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천하 없는 술꾼이었다. 그는 거친 안주를 즐겼는데, 주로 서민의 생선을 좋아했다. 고등어며 꽁치, 청어를 구웠다.
“고등어가 맛있는 이유를 알아? 다른 생선을 구울 때 기름이 떨어지면 붉은 불꽃이 인다네. 허나 고등어는 푸른 불꽃을 일으키지. 맑은 소주에 푸른 불꽃. 어울리는 안주 아닌가?”
기름이 잔뜩 오른 제철 고등어를 석쇠에 얹으면 이내 기름이 뚝뚝 떨어진다. 연탄불이나 숯불에 떨어진 기름이 불꽃을 피워 올린다. 그는 그 불꽃을 들여다보면서 소주잔을 기울인다. 제법 운치와 여유가 있는 주도가 아닌가. 이태백처럼 달을 기울여 그 속의 술을 다 비워버리겠다는 기개는 아니지만, 처연한 무엇이 그의 주도에 서려 있는 것이다.
가을 고등어다. 나는 한동안 시장에서 고등어를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 몸집이 작고 기품 있는 단골집 고등어 아주머니는 나와 눈을 마주치기를 싫어했다. 멀리서 이미 나의 걸음걸이를 알아보고 고개를 돌린다. 그러다가 어쩌다 좋은 고등어가 있으면 손이라도 잡을 듯이 반색을 한다.
“오늘 횟감이 있어.”
나는 고등어로 회를 만들지 않지만, 늘 횟감을 산다. 내가 그 물 좋은 고등어로 파스타 따위나-스파게티라고 아시겠지-만드는 걸 알면 대경실색하실 분이다. 아주머니는 내가 당연히도 일식집 주방장인 줄 안다. ‘시메사바’를 만들려는 주방장 말이다.
횟감 고등어가 있으면 아주머니는 자신감에 차 있다. 얼굴에 주름이 잡히도록 활짝 웃는다. 고등어가 그간 귀했던 것이다. 이젠 그런 염려 안 하신다. 늘 여유 있게 나를 맞으신다. 그래, 제철이다! 고등어가 마구 그물에 걸려드는 제철이다.
고등어는 떼를 지어 연안에서 회유한다. 더운 해류를 타고 다닌다. 한동안 한반도의 남동해안에 찬물이 돌면서 고등어도 보기 힘들어졌다고들 한다. 여름을 넘기고 물이 제자리를 찾은 것일까. 한때 광어회보다 비싸던 고등어였는데.
고등어는 단순히 생선이 아니다. 도미나 농어는 없어도 난리는 안 난다. 술꾼들은 몰라도, 대중들은 그런 줄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고등어는 아니다. 서민들의 밥줄이다. 그 고등어가 밥상에 오르지 않으면 우울하다. 만만해서 고등어고, 맛이 좋아 고등어다. 맛으로 치면 고등어는 섭섭할 것이다. 겨우 고등어라니…. 그럴 것만 같다. 학위를 주어도 좋겠다. 고등어는 정부에서 ‘관리’하는 ‘물자’다. 국민 경제의 상황을 재는 바로미터다. 고등어 가격은 자장면처럼 경제부총리에게 보고될 것이다. 고등어가 귀해지면 수산시장에 수상한 놈들이 좍 깔린다. 냉동 고등어다. 그 포장지에 이렇게 쓰여 있다.
‛정부비축물자’
고등어는 정부에서 사들였다 귀할 때 풀 만큼 민감한 생선인 것이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봤을 때 소금에 절인 고등어가 없으면 다들 서운해지고 힘이 빠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횟감의 고등어라고 해도 이게 급속도로 부패한다는 점이다. 얼음을 퍼부어 넣어도 상한다. 물론 모든 죽은 개체는 상한다. 고등어는 그게 유독 심하다. 그래서 오죽하면 ‘살아서 부패가 시작된다’고까지 한다. 그 이유를 과학적으로 밝혀냈다. 고등어가 죽으면 살 속에 히스티딘이라는 물질이 히스타민으로 변한다. 바로 알레르기 물질인데 우리 몸에서 탈을 일으킨다. 두드러기에 항(抗)히스타민 제제를 먹는 것도 이런 기제다. 그런데 그런 이유가 바로 고등어의 독특한 맛을 낸다는 것도 알려졌다. 히스티딘은 아미노산의 일종이고, 입에 짝짝 붙는 그 맛이라고 한다.
