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고 멋진 자태와 최고의 브랜드 가치를 갖고 있는 명품들은 엄청난 몸값으로 인해 언제나 모든 이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모두가 갖고 싶어 하지만, 누구나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바로 ‘명품’이 되는 것이다.
자동차 업계에도 이런 명품이 있다. 바로 세계 3대 럭셔리카로 불리는 롤스로이스, 벤틀리, 마이바흐다. 이중 마이바흐는 모기업인 다임러가 생산을 중단한 후 자회사인 메르세데스-벤츠의 플래그십세단인 S클래스의 최고급 버전으로 생산을 재개했으나, 과거의 명성에서 퇴색한 모습이다. 반면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는 여전히 최고급 명차로 불리며 럭셔리카의 지존으로 대접받고 있다.
특히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는 최고급 럭셔리카 라이벌이란 관계를 떠나, 같은 고향(영국) 출신임에도 현재는 모두 독일계 자동차기업들의 소속이란 점이 흥미롭다. 또한 최고급 브랜드임에도 한때 한집안 식구로 지내왔다는 점도 자동차 마니아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로 손꼽힌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최고급 명차를 만들어온 롤스로이스와 벤틀리. 영국 왕실의 공식 의전차량이면서 100년의 시간을 경쟁해온 두 브랜드의 길고 긴 라이벌 관계를 되짚어봤다.
VIP를 위한 최고의 럭셔리카, 롤스로이스
롤스로이스는 완벽한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같은 꿈을 꿨던 두 사람에 의해 시작됐다. 바로 찰스 롤스와 헨리 로이스다. 찰스 롤스는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이튼스쿨과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후 런던에서 자동차 판매점 겸 정비소를 운영했다. 헨리 로이스는 가난한 제분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여러 직업을 거친 뒤 엔지니어로 성장했다.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왔던 두 사람은 1904년 맨체스터에서 조우했다. 찰스 롤스가 지인들의 소개로 헨리 로이스를 만난 것이다. 당시 찰스는 헨리가 만든 2기통 10마력 엔진의 프로토타입 차량을 직접 시승한 뒤, “오늘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엔지니어를 만났다”며 동업을 제의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2년 뒤 두 사람의 이름을 딴 ‘롤스로이스’란 브랜드로 등장했다. 럭셔리카의 지존으로 불리는 롤스로이스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1907년 전설로 평가받는 세계 최고의 차 ‘실버고스트’를 출시했다. 하지만 1910년 찰스가 비행기 사고로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그러나 헨리는 꾸준하게 자동차 생산에 나섰고, 영국 더비와 크루에 공장을 설립하며 럭셔리카 브랜드로서의 위상을 단단히 다져갔다. 실버고스트 이후 또 하나의 전설로 불리는 ‘팬텀’을 출시한 헨리는 1930년 영국 왕실로부터 자동차산업에 기여한 공로로 남작 지위를 받았고, 이듬해인 1931년에는 라이벌이었던 벤틀리마저 인수한다. 이후 세계대전 기간 동안 항공기와 전함의 엔진을 만들며, 규모를 키워갔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부터 불어닥친 불황과 석유파동으로 롤스로이스는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1973년 자동차 부문을 독립시켜 롤스로이스모터카를 설립한다. 항공기 엔진 부문은 롤스로이스 PLC로 남았다. 최고급 차로서 명성은 쌓았지만, 수작업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던 롤스로이스는 낮은 이익률로 인해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1998년 폭스바겐에게 영국 크루공장과 계열 브랜드였던 벤틀리를 매각했으며, 롤스로이스 브랜드는 BMW그룹에 매각됐다. 이후 2003년부터 롤스로이스는 미니의 고향인 영국 굿우드 공장에서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오랜 기간 부침을 겪었던 롤스로이스는 경영에 어려움을 겪기는 했지만, 자동차에 대한 정체성을 잃은 적이 없다. 언제나 쇼퍼드리븐을 위한 최고의 차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쇼퍼드리븐은 운전은 기사에게 맡기고, 오너는 뒷좌석에 앉아 편안하게 주행을 즐길 수 있는 차를 의미하는데, 통상적으로 뒷좌석에 모든 편의사양이 집중돼 있으며 뒷좌석 탑승객을 위해 설계했기 때문에 편안하고 여유로운 승차감을 갖고 있다. 롤스로이스가 ‘달리는 호텔’로 불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롤스로이스는 보는 순간 압도당할 것 같은 거대하고 웅장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파르테논 신전의 거대 기둥을 연상시키는 프런트 라디에이터 그릴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10cm 정도로 솟아 있는 ‘환희의 여신상’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자태와 가치를 보여준다.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여신상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환희의 여신상’은 1911년부터 장착됐는데, 이후 롤스로이스의 상징이 됐다. 업계에 따르면 롤스로이스는 통상 1대를 제작하는 데 2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내장재로 쓰이는 가죽 작업에만 60여 명 이상의 장인들이 동원되며, 차량을 주문한 소비자들의 신체적인 특징과 취향, 그리고 요구사항에 맞춰 한 대당 보통 450여 개의 가죽 조각들과 200여 개 이상의 패딩 부품을 사용한다. 여기에 사용되는 소가죽을 만들기 위해 직접 소를 기르고 있다. 내부를 감싸는 무늬목 역시 남다르다. 마호가니, 오크, 엘름, 버드 아이 메이플, 월넛, 피아노 블랙 등 6가지 색상을 선택할 수 있는데, 좌우 대칭이 꼭 맞게 짜 맞춘다. 이 역시 직접 재배한 나무에서 채취한다. 또 차량 내부 지붕에 쓰이는 헤드라이너는 순면 90%와 캐시미어 10%가 섞인 보송보송한 재질로 구성되며, 바닥 깔개는 캘리포니아산 어린 양털이 사용된다. 럭셔리카의 지존으로 불리는 만큼, 부호들의 천국인 중동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롤스로이스는 이들을 위해 ‘플러스 옵션제도’도 두고 있는데, 이 가격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중동 부호들의 경우 내장을 모두 도금해 달라고 요청하는데, 이를 위해 특별한 도금방법을 고안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코오롱그룹이 롤스로이스의 딜러를 맡고 있다.
