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에 이어 밸런타인데이와 졸업 입학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주고받는 한과며 초콜릿 등으로 달콤함이 넘치는 계절이다. 이 맛난 계절을 제대로 즐겨보자고 비슷하게 달콤한 와인들을 들고 강남 신사동의 한식 디저트 카페 케이디를 찾았다.
한국 소비자들에게 많이 알려진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스파클링 와인 발비 소프라니 모스카토 다스티와 세계 최대의 아이스 와인 생산자인 캐나다 필리터리 에스테이트의 비달 아이스 와인이 이 날의 주인공.
카페 케이디는 와인의 맛을 감안해 전통 한과를 현대적 감각으로 만들어낸 퓨전 디저트를 냈다. 퓨전이라지만 궁중에서 즐기던 정통병과를 조금 변형한 것이라 사실 전통 그대로의 맛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먼저 두 와인 가운데 조금 덜 달면서 상쾌한 스파클링 와인인 발비 소프라니 모스카토 다스티를 땄다. 진한 복숭아향에 아카시아와 아몬드향을 약간 가미한 것 같은 아로마가 풍겼다. 살짝 한 모금을 입에 물었다. 알코올 도수는 높지 않지만 적절한 산도에 보글보글 올라오는 거품까지 가세한 때문인지 상쾌한 맛이 그만이다.
첫 번째 디저트는 은행알 만한 크기의 당근란. 란이란 열매를 익힌 뒤 으깨어 꿀이나 설탕에 조리는 전통한과인데 열매 대신 당근을 사용했다. 입안에 넣으니 당근 맛은 아주 미미하고 그보다는 달콤한 양갱의 식감이 느껴졌다. 아이들도 좋아할 맛이다.
입안에 가득 찬 달콤한 느낌을 지우려고 모스카토 다스티를 한 모금 마셨다. 입안이 아주 개운하다. 모스카토 다스티가 당근란보다 조금 덜 달지만 약간의 산도가 있는데다 미세한 버블이 올라와 입안을 말끔히 씻어낸 것 같다.
다음엔 가벼운 안주인 육포가 나왔다. 한 조각을 씹었다. 어라, 육포인데 고기의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았다. 짜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살짝 단맛이 났다. 씹을수록 잘 말린 고기 특유의 구수함이 느껴졌다. 보통 고기라면 향신료향이 강한 레드와인을 곁들여야 제격일 터인데 모스카토 다스티 한 모금으로도 가볍게 입가심이 됐다.
이어 등장한 디저트는 강정의 한 종류인 잣박산. 잣을 아주 고소하게 잘 볶아서인지 끈적거리면서 입안에 달라붙는 일 없이 잘 씹히고 편하게 넘어갔다. 다시 모스카토 다스티를 한 모금 마셨다. 여전히 신선했다. 다만 잣의 고소함이 모스카토 다스티의 아몬드 아로마보다는 강하기에 살짝 잣의 여운이 남았다. 그렇지만 거슬리지는 않는다. 달콤함 뒤에 남는 고소함이기에….
다음 디저트는 개성식 약과 한 조각이다. 꽃모양을 새긴 시중의 보통 약과와 달리 사각인데 켜켜이 쌓아 튀긴 형상이다. 반죽을 쌓은 게 아니라 소주발효를 해서 이런 층이 생겼다고 했다. 한 입을 베물었다. 끈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과자의 속까지 고소하다. 시장에서 파는 보통 약과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우아하게 달콤한 아이스 와인
이어지는 달콤한 디저트를 감안해 비달 아이스 와인을 땄다. 휘발성 있는 머스크향에 꿀과 복숭아 아카시아 등을 섞은 듯 우아하면서도 복합적인 아로마가 코를 찌른다. 살짝 한 모금을 입에 물었다. 진한 꿀물처럼 아주 달콤하다. 그 단맛이 알코올을 타고 빠르게 다가온다. 이어 꿀에 잰 오렌지 같은 여운이 길게 이어진다.
이 와인에 맞춘 첫 디저트는 밤초. 구수한 삶은 밤을 꿀에 잰 전통 한과다. 밤 특유의 고소함에 달콤한 꿀맛이 어우러지니 남녀노소 모두 반길 맛이다.
비달 와인을 다시 한 모금 마셨다. 머스크향에 실린 달콤한 꿀맛이 입 뿐 아니라 마음까지 즐겁게 했다.
이어 대표적 한식 디저트인 다식이 나왔다. 세 가지가 나왔는데 하나같이 조청을 쒀 만드는 보통 다식과 달리 끈적거림이 덜하고 씹히는 느낌은 더했다.
이어서 아몬드잭살 다식을 베물었다. 볶은 아몬드 가루를 꿀과 물엿 등으로 배합했다는데 고소하면서도 살짝 달콤했다. 너무 무르거나 딱딱하게 굳지도 않아 씹을 때 감촉이 좋았다. 비달 아이스 와인은 입안을 씻어주면서도 강렬한 듯 달콤하면서 살짝 우아한 여운을 남겼다. 고소하고도 달콤한 약과의 맛 때문일까, 아주 단 아이스 와인이 중화돼 덜 달게 느껴졌다.
석류 다식은 녹두가루를 조청 대신 석류진액으로 반죽해서 찍어냈다는데 고소하고 상큼하면서도 살짝 휘발성 민트향이 풍겼다. 전통적으로는 녹두가루를 오미자액으로 반죽하는데 석류진액을 쓰니 새콤하고 상큼한 맛이 더해진 것 같다.
향이 제일 강한 흑임자 다식을 마지막으로 집었다. 흑임자 특유의 살짝 기름지면서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부드럽게 씹히는 것은 물론이고 일반 다식처럼 끈적거리며 치아에 달라붙지도 않는다. 입안에서 끈적이는 것을 싫어하는 외국인에게 내놓아도 훌륭한 디저트가 될 것 같았다.
살짝 달아올라 바라본 비달 아이스와인은 귀티 나는 황금빛을 발했다. 와인스펙터가 90점을 준 게 이런 매력 때문인 듯했다.
케이디는
한과와 차 전통주 등을 내는 한식 디저트 카페다. 정길자 궁중병과연구원장으로부터 사사한 두 젊은이가 운영하고 있다. 신사동 리츠호텔과 가로수길 사이에 자리 잡은 세 평 남짓한 작은 공간으로 서빙 하는 주인들의 체온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아담하다. 차나 한과와 안주를 자개나 도자기 접시에 담아 서빙하기 때문에 외국인과 함께 가도 좋다.
유기농 다식과 약과 전통수제육포 등이 기본이며 하동에서 올라온 야생 녹차나 홍차 등 전통차도 갖췄다. 전통차와 한과를 맛볼 수 있는 에프터눈 티세트는 1만8000원이다. 떡이나 간단한 안주를 곁들여 전통주를 즐길 수도 있는데 연엽주나 호산춘 등 전통주의 장인들이 만든 품격 있는 술을 만날 수 있다. (070)4257-5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