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밤에 느긋하게 영동선을 타고 강원도를 향하거나 인천 쪽으로 경인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나는 하나의 짐작을 하게 된다. 승객을 가득 실은 승용차가 미친 듯 가속기를 밟는 걸 보면 말이다. 동료나 친구들과 한 잔 술에 발동이 걸려 ‘바다로 가자!’고 누군가 외치면 그렇게 되곤 한다는 걸. 가진 거라곤 주체할 수 없는 열정-그걸 치기라 하더라도-밖에 없는 젊음은 가슴을 식히러 바다를 향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좀 오래 전의 일인데 나도 어느 새벽인가 친구들과 월미도 앞에서 잔뜩 오른 취기에 바람을 쐬고 있었다. 요즘엔 가당키나 한 일인지 모르겠으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철책을 넘어 갯바위에서 바닷물에 발목을 적시고 있었다. 그때 친구가 외쳤던 그 소리는 지금도 귀에 선한데 마치 삼을 발견한 듯한 희열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야, 굴이다!”
모두 바위에 다닥다닥 붙은 굴 껍질을 손으로 마구 벗겨 애기 손톱만한 굴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굴은 작았지만 맛은 짭짤하고 진했다. 바로 옆이 유람선 선착장이어서 기름띠라든가 행락객들이 버린 온갖 쓰레기가 그 바다에 둥둥 떠 있었지만 취기 오른 치기는 원래 그런 것이다. 하나뿐인 구두가 소금을 먹어 못 쓰게 된 것까지는 좋았으나 엉뚱한 후환을 남기고 말았다. 연장도 없이 굴 껍질, 그러니까 패각을 뜯어내느라 손가락은 물론 손바닥 전체가 상처투성이로 변해버렸다. 얼근한 술기운에 짜고 차가운 바닷물이 통증을 잊게 해주었던 것이다. 사무실로 출근해서 한동안 타이핑을 하지 못하고 끙끙댔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게 자연산 굴이었을 것이다. 누구도 월미도 선착장 옆에 패각을 붙여 기르지는 않았을 테니까. 굴은 자연산이 매우 드물다. 바위에 붙어있으니까 사람 눈에 쉽게 띄고 군락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있다 해도 그 귀물이 어디 내 몫까지 올 게 있겠는가. 다행히도 기르는 굴도 충분히 맛있다. 인천 앞바다의 굴은 서해안이므로 당연히 씨알이 잘다. 들물 날물에 의해 햇볕에 노출되면서 서해안의 굴은 섭생이 조절된다. 먹는 플랑크톤의 양이 적으므로 굴의 크기가 작다. 그러므로 맛은 더 집중력이 있고 진한 편이다. 색깔도 더 짙어서 우리가 흔히 시장에서 ‘자연산 굴’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서해안의 굴이다.
이런 굴은 갯벌에 바위를 부려 놓고 그 위에 종패를 붙여 기른다. 그래서 ‘투석식’이라고 한다. 천수만의 간월도에 가면, 물이 빠졌을 때 드문드문 놓여 있는 바위를 구경할 수 있다. 진하고 입이 얼얼한 간월도 어리굴젓이 바로 이런 굴로 담근 것이다. 맛이 복합적이고 뒷맛이 오래 남는 명품 굴이다.
요사이 서해안에는 새로운 굴이 조용한 바람을 몰고 오고 있다. 이른바 프랑스 노르망디식 굴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굴을 기르고 즐겨 왔지만 굴 양식에 있어서는 매우 단순하다. 어느 굴 세계의 선지자가 프랑스식 양식법을 도입해 온 것이다. 어린 굴을 그물망 같은 것에 나란히 놓고 평상 위에 올려 기르는 방법이다. 굴이 아주 크고 맛은 진하다. 비싸서 시중에서 만나기가 아주 어렵다.
우리가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굴은 역시 통영을 중심으로 한 남해의 굴이다. 수하식이라고 해 줄에 종패를 매달아 바닷물에 담가서 기른다. 먹이활동을 오래 하기 때문에 굴이 크고 선명하다.
서해안이 최고네, 통영 굴이 최고네 하지만 요리를 하는 나로서는 각각 쓰임새가 다르다. 통통한 살을 씹는 맛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통영 쪽의 남해산 굴이 낫고, 진한 굴 향을 강조하려면 서해안 굴을 쓴다. 그러나 날로 먹는 굴은 양식 가운데에서는 노르망디식으로 기른 굴을 따라올 것이 없다. 맛은 진하고 향은 강하며, 크기도 좋기 때문이다.
카사노바가 베네치아 만에서 잡히는 굴을 매일 수십 개씩 먹었다는 이야기는 굴을 거론할 때면 늘 등장한다. 사실일 것이다. 베네치아 쪽은 좋은 자연산 굴이 많이 나던 동네였으니까. 굴에 남성의 생식 기능을 강화하는 성분, 이를 테면 아연 등의 미네랄이 충분하다는 것도 널리 알려져 있다. 굴이 서양에서 정력제로 통하는 것은 카사노바의 굴 이야기와 엮여 정설로 전한다. 서양인들의 굴 사랑은 대단한데 날이 쌀쌀해지면 미국이나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의 해산물 식당은 굴을 먹으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굴은 3·6·9식으로 3의 배수로 판매하는 게 전통이다. 값이 만만치 않아서 굴 좀 먹었다 하면 웬만한 스테이크를 먹은 것보다 훨씬 비싸게 치인다. 굴을 먹을 때는 레몬즙을 치기도 하고, 오일을 뿌리기도 하는데 미국 쪽에서는 그네들만의 소스, 즉 타바스코 소스를 뿌려 먹기도 한다. 썩 마음에 드는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어떤 이는 버터를 올려 먹거나 매운 후추를 뿌리기도 한다. 버터? 한번 도전해 보시라.
이탈리아는 굴로 다양한 요리를 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굴 리조토다. 쌀을 천천히 육수에 볶아 만드는 리조토는 볶음밥도 죽도 아닌 묘한 질감을 내는 쌀 요리다. 굴의 진한 향을 쌀알에 가득 담는 요리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굴은 그냥 날로 먹는 게 최고라는 게 정설이기는 하다. 더 이상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는 그런 단계, 그것이 그냥 생굴의 힘이다.