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 가격이 떨어지며 부동산 시장이 하락으로 추세 전환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강남 일대 고가 주택은 잇달아 신고가를 찍는 현상이 관측되고 있다. 다주택자에 부과하는 ‘징벌적 세금’ 영향으로 ‘똘똘한 한 채’ 현상의 심화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에 따르면 압구정 현대1차 196.21㎡는 지난 1월 80억원(9층)에 계약서가 오갔다. 해당 평형 직전 거래가인 64억원(지난해 3월)보다 16억원이나 뛰어오른 가격이다. 지난해 4월에는 압구정 현대아파트7차 전용면적 245.2㎡ 역시 80억원에 실거래돼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번에 80억원을 찍은 매물은 지난해 4월 매물 대비 더 작은 평형이다. 계약 가격은 동일하지만 압구정 현대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것으로 봐도 무방한 이유다.
압구정 일대 재건축 움직임이 활발한 것이 가격 상승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서울시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 참여로 사업 속도를 높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서울시는 신통기획과 연계해 압구정 아파트지구의 지구단위계획을 확정할 준비를 하고 있다. 압구정 다른 구역들도 이를 대비해 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하는 분위기다.
압구정지구는 현재 전체 6개 구역 중 6구역(한양5·7·8차)을 제외한 5개 구역이 신통기획을 신청한 상황이다. 지구단위계획이 확정되지 않아 오랫동안 사업이 지지부진했었는데, 서울시 신통기획을 계기로 처진 속도를 단숨에 끌어올리겠다는 주민 의지가 강하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80억원에서 아파트 계약서가 오가는 신고가 거래가 터진 것이다. 1월 12일에는 서울 신사동 소재 압구정하이츠파크 전용 213㎡ 평형이 55억원에 손바뀜됐다. 2021년 4월 기록한 직전 최고가(47억원)와 비교하면 8억원이나 높은 수치다.
반포 아크로리버파크아파트.
1월 21일에는 서울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129㎡가 61억원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기록했다. 종전 최고기록이었던 60억2000만원 대비 8000만원 오른 가격에 계약서가 오갔다. 상승 폭은 미미하지만 아파트 시세 하락 기사가 쏟아지던 1월 말 신고가를 찍으며 거래가 터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비슷한 시기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3차도 신고가 기록을 썼다. 이 아파트 164㎡는 42억원(42층)에 매매 계약서가 오갔다. 지난해 7월에 나왔던 41억원(44층) 기록을 돌파한 것이다. 강남구 삼성동 래미안라클래시 115㎡는 50억1750만원(21층)에 거래되며 평당 가격 1억원을 돌파했다. 이 매물은 보류지(잔여세대) 매각 건이었다. 삼성동과 압구정동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이다. 2년 동안 실거주용으로만 이용해야 하고 실거주 기간에는 매매와 임대가 금지된다. 15억원 초과 거래이기 때문에 대출도 이용할 수 없다. 웬만한 강남 꼬마빌딩 가격이 넘는 80억원짜리 집을 현금으로 사들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데이터로 본 서울 아파트값은 이 같은 흐름과 딴판이다. 한국부동산원이 2월 17일 발표한 ‘전국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값은 전주와 같은 보합세였다. 수도권은 -0.02%, 지방은 0.01%로 집계됐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매매수급지수를 살펴봐도 비슷한 경향이 보인다. 2월 14일 기준 서울 매매수급지수는 87.8로 전주 88.7 대비 1포인트가량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7월 셋째 주(87.2)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서울 매매수급지수는 지난해 12월 첫째 주 100 밑으로 떨어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다. 이 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수치가 낮을수록 공급이 수요보다 많다는 뜻이다. 즉, 집을 사겠다는 심리보다 팔겠다는 심리가 강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강남 고가 아파트는 신고가 랠리를 펼치며 통계수치를 무력하게 만든 것이다. 신고가 랠리가 비단 강남권에만 그치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12월에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파르크한남’이 역대 아파트 최고 매매가를 경신하는 기록을 썼다. 파르크한남 2층 전용면적 268.95㎡가 120억원에 팔려 신고가를 기록한 것이다. 파르크한남 전용 268.67㎡는 지난해 11월에 117억원에 매매 계약서가 오가면서 역대 최고가를 기록한 바 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용산은 한국 주거의 최중심지로 도약하고 있는 핵심 입지”라며 “앞으로도 한남동 일대 고급 주택에 대한 수요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 지난해 말 서울 송파구 신천동 소재 오피스텔인 ‘롯데월드타워앤드롯데월드몰(시그니엘 레지던스)’ 전용 489.79㎡가 245억원에 실거래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1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대지면적 627.4㎡의 한 단독주택은 300억원에 매매 계약되면서 서울 단독주택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종전 최고가는 2014년 11월에 팔린 중구 장충동1가 대지면적 1645㎡ 단독주택(291억7370만원)이었는데 당시 거래와 비교해 땅 면적이 더 작은데도 가격은 훨씬 높게 나온 것이다.
