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월의 대변항에 가면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
“어이~여차~에야차! 어이~여차~에야차!”
이른바 ‘멸치 터는 소리’다. 필자는 한때 이런 민중소리에 파묻혀 지낸 적이 있다. 모심는 소리, 회다지 소리, 벼 타작하는 소리…. 서울에서 자란 주제에 이런 소리를 알 리 없다. 이유인 즉, 대학 시절 한 기획사의 아르바이트를 통해서였다. 문화부에서 이런 민중제의와 놀이문화를 집대성하는 사전을 펴내는데 집필자로 동원됐다. 현지에 가서 그 소리를 듣고 채록한 후 옮겨야 마땅한 일이지만 나 같은 얼치기 문학지망생을 싼값에 동원해 문헌을 보고 베껴냈다. 그 이른바 민중문화대사전이 지금도 주요 도서관에 다 있을 것이다.
실제 보지도 못하고 옮겨 적은 글이 영 꺼림칙하던 차에 십수 해 전 기장 대변항에서 직접 볼 수 있었다. 그러니 그 소리를 써도 이젠 덜 양심에 찔린다. 그 당시에 멸치 터는 소리를 베낀 문헌은 제주도 어부들의 소리였다. 사진 한 장이 같이 실려 있었는데 제주도 특유의 갈옷을 입은 어부들이 멸치 그물을 움직이는 연출 사진이었다. 대변항에서 본 건 그야말로 실제 전투 같은 장면으로 격이 달랐다. 어부들은 담배 한 대 태울 시간도 없이 얼굴에 피 칠갑, 비늘 칠갑을 하면서 멸치를 털었다.
멸치를 ‘턴다’는 건 그물에 걸린 멸치가 일일이 떼어낼 수 없기 때문에 그물을 흔들어 터는 까닭이다. 이게 보통 중노동이 아닌 듯 싶다. 최근 대변항에 다녀온 후배 말에 의하면 태반이 외국인 노동자라고 한다. 일이 고되고 수입이 적으니 내국인이 멀리 하는 전형적인 3D 업종이 된 것이다. 지난달 멸치를 보러 대변항에 갔지만 마침 시기가 일러 들어오는 배는 못 보고 잡아놓은 멸치만 보고 왔다. 한 가지 팁인데 멸치도 좋지만 기장 대변항의 미역은 최고다. 1만원짜리를 사가지고 와서 끓였더니 쇠고기 한 점 넣지 않았어도 국물이 진하고 뽀얗다. 여기다가 인근의 월전이란 마을에 가면 붕장어숯불구이를 먹어보시라. 1킬로그램에 불과 2만4000원. 서울의 도매 수산시장에서 그냥 붕장어만 사는 도매가격과 같다. 놀랍게 싼 것이다.
꽁치나 고등어보다 더 성질 급한 등푸른 생선
이쪽 지역에서는 장어를 별로 안 쳐준다. 장어라고 하면 붕장어를 이른다. 붕장어를 회로 먹으면 이 동네에선 바보라고 생각한다. 구이와 탕으로 한번만이라고 붕장어를 먹어보면 이유를 알게 된다.
대변항에서는 싱싱한 멸치를 맛볼 수 있다. 노점에서는 한 채반 그득히 담아주고 1만원이다. 즉석에서 구워서 파는데 양이 많다. 멸치찌개와 회무침도 일품이다. 다만 멸치축제를 하는 4월의 특정 기간에는 멸치가 비싸니 참고하실 것.
대변항의 멸치가 얼마나 싱싱한지 나도 놀랐다. 새벽 수산시장에서 장을 보는 나는 멸치의 아가미가 원래 불그죽죽한 줄 알았다. 그런데 산지에 가니 그런 부분이 없다. 그새 서울로 올라오며 산패가 시작된 것이다. 멸치는 꽁치나 고등어보다 더 성질이 급한 등푸른 생선이다. 오직 산지에서만이 가장 싱싱한 놈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인지 없는 게 없는 서울에도 멸치회나 무침, 찌개 하는 집을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그래도 새벽에 수산시장에선 먹을 만한 놈을 건질 수 있다. 횟감도 된다. 그걸 손질하는 일이 고단할 뿐 맛은 기막히다. 우선 머리를 뗀다. 비늘을 대충 털어내고-대강 떨어져 나갔다-배를 가른 후 내장과 등뼈를 빼낸다. 미나리와 오이, 양파, 풋고추와 초고추장을 넣고 버무린다. 통깨를 술술 뿌려도 좋다. 소주가 술술 넘어가고 연신 술병이 쓰러진다. 정말 술을 부르는 안주다.
연신 쓰러지는 술병들
멸치 손질이라면 나는 이골이 난 사람이다. 시칠리아에 있을 때 어지간히 잡았다. 시칠리아 같은 지중해는 멸치의 천국이다. 부자부터 거지까지, 마피아와 검찰이 모두 멸치를 먹는다. 우리가 좋아하는 안초비는 물론이고 튀김으로도 즐긴다. 깡통이 아닌 싱싱한 안초비는 드셔보지 못했을 것이다. 비늘이 파릇파릇 투명한 놈을 사장이 몇 박스고 사들인다. 너무 예뻐 차마 잡을 마음이 안 생긴다. 그러다가 손질이 시작되면 너무도 밉다. 끝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앞서 멸치 손질하는 법과 같다. 지중해 멸치든 대변항 멸치든 같은 것이다. 그러다보면 손 지문에 멸치 비린내가 배긴다. 손톱 안에 가시가 박혀 곪기도 한다. 지긋지긋한 일이다. 그렇게 손질한 멸치는 깨끗이 민물에 씻어서 말린 후 소금을 왕창 치고 올리브유에 담근다. 낼 때는 파슬리를 신선하게 다져 얹고 레몬즙을 쭉 짜서 마무리한다. 입에서 살살 녹는다. 시칠리아산 샤르도네 한 잔과 궁합이 좋다.
멸치는 이처럼 오일에 절여 내는 것보다 튀김이 흔하다. 한국에선 드물지만 시칠리아의 대표 요리라고 불러도 좋다. 배를 가른 후 자반처럼 펼친다. 그걸 빵가루를 묻힌 후 기름에 튀겨낸다. 주요리를 먹기 전 남녀노소 달려드는 전채 요리가 된다. 고소하고 진하다. 멸치 특유의 아미노산이 부르는 감칠맛이 입안에서 폭발한다.
감칠맛을 더하는 튀기는 요리법을 썼으니 이게 어떤 맛인지 상상이 안 갈 것이다. 막걸리나 소주 안주로도 그만일 것 같다. 멸치가 나오는 철은 마침 곰피나 물미역이 시장에 있을 때다. 생마늘과 쪽파, 물미역을 싸서 회로 먹으면 색다른 방법이 될 것이다. 음, 과메기 먹는 법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한번 시도해 볼 것. 눈을 감으니 막 떠놓은 멸치 필레가 혀 안에서 미끈거리면서 요동을 친다. 살아 있는 것 같다. 아작, 깨무니 까칠한 작은 가시가 무너지며 쫀득한 살이 흐물거리며 무너진다. 아아, 봄맛이 절정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