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이 되니 신선한 재료의 맛을 잘 살리는 스페인 음식이 생각났다. 내친 김에 스페인 왕가의 와인 마르께스 데 리스칼을 들고 합정동의 ‘쉐프 에스빠냐’를 찾았다. 외관부터 정열적인 색으로 단장한 레스토랑은 내부에서도 스페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바르셀로나로 요리유학까지 다녀왔다는 박회문 셰프는 마르케스 데 리스칼 루에다(화이트)에 핑거 푸드인 핀초 타파스를, 레드와인인 마르케스 데 리스칼 리제르바엔 쌀밥의 일종인 빠에야를 추천했다.
루이다는 적절한 산도와 허브 아로마가 돋보여 해물 요리는 물론이고 스페인 전통 햄 하몽과도 잘 어울릴 것 같으며, 스파이시한 리제르바는 쌀을 볶다가 아스파라가스와 고기 등을 얹어서 찌는 빠에야 같은 찜요리와 고기가 잘 맞을 것이란 설명이다.
먼저 바게트에 여러 종류의 야채나 해물 등을 토핑으로 얹어 내는 간편요리 핀토 타파스가 나왔다. 박한상 쉐프 에스빠냐 대표는 “핑거 푸드 형태의 핀초 타파스는 본 요리가 나오기 전 기다리는 동안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도록 제공하는 게 일반적이다”고 소개했다.
핀초나 타파스는 모양은 비슷한데 핀초는 지역 특산물을 주로 올려 내며 안주거리 성격이 강하고, 버섯을 많이 쓰는 타파스는 간단한 요깃거리인 게 보통이라고 했다.
토핑은 햄과 하몽 벨로타에 멜론을 섞은 것, 초콜릿 소스로 볶은 해산물, 구운 버섯과 해산물 다짐을 함께 올린 것 등 다양했다. 모든 재료가 신선한 데다 막 구워낸 바게트 맛도 구수해 자꾸만 손이 갔다.
먼저 나온 안주에 잘 어울릴 루에다를 땄다.
올리브 향이 느껴지는 뒤로 은은한 꿀향이 곁들여 올라왔다. 살짝 입에 머금으니 미미하게 느껴지는 탄닌과 높은 산도에 실린 신선한 과일향이 다가왔다.
달면서도 시원한 멜론과 고소하면서 감칠 맛 나는 하몽 안주가 입안을 자극했다. 시원한 멜론의 주스 때문인지 살짝 짭짤한 하몽의 고기 맛이 느껴졌다. 루에다를 한 모금 마시니 입안을 싹 씻어낸 듯 개운하다. 산도가 높아서인지 약간 쌉쌀한 여운마저 남을 정도다.
와인이 한 순배 돌자 박한상 대표는 이곳 하몽이 어떤지 맛이나 보라며 하몽 이베리코 베즈파를 냈다. 막 잡은 돼지 생고기를 그대로 자른 것처럼 선명한 선홍색이 살아있는 하몽을 입에 넣었는데 ‘어라’ 비린내는 전혀 나지 않고 살짝 고소한 치즈향이 풍겼다. ‘이 맛에 하몽을 찾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한다. 곁들여 나온 바게트의 고소함이나 토마토의 생생함이 오히려 더 강하게 느껴질 정도로 부드러웠다.
다시 루에다를 한 모금 머금었다. 살짝 허브향이 도는 잘 익은 과일향이 기분 좋게 다가왔다. 잘 숙성돼 그윽하고 부드러운 와인의 풍미가 길게 여운으로 이어졌다.
버섯 타파스는 구은 표고버섯 특유의 맛있는 향이 살아 있었다.
구수한 풍미가 길게 입안에 남았다. 블루베리와 하라베(시럽)를 재워 만든 크림치즈는 식후에 먹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소하면서도 너무 강하지 않은 달콤한 크림치즈에서 살짝 블루베리향이 묻어나왔다. 단맛 뒤에 마시는 화이트 와인은 살짝 쌉싸름한 느낌이 들 만큼 입안을 개운하게 했다.
이번엔 새우에 매콤한 고추를 더한 핀초다. 신선하면서도 고소한 새우의 풍미가 오래 남았고 거기에 살짝 매콤함이 더해졌다. 다시 화이트 와인을 한 잔 했다. 입안이 한결 개운했다. 쌉쌀한 느낌 뒤로 살짝 전해지는 과일향이 기분을 좋게 했다. 분위기가 달아오를 무렵 메인요리인 빠에야가 나왔다.
박한상 대표는 “이 빠에야의 정식 이름은 산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요리란 뜻의 ‘아로스 몬타나’다”고 소개했다. 산쌀과 아스파라가스 버섯 안심 등을 충분한 양의 올리브유로 볶다가 쪄낸 뒤 마지막에 송로버섯 기름(트러플 오일)을 얹어서 냈다는데 독특한 고기소스 덕분인지 한국사람 입에도 잘 맞을 것 같은 구수한 냄새가 풍겼다.
진한 갈색의 빠에야를 한 술 입에 넣었다. 전혀 낯설지 않았다. 한국 고유의 약식을 먹는 느낌이랄까. 쫀득쫀득하면서도 차지고 고소한 밥맛이 잘 만든 약식을 씹을 때 그대로다. 차이가 있다면 달콤한 조청으로 간을 한 대신 살짝 매콤한 향신료로 맛을 낸 것이라고나 할까. 토핑으로 얹은 안심 역시 잘 익어 구수하면서도 달착지근했다.
본격적으로 마르께스 데 리스칼 리제르바를 따랐다. 살짝 풍기는 오크향에 이어 스파이시한 산초향이 돋보이는 복합적인 아로마가 풍겼다. 입에 살짝 무니 잘 익은 과일의 여운이 입술을 타고 돈다. 한 모금을 마시니 잘 녹아든 탄닌이 부드럽고 우아하게 입안 전체를 자극했다. 좋은 와인이 도니 어느새 빠에야가 줄어들었다. 간식으로 나온 이집만의 빵은 고소하고도 깊이 있는 맛으로 다가왔다. 이집 소베트는 꼭 먹어봐야 할 음식으로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절한 단맛의 아이스크림은 귤향 유자향에 귤의 식감까지 더해져 산뜻한 느낌을 주었다. 따뜻한 나라에서 맛보는 시원한 음식이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