코오롱그룹의 롤스로이스모터카에 따르면 국내에 출시된 롤스로이스는 총 3종류다. 플래그십모델인 ‘팬텀’과 엔트리급으로 분류되는 ‘고스트’, 그리고 스포츠모델인 ‘레이스’가 있다.
스포티한 감성의 화려한 럭셔리카, 벤틀리
1912년 스피드에 빠진 월터 벤틀리와 동생 호레이스 벤틀리에 의해 설립된 벤틀리는 스포티한 주행감성과 화려한 디자인으로 전 세계 셀레브리티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프랑스 자동차 수입상에 불과했던 이 형제는 스피드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튜닝카에 빠졌고, 결국 직접 자동차 제작에 나서면서 명차 벤틀리의 역사가 시작됐다. 라이벌인 롤스로이스보다 한발 늦게 출범한 벤틀리는 1919년 ‘3-리터’라는 최초 모델을 선보였다. 당시 3-리터는 획기적인 4기통 직렬 엔진을 장착했으며, 재규어를 디자인한 고든 크로스비가 제작한 보디를 얹으며, 멋진 모습과 뛰어난 주행성능이 자랑이었다. 특히 이때부터 벤틀리의 상징이 된 ‘날개 달린 B’ 엠블럼이 사용됐다. 특히 레이싱계의 리더였던 부가티와의 경쟁에서 승리하며, 스포츠카 마니아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1929년에는 6.5리터의 스포츠버전인 ‘스피드 식스’가 르망 레이스에서 우승하며 당대 최고의 메이커로서 성장했다.
창업주인 벤틀리 형제의 성격처럼 빠른 스피드로 업계 리더가 된 벤틀리는 그러나 미국 발 세계대공황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경영악화로 도산 위기에 몰린 벤틀리는 결국 1931년 롤스로이스와 가족이 됐다. 이후 벤틀리는 스포츠카 브랜드에 가까웠던 모습에서 럭셔리 스포츠세단으로 변신을 시작했다. 한때 ‘롤스로이스의 스포츠 버전’이란 비웃음을 듣기도 했지만, 특유의 물방울 디자인과 화려하고 럭셔리한 스타일, 그리고 놀라운 주행성능을 유지하며 다이내믹한 감각의 럭셔리카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그러나 1960년대 말 석유파동과 경기침체로 인해 결국 벤틀리는 롤스로이스와 함께 분사됐고, 앞서 밝힌 것처럼 1998년 크루공장과 함께 폭스바겐그룹에 인수됐다. 벤틀리는 긴 시간 동안 롤스로이스와 함께 있었던 탓에 비슷한 생산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과거 롤스로이스를 만들었던 영국 크루공장의 장인들을 통해 비스포크(맞춤생산) 방식으로 생산된다. 차량의 소유주는 변형이 가능한 모든 것들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데, 이를 모두 적용하면 10억 가지 이상의 조합을 만들 수 있다. 벤틀리의 최고급 모델인 뮬산의 경우 모든 공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되는데, 하루 생산량이 2~3대에 불과하며, 주문 후 인도까지는 최소 6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벤틀리의 가장 큰 특징은 폭발적인 주행성능과 화려하고 스포티한 디자인에 있다. 창업주인 벤틀리 형제가 스피드에 빠져 레이싱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차량을 개발했던 만큼, 역동적인 주행감각이 단연 돋보인다. 롤스로이스가 귀족을 위한 최고의 쇼퍼드리븐카라면 벤틀리는 주행성능을 강조한 최강의 오너드리븐 모델인 셈이다. 오너드리븐은 쇼퍼드리븐과 달리, 모든 편의사양과 안전장비, 주행감성 등을 운전자에게 집중시켜 개발된 차량을 의미한다. 뒷좌석에 타는 VIP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지만, 그래도 벤틀리의 진짜 모습을 경험하려면 직접 운전을 해야 한다. 화려하고 스포티한 감각을 가진 만큼, 디자인 역시 수려하다. 긴 후드와 짧은 데크는 스포츠카 스타일을 제대로 반영하며, 전면부의 커다란 격자형 라디에이터그릴과 물방울 헤드라이트는 벤틀리의 상징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가 벤틀리를 수입하고 있다. 한국에 출시된 벤틀리는 총 3개 모델로 플래그십세단인 ‘뮬산’, 엔트리급인 ‘플라잉스퍼’, 스포츠쿠페 스타일의 ‘컨티넨탈’을 판매 중이다. 주목할 점은 국내에서 벤틀리가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이다. 벤틀리는 대당 2억원이 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작년 한 해 322대가 판매됐다. 특히 플라잉스퍼가 지난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판매된 곳은 바로 서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