나는 어려서 고등어를 많이 먹었다. 조림이나 생물 구이도 좋지만, 자반이 최고였다. 간고등어가 바로 자반이다. 자반은 문자 그대로 ‘반찬’이라는 뜻이다.
“자반이란 말은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이란 책에 잘 설명돼 있다. 더위가 심할 때 날생선은 쉽게 상하기 때문에 짜게 절인 생선을 찌거나 구워 먹는데 이런 반찬을 자반이라 한다. 자반은 원래 좌반(佐飯)으로 ‘밥 먹는 것을 도와준다’는 뜻이다.”(국립수산과학원 블로그에서)
이 간고등어는 정말 희한한 음식이다. 바로 경상도 깊숙한 내륙, 안동의 음식이다. 아하, 눈치 빠른 분들은 아실 것이다. 내륙, 수송, 소금, 부패…동해안의 고등어가 안동까지 옮겨가면 그대로 유통시킬 수 없으니 재빨리 소금을 쳐야 했다. 그래서 ‘간잽이’라는 직업을 탄생시켰다. 소금 간을 잘 배게 한 간고등어는 그것으로 이미 최고의 맛을 예비했다. 지금 과학의 시대에도 여전히 안동에는 간잽이가 소금을 먹인 자반고등어가 인기이고 비싸다. 저장과 발효의 맛은 한국인만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등푸른 생선의 소금절임은 정말 놀라운 과학적 결과물이 아닌가 한다. 특히 하얀 쌀밥과 소금간 센 자반고등어는 찰떡궁합이니, 이걸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좀 알려주고 싶어 나는 안달이다. 특히 같은 쌀밥 문화권인 일본이나 중국인들이 이 맛을 알면 아마도 혀를 빼고 대들 것 같다. 아니, 그렇게 되면 우리까지 자반고등어 차례가 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탈리아도 고등어를 즐기는 나라다. 터키에 놀러 가서 고등어 샌드위치를 먹고 왔다는 사람은 있는데, 이탈리아 배낭여행서 그런 경험은 없는 듯하다. 거리 음식이 아니기도 하고 식당에서 흔하게 팔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부 이탈리아, 즉 시칠리아나 로마 인근에서 먹는데 오븐구이를 하거나 스파게티에 곁들인다. 별다른 요리법은 없다. 그저 싱싱한 고등어 살을 떠서 마늘과 함께 파스타로 버무리는 것이다. 고등어의 감칠맛이 파스타에 배어 놀라운 맛을 낸다. 아아, 상큼한 화이트와인 한 잔을 곁들여 고등어 스파게티를 먹고 싶다.
■ 고등어 링귀네 재료 2인분 링귀네 220그램 (스파게티로 대체 가능), 고등어 반 마리, 마늘 2톨, 가지 약간, 청양고추 1개, 올리브유 4큰술, 화이트와인 6큰술 1. 큰솥에 물 2리터를 잡고 천일염 20그램을 넣고 끓인다. 2. 팬에 올리브유를 넣고 마늘을 으깨 넣어 볶는다. 가지를 넣고 청양고추 저민 것과 고등어 살 저민 것을 넣는다. 잘 볶아 익힌다. 3. 화이트와인을 부어 날린다. 불을 끈다. 4. 솥에 링귀네(스파게티)를 넣어 삶는다. 봉지에 적힌 대로 삶되 직접 맛을 보아 익힘을 판단한다. 다 익으면 건져서 고등어를 볶은 팬에 넣은 후 잘 버무린다. 다진 흰 파를 올려 먹어도 좋다.
[박찬일 / 라꼼마 셰프 chanilpark@naver.com│사진 = 정기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