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이 이례적으로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하는 중간 인사를 5월 말 단행했다. 후임으로 장용호 신임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추형욱 신임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가 임명됐다. 두 사람을 함께 선임한 것은 그룹의 핵심 계열사이자 에너지 사업을 총괄하는 SK이노베이션의 위기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계열사 간 합병을 통해 자산 105조원 규모의 아시아 최대 에너지기업으로 재탄생하며 도약할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실적 부진이 장기화하며 수장 교체를 단행했다.
총괄사장에 부임할 장용호 SK(주) 사장은 그룹 내에서 신사업 투자와 포트폴리오 확장에 탁월한 역량을 보여온 인물이다. 1989년 SK이노베이션의 전신인 유공에 입사한 후 SK(주) 포트폴리오매니지먼트(PM) 부문장, SK머티리얼즈 대표이사, SK실트론 대표이사를 역임하며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실적 향상과 성장 기반 마련에 역할을 했다. 이번 인사로 그는 SK(주) 대표이사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을 겸임한다. 무엇보다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비롯해 오너가의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다는 점이 이번 발탁 배경으로 손꼽힌다. SK이노베이션 실적 부진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변화하는 경영 환경에 빠르게 대응하고 투자 관리와 리밸런싱에 최적화됐다는 평을 받는다.
SK그룹 내 전략통이자 50대 기수인 추형욱 신임 대표이사는 합병 6개월여 만에 통합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직을 맡는다. SK그룹 내 대표적인 젊은 경영인으로 에너지 신사업과 수소 생태계 구축에 탁월한 성과를 보여왔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 이후 E&S CIC 사장과 시너지추진단장을 겸임하며 양사의 역량 결집을 통한 사업 경쟁력 강화를 이끌어온 만큼 에너지기업 경영 전문성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관건은 SK이노베이션이 이례적인 경영진 중간 교체라는 초강수를 둔 만큼 얼마나 빨리 위기 극복의 구심력을 확보하느냐다. 특히 사령탑 2명이 어떻게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인지에 관심이 쏠린다.
최우선 과제는 실적 개선이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1분기(연결 기준) 매출 21조 1466억원, 영업손실 446억원을 기록하며 1개 분기만에 적자 전환했다. 최근 4개 분기 중 지난해 4분기를 제외한 3개 분기가 영업 적자일 만큼 실적 악화가 만성화되는 모습이다. 핵심 계열사인 정유, 석유화학, 배터리 사업이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와 이에 따른 마진 축소로 줄줄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또 이번 SK이노베이션 경영진 교체가 그룹 차원의 ‘예고 조치’인 만큼 하반기에 더욱 과감한 사업 구조 개편과 인력 조정 방안이 논의될 가능성도 크다.
실제 최고경영자(CEO) 교체로 SK이노베이션을 이끌게 된 장용호 총괄사장이 하반기 본격적인 리밸런싱(사업 재편)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실적 부진과 성장동력 부재 이중고에 빠진 SK이노베이션의 체질 개선을 위해 긴급 투입된 장 총괄사장 행보에 눈길이 쏠린다.
장 총괄사장은 취임 직후 임직원에게 “SK이노베이션을 다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회사로 만들어가자”고 화두를 던졌다. SK이노베이션 계열 전체 구성원들에게 보낸 첫 이메일 메시지에서 이같이 말하며 구체적인 실행 방안으로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운영개선(OI), ‘원팀 스피릿’을 언급했다.
장 총괄사장은 우선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은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라며 “포트폴리오 경쟁력 강화 방안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전사적으로 힘을 결집하자”고 당부했다. 또 그는 “사업 자회사(OC)와 사내독립기업(CIC)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OI를 추진하겠다”며 “회사별로 현장에서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굴해 실행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이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장 총괄사장은 “무엇보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SK이노베이션 계열 리더와 구성원이 힘을 모으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며 “우리 앞에 닥친 숙제들은 한마음 한뜻이 되지 않으면 풀기 어려운 문제”라고 밝혔다. 이어 “제가 가장 먼저 앞장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구성원 여러분도 원팀 스피릿으로 실행에 힘을 모아달라”고 덧붙였다. 취임 후 장 총괄사장은 최근 계열사별 사업보고를 마무리 짓고 취임 후 첫 직원 대상 타운홀미팅을 개최하며 발빠른 행보에 나섰다. 취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핵심 사업 현황을 점검하고 비주력 사업 정리와 지분 매각을 위한 조감도를 그려나가는 셈이다.
장기 부진이 계속되는 계열사 리밸런싱이 우선 추진된다. 올해 1분기(연결기준) 44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1분기 만에 적자 전환한 SK이노베이션은 화학 부문(SK지오센트릭)과 소재 부문(SK아이이테크놀로지)이 각각 1143억원, 548억원의 영업적자로 우려를 키웠다. 배터리 부문(SK온)은 2993억원 적자로 계열사 중 적자폭이 가장 컸다. SK 관계자는 “부진한 계열사나 비주력 사업에 대한 매각과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며 “다양한 리밸런싱 카드를 검토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실적 호조를 보이고 있는 알짜 계열사라도 예외는 아니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리밸런싱 추진에 성역이 없다는 뜻이다. 지난해 11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합병한 도시가스·액화천연가스(LNG) 에너지 계열사 SK이노베이션 E&S가 대표적이다. SK이노베이션 E&S는 올 상반기부터 도시가스 사업 자회사의 핵심 부동산 자산인 대치동 코원에너지서비스 용지 매각을 진행 중이다. 아울러 핵심 캐시카우인 LNG 발전 사업과 관련된 자산 유동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SK 관계자는 “현재로선 확정된 바가 없다”며 “지분 매각 등 다양한 방안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1분기 1214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윤활유 계열사 SK엔무브와 미래 사업으로 낙점한 배터리 계열사 SK온 역시 리밸런싱 대상이다. 다만 당초 상장 등을 통해 자금 확보에 나설 예정이었던 SK엔무브는 금융당국의 규제 강화와 새 정부 정책 리스크 등으로 당분간은 상황을 관망할 것으로 관측된다.
SK온에 대한 구조조정도 하반기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통합 SK이노베이션 출범, SK온·SK엔텀·SK트레이딩인터내셔널(SKTI)의 3사 합병 등 SK이노베이션의 주요 리밸런싱이 SK온의 경쟁력 회복과 재무 건전성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만큼 향후 SK온을 둘러싼 리밸런싱 방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CEO 회의인 경영전략회의에서 리밸런싱 방향을 설명한 장 총괄사장은 19일 오전 전 직원을 대상으로 타운홀미팅을 열고 향후 쇄신 방향을 직접 공유할 예정이다. 특히 하반기 SK이노베이션의 운영 방안과 핵심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직원들과 내부 공감대를 형성해 조직 내 불안감을 해소할 것으로 보인다. 장 총괄사장이 직원들과 직접 소통에 나선 것은 취임 후 이번이 처음이다. 회사 운영 방식 전반에도 장 총괄대표식 ‘실용주의’ 기조가 반영될 예정이다. 지난 5월 초 임원 오전 7시 출근, 출장 축소 등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한 SK이노베이션은 보다 실무적으로 적용 가능한 액션 플랜을 수립해 각 계열사와 부서 맞춤형 전략을 수립해 나갈 방침이다.
한편 이번에 물러난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사장은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인재육성위원회 위원장과 써니(mySUNI) 총장으로서 SK그룹 인재를 키우는 일에 힘을 쏟는 동시에 SK이노베이션 일본 담당으로서 일본 내 사업 기회 확보 등에 매진할 예정이다.
[추동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