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걷기 프로젝트] 고요한 여유… 그 안의 바쁜 일상 | 강원도 철원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
입력 : 2014.10.17 17:30:58
“혼자 뒹굴뒹굴하던 때가 가끔은 그립다.”
옆 테이블에서 툭 던져진 말이 데굴데굴 굴러 발밑에 닿자 온갖 원성 섞인 욕지거리가 뒤따랐다.
“있는 게 더하다더니 솔로들 노는 데 와서 허세냐!”
“왜? 결혼하고 애까지 있으니 슬슬 딴 생각나서 그래? 오늘 어디 데려다 주랴?”
슬쩍 보기에도 마흔 가까운 친구 네댓이 모여 젊은 시절엔 어땠느니, 누가 누굴 좋아했느니, 여자 여럿 울렸느니, 별의별 얘기로 별나라를 만들고 있었다. 어찌나 목소리들이 쩌렁한지 굳이 귀를 세우지 않아도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사연들이 쏙쏙 들어와 안주거리가 됐다.
“나도 좀 풀자. 나이 먹고 결혼해 아들까지 얻으니 좋긴 한데, 내 생활이 전혀 없는 거야.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해서 애보고 다시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해서 애보고. 이 생활이 2년째 아니냐. 단 하루라도 혼자 조용한 데서 지내는 게 소원이다.”
말이 끝나자마자 상욕에 비아냥거리더니 일순간 조용해졌다. 슬쩍 고개 돌려 살짝 훔쳐보니 말한 이나 듣던 이나 시선을 떨군 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먹다말고 일동 묵념이라니….
앞자리에 앉아 주거니 받거니 술잔 돌리던 김 부장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저 친구들, 어리죠. 나이 마흔에 늦장가 간 놈이나 가지 못한 놈이나 혼자 조용한 데서 지내고 싶은 건 똑같으니 할 말이 없는 거예요. 결혼한 놈은 말해 놓고 미안해서 조용하고 못한 놈은 난 뭐했나 싶어서 멍 때리고. 저러다 40대가 훌쩍 지나간다는 건 아마 모를 겁니다. 애가 뛰어다니면 언제 저런 생각했나 싶을 거예요. 아주 다이내믹하게 10년이 지나가죠. 그게 마흔 먹은 저들의 숙명이에요. 쉰 살 먹은 입장에서 한마디하면 생각날 때 해버려야 후회가 없을 겁니다. 내 나이쯤 되면 일할 수 있고 애 볼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그래서 가끔은 숨이 턱턱 막히거든요. 허허.”
조곤조곤 설명하던 김 부장의 말을 들었는지, 옆 테이블 사내 중 하나가 말문을 열었다.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를 할 수도 없고 신도림역 안에서 스트립쇼도 할 수 없으니 훌쩍 여행이라도 가야지. 아무리 가진 게 없어도 손에 쥔 건 놓으면 안 되는 나이가 마흔이라더라. 하루 시간 내서 떠나자.”
강원도 철원으로 걸음을 옮긴 건 순전히 옆 테이블 남자의 마지막 한마디 때문이었다. 아무리 가진 게 없어도 손에 쥔 건 놓칠 수 없는 나이라니. 곱씹을수록 일탈은 꿈도 못 꾸는 또 한 번의 질풍노도가 괜스레 측은하고 부끄러웠다. 이럴 땐 고즈넉한 풍경보다 땀 흘려 일하는 일상이 약이다. 나 아닌 다른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고 듣고 체험하다보면 어느새 늦춰졌던 고삐가 팽팽해진다.
정상에 마련된 정자
고요한 하늘, 바쁜 일상
서울에서 북쪽으로 두어 시간을 내달리니 갑자기 탁 트인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누렇게 색 바랜 벼들이 바람 따라 하늘거리는 이곳은 오대미로 유명한 철원평야다. 북한 평강지역에서 발원한 한탄강 물줄기가 굽이굽이 휘돌아 나가는 철원은 국내 최대의 현무암 지대다. 덕분에 모래성분은 없고 땅이 차져 영양이 풍부하다. 650㎢의 면적(강원도의 3분의 1에 해당한다.)을 자랑하는 곡창지대인 데다 코앞에 비무장지대가 있어 사람의 발길이 뜸한 청정지역이기도 하다.
