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가라지)에서 만든 와인이 세계 최고가 와인 페트뤼스를 넘어섰다?’
포므롤의 페트뤼스는 가격뿐 아니라 품질에서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을 유혹하는 매력적인 와인이다.
그런데 아주 작은 와이너리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든 와인이 페트뤼스보다 낫다는 평을 받았다. 로버트 파커는 지난 1995년 생테밀리옹에서 나오는 샤또 발랑드로에 대해 페트뤼스보다 높은 등급을 줬다.
겨우 0.6헥타르로 시작한 와이너리가 세계적 명성을 얻은 데는 어떤 비결이 있을까.
이 와이너리의 오너가 최근 ‘배드 보이(bad boy)’라는, 다소 장난스런 이름을 붙인 와인을 들고 한국을 찾아왔다.
13년 동안 크레디 아그리꼴의 은행원으로 일하다 아내의 고향으로 가서 와인을 만들고 있다는 장 뤽 뛰느뱅 사장은 장난기 넘치는 밝은 얼굴로 기자를 맞았다.
“배드 보이란 이름은 내가 지었다. 로버트 파커가 생테밀리옹의 배드 보이라고 불러서 그렇게 지었다.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지만 그래도 잘 기억한다. 미국 고객을 겨냥해서 지었는데 역설적으로 미국은 이 이름으로 나가지 못하고 모베 게아송(Mauvais Garson)이란 이름으로 나간다. 미국에선 이 뜻이 별로 좋은 의미가 아니라서다. 내가 배드 보이가 되자 아내가 자기는 배드 걸을 하겠다고 했다.”
그는 특히 한국 시장을 겨냥해 베이비 배드 보이를 내놨다.
“4년 전 방문했을 때 SK에서 노래방에 데려갔다. 거기서 와인을 시켜줬는데 캐주얼한 와인이었다. 약간 달았다.”
그 느낌을 살려 보르도의 메를로 70%에 랑그독의 그라나슈를 블렌딩했다고 한다. 이 와인은 메를로 특유의 과일향이 살아 있으면서도 그라나슈 특유의 달콤한 초콜릿향이 난다.
뛰느뱅 사장은 “전 세계적으로 여성 소비자가 늘어나는 추세를 반영했다. 그런데 14.5도라서 남자에게도 잘 어울린다”고 했다.
최근 반병짜리 캐주얼 와인이 등장했지만 그는 매그넘은 만들지라도 작은 병은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품질 유지가 안된다는 것이다.
뛰느뱅 사장은 또 “전 세계적으로 라운드하고 부드러운 과일향이 많이 나는 와인이 유행하고 있다. 배드 보이는 보르도의 강렬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파커와의 첫 만남은 95년
그는 로버트 파커와의 인연은 91년 빈티지부터 이어져 왔다고 설명했다.
“91년에 첫 빈티지를 생산했는데 파커가 그걸 접한 후 우리 와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1995년 4월 1일로 기억한다. 파커의 친구가 소개해서 만나게 됐다. 파커와는 불어로 얘기했다. 미국 가서도 만났다. 중국식당에서 만났는데 중국 음식을 좋아하더라.”
뛰느뱅 사장은 “자기는 파커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인데 (파커가) 직접 그렇다고 표현은 하지 않는다”며 웃었다.
“만날 때마다 그저 늘 열심히 하라고만 한다. 그래도 파커가 인정하는 사람이다.”
그는 “돈이 없어서 집(가라지)에서 전통방식으로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파커가 가라지 와인이라고 붙여줬다”고 밝혔다.
미국에선 가라지가 실리콘밸리의 지적을 일군 산실이 된 경우가 많아 가라지란 이름이 좋은 평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13년 동안 은행원으로 일하다 와인사업에 뛰어든 그는 그 전엔 나무 생산도 했고 DJ 경력까지 갖고 있는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은행원 당시는 아주 힘들었는데 지금은 부자가 되고 나니 은행원들이 좋아한다고 밝혔다.
10년 동안 계속 투자만 하다가 이제야 투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는 것.
파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뛰느뱅은 보르도에서 전통방식으로 소규모 와인을 만드는 ‘가라지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샤또 발랑드로는 가리지 와인의 개척자로 불리기도 한다.
아시아나항공을 타고 와서 비행기에서부터 한국 음식을 접했다는 그는 배드 보이나 배드 걸 모두 한국음식 특히 숯불갈비와 잘 어울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내 와인이 별로 맛이 없었다며 농담도 늘어놨다. “안드레아스 라르손이 추천했다고 해서 그에게 전화를 걸 참이다. 왜 우리 와인을 추천하지 않았느냐고.”
그러면서 샤또 발랑드로가 에미레이트항공 퍼스트 클래스에, 버진 드 발랑드로가 비즈니스석에 들어가고 있고 브라질항공에도 3년 전부터 들어가며 스위스항공에도 들어간다고 소개했다.
발랑드로의 와인
배드 보이
메를로 95%에 카비네 프랑 5%를 블렌딩했다.
산초의 아로마가 풍긴다. 메를로 품종이면서도 스파이시한 향미가 강한 게 석회암 토양 특유의 느낌이 살아있다.
베이비 배드 보이는 랑그독의 그라나슈 원액을 들여와 블렌딩해 과일향이 살아 있으면서도 약간 달콤한 초콜릿의 풍미도 풍겼다.
샤또 발랑드로 생테밀리옹 그랑크뤼
1999 빈티지는 스파이시한 산초 등의 향신료가 강하게 났다. 한 모금을 입안에 넣자 부드럽게 녹아든 탄닌에 향신료의 향미와 목까지 느껴지는 오크향이 꽉 짜인 구조감을 느끼게 했다.
2003 빈티지는 짠 맛이 느껴질 정도로 산도가 강한 파워풀한 와인으로 10년 정도 더 지나면 맛이 충분히 어우러질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일기가 좋지 않았던 해이지만 그만큼 가능성이 큰 와인인 것 같다.
2008 빈티지는 스파이시한 향신료의 아로마가 느껴지면서도 부드럽게 녹아든 탄닌의 뒤로 시간이 지날수록 다가오는 농익은 과일의 풍미가 입안을 즐겁게 했다.
블랑드 발랑드로 No.2 2009 & 버지니 드 발랑드로 블랑 2010
산도가 높으면서도 우아하고 열대 과일향과 꿀향이 살아있는 화이트와인. 세미용을 기반으로 소비뇽블랑과 소비뇽그리를 블랜딩해 우아했다.
2010 빈티지부터 버지니 드 발랑드로로 개명했다.
2010 빈티지는 산도가 높았지만 거슬리지 않고 라운드한 느낌마저 들었다.
꿀향이 강하면서도 2009 빈티지에 비해 부드러움이 돋보였다. 오크통을 사용했지만 자주 저어 부드러운 맛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