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빨리 가실 줄 몰랐어… 정말 몰랐어….”
하염없이 ‘몰랐어’만 되뇌는 모습이 처량했다. 늘 쩌렁한 목소리로 호탕하게 웃던 이는 온데간데없었다.
한 달 전 찾아와 “고작 40대 중반인데 구조조정 대상이 된 동료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며 수십 번이나 “남아있는 게 미안하다”고 곱씹던 이 차장은 그렇게 아버지를 배웅했다. 급작스런 사고였다.
장례식장을 찾은 떠나간 동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할 말이 마땅찮았는지 상주의 손만 비벼댔다. 그리곤 서로 울었다.
삼일장의 마지막 새벽은 유난히 달이 길었다. 함께 발인할 이들만 남은 시각, 먹는 둥 마는 둥 제대로 음식을 넘기지 못하던 그가 힘겹게 소주 한 잔을 털어 넣더니 중얼대기 시작했다.
“늘 마음만 있었는데… 그렇게 좋아하던 등산 한 번 같이 못 갔는데…
올 여름 휴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모시겠다고 생각했는데…
손자 낳고 이 놈 재롱도 제대로 못 보여드렸는데… 같이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근데 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내가 해드린 게 아무것도 없어.
먹고 살기 힘들어서… 시간이 없어서… 그거 다 거짓말이야. 이렇게 술 마실 시간은 있는데 아버지 찾아갈 시간은 없었다고. 다 내가 한 일인데, 그래서 억울해… 다 내 잘못인데… 그걸 아는 데도 너무 억울해… 살아있는 동안 단 한 번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답답해 미치겠어. 억울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내내 억울했다. 꼭 해야지 다짐하던, 늘 생각만 했던 일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마음 깊이 사무쳤다. 무엇보다 6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자신을 떠난 아버지가 야속하고 불쌍했다. 그래서 또 다시 억울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며칠 후, 휴대폰 너머에서 천천히 말문을 연 그는 “그럴 줄 몰랐다”며 한숨을 내뱉었다. 툭 털어 내놓은 속내엔 억울함 대신 아쉬움이 뚝뚝 묻어났다.
“몰랐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어요. 얼마나 비겁한 변명인지… 부끄럽습니다.”
평지를 걷듯 산책할 수 있는 ‘치유의 숲’
일주일 뒤 경기도 가평에 자리한 ‘강씨봉 자연휴양림’을 찾았을 때 왠지 그가 떠올랐다.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숲을 거니는 3대(代)가 눈에 들어왔을 땐 그가 말한 저릿한 억울함이 전염됐는지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전망대에 오르는 길로 들어서자 강씨봉의 유래가 눈에 들어왔다. 저릿했던 가슴이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다.
나무 데크로 조성된 휴식공간에 방문객의 바람을 담은 쪽지가 그득하다.
도심에서 한 시간 반, 첩첩산중
경기도 가평까지 가는 길은 녹록지 않았다. 전라도나 경상도, 강원도도 아닌 곳이 어찌 그리 하염없던지. 어쩌면 고속도로가 아니라 국도를 택했다는 후회에 짜증이 더해져 그런 마음이 들었겠지만 그래도 멀었다. 서울 도심에서 두 시간 반. 아닌 게 아니라 고개만 넘으면 강원도 땅이 지척이다. 이럴 땐 마음의 반대편에 서는 게 옳다. 험한 여정에 시선을 먼 곳으로 돌리니 휑한 아스팔트를 휘휘 덮은 그늘이 깊었다. 잠시 차를 멈춰 내려서니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산이요 계곡이다. 말 그대로 첩첩산중. 그 끝자락으로 향하니 ‘강씨봉 자연휴양림’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오죽하면 이곳을 경기도의 알프스라 하겠어요. 오는 길이 꼬불꼬불해서 멀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오고 나면 열이면 열 잘 왔다고 하더라고.”
입구에 늘어선 밥집 처마 아래서 손님 기다리던 주인이 묻지도 않았는데 자문자답이다. 보기에도 널찍한 정문을 지나 휴양림으로 들어서니 아닌 게 아니라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잘 왔다’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2007년부터 총 67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강씨봉 자연휴양림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적목리 일대 980ha에 조성된 자연공간이다. 2011년 개장 이후 휴양림 내에 자리한 7채의 숲속의 집과 9채의 산림휴양관은 주말 예약이 하늘에 별 따기일 만큼 인기 휴양지가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쪽 고른 참나무가 쭉 뻗은 숲 곳곳의 숙소를 나서니 평평한 산책로와 넓은 나무 데크가 한가로웠다. 해발 400~450m의 공기도 도심과 분명 다르다. 한여름이면 수영장마냥 반듯하게 마무리한 공간에 계곡물을 채워 물놀이장으로 쓴다니 이 또한 매력적인 요소 중 하나다.
그렇다면 걷기 위한 길은 어떨까. 강씨봉을 비롯해 주변 고개를 돌아오는 등산 코스가 총 7개. 그중 1시간 반 코스(2.4㎞·제5코스)인 전망대로 걸음을 옮겼다. 계곡 옆에 오롯한 길은 경사가 완만했다. 아무 생각 없이 혹은 일행과 대화하며 천천히 보폭을 맞추기에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계곡을 빗겨나가면 살짝 다리가 당긴다. 차가 지나는 길이었는지 수풀이 낮아 볕 또한 강하다.
그랬거나 저랬거나 잠시 생각을 뒤로하며 숨을 고르면 민둥산과 화악산, 명지산으로 둘러싸인 전망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계단을 올라 멀리 바라보면 푸른 기운에 눈이 시리다. 이곳이 왜 경기도의 알프스인지, 봉우리 뒤 봉우리가 시선이 닿는 곳까지 펼쳐졌다. 걸음을 돌려 내려선 길 중턱에 강씨봉의 유래가 간략했다.
‘효자 강영천은 3세 때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와 함께 살던 중 7세 때 모친이 병으로 몸져눕게 됐다. 나이는 비록 어렸으나 효성이 지극하던 영천은 어머니의 병이 악화돼 정신을 잃자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 어머니의 입에 흘려 넣었다. … 이후 마을에서 가장 높은 산을 강씨봉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숙종 26년 건립된 효자문은 1987년 복원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