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온라인상에서 개미투자자들 사이에 국민연금 투자 포트폴리오가 새삼 회자되고 있다. 코로나 이후 글로벌 유동성 확대로 자산 시장에 낀 거품이 사라지고 인플레이션 후유증으로 전 세계는 긴축재정으로 돌아서고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등으로 투자 시장이 휘청이는 가운데에서도 보수적인 접근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국민연금의 투자법에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실제 1%대 예금이자에도 못 미치는 수익률로 고전하고 있는 은행권 퇴직연금에 비하면 국민연금기금의 수익률은 그야말로 개미들의 염원인 ‘텐베거’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애플·MS 등 시총 상위 분산투자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는 지난해 10.77% 잠정 수익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1999년 11월 기금운용본부 설립 이래 2019년 거둔 수익률 11.31%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실적이다. 지난해 기금 운용수익인 91조2000억원은 같은 기간 국민연금 가입자들에게 지급한 연금액의 3.1배, 거둬들인 보험료 수입의 1.7배 수준으로 준수한 한 해를 보냈다. 최근 3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10.57%로 코로나 이후 높은 수익률을 유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지난해 부문별·자산별 수익률을 살펴보면 해외 주식 29.48%, 대체투자 23.80%, 해외채권 7.09%, 국내 주식 6.73% 순으로 나타났다. 국내 채권은 1.30% 손실을 기록했다.
국민연금 측은 “해외 주식의 경우 주요 경제지표와 기업실적이 개선된 데 따른 주가 상승에 힘입어 우수한 수익률을 달성했다”며 “팬데믹 국면에서 정보기술, 의료 산업이 강세를 보이고 선진국의 경기 회복이 빨라 성과가 두드러졌고 달러 강세로 인한 환차익 효과도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해외 채권의 경우 원·달러 환율 상승 덕분에 양호한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국내 채권은 금리 상승세가 가팔라지면서 채권가격이 내려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해외 채권에 이어 우수한 성과를 기록한 대체투자의 경우 경기 개선과 글로벌 증시 강세로 가치가 급등해 비교적 높은 수익률을 냈다. 국내외 사모투자 부문의 평가이익과 국내 부동산 경기의 호조도 양호한 회수이익을 거두는 데 도움을 줬다.
국민연금은 좋은 성과를 거둔 해외 투자 비중을 늘리는 추세다. 국민연금의 해외 주식 투자 비중은 최근 5년 간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자산 대비 해외 주식 투자 비중은 27%까지 늘어났다. 2016년 15.34%에서 10%포인트 넘게 비중을 키웠다. 이러한 국민연금의 해외 주식 비중 확대는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지난해 5월 이와 같은 방침을 ‘중기자산배분안’을 통해 확정한 바 있다. 기금운용위원회는 당시 “오는 2030년까지 국내 주식 비중을 단계적으로 축소할 것”이라며 “국내 주식 자산 비중을 올해 16.8%에서 내년 16.3%까지 줄이고, 대신 해외 주식 비중을 늘려 전체 주식 자산 규모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해외 주식 투자는 미국 시장 시가총액 상위 종목 비중이 높은 편이다. 지난 2020년 말 기준 전체 해외 주식 투자금 중 60.9%는 미국이 차지했다. 국민연금이 미 SEC에 제출한 13F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각각 5.67%와 4.78%로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아마존과 구글은 퓨어베타 MSCI USA ETF(티커 PBUS ETF 3.85%)의 뒤를 이어 각각 3.32%와 2%의 비중으로 4위와 5위에 이름을 올렸다.
다음으로 S&P500지수를 추종하는 ETF인 iShares Core S&P 500 ETF (티커 IVV)가 1.92%의 비중으로 6위를 차지했고 알파벳C(1.91%), 테슬라(1.81%), 메타(1.81%), 엔비디아(1.6%)가 비중 Top 10에 올랐다.
주식 수로 보면 직전 분기에 비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엔비디아의 주식을 일부 매각하고 테슬라와 아마존의 주식 수를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보통 시가총액 상위 기업의 비중을 일정하게 유지해 주가지수를 추종하는 전략을 취한다”며 “주가가 많이 오른 빅테크 기업의 비중을 일부 줄이고 하락한 기업을 저가 매수하는 일종의 포트폴리오 조정이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 NPS
▶국내 주식 수익률 6.73% 코스피 상회
국민연금 수익률은 벤치마크 지수 등 투자 환경에 대비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지난해 미국 S&P500은 전년 말 대비 26.89%, 코스피는 같은 기간 3.63% 올랐다. 직접적인 비교가 될 수는 없지만, 국민연금은 해외 주식, 국내 주식 수익률이 2~3% 앞지른 셈이다. 특히 지난해 3분기부터 하락장이 시작되어 미국 시장에 비해 부진했던 한국 주식 시장에서도 양호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올해는 기준금리 인상과 더불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인플레이션 우려 등이 심화하면서 수익률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불확실성이 커진 시장 상황을 반영해 올해 목표 수익률을 하향 조정하면서 공격적인 투자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따라서 지난해 적극적인 투자와 성공적인 엑시트(자금 회수)에 나섰던 국내 주요 기관투자자들 대부분 올해는 목표 수익률을 지난해보다 낮게 설정하고 불안정한 시장 변화를 지켜보면서 위기관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은 올해 목표 수익률은 5%대로 설정했고 3년 연속 수익률 11%대를 기록한 사학연금을 비롯해 공무원연금은 올해 목표 수익률을 4%대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공제회·교직원공제회도 4.5% 수준으로 수익률 눈높이를 낮췄다.
