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상 최초로 공급면적 기준 3.3㎡당 6000만원이 넘는 가격에 분양하는 아파트가 나왔다.
신축 가구 수를 줄여 규제를 회피하는 방식으로 분양가를 확 높였다. 향후 서울 강남권 소규모 분양 단지를 축으로 이 같은 시도가 반복될 것으로 업계는 진단하고 있다.
건설 업계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송파동 성지아파트 리모델링조합은 4~5월 분양하는 29가구 물량 분양가로 3.3㎡당 평균 6500만원을 책정했다. 이대로라면 일반분양 시장에 나오는 전용 103㎡ 평형 분양가는 25억~26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에서 3.3㎡당 분양가가 6000만원이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분양가가 가장 높았던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는 지난해 3.3㎡당 5668만원으로 분양가를 책정한 바 있다.
1992년 준공한 성지아파트는 국내 첫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다. 기존 298가구 규모에서 위로 3개 층을 더 올리는 방식으로 42가구를 늘려 340가구 새 아파트로 변신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리모델링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30가구 미만 물량을 분양할 경우 정부의 분양가 규제를 회피할 수 있는 규정을 십분 활용하기로 전략을 바꿨다. 기존 대비 29가구만 늘려 327가구를 신축하기로 계획을 수정한 것이다.
철거 이전 송파구 성지 아파트 전경
▶29가구 이하는 제재 없이 분양가 결정
신축 물량이 30가구를 밑돌면 조합이 원하는 대로 아무런 제재 없이 분양가를 결정할 수 있다. 현행 법규상 30가구 이상 분양하는 공동주택은 분양가상한제나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고분양가 심사를 받아야 한다. 30가구 미만으로 분양하면 이 같은 규제에서 모두 해방된다.
그래서 조합 측은 주변 시세에 필적하는 수준으로 분양가를 정할 수 있다. 단지에서 도보 5분 거리인 래미안송파파인탑 전용 87㎡는 지난해 1월 17억4000만원에 거래된 바 있다. 최근 호가는 21억~22억원에 달해 시세가 3.3㎡당 6300만원 안팎이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인근 아파트 호가에 맞춰 분양가를 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래미안원베일리 분양 당시 분양가가 주변 시세 대비 많게는 10억원 쌌던 사례와 극명하게 대비된다”고 분석했다.
래미안원베일리 분양가가 결정될 당시에도 업계에 미치는 파장은 상당했다. 기존 예상되는 분양가보다 훨씬 수치가 높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아파트 일반 분양가는 3.3㎡당 5668만6000원으로 결정됐다. 당시 역대 최고 분양가 기록을 갈아치웠다.
주목할 부분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2020년 7월 정했던 이 단지의 분양가(3.3㎡ 4891만원)보다 실제 분양가가 훨씬 높아진 것이다. 당시 시장에서는 정부가 도입한 분양가상한제 규제가 사실상 무력화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HUG의 당초 분양가는 지나치게 낮은 가격이었다. 3.3㎡당 4891만원으로 책정된 일반 분양가는 조합원을 대상으로 하는 분양가보다 낮은 수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합이 HUG의 분양가를 거부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강력하게 가격을 통제할 의지를 밝힌 ‘분양가상한제 체제’로 갔을 때 분양가가 더 오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HUG 분양가보다 16%나 더 높은 분양가를 이끌어내며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이다.
상한제 분양가는 토지비에 적정 이익을 포함한 건축비를 더해 결정된다. 높아진 분양가에는 공시가격 상승이 큰 영향을 미쳤다. 서초구는 심사를 요청한 시점인 지난해 8월 기준으로 직전 1년간 토지가격 상승분을 반영했다. 그런데 해당 기간 땅값이 크게 오른 데다 정부가 보유세 인상을 위해 공시가격 시세 반영률까지 높여 원베일리의 3.3㎡당 토지비는 4200만원으로 예상보다 훨씬 높게 나왔다.