‘똘똘한 한 채’ 현상 심화는 비단 서울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지난 1월 부산 해운대구 인근 펜트하우스 아파트가 75억원에 팔리며 부산 역대 아파트 최고가를 갈아치운 게 대표 사례다. 1월 18일 해운대경동제이드 전용 234㎡은 75억원에 계약서가 오갔다. 직전 거래는 2016년 3월에 있었는데 당시 거래가격은 27억8067만원이었다. 6년여 만에 시세가 무려 47억원 오른 것이다.
해운대경동제이드는 2012년 11월 입주한 11년 차 아파트다. 가장 큰 펜트하우스는 전용 260㎡인데 단 1채만 있다. 234㎡는 2채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거래됐다. 탁 트인 해운대 바다 뷰로 입소문을 타는 곳이다. 단지 바로 앞이 바닷가여서 조망을 해칠 일이 전혀 없다. 또 고급 설계와 대형 테라스 등을 갖춰 탁월한 주거 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층고가 일반 아파트보다 높고 공간이 넓은 복층 구조의 펜트하우스 설계를 채택했다. 해운대경동제이드가 최고가 기록을 세우기 전까지 부산에서 최고가 아파트는 해운대구 중동 소재 엘시티더샵이었다. 해운대 엘시티 더샵 전용 185㎡이 2021년 5월 43억5000만원(46층)에 거래된 바 있다.
▶거래 실종 단지도 속속 등장
반면 20억~30억원 전후로 거래되는 고가 아파트는 심심찮게 조정받은 가격에 거래가 체결되는 분위기다. 서울 대표 재건축 단지 중 하나인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76㎡는 지난 1월 9층 매물이 24억9000만원에 거래돼 지난해 11월 11층 매물이 26억3500만원(11층)에 매매된 것과 비교해 실거래가가 1억4500만원 떨어졌다. 대치동 래미안대치하이스턴 전용 110㎡도 1월 28억원에 실거래가가 찍혀 지난해 8월 기록한 30억원보다 2억원 떨어졌다.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전용 124.22㎡ 역시 1월 30억5000만원에 실거래돼 직전 거래(35억원) 대비 4억5000만원 낮은 가격에 계약서가 오갔다. 송파구 신천동 파크리오 전용 84.9㎡ 역시 1월 21억6400만원에 거래돼 지난해 10월 찍은 25억2000만원 대비 시세가 내려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선을 전후해 시장 불확실성이 높아지며 거래가 실종되는 단지도 속속 나오는 분위기다. 부동산 매도·매수 결정을 대선 이후로 미루려는 심리가 짙어진다는 얘기다. 이런 국면에서는 매수자와 매도자 간 눈치싸움이 이어지며 거래까지 이어지기 힘든 분위기로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