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거리는 샛강도 바위도 나의 형제다
<무탄트 메시지>라는 책이 있다. 부제가 눈길을 끈다.
‘그 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담은 책일까. 예방 의학을 전공한 의사 말로 모건은 호주에 초청받아 의료 활동을 하던 중 호주 원주민들의 세계를 접한다. 그는 어느 날 원주민 집회에 초대되었다가 사막 오지에 사는 원주민들과 넉 달에 걸친 도보 여행을 하게 된다. 그때 경험하고 깨달은 원주민의 세계를 기술한 책이 <무탄트 메시지>다.
무탄트(Mutant)는 원주민들이 저자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돌연변이’라는 뜻으로 어떤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서 원래의 모습을 상실한 상태를 말한다. 원주민들이 보기에 모건은 인간 원래의 모습을 상실한 존재였다. 모건은 원주민들과 여행하며 시시각각 문명사회에서는 만나지 못했던 감동을 느낀다.
“우리는 모래에 기다란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빨갛게 달궈진 숯을 깐 다음 모래를 살짝 덮었다. 그리고 그 위에 누워 가죽을 반은 깔고 반은 덮었다. 한 구덩이에 두 사람씩 들어가서 잤다. 그런 식으로 둥글게 원을 그리고 발을 한가운데 모은 채로 잠이 들었다. 머리 위에 펼쳐진 드넓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일이 생각난다. 아름답고,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사랑 넘치는 사람들의 실체가 내 곁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두 명씩 들어가 누운 구덩이 사이마다 작은 모닥불을 피워 놓고 데이지 꽃처럼 원을 그리고 누워 있는 이 영혼들이 갑자기 나를 가슴 벅차게 만들었다.”
멋진 풍경이다. 서로 발을 맞대고 둥그렇게 누워 별을 보면서 자는 의식은 얼마나 충만한 것이었을까. 자연의 모든 에너지를 몸으로 받아들이고, 나 역시 자연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그 의식은 얼마나 평화로운 것이었을까.
모건과 함께 여행을 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부족은 백인들이 ‘오스틀로이드’라 부르는 부족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참사람’이라 부른다. 원주민들은 동물, 나무, 풀, 구불거리는 샛강, 심지어 바위와 공기조차도 우리와 한 형제이며 누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그들에게 돌개바람과 함께 몰려와 어머니 대지를 파헤치고, 강을 더럽히고, 나무를 쓰러뜨리는 문명인들은 ‘돌연변이’다. ‘참사람’ 원주민들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만큼 타인을 중시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사회는 차별이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가 각기 다른 영혼을 지녔으므로. 원주민은 모건에게 이런 말을 한다.
“우리가 하나라는 건 우리 모두가 똑같다는 말은 아닙니다. 모든 존재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독특한 존재입니다. 두 개의 나뭇잎 조각이 같은 자리를 차지하는 법은 없지요. 하나하나의 조각을 자기 자리에 놓음으로써 나뭇잎이 완성되듯 각자의 영혼도 자신만의 유일한 자리를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자리로 옮겨 가려고 애를 써볼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모두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맙니다.”
캐시 프리먼
▶그녀의 문신 “나는 자유로우므로”
책을 보면서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여자 400m 결승.
카메라가 출발 선상에 선 선수들의 모습을 한 명씩 비춰주고 있었다. 6번 레인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여자선수가 눈에 들어왔다. 호주 대표이자 우승 후보인 캐시 프리먼이었다.
카메라가 포착한 그녀의 오른쪽 어깨에는 선명한 문신이 있었다. ‘cos I am free(나는 자유로우므로)’라고 새겨진 문신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조상에게 물려받았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그녀는 성(姓)도 자유인을 뜻하는 ‘Freeman’이었으니 궁금증이 안 생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날 경기에서 우승을 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극적인 승리였다. 경기막판 전력질주를 시작해 2m 이상 앞서 있던 선수를 제치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드라마였다.
그렇다. 그녀는 호주 원주민(애보리진)이었다. 그날 그녀는 한 맺힌 호주 원주민의 슬픈 역사와 한을 작은 어깨에 지고 트랙을 달렸던 것이다. 캐시 프리먼은 시상대에 서기까지 참 먼 길을 돌아와야 했다. 호주에서 백인이 살기 시작한건 채 300년이 안됐다. 유사 이래 그 땅에는 애보리진들이 살았다. 하지만 백인들의 무기 앞에서 백인들이 가지고 온 전염병 앞에서 그들은 무너졌고, 호주는 백인들이 지배하는 땅이 됐다. 살아남은 애보리진들은 비인간적인 차별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어려서부터 육상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캐시 프리먼은 국제 대회에서 입상할 때마다 호주 국기와 원주민 국기를 함께 들고 트랙을 돌았다. 호주 백인들은 이를 못마땅해 했지만 실력이 뛰어난 그녀를 국가대표로 뽑지 않을 수가 없었다. 캐시 프리먼이 끝까지 찾고자 했던 단어는 ‘자유’였다.
