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적으로 뿌려지는 광고성 쓰레기 메일을 스팸 메일이라고 한다. 여기서 스팸(Spam)은 시중에서 판매되는 돼지고기 햄 통조림의 브랜드다.
쓰레기 메일을 ‘스팸’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시청자가 질릴 정도로 엄청나게 광고를 해댔기 때문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소비자가 진저리 칠 정도로 ‘스팸’ 광고를 했던 적은 없다. 그런데 왜 쓰레기 메일을 스팸 메일이라고 부르게 된 것일까?
발단은 영국의 국영 BBC 방송이다. 1970년 런던의 스팸 스케치라는 카페를 무대로 한 인기 TV 시리즈 몬티 파이슨(Monty Python)의 코미디를 방영했다. 이 식당은 모든 음식 재료가 스팸이다. 메뉴에 적힌 음식이 계란과 스팸, 계란 베이컨과 스팸, 계란 베이컨 소시지와 스팸, 스팸 베이컨 소시지와 스팸 등등이다.
어떤 음식을 주문해도 스팸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으니 음식을 주문한 손님은 스팸 소리가 듣기 싫어 절망에 빠진다. 이때 코러스가 등장해 합창을 한다. “스팸, 스팸, 스팸, 사랑스런 스팸, 원더풀 스팸….”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코미디 시리즈 때문에 스팸은 쓸모없이 넘쳐나는 물건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됐다. 이후 1980년대 말, 인터넷 시대가 열리기에 앞서 먼저 전화선으로 연결하는 PC통신 시대가 시작됐다. 어느 악성 누리꾼이 PC통신 화면에 BBC 방송의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왔던 스팸 관련 대사를 무차별적으로 반복해 인용하면서 다른 사람의 접속을 방해했다.
이때부터 이런 악성 누리꾼이 무차별적으로 올린 글을 스팸이라고 부르다가 후일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쓸데없이 무더기로 쏟아져 들어오는 쓰레기 메일을 스팸 메일이라고 부르게 됐다. 쓰레기 메일에 스팸이라는 식품 브랜드가 붙게 된 유래다. BBC 방송의 코미디 프로그램 제작자는 스팸과 어떤 억하심정이 있었기에 사람들이 스팸이라는 음식만 보면 진저리를 치는 것으로 프로그램을 설정했을까? 사실 제작자의 의도적인 악의가 아니라 당시 영국의 상황을 반영한 프로그램이었다. 영국인들은 실제 스팸이라는 햄 통조림에 신물을 낸 데는 사연이 있었다.
스팸은 미국 미네소타 주에 있는 호멜식품(Hormel Foods)에서 만든 육가공 제품의 상표다. 호멜식품은 1926년 햄 통조림을 개발해 유명해진 회사로 햄은 돼지고기 뒷다리를 소금에 절이거나 훈제한 음식으로 전통적인 수제햄은 만들 수 있는 수량이 제한적이다. 호멜식품이 이런 햄을 통조림 가공식품으로 개발한 것이다.
하지만 전통 햄을 만드는 것처럼 돼지고기 뒷다리로 햄 통조림을 생산하다보니 문제가 생겼다.
하루에도 수 톤씩 쌓이는 부산물인 돼지 어깨살을 처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내다 팔자니 값도 싼데다 소비자들도 먹지 않으니 음식물 쓰레기로 처리해야만 했다. 호멜식품은 폐기물인 돼지 어깨살의 처리방법을 놓고 고심하다 어깨살을 갈아 다진 후, 전통 햄인 뒷다리 살을 혼합하고 여기에다 소금과 전분을 더해 햄과 비슷한 맛을 내는 새로운 통조림을 만들었다. 처음 햄 통조림을 개발한 이듬해에 호멜의 양념 햄(Hormel Spiced Ham)이라는 상표로 시장에 내놓았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소비자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호멜식품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수년에 걸쳐서 제품을 개량했다. 또 상표가 너무 밋밋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해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새로운 브랜드를 공모했다. 이때 당첨된 상표가 바로 스팸(SPAM)이다.
부산물 활용한 효자 상품으로 탄생
스팸을 보통 ‘가미한 돼지고기 햄(Spiced Pork And Ham)’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돼지 어깨살과 햄을 섞어 만들었다(Shoulder of Pork And Ham)”는 말에서 단어의 첫 글자만 따서 지은 이름이다. 당시 호멜식품 부사장의 동생이 지은 브랜드로 상금으로 100달러를 받았다.