매년 전국에서 가장 먼저 추수가 진행되는데, 9월 중순이면 평야 곳곳이 눈코 뜰 새가 없다. 뻥 뚫렸던 2차선 도로가 막힌다 싶으면 십중팔구 커다란 트랙터가 방금 탈곡한 벼 낟알을 싣고 어디론가 이동 중이었다. 그 모습이 생경해 한참을 따라가 보니 농협 정미소 앞이 목적지였다. 바로 그 지점부터 늘어선 트랙터 줄이 족히 70~80m나 됐다. 곳곳에서 서로 안부를 묻는 이들의 표정이 이보다 좋을 수 있을까.
“아침부터 무릎이 아프더니 지금은 어깨가 결려 죽겠고만. 머리도 띵한 게 왜 이리 아픈 데가 많은지 모르겠네.”
“노인네가 다 그런 거지 뭐. 그렇게 아프고 아프다 가는 게 인생이여. 큰 걸 바라지 마라.”
보자마자 아프단 말로 인사를 대신한 촌로들의 얼굴도 밝기는 마찬가지. 죽겠다며 찌푸렸지만 주름 속 속내는 젊은이들의 그것과 다를 게 없었다. 이름 모를 곤충 날아가는 소리도 또렷하게 들리던 마을은 그렇게 오랜만에 활기찼다. 그 보기 좋은 풍경을 뒤로하고 10여 분을 돌아나오니 앙상한 가지만 남은 3층 건물이 휑하니 모습을 드러냈다.
일부러 걷기 위해 찾은 여정은 1946년 북한이 이 지역 수탈을 위해 지은 노동당사에서 시작됐다. 노동당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800여m를 걸어 나가면 철원의 명산이라 불리는 소이산으로 오르는 길이 보인다. 해발 362m의 야트막한 동산이 지역 명산이라 불리게 된 건 산이 앉아 있는 방향 때문이다. 앞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없어 정상에 오르면 철원평야의 기운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곳으로 통하는 길은 한국전쟁 이후 60여 년간 통제돼 왔다. 이곳저곳에 묻어놓은 지뢰가 사람을 내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2년에 생태숲 녹색길(둘레길)이 조성되며 입산이 허용됐지만 지금도 북쪽 산자락은 어디에 뭐가 묻혀 있는지 모르는 지뢰밭이다. 오죽하면 그 방향 둘레길에 붙여진 이름이 ‘지뢰꽃길’이다. 휴전선 철책처럼 휘둘러진 철조망 안쪽을 돌다 ‘생태숲길’에 들어서면 코가 뻥 뚫린다. 일제 때 심어놓은 아까시나무가 많은 곳이라지만 중턱을 넘어서니 생강나무, 갈참나무, 때죽나무 등 이름도 생소한 토종 나무들이 저마다 향을 뽐내고 있다. 길이 평탄해 산책하듯 걷다보면 푸릇한 나무 사이로 누런 곡창지대가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역사와 자연을 품은 군사적 요충지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나름 가파르다. 고려시대부터 이곳에 봉수지가 있어 길 이름도 ‘봉수대오름길’이다. 그렇더라도 차가 오를 수 있게 길을 닦아 놔 걸음을 옮기며 시선을 두기가 편하다. 탱크도 오를 수 있을 만큼 폭이 넓다고 생각했는데, 정상 부근에 조성된 포진지를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1978년 6월 14일에 완공된 진지는 부대장,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의 이름이 완공일 아래로 가지런했다. 한국전쟁 당시 군지휘관이 “소이산이 있어 철원평야를 지킬 수 있었다”고 했다더니 진지 창 아래로 철원평야가 오밀조밀했다.
진지를 중심으로 오른쪽은 정자가 있는 산 정상이요, 왼쪽은 헬기 착륙장이 있는 평화마루공원이다. 한눈에 철원평야를 받아들이려면 평화마루공원이 제격이다. 철원에 주둔하는 6사단(청성부대) 마크가 선명한 헬기착륙장은 생태숲 녹색길이 조성되며 나무 데크로 마무리됐다. 아무 곳이나 엉덩이를 대고 앉아 시선을 멀리두면 전쟁으로 사라진 구철원 시가지와 백마고지, 김일성 고지, 원산으로 가는 철길까지 더 이상 갈 수 없는 우리 산하가 훤하다.
서울에서 고작 두 시간 남짓 나왔을 뿐인데 이런 곳이 있었다니…. 그래서 생각이 움직여야 몸이 움직인다 했던가. 지금 철원은 고요한 가운데 눈코 뜰 새 없는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