애보리진에게는 자유가 없었다. 그녀의 부모세대까지 애보리진들은 백인들이 정해준 보호구역에 갇혀 살아야 했다. 강제동화정책에 의해 모든 것이 제한되어 있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자신들의 땅에서 자유를 빼앗긴 삶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녀에게 자유는 신성한 꿈이었다. 그녀는 자유를 위해 전 인생을 걸고 트랙을 달렸다.
시팅불 추장
▶인디언, 그들은 정말 패배한 문명이었을까
호주 이외의 다른 대륙 원주민들은 모두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우리가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해 알고 있는 얕은 지식의 상당부분은 서부영화를 통한 것들이다. 오해는 바로 이런 선입견에서 생긴다. 인디언들이 처음부터 백인들을 적대시한 건 아니었다. 인디언들은 신대륙에 찾아온 백인들을 손님으로 극진하게 대접했고 새로운 환경에 익숙하지 못한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백인들이 손님이 아닌 정복자로서의 마각을 드러내면서 역사는 꼬이기 시작했다.
백인들은 인디언 사회에 조약이니 규칙이니 하는 문서들을 들이대면서 약속을 요구했다. 백인들의 언어로 된 이 약속들은 대부분 인디언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특히 땅을 팔라는 요구는 황당한 요구였다. 하늘과 공기와 물이 내 것이 아니듯, 땅도 내 것이 아니라 자연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인디언들에게 이 요구는 하늘을 팔라는 요구와 동일한 것이었을테니 말이다.
결국 양쪽은 적이 되어갔다. 땅을 빼앗기 시작하는 백인들에 맞서 과격한 부족들은 전쟁을 벌였고 백인의 문서를 받아들인 부족들은 황무지 보호구역에 갇혀 서서히 죽어갔다. 시팅불(Sitting Bull)은 인디언이 마지막 저항을 하던 무렵 수우족의 추장이었던 인물이다. ‘앉은 황소’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는 체구가 웅장했고 믿음직했다고 전한다. 백인과의 전투가 한창이던 어느 날 시팅불은 백인 지휘관에게 편지를 쓴다.
“나는 이곳에서 사냥하고 싶다. 나는 당신네가 이곳에서 물러나길 원한다. 만일 물러나지 않는 다면 나는 당신들과 싸울 것이다. 나는 당신들이 가진 것을 그대로 둔 채 이곳에서 물러나길 바란다. 나는 당신의 친구다.”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편지다. 아직도 백인을 손님이라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 간접적으로 느껴지는 편지의 내용은 슬프기까지 하다. 백인들은 이미 순진한 추장의 머리꼭대기에 있었다. 그리고 역사는 비정하게도 백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대표적인 인디언 부족 중 하나인 체로키족의 기도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하늘의 따뜻한 바람이 그대의 집에 부드럽게 불기를.
위대한 정령이 그 집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리시기를.
너의 가죽신이 눈 위에 행복한 발자국을 남기기를.
그리고 무지개가 항상 너의 어깨에 닿기를.
인디언들은 일찍이 미래를 내다보며 자연과 인간을 존중했다. 인디언들의 인사말인 “미타쿠예 오야신(Mitacuye Oy asin)!”은 ‘우리는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얼마나 놀라운가. 대단한 문명을 이룩해냈다고 자부하는 현대인들이 환경파괴 등을 겪으며 이제야 깨달은 진리를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저 한마디 인사말에는 지금 인류가 겪고 있는 수많은 정치 경제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들어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말했다.
“그들은 자연의 친구가 되어 이 강과 호수 위를 노 저어 다녔으며, 이 숲 속을 거닐었고, 바다와 숲에 얽힌 그들만의 전설과 믿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연과 하나였다.”
백인들에게 아메리카 대륙은 소유의 대상에 불과했지만 인디언들에게 땅은 친구이자 자신들이 깃들어 사는 거대한 정령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정착이나 소유는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미국 정부가 파견한 위원들이 인디언 보호 구역을 제안하자 사탄타 추장은 “나는 정착하고 싶지 않다. 대초원을 떠돌아다니고 싶다”고 외쳤다. 인디언들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친구이자 정령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집도 짓지 않았다. 여름에는 여름대로, 겨울에는 겨울대로 살기에 적당한 곳을 찾아다녔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변형시키는 건 그들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우리는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땅과 물과 바다에 금을 긋고 주인행세를 하는 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