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9월 어느 금요일 오전 11시 45분 사무실 테이블 위 펼쳐진 그린. 라이벌이자 앙숙인 옆 부서와 긴장되는 점심내기 골프시합이 시작됐다. 마지막 퍼팅이 홀컵으로 빨려갈지 여부에 따라 두 팀의 주머니 사정이 결정된다. 더군다나 오늘 점심메뉴는 불고기. 긴장되는 마음을 추스르고 차분하게 각도를 조절해 피규어를 바로 세워 힘찬 스윙! 구멍을 두 바퀴나 돌아 나온 공을 목격한 7명의 갤러리이자 선수들(?) 사이에서 환호와 비명이 섞여 터져 나온다.
용산의 한 IT회사 사무실의 점심시간 직전 전경이다. 피규어를 활용한 마이크로골프를 통해 팀원들 간의 단합을 도모하고 때때로 대회가 벌어지기도 한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투박한 사람 모양의 단순한 장난감처럼 보이지만 우습게 봤다가는 큰코다친다. 실제 골프에 대한 이해 없이 접근하면 100전 100패.
지난해부터 정식 수입을 시작한 ‘핏그린’이라는 독일 디자인그룹에서 만든 수동 마이크로골프(Micro Golf) 스포츠 기어는 국내에는 아직 생소하지만 유럽에서는 골프마니아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해외 유저들 사이에서는 이미 각종 묘기 동영상들이 유튜브상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독일에서는 핏그린 경기의 공식리그(PGL)를 열어 세계챔피언을 가리고 랭킹을 집계한다. 특히 골프마니아 뿐만 아니라 젊은 층 사이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핏그린코리아 측은 “마이크로골프 경기를 통해 지인들과 간단한 내기를 즐기거나 골프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며 “유럽에서는 특히 마이크로골프 피규어가 고급스러운 장식소품이나 선물용으로 사랑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핏그린코리아 측은 마이크로골프 본래의 기능 외에 전시·장식 피규어 시장 확대도 기대하고 있다.
백색의 사람 모형 피규어는 개인의 개성과 취향에 맞게 색상과 데커레이션,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점이 특징이다. 다양한 디자인으로 채색된 피규어는 장식소품으로 애용되며, 해외에서는 기업 홍보용 제품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핏그린 우드세트
정교한 커브 샷이 주는 쾌감
핏그린을 이해하기 위해선 마이크로 골프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마이크로골프는 독일에서 세계 최초로 탄생된 스포츠로 미니골프와는 차이가 있다. 미니골프는 골프의 축소 형태로 직접 사람이 채를 가지고 샷을 날리지만, 마이크로골프는 피규어를 조작하여 새로운 개념의 골프를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손바닥만 한 골프채를 든 사람 모양의 피규어를 통해 골프를 친다는 것이 좀처럼 상상하기 힘들 뿐더러 얼마나 정교할까라고 생각이 들지만 실제 경기모습을 보면 상상초월이다.
한 번 만져만 봐도 정교함을 느낄 수 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유리섬유가 함유된 피규어의 내구성이 느껴진다. 실제 경기를 시작하면 더욱 신중해진다. 피규어를 놓는 각도가 조금만 빗나가면 공이 홀컵 근처에 가기는커녕 벙커에 빠지기 십상이다.
핏그린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클럽선택부터 신중해야 한다. 클럽은 드라이버, 아이언, 웨지, 퍼터 4종류로 이루어져 있고 조작하는 사람에 따라 점프 샷, 커브 샷 등 실제 골프에서 나올 수 있는 기술을 뽐낼 수 있다.
360도 회전하는 피규어의 팔은 등 부분에 슬라이더를 끼워 조작한다. 슬라이더는 클럽이 장착된 팔을 회전시켜 공을 날릴 수 있도록 제작됐다. 실제 골프게임에서도 그렇듯 핏그린 골프게임에서도 힘 조절이 관건이다. 양쪽 방향에 구멍이 있어 오른손잡이든 왼손잡이든 관계없이 골프게임을 즐길 수 있다. 사용법도 직관적이기 때문에 골프에 입문하는 사람들도 손쉽게 다가갈 수 있다. 골프공은 수많은 작은 공이 단단한 표면에 감싸 있고, 바닥에 떨어뜨렸을 경우 일반적인 공처럼 튀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 골프공처럼 굴러간다.
국내에는 그동안 마이크로골프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가 적은 편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국내에도 점차 백화점이나 면세점 등 고급문화가 발달한 공간을 위주로 저변이 확대되어 가고 있는 추세다.
핏그린코리아 측은 “지난해 디자인 페스티벌이 열려 많은 골프 팬들의 호응을 얻은 데 힘입어 올해는 정식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