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원빈이 출연한 영화 <아저씨>는 세간에자주 회자된다. 원빈의 아름다운 외모, 셀프(?) 이발, 인상 깊은 액션 신들은 여심은 물론 ‘동네 아저씨’의 잊고 있었던 강력한 로망을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특히 뭇 남성들을 설레게 한 영화 <아저씨>의 액션장면은 이전 영화들과 차별화된 무언가가 있다.
해군 특수부대 UDU 교관 출신인 차태식(원빈 분)은 흔한 발차기 한 번 하질 않는다. 뿐만 아니라 크게 휘두르는 ‘훅’ 한 번 없이 경쾌한 리듬의 직선적인 손동작으로 많은 조연 아저씨들을 단숨에 오징어로 만들어버린다. 여리디 여린 체구의 차태식이 과한 몸동작이나 540도 화려한 발차기로 수많은 적을 쓰러뜨렸다면 영화 <아저씨>는 흔한 액션 범주에 속할 가능성이 컸다. UDU 섬멸조의 무시무시함과 리얼함은 이러한 거품을 뺀 격투장면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타이밍에 나올 법한 질문 하나, 이러한 격투술이 실제로도 존재할까?
무술? No! 실전에 빛을 발하는 살상 기술
영화 <아저씨>에는 여러 가지 무술이 영화의 액션장면에 차용됐다고 한다. 그중에 간결한 맨손 격투와 단검을 들고 펼치는 마지막 클라이맥스 격투신 뒤에는 크라브마가(Krav Maga)라는 무시무시한 살상 격투술이 숨어 있다. 1946년 이스라엘의 이마이 리히텐필드(Imi Lichtenfeld)가 창시한 이 근접 격투술은 이슬람국가들에 둘러싸여 있는 이스라엘의 ‘죽여야 사는’ 현실이 반영됐다. 징병제가 유지되고 있는 이스라엘 국민들은 2년간의 군복무를 하는 동안 여성을 포함해 모두 기초적인 크라브마가 기술을 익힌다. 대테러 부대나 모사드는 보다 심층적인 살상 기술들을 익힌다고 한다. 실전에서 강력하게 다듬어진 격투술은 세계로 뻗어나갔다. 현재 세계 각국의 군대 및 정보기관은 크라브마가 훈련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전 세계 여러 나라의 특수부대와 민간 군사기업 등에서도 활발히 도입되고 있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본격적으로 받아들여 현재 FBI, CIA, SWAT의 정규 프로그램으로 채택됐고 대한민국 특전사, UDU 등의 공식 교육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다.
무술이 아닌 실전만을 생각하는 격투술인 만큼 폼이나 스포츠적인 규칙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급소를 공격하는 것을 치사하거나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특전사 특공무술 교관을 거쳐 이스라엘 현지에서 크라브마가를 갈고 닦고 돌아온 구본근 대한크라브마가(KKM) 대표는 “1 대 1뿐 아니라 1 대 다수의 대치 상황에서의 생존 시스템을 목적으로 전문가에 의해 만들어진 시스템이 크라브마가의 핵심 철학”이라고 밝혔다.
보다 생생하게 크라브마가를 느끼기 위해 도장을 찾아 훈련을 참관해봤다. 일반적인 도장과 다르게 실제 크기와 같은 모형 칼과 총기류가 비치돼 있었다. 훈련도 총칼을 든 상대에 맞서 재빠르게 치명적인 반격을 가해 제압하는 동작을 반복했다. 낭심 차기, 눈 찌르기 등 가격 시 큰 고통은 물론 치명적인 동작을 다양한 자세로 시뮬레이션했다.
주변 사물을 늘 무기로 활용하고 특히 입문단계부터 칼을 든 적과의 싸움에서도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방어와 동시에 치명적인 급소를 공격하는 일격 필살동작을 몸에 익혀 시스템화하는 것이 격투술의 핵심이라고 한다. 불필요한 동작을 제거한 방어와 공격이 함께 진행되는 동작들은 단순하지만 영화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빠른 스피드로 오가는 공방이 화려하게 느껴졌다. 입문자들은 한 합에 끝나는 동작들을 익히지만 점차 난이도가 올라가며 수차례 공방이 이어지는 다수와의 전투에 적합한 연속 타격기를 수련하게 된다. 일각에선 크라브마가가 실전을 전제로 개발돼 유도나 태권도처럼 규칙이나 품새가 없다고 알려졌으나 엄연히 띠와 체계화된 기술들이 존재한다. 흰 띠로 시작해서 노란 띠, 주황 띠, 초록 띠, 파란 띠, 갈색 띠, 검은 띠로 승급한다.
규격화된 품새는 없지만 수련자에게 불리한 상황인 상대가 권총이나 나이프를 들고 공격하는 여러 상황들을 상정해 두고 각자에 맞는 대응동작을 정해서 가르친다. 주로 상대방의 공격을 쳐낸 다음 낭심 공격, 박치기 등 급소를 효율적으로 공략해 상대에게 최대의 손상을 주는 순서로 되어 있다.
훈련은 체력훈련과 호신술을 조합한 지도가 약 1~2시간 행해지지만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 체력훈련보다 테크닉에 중점을 둔다. 수련이 정점에 이를 경우 이스라엘에서 교관자격을 주는데, 6명의 적과 실전과 다름없는 대결에서 제압할 정도의 실력을 갖춰야만 한다.
스토리·희소성 있는 호신운동
“성인이 되면 아이들이 많은 태권도나 합기도 도장에 찾아가 처음부터 격투기를 익히기 힘들잖아요? 크라브마가는 성인들 특히 체구가 작은 여성들도 호신용으로 익히기 쉬워 많이 찾습니다.”
구 대표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몇 번 들어도 이름이 쉽게 입에 붙지 않는 크라브마가는 성인들의 취미로서 아직까지 ‘레어 아이템’이라는 장점이 있다. ‘원빈과 <아저씨>·FBI·살상 격투술’ 등 이래저래 스토리나 풍성한 이야기 소재도 지닌 흥미로운 운동임에 틀림없다.
반면 “살상 무술을 배워서 뭐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이 올까?” 등의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훈련장면을 지켜본 결과 엄청난 운동량과 대응력, 반응력을 기를 수 있는 훌륭한 신체수련법이란 느낌은 확실히 들었다.
특히 운동량이 상당하다. 심박수를 올리기 위한 예비운동부터 상당한 칼로리 소모가 뒤따른다. 본 수업으로 호신 테크닉을 배우는데 상대에게 데미지를 주는 방법(펀치, 킥 등)이나 몸놀림(상대의 제압에서 빠져나가는 법 등) 역시 상당한 체력이 필요해 자연스럽게 최신 트렌드인 ‘잔 근육’을 탑재할 수 있다고 한다. 20대 초반의 왜소한 여성들이 재빠르게 총칼을 막고 반격을 가하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여자 친구나 여동생 혹은 딸이 있을 경우 위급한 순간을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추천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