호멜식품은 스팸 통조림을 1937년 시장에 내놓았고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바로 시장점유율 18%를 차지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스팸의 대박은 아직 시작도 아니었다. 1939년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햄 통조림, 스팸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전쟁으로 모든 물자가 통제를 받는 상황에서 고기와 채소 등 식품도 엄격하게 유통이 제한됐지만 햄 통조림은 통제 대상이 아니었다. 값싸고 풍부한 돼지 어깨살에다 소량의 뒷다리 살인 진짜 햄을 섞고, 여기에다 전분을 첨가해 만들기 때문에 필요한 양 만큼의 대량생산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미군 당국이 이때 햄 통조림, 스팸을 주목했다. 멀리 떨어진 전선의 병사들에게 신선한 고기를 공급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햄 통조림은 햄에 버금가는 맛이 나는 양질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손색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염분으로 가공한 통조림이니 냉동저장을 할 필요가 없어 군용 전투식량으로 공급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리하여 미군은 스팸을 병사들의 야전식량으로 보급하는 것은 물론 연합국인 영국과 러시아 병사들에게도 스팸을 공급했다. 연합군 병사들은 전쟁 내내 스팸을 먹으며 싸웠던 것이다.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애국 식품
스팸의 대박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전쟁 중에는 모든 물자가 우선적으로 전시 물자로 동원되기 때문에 민간에게 공급되는 양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배급제가 실시됐는데 영국은 독일 유보트의 해상 수송로 봉쇄에 따라 전쟁 발달 4개월 후인 1940년 1월 8일부터 단계적으로 배급제를 확대해 나갔다.
배급제 시행에 따라 영국인들은 거주 지역의 지정된 식품점에 등록을 하고 식료품을 살 때마다 현금과 함께 지급받은 배급통장을 가져가 통장에 쿠폰 도장을 찍었다. 예를 들어 계란은 2주일에 한 개씩 할당이 됐기 때문에 계란 쿠폰 도장을 한번 찍으면 2주일이 지나기 전까지는 아무리 돈을 많이 주더라도 다시는 계란을 살 수 없었다. 굳이 계란을 더 사야겠다면 불법인 암시장으로 가야 했다. 배급제도는 처음 베이컨과 버터, 설탕에서 시작해 3월에는 고기, 7월에는 차와 식용유, 잼, 치즈로 확대됐고 급기야는 전면적인 배급제가 시행됐다. 영국은 전쟁과 함께 시작한 배급 제도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에도 해제하지 않았고 약 10년이 지난 1954년에야 완전히 해제했다.
전쟁 중에 전면적인 배급 제도를 시행했다고 모든 식료품이 여기에 해당된 것은 아니었다.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는 식료품도 많았는데 예를 들어 감자나 생선은 자유롭게 살 수 있었고 수제 햄은 배급제로 물량이 제한됐지만 햄 통조림인 스팸은 마음대로 무한정 구입할 수 있었다. 미국이 일부는 원조물자로 또 일부는 수출식품으로 거의 무한정에 가까운 햄 통조림을 영국으로 보냈기 때문인데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물자부족에 시달리던 영국 정부는 스팸만큼은 배급 품목에서 제외할 수 있었다. 햄 통조림인 스팸 덕분에 영국인들은 군인이건 민간인이건 신선하게 저장한 수제 햄은 아니더라도 햄과 비슷한 맛과 느낌을 맛볼 수 있는 스팸을 먹으며 전쟁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때문에 당시 영국인들은 스팸을 포함한 햄 통조림을 애국식품이라고 불렀을 정도다. 1945년 5월 8일 독일의 항복과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전쟁 기간 내내 먹어 질린 햄 통조림이었는데 전쟁이 끝난 후에도 신선한 고기는 먹기 힘들었고 햄 통조림의 공급만 계속됐다.
사실 전쟁이 끝났다고 돼지 숫자가 갑자기 크게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햄을 만들려면 소금에 절이거나 훈제를 해야 하니 일 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때문에 종전 후에도 수제 햄은 배급제에서 풀리지 않았다.
또 다른 문제도 생겼다. 값싼 햄 통조림이 무한정으로 수입되니 영국의 양돈 산업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신선한 돼지고기의 공급은 물량도 적은 데다 값도 비싸 부자가 아니면 먹을 수 없고 그러니 보통의 영국인들은 값싼 햄 통조림만 계속 먹어야 하는 악순환이 벌어졌다. 음식점에서 주문을 하면 스팸이 들어 있지 않은 음식을 찾을 수 없다는 BBC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영국인들이 그만큼 햄 통조림 스팸에 질려 있었던 것이다. 부산물을 재활용한 효자 상품에서 애국 식품으로, 그리고 쓰레기 메일의 대명사가 되는 불명예까지, 스팸에 얽힌 역사다. 쓰레기 메일에 붙은 스팸의 오명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결과일까? 아니면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사례일까?
식경(食經) 수양제의 요리사였던 사풍(謝諷)이 편찬한 음식 품평서이다. 음식과 건강의 관계, 음식의 역사 등이 수록돼 있지만 내용 대부분이 유실됐고 현재 일부 내용만 전해진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0호(2014년 11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