건축비도 당초 예상보다 높게 책정됐다. 당초 시장에서는 원베일리 건축비를 3.3㎡당 1000만원 안팎으로 내다봤지만 서초구 분양가심의위원회는 특별건축구역 지정에 따른 가산비를 반영해 3.3㎡당 1468만원으로 책정했다. 홈네트워크 설비비, 법정 초과 복리시설 설치비용, 친환경 건축물 인증비 등 주로 고급사양을 시공할 때 붙는 가산건축비를 역대 최대로 인정해준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렇게 높게 책정된 분양가도 주변 시세에 비해서는 훨씬 낮은 수준이었다. 여전히 ‘로또분양’인 건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분양가가 정해진 지난해 1월 기준 인근 아크로리버파크와 래미안퍼스티지 등은 매매가격이 3.3㎡당 1억원을 넘어선 상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약이 흥행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였다. 실제 지난해 6월 진행한 래미안원베일리 1순위 청약 접수는 평균 161.23 대 1, 최고 1873.5 대 1의 경쟁률로 마감됐다.
총 224가구 모집에 무려 3만6116개의 청약통장이 몰린 것이다. 최고 경쟁률은 1873.5 대 1로 2가구 모집에 3747명이 몰린 전용면적 46㎡A에서 나왔다.
송파 더 플래티넘 투시도.
전용면적별로는 ▲46㎡A 1873.5 대 1(2가구 모집 3747명 접수) ▲59㎡A 124.9 대 1(112가구 모집 1만3989명 접수) ▲59㎡B 79.62 대 1(85가구 모집 6768명 접수) ▲74㎡A 537.63 대 1(8가구 모집 4301명 접수) ▲74㎡B 471.33 대 1(6가구 모집 2828명 접수) ▲74㎡C 407.55 대 1(11가구 모집 4483명 접수)을 기록했다.
특히 전용 74㎡B 주택형에서는 청약가점 84점 만점자가 최고 점수로 당첨되기도 했다. 당시 서울에서 청약 만점자가 나온 것은 그해 1월 강동구 힐스테이트리슈빌강일 이후 5개월 만이었다. 청약가점 84점은 ▲부양가족 6명(35점) ▲무주택 기간 15년(32년) ▲청약통장 가입기간 15년(17점) 등을 모두 충족해야 받을 수 있다. 만점이 나온 래미안원베일리 74㎡B형 당첨 기준 커트라인 가점은 78점이었고, 평균 점수는 무려 80점이 넘었다.
래미안원베일리는 단지 조성에도 각별한 신경을 썼다. 조경 특화와 명품 커뮤니티시설을 적용했다. 조경공간 콘셉트는 ‘클러스터 앤드 라운지 가든(Cluster&Lounge Garden)’ 개념이었다. 리조트 스타일의 정원 등 클러스터별 다양한 디자인의 조경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커뮤니티시설은 단지 내 수영장, 실내 체육관, 피트니스, GX룸, 실내 골프연습장, 필라테스, 스크린골프, 사우나, 스카이브리지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친환경 설비와 최첨단 편의시설도 적용했다. 얼굴 인식 출입 시스템, 음성 인식 기능 등 래미안의 다양한 스마트홈 기술이 적용된 안전하고 편리한 아파트로 만들어진다.
게다가 래미안원베일리는 2990가구 규모 대단지다. 또한 입지는 최근 서울에서 가장 주목을 끌고 있는 반포 한복판이다. 반포동 일대 약 8000가구 규모로 형성되는 ‘래미안 타운’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한강변을 바라보는 핵심입지다.
서울지하철 3·7·9호선 트리플 역세권인 고속터미널역과 9호선 신반포역을 도보로 이용할 수 있고, 경부고속도로와 올림픽대로를 비롯해 반포대교, 동작대교를 통한 강변북로 진입이 수월하다.
다양한 편의시설과 쾌적한 주거환경도 장점이다. 신세계백화점(강남점)과 뉴코아아울렛, 킴스클럽, 센트럴시티 상가 등 대형 복합 쇼핑시설이 인근에 있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국립중앙도서관, 대법원, 검찰청 등도 지척이다. 반포한강공원, 신반포공원, 서래섬, 세빛섬이 인접해 있다. 단지 바로 맞은편에 사립초등학교인 계성초와 신반포중이 있고 세화여고, 세화고 등 명문학교도 가깝다.