그 밖에 지난해 운용자산규모(AUM)는 17조7442억원으로 해마다 가파르게 성장 중인 노란우산공제도 올해 목표 수익률을 3.62%로 설정하면서 불확실성이 큰 시장을 관망하며 투자 시점을 노릴 것으로 분석된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국가별 긴축 기조와 금리 환경, 투자 환경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러시아 침공 등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후유증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며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 베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신중하게 투자 기회를 노리는 것이 좋다”고 전했다.
▶최근 하락장에 국내 주식 매도
지난해 말 기준 3000선을 웃돌았던 코스피 지수는 지난 1월 28일 장중 2591까지 떨어진 후 3월 23일 오전 9시 17분 기준 2740선을 유지하고 있다. 꾸준히 하향 곡선을 그리는 와중에 국내 연기금은 2000억원 가까이 순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은 이미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주식 비중 목표치를 상회한 수준이라 중기 기금운용 계획상 비중을 더 줄여야 하는 만큼 올해도 매도 우위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연기금은 3월 들어 코스피 1100억원어치를 순매도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11일까지 순매도액은 3718억원에 달했으나 최근 저가 매수에 나서면서 순매도액을 줄이는 추세다. 유의할 점은 연기금이 그간 일종의 지수방어선 역할을 자처했지만 최근 코스피가 연중 최저점을 꾸준히 테스트하는 상황에도 매도 우위 자세를 유지했다는 점이다. 연기금은 지난 15일을 제외하면 3월에 일일 순매수액이 1000억원을 넘긴 적은 없었다. 올해 들어 연기금의 순매도액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연초 이후 이날까지 연기금의 누적 순매도액은 5091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1월 말 연기금의 순매도액은 1조6146억원까지 늘어났으나 연기금이 1월 말 상장한 LG에너지솔루션 주식을 2조원 넘게 순매입하면서 순매도액이 그나마 줄어든 상태다. 2월에는 2020년 초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후 처음으로 연기금이 순매수로 전환하기도 했으나 이내 다시 주식 매도량을 늘리면서 순매도 규모를 늘려가는 중이다.
연기금 중 최대 주체인 국민연금은 올 한 해 국내 주식 비중을 줄여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이 최근 공시한 기금운용 현황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국내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17.5%였다. 이는 기금운용 계획상 목표 비중인 16.8%를 0.7%포인트 웃도는 수치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목표 비중 허용 범위는 16.8%에 ±3.0%다.
지난해 말 실제 비중은 목표 비중 허용 범위에 들어가기 때문에 국민연금이 당장 급하게 주식을 처분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중기자산배분안에 따르면 오는 2025년 말까지 국내 주식의 비중을 전체의 15% 내외로 줄일 계획이다. 지난해 국내 주식 목표 비중 문제를 놓고 잡음이 나오면서 국민연금은 자산군별 세부 목표 비중을 비공개로 전환했지만, 중기 자산배분계획의 큰 틀은 변하지 않았다.
금감원 전자공시를 통해 국민연금의 올 1분기 매매 동향을 살펴보면 지분 5% 이상 보유 기업들을 총 25회 거래를 알 수 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농심을 3차례 매수해 9.36%에서 12.07%로, 한국항공우주를 2차례 매수해 7.17%에서 9.36%까지 비중을 확대했다.
이 외에 현대중공업(5→6.01%), 두산중공업(5.07→6.57%), 팬오션(5.01→6.12%)으로 중공업 기업들의 비중을 늘렸다. 금융권 기업으로는 대신증권(5.02→5.29%), DGB금융지주(12.63→12.65%) 등의 비중을 일부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최근 건설 현장 붕괴 사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대산업개발은 12.51%에서 7.5%로 비중을 축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 같은 업종의 현대건설(10.48→9.47%), KCC (10.67→9.96%)의 비중을 축소했고 셀트리온(7.48→6.39%), 동아에스티(9.25→8.24%) 등 대형 제약 업계 기업의 주식을 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 삼성생명(6.33→5.85%), KB금융(9.97→8.94%), 우리금융지주(9.88→8.88%) 등 대형 금융사의 지분을 일부 정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금융투자사 관계자는 “최근 연기금이 일부 매수세에 나서고 있지만 유의미한 규모는 아니라 아직 증시가 저점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며 “올해 미 금리 인상과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있는 만큼 보수적인 운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