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조을음 사이로 당진이다. 길이 훤하고 봄바람에 온기가 섞여 있다. 바다 냄새던가. 짜고 시큼하다. 바다는 나처럼 혼곤한 햇빛에 졸고 있다. 당진. 이름에서 유추하듯 중국 땅에 가깝다. 얼마 전 여행한 일본의 규슈 지역에도 이 지명이 있는 걸 보면 당나라의 대외무역과 교류가 인근 나라들과 활발했다는 증거다. 일본의 당진은 사가현 근처에 있는데 백제 무령왕이 출생했다고 해 한반도 고대사에 흥미를 가진 분들에게 더욱 유명하다. 이곳 한국의 당진에서 멀리 산둥반도의 닭울음소리는 들려오지 않았으나 잠시 문명사의 흐름을 더듬어본다.
“형, 중국식당이 이쪽 서해안을 타고 잘 하는 집들이 몰려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이겠지”
동행한 후배가 영특한 추리를 한다. 맞다. 당진이 중국과의 인연으로 당진(唐津)이 됐던 그 시절을 훌쩍 뛰어넘으니 개항시기의 인천이 떠오른다. 인천 쪽으로 들어온 화교들은 고향인 중국과 가까운 서해안을 타고 길게 터전을 잡았다. 그래서 인천권은 물론이고 충청남도권과 전북 쪽의 해안선을 따라 맛있는 중화요리집들이 역사를 지키고 있다.
차는 장고항에 닿는다. 서해안에서는 드물게 일출을 볼 수 있다고 해 유명해진 왜목마을 조금 못미처 있다. 원래 인근의 섬으로 가는 낚싯배들이 오가는 작은 항구가 있는 마을이다. 요사이 다들 미식에 눈 뜨고 먹는 일에 관심을 늘리면서 실치의 인기가 크게 높아져 덩달아 마을도 유명세를 탔다. 너르고 살진 바다가 두툼하게 펼쳐져 있고 점점이 그물을 드리운 작은 어선들이 장기알처럼 흩어져 있다.
막 실치를 잡는 중이다. 잡는다기보다 자루처럼 생긴 그물 안에 들어온 실치를 거둔다고 해야 어울릴 것 같다. 고기잡이도 참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동력을 가동해서 싹 쓸어버리는 근육질의 어로가 있는 반면, 실치잡이처럼 조용한 기다림의 어로도 있다. 막상 실치를 당기는 분들이야 고된 일이련만 나그네가 보기에 농사일처럼 각이 둔하고 느긋한 어로로 보인다. 하루에도 여러 번 그물을 당겨 올리는데 입쌀 같은 실치가 그득하다. 동네 노인이 보고는 보태 주신다.
"아녀 이때만 잡어. 한 오월 말까지 허는디, 사월 말 안쪽으루다가 젤루 양이 많고 맛아 좋아”
장고항의 실치잡이는 3월부터 시작하지만 4월 초순으로 가면 제철에 돌입한다. 축제도 벌어지고 마을 식당들이 수족관에 고기를 그득하게 재어두는 시기이기도 하다. 아직 이 마을은 외지의 때가 덜 타서 축제 시기(4월 말) 앞뒤의 평일에는 조용하고 여유 있다.
투명한 몸집에 까만 두 눈이 또렷하다. 톡톡 튀어 오르며 생의 짧은 종말을 까분다. 실치는 뭍에 올라오면 금세 죽는다. 그래서 아직 그 흔한 ‘활어’로는 유통되지 않는다. 활어에 대해 따로 할 말이 있으나 짧게 전하면 활어는 미각의 과학에서 보면 한 급 떨어지는 고기다. 사후경직으로 단단한 물리적 촉각은 뛰어나지만 감칠맛은 못하다. 실치는 어떨까. 막 배에서 건진 실치가 접시에 오른다. 숟가락으로 퍼서 입에 넣는다. 작고 여린 몸집에 최후의 경련이 인다. 봄바다가 한 입 들어온 셈이다. 내장에 머금은 해수가 짭짤하고 내장 고유의 쓴맛이 도드라진다.
그게 전부다. 반면 죽어서 부드럽게 된 실치는 풍만한 감칠맛이 가득하다. 항구 앞에는 몰려드는 미식가들을 겨냥한 포장마차들이 줄지어 있다. 함지 안에 죽은 실치가 들어 있다. 얼핏 보면 마치 묽게 쑨 메밀묵이나 메밀죽 같기도 하다. 단단하던 실치의 살이 부드럽게 분해돼 서로 엉기어 죽처럼 변한 것이다. 보기에는 별로이나 아미노산이 생성돼 맛은 최고로 돋아 오른다.
이 지역에서는 실치에 맵고 새콤달콤한 채소무침을 곁들여낸다. 살점이 두툼한 생선이 아니다보니 실치만 덜렁 내기에는 허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채소무침을 내는 게 이 동네의 특징이기도 하다. 봄에 여린뼈를 가진 간재미(가오리 새끼)를 껍질 벗겨 뼈째 썰어 먹을 때도 요긴한 방법이다. 그런데 굳이 이 자극적인 무침을 곁들일 필요는 없다. 실치 안에 스스로 간이 돼 있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찍지 않고 먹는 게 실치를 제대로 느끼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항구 입구의 마을에서는 실치를 데쳐서 김발처럼 생긴 건조대에서 말리고 있다. 보통 우리가 뱅어포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5월이 넘어가면 뼈가 억세 회로 먹기는 힘들다. 그래서 포로 만들어 파는 것이다.
그런데 음식평론가 황교익에 의하면 뱅어는 실치와는 아주 다른 고기라고 한다. 뱅어는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곳에 사는 고기라는 것이다. 민간의 오랜 관행은 뱅어가 아닌 뱅어포를 용인하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도 시중의 다수는 중국산이라고 한다. 장고항에서 나오는 실치는 양이 적어 맛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실치는 베도라치라고 하는 생선의 치어다. 필자도 그 생선은 못 보았다. 다 자라면 20cm 정도 되는 제법 실한 생선이다. 언제 베도라치를 보게 되면 물어보리라. 용케 살아남았구나. 그리고 실치의 안부를 물으리라. 봄바다 저쪽에서 하얗게 바다를 덮던 어린 생명의 시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