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경의 1막1장] 스릴러 뮤지컬 <스위니 토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복수하는 한 이발사의 광기
입력 : 2019.11.29 16:13:23
수정 : 2019.12.01 16:49:07
▶섬뜩하고 잔인한 매혹적 걸작
우리나라 최악의 장기 미제사건인 ‘화성연쇄살인사건’ 진범의 정체가 30년 만에 드러났다. 그동안 영화 <살인의 추억>, 연극 <날 보러 와요>에서 이를 다루며 수면 위로 끄집어 올렸던 ‘범인은 반드시 잡힌다’는 열망이 확신으로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대중에게 잔혹한 살인마의 등장은 전혀 달갑지 않지만 작품적으로는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 스릴러가 된다. 그래서 희대의 살인마 사이코패스를 다루는 이야기가 베스트셀러가 되거나 공연으로 제작되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 경악스런 범인에게는 일말의 동정도 품지 않지만 무색무취의 냉혹함을 섬세하게 연기한 배우는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는다. 감정의 문제를 왜곡된 그로테스크 행동으로 잔혹하게 표출하다가 결국에는 파국의 철퇴를 맞는 뮤지컬 <스위니 토드>와 <지킬 앤 하이드>가 주목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살인자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스위니 토드>는 섬뜩한 살인마를 변호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있지만, ‘신’이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브로드웨이의 살아있는 전설 스티븐 손드하임(89)의 웅장한 음악과 치밀한 예술적 전개가 소름끼치는 내용을 만회한다.
▶소설 <스위니 토드>의 탄생에 얽힌 역사적 배경
18세기 후반, 영국에서는 제임스 와트가 개량한 증기기관으로 면직물을 대량생산하고 철강 산업의 새로운 에너지원인 석탄을 캐면서 1차 산업혁명이 시작했다. 이는 기존의 사회적·경제적 구조가 송두리째 변화되는 신호탄이었다. 하지만 일한 만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일자리를 찾아 런던으로 몰려든 헐벗은 농장노동자들은 도시노동빈민이라는 나락으로 다시 떨어질 뿐이었다. 한정된 일자리에 경쟁까지 과열되다보니 화려한 자본주의 신사들이 거니는 고풍스러운 건물 뒤편에 가난에 찌든 노동자들이 노숙하며 알코올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버티는 역설적인 모습도 익숙한 도시풍경이었다.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배경인 런던 플릿 스트리트는 대표적인 법조지역으로 법원과 법조인들의 오피스가 밀집되어 있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상반된 두 계층이 마주하는 음습한 무대에는 스릴 넘치는 긴장감이 맴돈다. 뮤지컬은 겉으로는 위대한 업적으로 추앙받지만 불안과 공포로 얼룩진 어둠의 범죄가 만연했던 19세기 런던 무소불위 권력자들의 추악함과 이에 기생해야 했던 소시민들, 그리고 핍박받는 약자들의 소외를 그린다. 사회적 부조리를 꼬집은 뮤지컬 <스위니 토드>는 뮤지컬이 돈을 벌기 위한 상업공연에 불가하다는 예술적 편견을 과감히 깨뜨린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그래서 뮤지컬이란 장르의 예술성을 한 차원 끌어올린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발사 벤자민 바커(조승우, 홍광호, 박은태 분)는 아름다운 아내 루시와 딸 조안나(최서연, 이지수 분)와 풍족하지는 않지만 남부럽지 않은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루시에게 욕정을 품은 터핀 판사(김도형, 서영주 분)는 그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호주로 쫓아내고 그의 아내를 희롱한 뒤 버린다.
이 후 판사는 혼자 남겨진 바커의 어린 딸 조안나를 키우지만 아름답게 자란 그 딸마저 넘보려는 속내를 가지고 있다. 15년 형을 살고 런던으로 돌아온 바커는 제일 먼저 가족의 행방을 찾는다. 러빗 부인(옥주현, 김지현, 린아 분)에게 부인과 딸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바커는 분노에 이글거린다.
