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푸른 생선은 성질이 사납다. 인간 멋대로, 그 속을 사납네 착하네 하는 게 가당찮기는 하다. 그래도 예각의 인간 시선에는 그렇게 보이는 게 사실이다. 등 푸른 생선은 바다를 등에 품고 있어서 그런 것인가. 구속당하느니 자진하여 바다에 영혼을 묻는다. 고등어회를 먹을 수 있게 된 건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나는 서울의 고등어횟집 수족관을 바라본다. 사각이 아닌 원형이다. 고등어는 그 좁은 수조를 빠르게 유영한다. 다람쥐 쳇바퀴다. 사각의 수조는 고등어가 살 수 없다 한다. 등에 바다를 진, 터질 듯한 에너지의 붉은살 근육이 고등어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폭발하듯 총알처럼 헤엄치는 고등어를 달래는 건 원형의 눈속임 수조다. 수조 탓하지 않고 가만히 엎드려 생의 마감을 준비하는 광어의 체념을 고등어는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
멸치도 그렇다. 푸른 등은 깊은 바다가 본적이라는 증명이다. 1000명의 군사가 동시에 쏜 화살이 날아가듯, 떼로 꽂히듯 반짝이던 멸치는 그물에 걸려 수명을 다한다. 구속에 대한 격렬한 저항, 그래서 비늘이 별로 없다. 멸치를 잡으면 다른 생선과 달리 털어낼 비늘이 많지 않다. 이미 제 옷을 벗어두고 인간의 손에 든다.
멸치회, 봄에 그 맛을 본다. 대가리와 내장, 등뼈를 훑어내고 깨끗한 민물에 씻는다. 잔가시는 그런가 보다 하고 내버려둔다. 이게 나중에 씹을 때 마냥 부드럽기만 한 살점에 악센트를 준다. 양념을 과하게 하지 않고, 가볍게 먹는 걸 좋아한다. 멸치가 싱싱하기만 하다면야 손질해서 간장을 찍을 수 있도 있다. 그러나 남도식으로 꽉 차는 거친 맛이 살아나게 무치는것이 낫긴 하다. 기호마다 다르겠지만, 매운 양념 맛의 뒤에 아릿아릿한 멸치 살 특유의 톡 쏘는 기운이 나는 게 좋다. 그 기운을 죽이기 위해 소주를 한 잔 붓는 게 딱이다. 먹다 보면 가시에 잇몸도 찔리고, 입술가도 좀 헌다. 이게 멸치회 먹기의 전투적인 결말이다.
멸치는 순순하지 않다. 결사대가 적의 예봉에 타격을 입히고 산화하듯, 흔적을 남긴다. 그러니 신선처럼 먹기를 원한다면 성골이나 진골의 포를 뜨시라. 광어나 도미의 살점은 그윽하되 격렬한 여운을 남기지는 못할 테다. 사두품도 안 되는 민중의 허술한 횟감, 다른 생선이 마릿수로 계산될 때 박스나 플라스틱 싸구려 채반에 담겨 근수로 팔리는 잡놈의 고기, 이 놈 맛좀 보소, 얼얼하다. 양념에 혀를 절인 것이냐, 바닷바람이 매운 것이냐. 아니면 숨겨둔 잔가시에 찔린 것이냐. 우리 삶처럼 거친 정전기 이는 짜릿한 고기여. 봄엔 부산 대변항에 멸치 먹으러 가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작년엔 영 형편없었다. 어민들 말로는 물이 뒤집어져서 고기가 없다 했다. 그래도 멸칫배가 매일 몇 척은 들었다. 멸치를 털어내는 고단한 작업이 이어진다. 고생도 이런 상고생이 없다. 어부들이 동시에 그물을 털어대므로 누가 힘이 빠졌다고 털기를 멈추면 작업이 안된다. 근육이 마비되어도 그물을 내려놓을 때까지 털어야 한다. 이 광경을 그림 된다고 전국에서 아마추어 동호인들이 몰려와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이게 멀리서 찍으니 또 그림이다. 별로 마음 편하지 않은 그림이다. 지중해 안초비는 그 값에 깜짝 놀란다. 살점이 탄력 있고 환상적인 발효의 감칠맛이 있는 건 금값이다. 고기 씨가 말라가는 건 그쪽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갈수록 값이 뛴다.
안초비는 노동집약적인 식품이다. 기계화를 할 수 없어서 일일이 손으로 손질을 해야 만들 수 있다. 배를 따고, 비늘을 털고, 살점을 바르는 일이 예민한 손으로 해야 값을 더 받는다. 우리 멸치젓은 양반이다. 간단히 손질한 후 소금에 재는 것이 전부일 때도 있다. 뼈와 내장까지 다 삭혀서 갈색의 국물을 만드는 우리 젓갈의 스타일이 안초비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안초비는 살점만 발라서 소금을 친 후 절여지면 오일에 담그는 과정을 거친다. 이것이 오일절임 안초비인데, 그렇지 않은 안초비도 많다. 즉, 한국처럼 소금에 절여서 유통시킨다. 안초비 소스를 만들 때 보통 이런 염장품을 많이 쓴다. 깡통에 담겨져 유통되는 경우가 많다는 게 특징이고 발효향이 강하게 난다.
‘창녀의 스파게티’라는 뜻의 스파게티 알라 푸타네스카 (Spaghetti Alla Putanesca)에 이 발효를 강하게 시킨 안초비를 쓴다. 안초비를 필두로 올리브, 케이퍼, 양파, 고추 따위의 재료를 ‘잡탕처럼’ 넣어서 만든다고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한다. 서민의 생선이지만 까다롭고 기개 있는 멸치가 들으면 기분 나쁠 작명이다.
서울의 식당에서도 안초비를 담가본다. 물 좋은 멸치를 확보해야 한다. 하얗고 등은 문자 그대로 푸른 녀석을 골라야 한다. 냄새를 맡아보면 달콤해야 한다. 비늘이 덜 벗겨지고 피부가 온전해야 좋다.
가능하다면 등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것이 최상품인데 스스로 상해버리는 멸치의 속성상 서울에서 그렇게 최고로 좋은 멸치를 구할 가능성은 적다. 어쨌든 골라낸 멸치를 포를 떠서 얼음물에 잘 헹군다. 남아 있는 비늘은 대개 이때 떨어져 나간다. 멸치 무게를 달아본 후 동량의 소금에 냉장상태에서 이틀 밤 절인다. 삼투압으로 멸치 살에서 물이 많이 나오는데 냄새가 나쁘면 좋은 멸치가 아니다. 이걸 오일에 넣어서 냉장보관하면서 요리에 쓸 수 있다. 좋은 멸치를 구하는 것, 결국 안초비의 전부다.
안초비는 빵에 곁들여 그냥 먹는 게 으뜸이다. 샐러드를 만들어도 좋고 거칠게 다져서 파스타 소스를 해도 맛있다. 아주 차가운 화이트와인 한잔이나 위스키 안주로도 어울린다. 케이퍼, 절인 올리브, 올리브오일, 매운 고추 같은 지중해 산물과 궁합이 좋다. 질 좋은 올리브오일에 재운 후 신선한 파슬리 한 줌, 매운 고추, 마늘 으깬 것을 넣어 전채로 먹는다면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