조각투자 업계 전문가인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향후 조각투자 사업자들이 당국의 가이드라인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어떻게 자사의 서비스를 증권화시킬지 여부 등 사업 모델을 바꾸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자사의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내부 시스템을 재점검하는 것도 필요한 조치”라고 밝혔다.
금융 당국의 이번 가이드라인을 두고 늦었지만 조각투자 업계의 질서 있는 성장을 위한 필수적 조치였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장은 “조각투자 등 신성장 사업 부문이 확대된 후 정부의 규제가 생기는 현상은 사실은 보편적인 것으로 금융위의 이번 결정은 조각투자 서비스의 제도권 편입을 통한 더 나은 성장을 위한 조치”라며 “무엇보다 투자자 보호에 초점을 맞춰서 제도를 재정비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조각투자와 관련한 법령 적용 및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심사 등이 이뤄질 예정”이라며 “향후에도 필요 시 가이드라인을 수정, 보완하고 투자자 보호에 필요한 제도 개선을 병행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뮤직카우 본사
금융 당국의 가이드라인이 공개되자 조각투자 플랫폼들은 규제 적용 여부에 대해 내부 검토에 돌입했다. 당국의 지침이 명확하지 않아 혼란스럽다는 입장도 있다. 한 조각투자 플랫폼 고위 관계자는 “금융 당국에서 발표한 규정에 따라 업체별로 규제 대상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딱 부러지게 식별되지 않는다”며 “변호사를 통해 규제 대상 여부 검토를 의뢰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미술품 조각투자 스타트업 관계자는 “일단 제도화 편입 과정의 일환으로서 가이드라인이 나온 것은 환영한다”면서도 “기존에 소유권을 직접 보유하는 민상법 적용 자산으로 파악하고 사업을 추진하던 상황에서 당혹스러운 면도 있어 증권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한 법률적 검토가 필수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명확한 가이드 투자자 관심 높인다
반면 조각투자 시장 활성화를 위해 필요했던 조치란 의견도 있다. 또 다른 조각투자 플랫폼 관계자는 “이번 가이드라인을 통해 조각투자 사업 모델 중 채권적 청구권으로 변형된 형태는 증권에 해당하고 실물자산의 소유권을 분할해 판매하는 형태는 증권에 해당하지 않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조각투자 업계의 불확실성을 상당 부분 제거했다”며 “그동안 이견이 많았던 조각투자 거래소에 대한 내용도 지침을 제시함으로써 향후 조각투자 시장에 더욱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동안 이미 금융위, 중소벤처기업부 주관하에 자본시장법을 준수해왔던 카사, 비브릭 등 업체들은 이번 금융 당국의 결정을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나온 만큼 투자자들의 관심도 높아질 것이란 판단에서다.
카사코리아의 경우 2019년 12월 금융위의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받고 영업 중이다. 비브릭은 부산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에서 중기부 주관 하에 운영 중인 부동산 집합투자 및 수익배분 서비스다.
업계 관계자는 “관련 업체들이 이미 금융 당국 등의 인가를 받아 거래하고 있고 투자금은 시중 대형은행이나 예탁결제원 등을 통해 보호되고 있어 가이드라인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며 “시장이 활성화된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업계에서 투자자 보호에 더욱 신경 써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체들은 내부 통제 장치 강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조각투자 플랫폼 피스를 운영하는 바이셀스탠다드는 “투자 정보를 충분히 투자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8인의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상품기획위원회의 면밀한 심의를 통해 투자 대상을 선별하고 있다”며 “피스는 회원 간 거래가 원칙적으로 불가해 조각투자 소유권의 무분별한 유통을 허용하는 타 플랫폼과는 분명한 차별점을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