그는 스위니 토드로 이름을 바꿔 신분을 위장하고, 러빗 부인의 파이가게 2층에 이발소를 차린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불행으로 몰아넣는 ‘터핀 판사’와 세상을 향해 무참한 복수극을 벌인다. 뮤지컬은 작품의 독(毒)이 될 줄 알았던 엽기적인 카니발리즘(살해한 인육으로 파이를 만든다는 설정) 악행을 작품의 약(藥)으로 승화시키며 긴장감 넘치고 빈틈 없는 롤러코스터 전개를 펼친다.
▶스위니 토드는 실제 존재했던 살인마일까?
영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살인마 잭(1888년 런던에서 최소한 5명의 매춘부를 죽인 살인범)을 다룬 체코 뮤지컬로 인해 뮤지컬 <스위니 토드>가 실제 이야기로 착각되기도 하지만 살인마 잭처럼 범행이 발각되어 처형되었다는 스위니 토드의 재판 기록이나 신문기사는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19세기 중반 1500만 명이 넘는 대도시 런던의 노동자는 하루 벌어 하루 쓸 뿐, 여흥을 즐길 만한 마땅한 취미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들을 위한 1페니(지금의 500원가량)의 선정적인 연재소설집 페니드레드 시리즈가 주·월간으로 간행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행해진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단발성으로 집필되어 한 번 읽히곤 폐기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1848년 이러한 소설물인 <피플즈 피리어디컬(The People’s Periodical) 7권>에 실린 <스위니 토드>는 무명작가 토마스 포레스트의 이름을 후세에 알린다.
포레스트는 거리에 즐비한 이발소와 파이가게를 살인과 연관시켜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지금은 이발소가 머리를 손질하는 곳으로 인식되지만, 18세기 이전 유럽에서는 간단한 외과 수술과 치과 수술도 의사가 아닌 이발사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16세기부터 내려오는 이발소의 상징인 빨간색과 흰색 사선 회전봉은 피와 붕대를 의미한다. 이발소에서 피로 물든 붕대가 발견되어도 전혀 의심받지 않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의 소설은 엽기적이고 자극적인 괴담만 드러냈고 많은 이들이 인상을 찌푸리는 끔찍함으로 입소문 났다. 이후 많은 작가들에 의해 스릴러, 추리소설 등의 여러 버전으로 재창작되었으나 대부분 진심을 비아냥거리고 미덕을 조소하고 악덕을 과장하는 통속적인 작품뿐이었다. 1973년 영국의 극작가 크리스토퍼 본드(74)는 악마로 변할 수밖에 없었던 ‘스위니 토드’의 비극적 동기를 새로 불어넣어 연극으로 재탄생시켰다.
연극을 본 작곡가 손드하임은 연출자 헤롤드 프린스와 손을 맞잡고 뮤지컬 제작에 박차를 가했다. 1979년 스위니 토드는 토니어워즈에서 최우수 뮤지컬상, 최우수 극본상, 최우수 음악상을 포함하여 총 8개 부문을 휩쓸며 명실상부 최고의 예술성을 가진 뮤지컬임을 입증했다. 또한 이 작품은 뮤지컬뿐만 아니라 현대오페라 장르로도 오페라극장에 오른다. 1984년에 뉴욕 시티 오페라단 시즌 레퍼토리에 오르며 오페라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시카고 리릭 오페라단, 캐나다 칼가리 오페라단, 런던 로열 오페라단 등 세계 각국의 오페라단에서 단골로 공연되는 현대 오페라다.
▶업그레이드되어 다시 만나는 뮤지컬 2019 <스위니 토드>
자칫 한국적 정서에 반할 수 있어 호불호가 나뉘지만 2016년 캐스팅 공개 당시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을 정도로 호응 받았던 뮤지컬 <스위니 토드>는 폭발적인 인기로 오디컴퍼니의 베스트셀러 작품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브로드웨이 초연 40주년을 맞이하여 에릭 쉐퍼의 연출로 새로이 업그레이드된 <스위니 토드>가 2016년에 이어 다시 돌아왔다.
2분 만에 매진된 진기록을 세운 옥주현·조승우 명품콤비 공연뿐만 아니라 국내 최정상배우와 실력파 크리에이티브팀이 만난 <스위니 토드>는 관객의 발걸음을 샤롯데씨어터로 이끌고 있다.
<스위니 토드> - 165분
·공연일시 : 2020년 1월 27일(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