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미국으로 가보자. 영국을 밀어내고 세계 경제의 으뜸으로 부상한 미국은 도시마다 높은 빌딩이 들어서고 거리에는 자유분방한 재즈가 흘러나왔다. 황금시대를 맞은 미국은 동시에 도덕적 타락기를 경험한다. 성공에 취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쾌락을 추구했고 살인·마약·간통이 만연했다.
뮤지컬 <시카고>는 이 혼돈의 시대 냉혈한 살인자들로 가득 찬 쿡카운티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다. 이 안에는 자극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여죄수들로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남편과 여동생이 한 침대에 있는 것을 보고 총으로 쏴 죽인 여배우 ‘벨마켈리’는 특출 난 스타다. 돈과 인기면 무엇이든 가능하던 시기였기에 그녀는 속물 변호사 빌리 플린을 고용해 무죄를 받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성공이 눈앞에 다가올 무렵 다크호스가 등장한다. 평범한 정비사의 아내이자 밤무대 코러스로 활동하던 ‘록시 하트’는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정부가 이별을 선언하자 그를 살해한 죄로 교도소에 들어온다. 특유의 미모와 재능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돼 ‘신데렐라’로 등극한다. “그녀는 멍청한 정비공 아내에서 빅 스타(Big Star) 록시 하트로 다시 태어나는 거야!” “살인도 예술이라네~”라고 노래하는 영락없는 악녀다.
작품은 희비가 교차하는 두 여자의 삶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경쾌하면서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다. 무대의 배경은 교도소지만 죄수복을 상상하면 오산이다. 여배우들은 모두 검은 미니드레스에 망사 스타킹이나 가터벨트로 무장해 팜므파탈 이미지를 물씬 풍긴다. 남성들은 망사베스트 안으로 식스팩 복근을 자랑한다.
이들은 재지(Jazzy)한 음악에 스타일리시하면서도 파워풀한 특유의 ‘밥 파시’ 안무로 특별한 장치가 없는 무대를 가득 채운다. 무엇보다 이번 공연의 매력은 캐스팅에 있다. 초연부터 함께한 인순이와 최정원의 관록은 이제 뮤지컬 <시카고>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하지만 이전 무대와 다른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은 존재는 ‘록시 하트’를 연기한 2007 미스유니버스 출신 이하늬다. 이전 작품에서 종종 부족한 노래실력이 지적되기도 했지만 이번 무대에서 그녀는 안정된 보컬을 선보였고 특유의 건강미 넘치는 춤 실력으로 ‘밥 파시’ 안무를 완벽에 가깝게 소화했다. 뮤지컬 <시카고>는 8월 31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5호(2013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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