▶앞으로 비슷한 사례 이어질 전망
쉽게 말해 래미안원베일리는 자타공인 이 시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 수준의 아파트로 평가된다. 분양가가 당시 기준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음에도 래미안원베일리 청약에 당첨되면 그 즉시 10억원가량 차익이 나는 구조였다. 그러니 이런 단지 청약이 흥행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였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 시세와 비슷하게 분양가를 책정할 수 있는 29가구 이하 리모델링 일반분양 물량이 시장에 나오면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지 시장에서는 궁금해 했다. 왜냐면 29가구 이하 신규 물량이 나오는 리모델링 단지는 전체 가구 수가 1000가구 미만 중소형 규모인 경우가 많다. 리모델링 단지 특성상 층고가 낮고 평면에 제한이 있는 등 여러 한계도 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분양가 심사를 받지 않아 인근 아파트 시세와 비슷한 수준으로 분양가를 설정하기 때문에 당첨돼도 기대할 수 있는 시세 차익이 크지 않다. 앞서 설명한 래미안원베일리 청약 당첨과 비교해 거의 모든 조건이 열위에 있는 것이다.
서초구 반포동 반포래미안원베일리 공사현장.
그런데 이런 의구심을 지난 1월 시장에 나온 ‘송파 더 플래티넘’ 청약 경쟁률이 불식시켰다. 이 단지는 서울 송파구 오금동 일원 아남아파트를 리모델링해 공급하는 아파트다. 규제를 피하기 위해 29가구 모집 조건을 내걸었는데 무려 청약 신청이 7만5382건이나 들어와 2599 대 1의 경쟁률로 마감했다. 이 단지는 리모델링 아파트 최초 일반분양 테이프를 끊었는데 청약 대박 기록을 쓴 것이다.
기존 지하 1층~지상 15층 2개 동 299가구가 지하 3층~지상 16층 2개 동 328가구로 변신했다. 전용면적은 37~84㎡에서 52~106㎡으로 확장됐다.
일반분양은 전용 65㎡ 14가구와 72㎡ 15가구 등 중소형 평형 29가구를 대상으로 진행됐는데 신청 열기는 뜨거웠다.
전용면적 72㎡는 15가구 모집에 4만1961명이 접수해 2797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65㎡는 14가구 모집에 3만3421명이 접수해 2387 대 1의 경쟁률을 썼다.
▶“분양가 심사 제도 자체 손봐야” 의견도
물론 이 단지는 계약 후 분양권 전매가 가능하고 실거주 의무에서도 제외되는 등 청약이 간편한 측면은 있었다. 만 19세 이상이면 청약통장 없이 자유롭게 청약을 할 수 있어 문턱이 낮았다. 하지만 주변 시세와 크게 차이가 없는 고분양가에도 불구, 여전히 새 아파트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그렇다면 시장의 관심은 분양가를 대폭 높인 성지아파트 일반분양 물량 역시 완판될 수 있는지 여부로 쏠린다. 업계에 따르면 성지아파트는 청약 흥행을 위해 수직증축으로 새로 올리는 최상위 3개 층 신축 물량을 분양 시장에 내놓기로 했다.
고분양가 논란을 딛고 분양물량이 조기 완판된다면 정부의 분양가 규제 원칙이 또 한 번 도마에 오를 공산이 크다. 이미 상당수 리모델링 단지들이 29가구 이하 신규분양을 준비하고 있다.
구로구 신도림동 ‘신도림 우성3차’와 ‘우성5차’, 서초구 반포동 ‘반포푸르지오’, 잠원동 ‘잠원훼미리’, 광진구 광장동 ‘상록타워’, 동대문구 답십리동 ‘신답극동아파트’, 강동구 고덕동 ‘배재현대’ 등이 29가구 이하 분양을 준비하는 리모델링 단지다. 가뜩이나 서울에 새 아파트 한 채 늘리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데 29가구까지는 분양가 심사를 면제해 주는 정부 정책 때문에 더 나올 수 있는 신규분양을 가로막는 형국이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왜 29가구 이하는 분양가 규제가 없고 30가구부터는 규제를 받아야 하는지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며 “분양가상한제 규제 자체를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