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몬태나 주 빅블랙풋 강변의 아침. 맑은 하늘을 뚫을 듯 솟은 울창한 나무들 사이 부챗살 모양의 햇살이 쏟아질 듯 내리쬔다. 고요했던 적막을 깨고 폴(브래드 피트)이 낚싯대를 우아하게 쳐들어 내던지자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낚싯줄이 S자 형태를 그리다 쭉 펴지며 솜털 모양의 인조 미끼가 수면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1993년 국내에 개봉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한 장면이다. 브래드 피트가 절제된 남성미를 물씬 풍기며 ‘플라이 피싱(Fly Fishing)’을 즐기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충분했다. 플라이 피싱은 변방에 위치해 외면받다가 영화가 개봉된 이후 마니아들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낚시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눈썰미가 조금만 있다면 물가에 몸을 담그고 줄을 멋스럽게 던지는 품세를 보며 플라이 피싱이 일반적인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금세 눈치 챌 것이다.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낚시의 공식을 저버린 어찌 보면 ‘사냥’에 가깝다. 플라이 피싱은 계곡이나 강에 직접 들어가 곤충모양의 가짜 미끼를 만들어 두껍고 무거운 라인(낚싯줄)에 매달아 원하는 곳까지 날려 보내 송어, 연어, 산천어 등을 잡는 낚시법이다.
미끼를 원하는 곳까지 던지는 것을 ‘캐스팅’이라고 부르는데 플라이 피싱의 가장 큰 매력이자 독특한 낚시장르로 자리 잡게 만든 요소다. 물고기가 있음직한 포인트에 정확하게 미끼를 던져 넣는 기술인 캐스트는 야구로 치면 투수가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정확하게 꽂아 넣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 초보자들이 익히는 데 수 개월이 걸리기도 하지만 캐스팅만으로 플라이 피싱에 빠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플라이 피싱은 국내에 소개된 지 반세기가 채 안됐지만 그 모태는 기원전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로 유래가 깊다. 마케도니아인이 모사에 단 침으로 송어를 낚은 것에서 시작되어 14~15세기에 영국 성주와 귀족들 중심으로 기초를 세우고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스포츠로 발전하게 됐다. 영국에서는 승마, 춤과 함께 플라이 피싱이 신사가 갖추어야 할 3대 덕목으로 꼽히고 있다.
플라이 피싱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위해 전문가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플라이 피싱에는 명수라 자처하는 전문피셔나 ‘거장’이라 불리는 사람도 없다. 낚시 과정과 자연과의 교감을 중시하는 신사적인 스포츠인 플라이 피싱에서 얼마나 많은 숫자의 물고기를 잡았는가를 내세우거나 서로 경쟁하다가는 천박한 낚시꾼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대자연과 하나되어 한나절 놀다 오면 그뿐이다.
수상생물학 필수·대상어와 치열한 심리게임
20년 가까이 오랜 기간 플라이 피싱을 즐기고 있는 안병삼 북천돈가스 대표 역시 자신을 낮추며 “플라이 피싱의 기본모토는 빈손으로 출발해서 빈손으로 돌아오는 캐치 앤 릴리즈(Catch and Release)”라며 “대부분의 피셔들은 자연과 하나되어 교감하는 과정에 큰 의미를 둔다”고 밝혔다.
물고기를 낚는 그 자체의 ‘손맛’보다 자연의 정취를 즐기고 교감하고 함께 낚시를 떠난 사람과의 협력 과정들을 통해 얻는 성취감이 더 크다는 것이 안 대표의 설명이다.
플라이 피싱의 또 다른 묘미는 진짜 미끼를 사용하지 않는 점이다. 이 때문에 지렁이 등 살아있는 미끼를 바늘에 끼우는 작업을 꺼려하는 사람들도 편하게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어설픈 가짜 미끼를 물고기가 덥석 물어줄 리 만무하다. 가짜 미끼를 만들어 진짜 먹이로 속일 수 있어야만 낚시가 가능하다.
이 점이 플라이 피싱에 빠지면 자연스레 수상 생물전문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내에 플라이 피싱의 대상어로는 열목어, 산천어, 무지개 송어가 대표적이며 가물치, 끄리, 강준치, 피라미, 갈겨니, 꺽지, 메기, 쏘가리 등도 있다. 이러한 물고기들의 생리와 그 지역의 자연적 생태를 모르면 낚시에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계절에 따른 계곡의 변화, 물고기의 습성, 강 벌레들의 종류, 움직임 등을 공부하지 않으면 절대로 손맛을 볼 수 없다. 철저한 계산과 심리싸움을 통해 바위 뒤에 숨어 있는 놈이 미끼를 물게끔 만드는 것이 플라이 피싱의 묘미다. 끊임없이 물고기가 모여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물살을 헤쳐 나가는 역동성도 다른 낚시와 차별화된 플라이 낚시만의 멋이다.
안 대표는 이에 대해 “잡을 어종을 정해 알맞은 먹이모양의 미끼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직접 미끼를 만들어 캐스팅한 다음 라인을 당겼다 놓았다 하며 미끼가 살아 있는 것처럼 액션을 주면서 유혹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대상어가 먹이를 물었을 때 쾌감은 누려본 자만이 알 수 있다”고 귀띔했다.
간단해 보이지만 플라이 피싱은 준비해야 할 장비가 의외로 많고 캐스팅 방법도 여러 가지여서 배우기가 녹록지는 않다. 입문을 위해서는 일단 낚시대와 릴, 라인 그리고 플라이(미끼) 등 기본 장비가 필요하다.
안 대표는 이에 대해 “플라이 장비를 선택하려면 우선 자기가 잡고자 하는 대상어를 정한 후 그에 맞는 장비를 구입하는 게 순서”라며 “입문용 낚싯대는 15만원 정도에서 구매하면 충분하다”고 조언했다. 플라이 피싱 전용 낚싯대는 대상어종에 따라 달라 큰 물고기를 노리는 낚시대면 두껍고 단단하다. 특유의 손맛을 느끼고 싶다면 부드럽고 가벼운 낚시대가 제격이다.
마지막으로 장비를 구입했다 하더라도 방법을 모르면 소용이 없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전문 가이드가 없는 국내 환경에서는 플라이 피싱을 익히기 위해서는 전문숍이나 온라인 동호회를 통하는 방법이 가장 빠르다. 전문가에게 교육받고 인맥을 쌓아 함께 출조를 떠나는 것이 멋진 플라이 피셔가 되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